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60화 (60/298)

# 60

60. 직접보고 판단해라. --- 기존 무료분입니다.

60.

팅기스로 향하는 3단 갤리선 위에서 서후는 나디르와 호라티우스와 함께 가볍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에부수스의 주요 특산물 중 하나인 가룸을 뿌린 꼬치와 구운 생선을 빵과 포도주와 함께 먹었다.

가룸(Garum)은 로마인의 젓갈이자 감미료로 로마인이 먹는 거의 모든 음식에 들어가는 필수 양념이었다. 각종 해산물을 소금에 절여 한 달에서 세 달가량 숙성시킨 후 사용하는데 이 발효할 때 냄새가 지독하기에 외곽 지역에서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지역에 따라 해산물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는데 히스파니아의 바에티카 속주에서 나온 가룸을 최고로 쳤다.

“역시 신선한 가룸으로 만든 것이라 감칠맛이 끝내주는군요. 함께 먹는 빵이 포카치아가 아니라 코르넷토였다면 풍미가 더 좋았을 텐데 아쉽군요.”

호라티우스가 포도주를 벌컥벌컥 마신 뒤 입을 열었다. 그는 비스켓처럼 납작한 포카치아보다 뿔 모양의 코르넷토를 더 선호하는 모양이었다. 코르넷토는 현대의 크로와상과 비슷한 것이라 보면 되었다.

코르넷토는 아직 먹어본 적이 없는지라 평할 수 없지만 서후가 느끼기에도 가룸이 들어간 음식과 그렇지 않은 음식의 차이가 상당했기에 그의 발언에 동의했다. 하지만 서후는 호라티우스에게 말을 꺼낸 것이 아니라 나디르에게 말했다.

“나디르.”

“예.”

“고려해봤는데 역시나 무역이 적합할 것 같다.”

나디르는 오물거리던 포카치아를 마저 씹어 삼키고 서후에게 말했다.

“제게 전권을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해로에 대해 박식하고 신중하며 무엇보다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해적들은 오늘만 사는 자들이지. 내일 뭔가를 준다고 해봐야 먹혀들 리가 없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편이 좋을 듯하다.”

나디르의 제안에 생각보다 많은 수의 해적들이 서후에게 합류했다. 서후는 그들에 대한 일종의 정책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습니다. 전투에 적합하게끔 선단을 편성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나디르의 대답에 호라티우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무역을 맡긴다고 했는데 전투에 적합하게끔 선단을 짠다고?”

그 대답은 나디르가 아니라 서후가 답했다.

“확실한 보상보다 확고한 동기부여는 없다. 돈이 된다고 여긴다면 나서지 말라고 해도 우리 편에서 싸울 거다.”

바다에 익숙한 해적들을 육지에서 싸우게 하랴? 일단 저들을 신뢰할 수 없고 로마군에 대항할 정도로 강군으로 만들 시간도 없으며 상당히 비효율적인 일이다.

“으음.”

호라티우스는 서후의 의도가 무엇인지 깨닫고 침음을 뱉었다. 지금 이게 이 나이 때 가질 수 있는 혜안이란 말인가? 호라티우스가 속으로 혀를 내두를 때 나디르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셀레우코스를 아십니까?”

갑자기 셀레우코스 이야기는 왜 꺼내냐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호라티우스가 나디르의 말을 받았다.

“셀레우코스? 카르타고 이전에 지중해의 패자였던 셀레우코스 제국? 지금이야 파르티아나 아르메니아에 의해 시리아 지역에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지만 셀레우코스 제국을 모를 수는 없지. 그 셀레우코스 제국을 말하는 게 맞겠지?”

“맞다. 하지만 셀레우코스 제국이라.. 현재 차치하고 있는 영토, 시리아 지역마저도 다른 국가들의 완충지대이고 강대했던 셀레우코스 제국의 명맥을 끊으면 타국에 침략 명분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겨우 숨통만 끊어지지 않은 상황에 불과하니 너무 과한 표현이다. 셀레우코스 왕국이라 칭하기에도 부족한 지경이니.”

서후는 나디르가 그 말을 꺼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입을 열었다.

“그곳 출신이었나?”

“그렇습니다. 저는 셀레우코스 제국의 사실상 마지막 통치자였던 안티오코스 12세 휘하의 장수였습니다.”

서후가 가만히 그를 바라보자 나디르가 계속해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제가 섬기던 안티오코스 12세는 그의 형 유케로스의 뒤를 이어 다마스쿠스를 다스리던 군주로 셀레우코스 왕국을 분리하고자 하던 분리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나바티아(Nabataea)인들의 공격을 막아내다가 죽임을 당했고 저는 그 길로 셀레우코스 왕국을 등졌습니다.”

‘다마스쿠스? 혹시 다마스쿠스 강철의 그 다마스쿠스인가?’

서후는 다마스쿠스라는 단어에 대해 깊은 호기심을 느꼈으나 그보다는 나디르의 태도에 대해 기이함을 느끼곤 잡생각을 뒤로했다.

지인의 죽음으로도 크게 분노하며 맹렬하게 그 복수를 집행한 사람이 나디르다. 그런 그가 스스로 섬기던 왕이 살해당했는데 오히려 그 왕국을 떠났다고? 뭔가 앞뒤가 안 맞지 않은가? 그건 호라티우스 역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쪽 왕조야 워낙 막장이니 자세한 이야기는 더 신경 쓰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어쨌든 이거 뭔가 좀 이상한데? 섬기던 왕이 살해당했는데 그냥 나라를 등졌다고? 그것도 나디르 네가?”

나디르는 별말 없이 서후를 바라봤다. 서후는 눈매를 좁히며 나디르를 바라보다가 대뜸 말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이런 저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살아 있는 동안 그를 떠나거나 배신한 것도 아니고 죽었는데 뭐가 어때서? 또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 말에 나디르는 물론 호라티우스 역시 다소 황당한 눈으로 서후를 바라봤다. 서후는 앞에 놓인 포도주로 목을 축인 다음 입을 열었다.

“죽음 이후에 충성 같은 건 바라지도 않으니 살아 있을 때나 잘해.”

“······.”

서후는 묵묵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나디르에게 다시 말했다.

“하지만 그게 이야기의 전부는 아닌 것 같군. 이왕 꺼낸 과거 좀 더 풀어봐봐.”

나디르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서후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누명을 썼습니다. 저희 가문은 하지도 않은 일을 뒤집어쓰고 멸문당했습니다. 당시 나바티아인들과 싸우던 저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누명이라는 것이 밝혀졌기에 신분은 곧 복원되었습니다.”

그 누명이 안티오키아를 다스리던 필리포스 1세와 내통하던 자들의 소행이라는 걸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왕국을 떠날 때 주모자들을 살해했을뿐더러 필리포스 1세 역시 다스리던 안티오키아를 떠오르는 신성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2세에게 빼앗기고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으니까.

다마스쿠스는 나바티아의 아레타스 3세가 차지했다던가? 그게 벌써 3년 전의 일이었다. 자신이 셀레우코스를 떠난 지 2년 후의 일이기도 했고.

호라티우스가 그제야 납득이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누명을 씌운 자들은 죽었겠군.”

나디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서후가 입을 열었다. 섬기던 왕이 죽은 이후에야 복수를 마무리 지었으니 신중함과 참을성이 돋보이는 일화가 아닐 수 없었다. 충성도 충성이지만 내부가 어수선해질 때를 노린 것이리라.

“그랬군. 그나저나 다마스쿠스 출신이라니 그곳에 관해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다마스쿠스는 이곳과 전혀 동떨어진 곳이다. 따라서 나디르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서후에게 바로 대답했다.

“다마스쿠스에 대해서 말입니까? 말씀하십시오.”

“혹시 다마스쿠스는 다른 지역보다 뛰어난 철이 산출되는 지역인가?”

사자심왕 리처드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서후는 다마스쿠스 검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에 대해 알고 있었다. 현대의 특수강에는 비할 수 없지만 비단 손수건을 칼날 위에 떨구면 절로 베어질 정도로 예리하고 바위에 내리쳐도 구부러지거나 부러지지 않는 탄력을 가진 다마스쿠스 강철은 그 당시 넘사벽에 가까운 물품이었다.

그 위력에 놀란 유럽의 수많은 사람들이 제조법을 알아내고자 노력했고 리처드조차 그 제조법을 알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그 방법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나디르가 다마스쿠스 출신이라니 호기심에서라도 그 부분에 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철이요? 글쎄요. 금시초문입니다. 다만 철이라면 인도 지역에서 산출되는 철이 우수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인도? 다마스쿠스가 아니고?’

서후가 그렇게 말할 때 호라티우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레가투스께서 말씀하신 게 떠오르는군요.”

“무엇을?”

“철 중에 제일은 인도산이라는 이야기 말입니다. 로마에서는 그것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이 지역에서는 도통 구할 수 없으니.. 그게 아쉽다고 하셨습니다. 아.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인도 원정 후 인도산 강철에 대한 우수함을 기록했다고 말씀하셨지요.”

‘인도산 철이 그렇게 우수하다고? 하긴 다마스쿠스 강철이 유명한 시기는 어쨌든 중세시대였으니 이 시기엔 아직 개발되지 않았을지도. 아무래도 제철기술도 중세보다 떨어질 테고. 하지만 인도산 철은 기회가 된다면 확보해봐야겠어. 무역이 확대되면 대량은 어려워도 소량은 얻을 수 있겠지. 다마스쿠스에 뛰어난 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다마스쿠스 강철은 그 인도산 철을 가공하면서 나타난 산물일지도 모르겠어. 물론 후대에 철광산이 개발되면서 그곳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지만..’

서후의 추측은 사실에 가까웠다. 다마스쿠스 강철은 기원전부터 최상급 철과 철제 검의 생산지로 유명한 인도산 철로 만들어진 산물이다. 중동에서는 인도산 철을 철괴 형태로 수입했는데 특이하게도 이 인도산 철괴에는 불순물이 첨가되어 있었고 이것이 다마스쿠스강의 주요특성을 이루는 근원이 되었다. 다시 말해 인도산 철괴가 없이는 다마스쿠스 검을 만드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소리였다.

“뭐 어쨌든 나를 따라 다니느라 수고들 많았다.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르는데..”

호라티우스가 무슨 말을 하냐는 듯 피식 웃으면서 서후에게 대답했다.

“군인이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전장에 서는 건 비일비재한 일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믿어주는 상관과 함께 전장에 서는 건 흔한 일이 아니지요. 특히 믿을만한 상관과 말입니다.”

“저 역시 호라티우스와 같은 마음입니다.”

서후는 호라티우스와 나디르를 바라보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그럼 앞으로도 부탁하지.”

“물론입니다.”

“맡겨주십시오.”

*

둥둥둥둥둥

세찬 북소리와 함께 바다를 가르는 수십 척의 배들이 있었다. 5단 갤리선만 스무 척에 달했고 3단 갤리선은 서른 척에 달했다. 그 위에는 중무장한 로마 병사들이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5단 갤리선, 퀸퀴림(quinqureme) 위에 불같은 성정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사내가 오만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좀 더 서둘러라. 숫자도 얼마 되지 않는 세르토리우스군 따위 단번에 쳐부수고 로마로 돌아갈 것이니!”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의 이름은 아우렐리우스 코타로 현재 팅기스에 주둔하고 있는 세르토리우스군을 토벌하고자 이동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레가투스! 다만.”

“다만 뭐?”

그는 부관이 자신의 말에 토를 달자 바로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그에게 소리쳤다. 그의 분노를 맞이한 부관은 난색을 표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선단의 진형이 너무 많이 무너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적을 맞닥뜨리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신속하게 이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진형을 정렬한 후에..”

“흥. 그것도 조언이라고 말을 꺼내는 것이냐? 팅기스는 카다스 해협 끄트머리에 자리한 곳이다. 저들이 아군의 대규모 선단을 상대할 계략을 짰다면 수심이 낮고 폭이 좁은 카다스 해협에서 계책을 사용하지 이런 대해에서 우리를 습격하겠느냐? 그리고 파악한 바로 세르토리우스가 거느리고 있는 군단병의 숫자는 고작 천 명에 불과하다. 마우레타니아는 왕위쟁탈전으로 정신이 없고 누미디아는 아군의 편이며 히스파니아 역시 아군에게 속해 있다. 그런 세르토리우스에게 대체 무슨 여력이 있어 아군을 선제공격할 수 있단 말이냐? 오히려 아군의 진격을 파악하고 대비하기 전에 서둘러 이동하는 것이 상책이다. 더 할 말이 있느냐?”

“아.. 아닙니다.”

서둘러 움직이느라 한 개 군단 조금 넘는 숫자만 대동하고 이동했지만 이것도 과하다고 생각했다. 이 전투는 질 수 없는 전투였다. 뒤늦게 가면 아군의 위용에 겁을 먹은 세르토리우스군이 도망칠 테니 그렇게 되면 시일만 길어진다. 아우렐리우스 코타는 술라의 명에 의해 이곳에 오긴 했지만 자신은 영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한시라도 빨리 로마로 다시 돌아가길 원했다. 술라가 로마를 뒤흔드는 권력자가 아니었고 자신의 디그니타스를 염두에 두지만 않았다면 애초에 이곳까지 원정 올 일도 없었다. 사실상 좌천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심기가 좋을 수가 없었다.

“그걸 알아들었으면 얼른 더 속도를 내라는 신호를 보내지 않고 뭘 그렇게 멀뚱히 서 있는 것이냐?”

아우렐리우스 코타가 역정을 내자 부관은 부랴부랴 명을 내려 북과 트럼펫, 깃발 등으로 나머지 선단에 신호를 보냈다.

뿌우우 뿌우 둥 둥 둥

요란한 소음에 울려 퍼지자 아우렐리우스 코타가 이끄는 해군은 진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바다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상당히 위험하다면 위험한 광경이었지만 아우렐리우스 코타는 그제야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야 좀 속도가 나는군. 패잔병 따위에 무슨 겁을 그렇게 집어먹고. 흥!”

카이우스 안니우스가 세르토리우스군을 결코 무시하면 안 된다고 당부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우렐리우스 코타는 기도 차지 않았다. 안니우스의 당부는 오히려 자신이 공을 세울까 염려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단번에 이 반란군 세력을 일소시켜 나 아우렐리우스 코타가 어떤 사람인지 로마에 보여주리라!”

집정관이나 법무관이었던 자만 펼칠 수 있었던 개선식을 이례적으로 행한 폼페이우스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부글거리는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놈도 개선식을 행하는 마당에 자신은 패잔병 따위나 상대하고 있다니. 그러니 보여주리라. 자신이 얼마나 신속하게 이 반란군 무리를 끝장내버릴 수 있는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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