# 65
65. 불의 아들.
65.
대승을 거두었으니 그것을 축하는 건 당연한 일, 큰 연회가 팅기스에서 벌어졌다.
“와하하하하!”
군단병, 해적, 징집병 나눌 것 없이 한데 어울려 먹고 마시고 즐겼다. 조금 으슥한 곳에서는 여인들과 돈을 주고 성관계를 맺는 자들도 있었다.
팅기스 특유의 음악이 다소 난잡하게 울려 퍼졌고 소음으로 인해 고함을 질러야만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시끌벅적했지만 누구도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모두가 그 소음의 주인공이었으니 말이다.
단순히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 불과하니 이 같은 연회를 생략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러한 연회는 아군의 결속력을 강화시킨다. 지금도 보라. 데면데면했던 세 부류가 하나가 되어 같은 마음을 품고 있지 않은가?
현명한 지휘관이라면 병사들이 전장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끔 어떤 식으로든 보상해준다. 금욕. 금욕. 금욕만 부르짖다가 내부반란을 이기지 못하고 쫓겨나거나 죽음을 당한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인가? 이러한 면에서 승리 후 연회는 전투를 치르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이다.
당연히 세르토리우스는 병사들의 환심을 사는 것은 물론 자신의 승리를 널리 알리고자 대대적인 연회를 펼쳤다. 팅기스 전역이 연회를 들썩거리는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세르토리우스는 서후와 다소 조용한 곳에서 독대하고 있었다. 물론 시끌시끌한 소음이 그들이 독대하는 자리에도 울려 퍼졌지만 대화를 방해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테세우스. 네게 코로나 그라미데아를 무더기로 수여해도 누구도 나를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 잘했다. 실로 잘했다.”
“과찬이십니다.”
세르토리우스는 연회가 벌어지기 전 지휘관들과 모든 병사들 앞에서 취한 테세우스의 태도를 떠올렸다. 자신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는 이렇게 외쳤다.
“아버지의 전략은 실로 탁월합니다. 아버지의 명을 받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테세우스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든 영광을 오롯이 자신에게 돌렸다. 그런 뒤 테세우스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이름을 크게 드높였다.
“세르토리우스!!”
그러자 모든 병사들이 세르토리우스의 이름을 연호했다.
“세르토리우스!”
“세르토리우스!”
“와아아아아!”
세르토리우스는 그런 이들을 향해 가만히 손을 들어 잠잠하게 만든 다음 간단하게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없었다면 내 어찌 이런 과업을 달성할 수 있었겠느냐? 팅기스에 대규모 연회를 개최할 것이니 오늘의 승리를 만끽하라!”
“와아아아아!!”
“세르토리우스!”
“세르토리우스!”
조금 전의 일을 상기하던 세르토리우스는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서후를 기꺼운 눈으로 바라봤다.
“어찌하여 너는 네가 세운 공을 내게 돌렸느냐?”
“제 아버지가 아니십니까? 아버지의 영광은 곧 아들의 것입니다.”
세르토리우스는 결국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
“하지만 아버지께서 제 아버지가 아니셨더라도 그리했을 겁니다.”
서후의 이어지는 대답에 세르토리우스가 여전히 웃음기 띤 얼굴로 질문했다.
“그 이유는 무엇이더냐?”
“저희가 승리를 거두긴 했으나 저희 세력은 여전히 보잘 것 없습니다. 오히려 전쟁을 치르기 전보다 전력이 약화된 상황입니다. 병사들과 막대한 물자를 소모하고 얻은 것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승리라는 명성뿐입니다. 저희 세력이 크고 이번 전투가 그 모든 것을 만회할 정도의 파급력을 지녔다면 제가 그 명성을 나눠 가져도 상관없겠지만 대국적인 시선에서 보자면 변방에서 일어난 작은 전투일 뿐입니다. 그러니 명성을 상징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이면 족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은 저희 군에 아버지밖에 없습니다.”
선택과 집중이 효율적인 성장을 가져온다. 서후는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세르토리우스가 가진 명성을 더욱 드높여 세력을 키워야 할 시점이라고 말이다.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눈앞의 승리에 취하지 않고 그 너머의 것을 바라보니 너와 상대할 적들이 불쌍하기까지 하구나. 좋다. 이 아비가 네 앞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 안에서 네 싹을 틔워 보거라.”
‘역시 예리한 사람이다.’
명성을 얻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모난 돌은 정을 맞기 마련이다. 외부에서 보기에 자신은 고작 소년에 불과하다. 그런 자가 믿을 수 없는 공을 세운다면 쓸데없는 적을 만드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세르토리우스 내부에서 자신의 입지도 아직 미약한 편이다.
지금은 누군가의 경쟁자로 나설 때가 아니라 내외적으로 자신의 역량과 영향력을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그건 굳이 특별한 명성을 지니지 않아도 가능하다. 어차피 세르토리우스의 세력이 커지면 자신의 영향력도 커진다. 서후 자신은 바로 그 세르토리우스의 아들이니까.
세르토리우스가 그 이면에 숨은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봤음을 알아차렸다.
“작은 명성을 취하려고 하느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거두어갈 수 있는 권력자의 마음을 사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태도이긴 하다. 그러나 테세우스. 너는 내 아들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 이해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서후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자 세르토리우스가 말했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았다면 되었다. 그나저나 그 폭발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이더냐? 세인들이 나를 일컬어 뭐라 부르는지 아느냐? 나보고 불의 아들이라더군. 하지만 그건 사실 너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더냐? 그러니 말해보라. 심히 궁금하구나.”
“혹시 검은 기름을 아십니까?”
“검은 기름? 음. 혹 이집트인들이 설사제로 쓰는 그 검은 기름을 말하는 것이냐? 네 말은 그게 폭발을 일으켰다는 말이냐? 글쎄다. 불에 타지 않는 건 아니지만 불에 잘 붙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래된 것은 불에 붙지 않지만 막 추출한 것은 불에 매우 잘 탑니다. 그것을 이용한 폭발이었습니다. 우연찮게 누미디아 상인이 그것을 파는 것을 보고 구상해봤는데 다행히 계획한 대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호오.. 그랬군.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겠지만 그 부분에 대해 더 구상해 보거라. 제법 쓸만한 무기가 나올 것도 같구나.”
“알겠습니다.”
그 말에 세르토리우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서후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너를 너무 붙들어 두었군. 가자. 축제를 즐겨야 하지 않겠느냐?”
*
며칠간 휴식을 취한 서후는 가벼운 복장으로 팅기스의 대장간을 찾아 나섰다. 자신이 들고 있는 무기가 너무 조잡하다는 생각에 이번 기회에 바꿀 생각이었다. 당장은 대단한 물건이 나오지 않더라도 훈련용 무기라도 구비할 생각이었다.
세르토리우스군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은 상인들이 벌써부터 팅기스를 찾아들었기에 팅기스의 항구는 전에 없이 호황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흐름이 고착화되면 이 지역 경제가 발전할 수밖에 없다. 또한 불가침조약을 맺은 두 도시에서 타무다, 릭서스 등지에서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달라고 사람을 보내왔다고 들었다.
하지만 서후는 더 이상 대외적인 일에 나서지 않았다. 긴급한 상황이라 별수 없이 직접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들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고 무엇보다 그런 식으로 일을 하려고 해서는 곤란해진다. 세르토리우스와 그 휘하의 사람들이 일련의 일들을 감당할 수 있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좋았다.
무엇보다 서후는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저번과 이번 전투를 통해 답답함을 느꼈다. 나이가 어린 부분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감안한다고 해도 이 무기는 어떻게든 바꿔야 할 필요를 느꼈다.
칼날은 무뎌질 대로 무뎌졌고 애초에 검의 균형이라던가 질 자체가 그렇게 좋은 검이 아니었다. 이런 검을 들고 계속 전투에 임한다면 언젠가 큰 화를 당할 것이 뻔했기에 서후는 당장에라도 쓸만한 무기를 얻기를 원했다. 그런 무기를 이곳에서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그건 대장간에 가보면 알게 될 일이니 느긋한 마음으로 분주한 시내를 구경했다.
며칠 전 가까운 바다 위에서 피비린내는 혈전이 벌어졌건만 뜨거운 햇볕을 받고 있는 팅기스의 시내는 마치 어떤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평온하기만 했다. 분주한 것이야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일상적인 광경이니 평온하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서후는 그 모습에 안도감을 느꼈다. 이는 세르토리우스의 승리가 성공적으로 이 주변 지역으로 퍼져간다는 소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팅기스는 아군의 주요거점이 될 수 없는 곳이다. 이곳을 거점으로 삼으려 한다면 마우레타니아 왕위전쟁에서 승리한 자를 적을 두어야 할 것이다.
팅기스는 이 지역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주요도시다. 하지만 그곳을 얻고자 마우레타니아의 왕과 척을 진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것이니 왕위가 결정되면 적절한 협상을 통해 보상을 받고 팅기스를 저들의 손에 돌려주는 것이 현명했다.
이 지역 주민들도 자신들의 민족이 아닌 외부인이 언제까지 자신들 머리 위에 앉아있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말 그대로 특수한 상황이라 자신들이 이곳의 통치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 적당한 시점에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챙겨서 팅기스를 떠나는 것이 좋았다. 가장 좋은 곳은 히스파니아로 돌아가는 곳이다. 세르토리우스가 그곳에서 총독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으니 그가 벌인 정책들이나 그의 명성을 비교적 잘 퍼져 있는 곳이며 땅덩어리가 넓고 물자가 상대적으로 풍부하니 여러모로 로마에 대적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혹 식량이 부족한 부분은 이집트와의 교역으로 해결할 수 있을 테고 자유무역지대가 확장되면 시장을 통해 언제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
로마의 토벌군을 적은 수로 거하게 무찔렀고 불의 아들이라는 다소 미신적인 이야기까지 퍼져나간 것으로 보이니 로마에서 도망친 자들이나 로마를 적대하는 자들이 세르토리우스 휘하에 몰려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큰 문제는 거점이다. 아군이 무력으로 어떤 지역을 점거한다면 그건 또 다른 적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떻게든 아버지의 명성을 더 높여서 저들 스스로 아군을 받아들이게끔 만들어야 한다.’
지금 당장 히스파니아를 점령하고 있는 로마군을 향해 진격하면 되지 않냐고 묻는다면 말했다시피 여전히 저들의 수효나 병력의 질이 세르토리우스를 압도한다. 전력이 월등하기는커녕 비등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침략전을 수행하려 한다는 건 그야말로 싸우기 전부터 지고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세르토리우스도 말했지만 사람들은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어떤 가시적인 것에 큰 영향을 받는다. 지금 당장 로마로 진격한다고 한다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자들마저 세르토리우스에게 등을 보일 수 있다. 누가 봐도 이길 수 없는 전투라고 여길 테니 말이다. 막강한 로마의 토벌군 중 하나를 겨우 물리쳤을 뿐이다. 그러니 히스파니아를 장악하고 싶다면 안정적으로 그들을 도모할 수 있는 거점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무작정 쳐들어간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는 소리였고 애초에 무작정 쳐들어갈 병력조차 없었다. 명성을 이용해 보조군을 더 모집하면 되지 않냐고? 당장 며칠 전 같이 싸웠던 해적이나 징집병들부터 세르토리우스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하지만 이 이상 내가 대국적인 측면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버지를 제쳐두고 어린 내가 나선다면 오히려 아버지의 명성에 금이 가게 할 수도 있는 노릇.’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축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지난 며칠간 휴식은 취할 대로 취했으니 자신에게 주어진 여유로운 시간을 자신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보내는 것이 현명했다.
일단은 무기부터다. 이놈의 무기는 도무지 허접하고 불량해서 도무지 신뢰할 수 없었다. 그나마 일반적인 다른 검들보다는 나은 것 같아서 지금까지 썼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것보다 나은 검이 없을 수도 있겠구나.’
서후는 불현듯 그런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털어버렸다. 일단 보고 판단하면 될 일이었다.
캉 캉
대장간 주변에 다다르자 매캐한 냄새와 함께 요란한 소음이 한창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후는 생각지도 않게 호라티우스와 나디르를 만났다.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전사가 자신의 무기도 점검하지 않는다면 그는 곧 죽은 목숨일 테니까. 더욱이 이 시대의 무구는 나라에서 구매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구매하는 게 일반적이다. 군단병의 경우에도 무구가 일괄적으로 주어지기는 하나 후에 자신의 급여에서 차감하는 식으로 갚아야 했다.
“테세우스님!”
저들이 환한 표정으로 인사하자 서후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서 볼 줄은 몰랐군.”
“당연한 소리를 하시는군요. 무기를 점검하러 오신 겁니까?”
서후는 그들을 힐끗 살펴보고 입을 열었다. 저들은 이미 무기점검을 마친 모양이었다.
“빠르군.”
“과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저흰 먼저 이동할 테니 볼일 보십시오. 저희도 볼일이 있어서. 아 이따가 저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호라티우스가 짓궂게 웃으며 서후에게 말하자 서후는 되었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난 됐어. 가서 볼일들 보라고.”
“하하하하. 알겠습니다.”
나디르는 말없이 고개를 숙인 뒤 호라티우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저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서후는 대장간 안으로 들어섰다. 꽤 많은 무구가 대장간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어서 오십시오.”
서후는 대장장이의 눈에 귀찮음이 서려 있는 것을 확인했다. 밖에서 호라티우스 등과 만나지 않았다면 쓸데없이 말이 길어질 수도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들의 태도에서 자신의 신분이 꽤 높은 것을 눈치챈 것이리라. 서후 역시 길게 말을 늘일 필요 없이 간단하게 말했다.
“무기를 좀 보러 왔습니다.”
“거기 있는 게 다 무기인 뎁쇼?”
서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