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24화 (24/298)

# 24

24. 금화를 든 소년.

24. 금화를 든 소년.

폼페이의 야경꾼들은 자치 집정관 발구스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온 시내를 이 잡듯이 뒤졌다. 그들이 최우선으로 탐문한 곳은 상인들이다.

야경꾼들의 탐문내용은 간단했다. ‘아우레우스를 사용하는 소년을 본 적이 있냐?’ 언제 어느 시대건 간에 상인들은 눈치가 비상하며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는 부류다. 따라서 금화를 든 소년이 있다는 소식은 은연중 빠르게 폼페이시에 퍼졌다. 또한 그런 소문에 가장 민감한 부류는 강도나 도둑같이 재물을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도 아랑곳하지 않는 부류다.

야경꾼들보다 먼저 찾으면 그 소년이 가지고 있는 아우레우스는 자신들의 것이다. 도시에서 야경꾼들의 눈과 귀를 피할 수 있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다. 바로 자신들의 소굴이라 할 수 있는 지역이다.

밤은 위험하다. 로마의 밤 역시 그렇다.

으슥한 골목에서 널브러진 시신을 발견하는 건 일도 아니다. 도박 빚을 갚지 못해 죽었든, 강도를 당했든, 취중에 시비에 휘말려 죽었든, 밤에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건 비일비재하다.

오전과 오후에 걸쳐 일어난 검투경기로 인해 오늘 폼페이시의 밤거리는 다른 날보다 유난히 북적거리는 편이다. 선술집마다 사람들로 가득 차 있고 그들의 내지르는 고함과 소란은 고요한 밤거리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어린아이나 부녀자가 밤거리를 돌아다닐 수는 없다. 강도나 도둑은 말할 것도 없고 인신매매단에 걸린다면 노예로 팔려나갈지도 모른다. 어디 외딴곳에 팔아버린다면 시민인지 아닌지 알게 뭔가? 물론 그들도 시민은 되도록 건드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으슥한 골목을 빠져나오는 저 소년은 시민이 아니었고 시민이라 할지라도 중죄를 저지른 죄인이다. 그런 자가 로마법에 호소할 리도 없으니 날름 삼켜도 아무 뒤탈이 없다는 뜻이다.

오시에는 진한 웃음을 지으며 부하들에게 눈짓했다. 포튜나(Fortuna, 우연과 행운의 신)께서 오늘만큼은 자신을 총애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다른 놈들보다 먼저 소년을 찾을 수 있었겠나?

*

오늘 오후까지 검투사였던 소년에게 백 아우레우스나 되는 거금이 있다면 그걸 누가 소년이 정당한 방법으로 얻었다고 생각할까? 데메트리우스와의 거래는 둘만의 거래였고 그걸 아는 자도 그의 편이다.

‘내가 어떻게 백 아우레우스나 되는 거금을 얻었는지는 차치하고 수중에 그만한 거금이 있다는 것만으로 도둑으로 몰리기엔 충분하다. 이 자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검투사라고 밝히지 않은 건 어쩌면 애초에 모함하기를 자신의 노예 중 하나가 탈주했다고 거짓 진술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더 개연성이 높으니까. 검투장에 억압되어 있던 검투사가 검투장의 경비를 뚫고 백 아우레우스나 되는 금액을 훔쳤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떤 이유든 간에 이대로 저들에게 붙잡힌다면 평생 검투장의 노예로 살다가 생을 마감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걸 노리고 이 같은 행위를 벌이는지도 모른다. 시민이 아닌 자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와 같고 더욱이 도둑으로 몰린 소년이 내뱉는 결백 따위 저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최악의 경우엔 스파르타쿠스가 그 바티아투스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결국 대규모 노예반란으로 이어질 때 합류하면 될 테지만..’

노예가 될지언정 차라리 이대로 죽겠다. 저들의 원하는 대로 원하지 않는 공간에서 원하지 않는 싸움과 살인을 하며 계속 살아가라고? 서후는 단 한 순간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이곳을..’

하지만 방법이 없다. 온 사방에 야경꾼들이 깔렸다. 항우와 리처드의 전투기술을 가진 자신이라면 소년의 몸으로도 일개 소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겠지만 로마의 병력은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고 최악의 경우 정규군이 자신을 추격할 수도 있다.

그러니 야경꾼들과의 전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중 누구 하나라도 죽인다면 그건 스스로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였다.

그때 자신의 주변으로 다가서는 자들을 발견했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의 주의력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제길..’

저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순간, 서후는 상황이 더욱 자신에게 불리하게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키지 못할 보물을 가지고 있는 건 반드시 화가 된다. 저들에게 아우레우스를 준다고 끝이 아니다. 목격자를 남기고 싶지 않은 저들은 반드시 자신의 목숨을 빼앗을 테니까.

“어이 꼬마야. 일을 저지르려거든 앞날을 생각하고 저질렀어야지. 눈앞에 반짝거리는 금화가 있다고 그걸 날름 집어오니 네 목숨도 날름 날아가게 생기지 않았냐?”

도둑질하지 않았다고 항변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떻게 손에 넣었든 저들이 원하는 건 백 아우레우스일 뿐이다. 때문에 서후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저들을 바라보며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끔 심신을 가다듬었다.

“하하하. 두목. 이놈 바짝 얼어서 말도 안 나오는 모양인데요?”

“크크큭. 야경꾼들이 도시에 퍼져서 이놈을 찾으려고 난리인데 제 놈도 그쯤 되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겠지.”

“두목! 서둘러 처리합시다. 이놈을 찾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요. 만약 다른 놈들이 목격하면 일이 골 아파집니다.”

오시에는 부하들에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정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가 자초한 일이다.”

그 말과 함께 부하들에 눈짓하자 저들은 품에서 날카로운 단검을 꺼내 들었다.

휙휙

“크크크. 예쁘장한 것이 남창가에 팔아도 되겠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죽여야 일이 편해.”

“하긴 어디서 주둥이를 나불거리기라도 하면 위험해질 수 있으니.. 크크 꼬마야. 잘 가라.”

서후는 날카로운 눈으로 저들의 면면을 주시했다. 저들의 인원은 두목으로 보이는 자까지 모두 여섯, 상대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이들은 야경꾼들과 달리 죽여도 아무 탈이 없는 존재들이다. 살인은 되도록 피하고 싶지만 자신을 죽이려는 자는 죽인다.

‘너희야말로 내 손이 무정하다고 생각하지 말도록.’

이미 죽이기로 정했는데 저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줄 이유가 있나? 목격자를 남기지 말아야 하는 건 저들뿐만 아니라 자신 역시 마찬가지다.

으슥한 골목길을 저들이 앞뒤로 막아선 형세였지만 서후는 그대로 주변의 벽과 벽을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허?”

벽을 타고 날아올랐다고? 건달들은 놀란 눈으로 그런 서후의 움직임을 바라봤다.

서후는 그대로 다시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면서 체중을 실어 가까이 있던 건달의 목을 내리찍었다.

콰직 우두둑

급소를 가격당한 건달은 목뼈가 부러져 그대로 즉사해버렸다.

“투.. 투우린!”

“이 새끼가?”

그러나 저들이 놀라 경악에 찬 음성을 뱉을 때 서후는 자신의 공격에 죽임을 당한 투우린이라는 자의 손에 있던 단검을 빼앗아 들고 주변에 있던 두 명의 건달들의 가슴과 배를 순식간에 베어버렸다.

촤아아악

촤악

“크허허헉!”

“커어억!”

가슴과 배를 베인 두 건달은 자신의 상처를 붙잡고 비척거리며 물러섰다. 이대로 내버려 둬도 죽겠지만 목격자를 남기면 안 되기에 서후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상처의 고통에 웅크린 놈들의 목줄기를 재빠르게 베어냈다.

촤아악

“커거걱.”

“그르륵”

털썩 털썩

“뭐.. 뭐야?”

눈 깜작할 사이에 자신의 부하 세 명이 줄줄이 죽는 것을 본 오시에는 대경한 목소리로 외쳤다. 서후는 저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자신의 일을 할 뿐이었다.

“이.. 이 튀겨 죽일 새끼가!”

휘리릭

푸욱

커걱

서후에게 욕설을 뱉던 건달은 눈알에 동료의 단검에 박힌 채로 벽에 기대어 쓰러졌다. 그로 인해 피가 그 움직임을 따라 잔혹한 흔적을 남겼다.

‘남은 건 둘.’

서후는 바닥에 떨어진 검은 발로 차서 공중으로 올린 다음 발로 검자루를 걷어차서 다시 남은 한 명에 날렸다.

푸욱

놀란 표정으로 서 있던 사내는 자신에게 박힌 검을 붙잡고 오시에를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오시에한테 도와달라는 눈빛이었지만 이미 목에 검에 박힌 사람을 무슨 수로 도와줄 수 있을까?

숨을 몇 번 내뱉는 사이에 다섯 명의 수하가 차디찬 주검으로 변했다. 살인을 해보지 않은 놈들도 아니다. 그런 놈들이 어떻게.. 오시에는 지금의 광경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지경이었다. 대체 저놈은 뭐란 말인가?

“어.. 어.”

오시에는 두려움에 휩싸여 도망치려고 뒷걸음을 쳤다. 그러나 이미 지척으로 다가온 서후는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올라 그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커억!”

뭔 소년의 힘이 성인 남자가 걷어찬 것처럼 강력하단 말인가? 바닥에 쓰러진 오시에는 고통 중에도 그런 생각이 지나갔다.

서후는 날카로운 단검을 목에 대고 오시에에게 말했다.

“폼페이를 벗어날 방법.”

불법을 저지르는 자다. 야경꾼들이 자신을 찾는다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추격하고 죽이려고 했다는 건 놈들의 나눈 대화에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죽이지 않고 물었다. 놈을 당장 죽이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이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뭐?”

“한 번만 더 묻겠다. 폼페이를 벗어날 방법.”

날카로운 칼날이 살갗을 파고드는 섬뜩한 감각에 오시에는 급히 입을 열었다.

“그..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야.. 야경꾼들이.. 도시에 쫙 깔린 마당에. 아.. 아시지 않습니까?”

서후는 알았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후의 눈빛에 진한 살의가 깃들었다는 것을 본 오시에는 죽을 힘을 다해 방법을 생각했다. 있다. 있었다. 한 가지 방법이.

“이.. 있습니다. 하.. 한 가지 바.. 바..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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