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13. 베스티아리이.
13.
드왈드는 야심에 불타오르고 있었다. 라니스타와 여러 검투사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면 생존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 무엇보다 자신을 후려친 저 호리호리한 자식을 묵사발내고야 말겠다는 분노에 타올랐다.
드왈드는 체구의 차이로 인해 놈이 옆으로 피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쿠리오는 달려오는 드왈드의 체중을 호리호리한 체구로 그대로 받아내며 뒤로 미끄러졌다.
터억 주우욱
“쯔.”
쿠리오는 혀를 가볍게 찬 다음 고개를 숙인 드왈드의 면상에 어퍼컷을 날렸다.
“커헉”
드왈드의 얼굴이 들리자 다시 왼손으로 드왈드의 턱을 정확하게 타격했다. 드왈드의 얼굴이 반쯤 일그러질 정도로 강력한 펀치였다.
털썩 쿵
마치 실 끊어진 인형마냥 드왈드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곤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입에 거품까지 내뿜고 있는 것으로 봐선 실신한 모양이었다.
“인간의 육체는 여러 가지 급소가 있다. 검투사 중 가장 멍청한 자식이 바로 저 놈과 같은 놈이다. 힘이 아무리 세더라도 체력이 아무리 좋더라도 배때지에 칼 한 번 맞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날카로운 검보다 단단한 육체를 가진 인간도 있나? 한 번이다. 한 번의 실수가 생사를 가른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해도 카이로스의 앞머리를 잡아채는 자는 결코 많지 않다. 그러니 너희 같은 애송이들이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남으려면 나의 말을 신의 말처럼 받들어야 할 것이다.”
쿠리오가 슬쩍 눈짓하자 경직된 자세로 시립하고 있던 검투사가 나무통에 담긴 물을 드왈드의 얼굴에 부었다.
“어푸 어푸”
드왈드가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으나 허우적거리며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주변에 서 있던 검투사들이 킥킥 거리며 비웃음을 터트렸다.
어느새 채찍을 다시 주워들은 쿠리오가 그런 드왈드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짜악 짜악 짜악
내려칠 때마다 드왈드의 헐벗은 몸 위에 붉은 선이 그려졌고 그와 동시에 피가 튀었다. 드왈드는 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머리를 웅크리고 신음을 뱉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어수선하던 훈련장의 모습이 다시 삼엄하게 변했다.
쿠리오는 공포를 뼛속까지 새기겠다는 듯 아니 그를 때려죽일 기세로 계속해서 후려쳤다.
짜악 짜악
“으으으.”
드왈드가 두려움에 질린 음성을 뱉으며 꿈틀거리자 그제야 채찍질을 멈추고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일어서.”
드왈드는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날 힘도 없었지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대로 맞아죽는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기에 비척거리며 일어섰다. 그러자 쿠리오의 채찍이 다시 한 번 날아들었다.
짜악
“크흑!”
“여기가 네 안방인줄 아나?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못하나?”
“아.. 알겠습니다.”
드왈드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찬가지로 드왈드의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실신했다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호되게 맞았으니 정신이나 육체 모두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드왈드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쿠리오는 혀를 차며 말했다.
“쯔. 반항하려거든 재능이라도 있던가.”
드왈드라고 했나? 이놈 역시 별 쓸모가 없었다. 재능이라도 발견했다면 시간을 두고 더 훈련시키겠지만 그럴 바에야 다른 예비 검투사를 검투사로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이로써 네 명 모두 베스티아리이행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맹수와의 전투라고 할지라도 일방적인 경기는 관객이 지루해하니 지양해야 한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버티게 하기 위해선 이들을 훈련시킬 필요가 있었다.
짜악
쿠리오는 채찍으로 바닥을 내려치며 말했다.
“대형을 갖춰라!”
그러자 70여 명에 달하는 검투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나무 검과 방패를 들고 짝을 이루어 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서후 등은 엉거주춤한 표정으로 쿠리오를 바라봤다. 쿠리오는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을 지었지만 채찍질을 가하지는 않았다. 그리스 사람 아크토스가 눈치껏 칼과 방패를 가지러 움직이자 쿠리오가 말했다.
“너희 네 명은 모두 창을 잡는다.”
그 말에 얼굴에 멍이 들은 몇 명의 검투사의 표정이 다소 환하게 변했다. 창을 잡으라 명했다는 건 베스티아리이로 출전시키겠다는 뜻이다. 저들이 아니었다면 자신들 중 실력이 떨어진 자가 맹수와 싸우게 되었을 테니 안도할 수밖에 없었다.
베스티아리이 경기는 사실상 처형식에 가깝다. 허름한 튜니카, 천으로 덧댄 각반을 차고 조잡한 창 한 자루로 사자와 같은 맹수들과 싸워서 살아남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처참하게 찢겨죽는다. 경기에 나오는 맹수들은 굶을 대로 굶은 사나운 맹수들이었으니 말이다.
검투사와 싸우는 경기가 위험하지 않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경기에는 명예도 따르며 죽을 때 고통 역시 덜하다. 검투사는 전투기술의 달인이었기에 관객의 유희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대부분 깔끔하게 목숨을 끊어줬다.
다른 자들과 마찬가지로 서후도 기다란 창을 무기 진열대에 꺼내들었다. 훈련관은 마치 없는 사람처럼 자신을 단 한 번도 주시하지 않았다. 그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드왈드와의 일을 마지막으로 도크트레가 신경 쓰는 건 오직 칼과 방패 등을 든 검투사들일뿐, 창을 든 자들에게는 일절 관심도 두지 않았다.
짜악
쿠리오는 다시 바닥을 채찍으로 내려치며 소리쳤다.
“훈련을 시작해라!”
서후는 조잡한 나무창에 불과하지만 무기를 잡은 순간, 전신을 타고 오르는 전율을 느꼈다. 수많은 무술이 자신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창 한 자루를 잡았을 뿐인데 천하를 얻은 것처럼 든든했다.
콰드드득
기묘한 흥분감에 창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자 창자루가 으스러졌다. 서후는 화들짝 놀라 힘을 뺐지만 그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가운 훈련관의 시선 앞에 모두 구슬땀과 함께 소리를 지르며 훈련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후는 자신이 손을 뗀 부분을 살폈다. 단단한 창자루가 이리저리 으스러진 모습에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육체 나이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건 결코 10살 소년의 힘이 아니다.
‘항우의 힘이? 아니 체감하기에 어린 시절의 항우보다도..’
항우의 힘에 비한다면 손색이 있을지 모르나 리처드도 범인의 용력을 월등히 뛰어넘은 사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힘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잠깐만..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 거지?’
서후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과거로 온 것은 둘째 치고 항우와 리처드의 힘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물론 육체가 어린만큼 항우는커녕 리처드의 전성기보다도 약한 힘이다. 하지만 서후는 자신 안에서 용솟음치는 힘을 느끼고 예상할 수 있었다. 육체가 더 단련되고 완성되면 항우처럼 아니 그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