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59. 직접보고 판단해라.
59.
“그게 사실인가?”
서후는 표정을 굳히며 반문했다.
“이런 상황에서 저희가 거짓을 고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폼페이우스는 술라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자다. 또한 유능한 장군이다. 그런 자가 북아프리카 지역에 남아 있다면 아군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바라카에게 폼페이우스가 누미디아의 반군을 처리했다고 들었기에 그의 거취를 확인하고자 상인들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의외의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소우판의 마사에실리족으로 근방의 정보망을 구축했다지만 상거래도 한 번 하지 않은 그들이 현재 뭘 알겠는가? 따라서 에부수스에 정박한 상인들에게 폼페이우스에 대한 소식은 물론 주변의 소식을 얻고자 했다.
‘폼페이우스가 로마의 소환령에 응해 로마로 향했다? 그리고 카이우스 안니우스가 그의 군단을 이어받았다면..’
카이우스 안니우스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어쨌든 이미 세르토리우스를 두 번이나 패배시킨 자가 아닌가? 세르토리우스가 무능한 것이 아니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패배 앞에 어떤 핑계나 이유는 아무 의미도 없다. 패자의 넋두리를 가치 있게 여기는 자는 어디도 없으니까.
‘폼페이우스가 로마로 떠난 것은 좋은 소식이나 누미디아로 도망친 도미티우스와 그에게 협력한 히아르바스의 군대를 쳐부수며 실전으로 단련된 정예군단이 카이우스 안니우스에 손에 들어간다면 여전히 위협적이다. 게다가 그 군단이 최소 하나 이상일 텐데..’
서후는 순식간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누미디아의 두 왕, 동부의 히엠프살 2세와 서부의 마시니사 2세는 로마군으로 인해 왕권을 되찾았으니 우티카의 로마군단에 적극협조할 것이 뻔하다. 결국 로마군은 누미디아의 투창 기병까지 보조군으로 거느리고 마우레타니아로 들어선다. 여기서 아스칼리스는 술라에게 많은 재물을 제공했을 테니 술라는 아스칼리스의 편을 든다. 그렇게 아스칼리스를 도와 마스타네소스를 빠르게 정리하고 팅기스로 향한다면?’
그건 못해도 수만의 군대가 팅기스로 향한다는 말이 된다. 일이 그렇게 진행되면 누미디아와 마우레타니아가 전부 로마군의 영향권 아래에 놓이니 수만의 병사라고 해도 보급을 걱정할 이유가 없을 터, 천 명이 넘는 병력으로 그들을 무슨 수로 상대할까?
필패다. 이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길 수 없다. 팅기스가 난공불락의 요새도 아닌데다가 그렇다 할지라도 승산이 없다. 서후는 자연히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때 상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폼페이우스가 하나의 군단만 남기고 모두 해산시켰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인가?”
사실이길 염원하는 마음으로 서후가 되물었다.
“강제 해산당한 병사들 한두 명이 그런 소리를 한 것이 아니니 당장 그 주변 지역에만 가셔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로마의 콘술, 술라가 그리 명했다며 불평을 늘어놓더군요.”
“음?”
서후가 그런 소식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자 다른 상인이 얼른 말을 꺼냈다. 현재 이곳의 최고 권력자는 서후였으니 그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리라.
“카이우스 안니우스도 자신의 군단을 아우렐리우스 코타에게 넘기라는 명령에 군을 넘기고 이동했다고 합니다.”
서후는 그 말을 꺼낸 상인을 의심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누미디아의 일이야 병사들이 떠들어서 알게 되었다고 해도 이 같은 일은 소문으로 퍼질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건 어떻게 알았지?”
“제.. 제가 그들과 거래를 터볼 생각으로.”
강력한 해군을 지닌 카이우스 안니우스였으니 그에게 뇌물을 바치고 안면이라도 틀 요량이었겠지. 서후는 어떻게 정보를 얻게 되었는지 그 말에서 바로 알아차렸다. 따라서 서후는 정보의 진위를 더 생각하지 않고 고심에 잠겼다.
‘누미디아 반란군을 정벌한 폼페이우스는 하나의 군단을 남겨두고 로마로 송환됐고 마찬가지로 세르토리우스군 토벌 성공을 앞두고 있는 카이우스 안니우스 역시 군단을 후임자에게 넘기라 명받고 폼페이우스가 지휘했던 군단으로 재배치 당했다?’
정보를 조합한 서후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왜 이런 비효율적인 짓을 한단 말인가? 이건 마치? 서후는 그 순간 술라의 속셈을 눈치챘다.
‘견제다. 견제가 분명해! 외부에 막강한 군부세력이 자라나는 것을 막기 위한 술라의 견제야. 한 사람이 공적을 독점한다면 그에게 영예가 뒤따름은 물론 막강한 권력이 집중되겠지만 비슷한 공적을 쌓은 자들이 여러 명이라면 저들끼리 서로를 견제할 테니..’
서후는 그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위험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한숨 돌리고 대비할 시간은 번 셈이다.’
카이우스 안니우스가 서둘러 군단을 장악하려고 해도 로마의 술라에게 품은 불만으로 인해 자연히 지휘권을 확립하기 어려울 것이고 누미디아의 두 왕과 조율하는 시간이 필요할 테니 같은 북아프리카라고 할지라도 당장 동쪽 끝의 우티카에서 서쪽 끝 팅기스로 진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우렐리우스 코타라고 했나? 그 역시 부대를 재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할 테니. 그야말로 황금 같은 시간을 번 셈이다.
‘일치되지 않은 아군의 움직임은 적에게 기회를 주는 법이다. 이 점을 명심해야겠군.’
서후는 생각을 정리하고 막 떠오른 한 가지 사실을 더 확인했다.
“그랬군. 혹 마이오리카에 로마 수비대가 주둔하지 않은 건 카이우스 안니우스와 샤파트의 거래 때문인가?”
피티우사 제도 중앙의 가장 큰 섬, 마이오리카는 전략적 요충지가 되기에 충분한 곳인데 전과 달리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안니우스와 거래한 샤파트가 그 역할을 대신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예.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샤파트가 거래한 자는 안니우스지 아우렐리우스 코타가 아니다. 그러니 이곳의 영향력도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소리. 확실히 이건 여러모로 기회다.’
서후가 그렇게 생각할 때 상인들이 그에게 말을 꺼내왔다.
“저희가 이제 이곳을 벗어나도 되겠습니까?”
단순히 서후와 만남을 파하겠다는 소리가 아니라 에부수스를 떠나도 되겠냐는 뜻으로, 이제 통행금지령을 풀어주겠느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서후는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거부했다.
“불가.”
단호한 서후의 태도에 상인들이 사색이 된 채로 입을 열었다.
“설마 저희의..”
“당신들 재산에는 관심이 없어. 하지만 소유한 재산을 지키는 것에는 관심이 많지.”
“그게 무슨?”
“거래를 수시로 행하는 상인들이니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을 거라 믿겠다. 우리는 팅기스를 이곳 에부수스의 항구처럼 만들 생각이야. 이를테면 델로스 섬이 모형에 훨씬 가깝겠지만 그보다도 훨씬 크고 체계적인 형태로 말이지.”
기록된 곳이 델로스섬 유역이라고 해서 델로스섬 유역에서만 자유무역이 일어났다고 할 수 없다. 뭐 우리 자유무역하자고 정하고 제도와 법과 같은 체계를 정비해서 일어난 건 아니겠지만 자연 발생적으로, 일종의 주먹구구식으로 일어났을 것이다. 자유무역을 가볍게 정의하면 국가가 무역에 아무런 제한을 가하지 않고, 보호나 장려도 하지 않는 무역을 뜻하니까. 물론 그러다가 어느 권력자로 인해 모두 일그러졌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고로 해적이 점령하고 있는 이곳 에부수스에서도 작은 형태로 자유무역이 이뤄졌다.
상인들답게 그 뜻을 바로 파악한 저들은 서후의 정책이 그대로 시행될 시 가져올 파급력에 대해 저마다 웅성거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팅기스도 팅기스지만 이곳 피티우사 제도야말로 자유무역지대로 삼기에 더 적합한 곳이긴 하다. 현재로서는 요원한 일이지만.’
북아프리카 서쪽 끝에 자리한 팅기스보다야 서쪽으로는 히스파니아, 남쪽으로 북아프리카, 북쪽으로는 갈리아, 동쪽으로는 로마를 둔 피티우사 제도가 지리적 접근성이 훨씬 더 좋지 않은가? 어차피 해상무역이 주가 될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그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세력을 형성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접근성이 좋다고 이곳을 거점으로 삼았다간 사방에서 공격을 당해 순식간에 패망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고립되었을 시 자력으로 생존할 수 있는 작물들 역시 이 지역 상품이 아니다.
저들끼리 잠시 대화를 나누던 중 이집트인의 복색을 하고 있던 상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집트에서 온 캄바라고 합니다. 하나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집트인의 유창한 라틴어에 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캄바라는 상인에게 말했다.
“얼마든지.”
이집트는 상당히 부유한 국가다. 나일강의 범람으로 인한 풍요로운 대지와 더불어 뛰어난 관제시설을 갖춘 이집트는 엄청난 곡식을 산출해내는 강대국 중 하나였다. 지금은 로마가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으나 이집트는 그 이전부터 위세를 자랑하던 초강대국 중 하나였다. 로마인들은 이런 이집트의 곡식 출하량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당연히 서후도 부드러운 어조로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대에 식량은 그 어떤 가치보다 중요하다. 더욱이 서후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집트 상인과 거래를 트게 되면 나쁠 게 없다는 소리다.
“말씀하신 대로만 된다면 저희 이집트의 상인들도 귀하와 거래를 하고자 상선을 보내올 겁니다. 다만 외람된 말씀이지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서후는 담담한 표정으로 상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현재 우리가 계속해서 존속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우리를 믿을 수 없다는 뜻이겠지. 맞나?”
“······.”
저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며 서후의 반응을 살폈다. 일개 상인들이 함부로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서후는 그런 상인들을 훑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믿음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고. 직접보고 판단해라. 우리와 거래하는 것이 너희에게 이득일지 아닐지는. 그런 면에서 봉쇄령은 당분간 풀어줄 수 없다.”
“저희가 귀하의 적이 될 자들에게 이곳의 정보를 전할 것을 우려하시기 때문입니까?”
“아닌가?”
캄바가 담담하게 서후에게 말했다.
“아시다시피 저희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다. 당신들의 껄끄러움을 제거해주기 위한 내 안배라고 봐도 좋겠군. 내 정보를 누출한 사실 정도로 얼굴을 붉힐 자들 같지는 않지만 말이야.”
“승리할 것을 자신하시는군요. 저희가 귀하와 반드시 거래할 것 역시.”
“캄바라고 했나? 당신은 당신이 언제 죽을지 알고 있나?”
“모릅니다. 그걸 아는 사람도 있습니까?”
“나도 마찬가지다.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서후의 날카로운 눈빛에 캄바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로마에 귀하 같은 분이 있었군요. 저는 귀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서후는 이집트 상인 캄바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다른 자들을 바라봤다.
“당신들은?”
온몸에 피가 덕지덕지 묻은 채로 서늘하게 바라보는 서후의 모습에 상인들은 과감할 때가 아니라 신중해야 할 때라는 것을 직감한 모양인지 저마다 고개를 숙였다.
“귀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이 시간이 당신들에게도 손해는 아닐 거다. 상재가 있는 자들이라면 말이야.”
서후의 말에 눈을 빛내는 상인들도 있었고 무슨 개소리냐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자들도 있었다. 서후는 그들의 반응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그곳을 떠났다.
‘이곳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팅기스로 간다.’
로마군이 출정할 기세가 보인다면 기다렸다가 그들의 보급로를 끊어볼까도 생각해봤지만 카이우스 안니우스는 우티카로 향했고 그 후임자인 아우렐리우스 코타 역시 바로 팅기스로 공격을 감행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저들이 출정하길 여기서 기다리는 건 의미가 없다. 보급로를 끊어야 할 상황이고 끊고자 했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이 많긴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