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3화 (3/298)

# 3

3. 로마라고? 그 로마?

3.

끼기긱

그러자 나무와 나무가 부대끼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배 안에 울려 퍼졌다.

“우 하 우 하”

마치 박자를 맞추듯 내뱉는 소리에 서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드왈드를 바라봤다.

“뭘 그렇게 멀뚱히 보고 있는 거냐? 노 젓는 소리도 못 들어본 것마냥”

‘노 젓는 소리? 아..’

영화에서 벤허가 쇠고랑을 찬 채 노를 젓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참 비슷한 모양새가 아닌가? 자신 역시 쇠고랑을 차고 있었고 배에 타고 있었으니 말이다.

서후가 타고 있는 배는 갤리선으로 고대, 근세기에 두루 쓰였다. 험한 파도와 극심한 조류가 휘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노를 젓는 건 매우 힘든 일이기에 당연한 주로 돛을 이용하고 노는 보조로 사용했다.

바람이 비교적 규칙적인 대양과 달리 지중해에선 바람이 매우 변덕스러웠기에 그리스, 로마, 이집트,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갤리선을 사용하거나 그보다 못한 형태의 배를 사용했다. 원해에는 부적합한고로 원양항해가 시작된 후로는 범선에 밀려 차차 사라지지만 그건 중세 르네상스 시대 때에나 벌어지는 일이니 아직 한참이나 먼 이야기였다.

‘그런데 왜?’

서후는 불현듯 의문이 들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게 잘못된 게 아니라면 벤허는 노예로 끌려가 노를 젓는 운명에 처했다. 쇠고랑을 채운 걸 봐선 노예까진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상황에 처한 것 같은데 어째서 자신도 그렇고 비슷한 몰골을 하고 있는 저 흑인도 노 젓는 극심한 노동에 동원되지 않았단 말인가?

“왜 우리는 노를 젓지 않고..”

“자꾸 멍청한 소리를 지껄이는군. 노 젓는 게 쉬운 일 같냐?”

서후는 더 이해할 수 없었다. 드왈드 바로 그가 자신에게 노예선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노예들이 힘든 일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군. 노를 젓다가 노가 엉켜서 배를 파손시키기라도 하면 우린 그대로 수장당하는 거다. 그런 걸 숙련자도 아닌 자에게 시킬 것 같냐 이 말이다. 외부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어두운 곳에서 규칙적으로 노를 젓는 건 체력은 둘째치고 어지간한 담력과 동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일을 어중이떠중이를 데려다 시킬 것 같냐? 한심한 질문을 자꾸 하는군.”

이 당시 노 젓는 방법은 각자 노를 젓는 센실레(alla sensile) 방식이라 자칫 잘못하면 노가 엉켜서 다 죽는다. 때문에 노 젓는 사람은 노예보다는 자유민인 경우가 많았고 노예일 경우에도 자유민으로의 신분상승을 약속한 후 노 젓기를 시켰다.

죄수나 노예를 동원해 죽을 때까지 노 젓게 하는 광경은 이후에 갤리선의 구조가 좀 더 발전한 후에나 가능한 비극이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람의 편의를 위해 발전한 기술이 사람을 더 잔혹한 구조 속으로 밀어 넣었으니 말이다.

서후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넘어갔다. 상황이 상황이라 이기적인 생각인지 효율적인 생각인지 판가름하기 어렵지만 일단 자신이 노를 젓지 않으면 그걸로 되었다.

“쯔쯔쯔.”

드왈드는 여전히 멍한 표정의 서후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서후가 드왈드를 바라보자 드왈드가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데나리우스는커녕 아스도 없을 것 같은데..”

“예?”

“그러니까 네 몸값을 대신 지불해줄 사람이 있냐 이 말이다.”

데나리우스는 은화인데 16아스 정도 되는 금액이다. 아스는 이 시기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동화였다. 서후의 표정을 살피던 드왈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길. 나도 같이 구제 좀 해달라 부탁하려고 했더니.. 그 점성가. 정말 엉터리로구만. 뭔가 대단한 소년인 것처럼 말해서 기대했더니 데나리우스는커녕 아스 한푼 없는 빈털터리일줄이야.”

드왈드는 그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실망하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후가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드왈드를 바라보자 그는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쯔쯔. 나야 뭐 해적질하다가 잡혔다지만 곱상한 것이 칼 한 번 잡아보지 못했을 텐데 오래 살지는 못하겠군. 내가 볼 때 탐욕스러운 로마인은 네가 몸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나랑 같이 팔아버릴 거다. 비리비리하긴 해도 점성가가 헤르쿨레스나 마르스를 거론했으니 뭐. 엉터리 점성가에 말에 혹해서 1만 데나리우스 그 이상까지 지불하는 멍청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내가 봐도 희박한 가능성이니 최소 6백 데나리우스에서 거래를 잘하면 천에서 3천 데나리우스까지도 받아챙길 수 있겠지. ”

1 아스는 빵 하나를 사먹을 수 있는 돈이었고 1 데나리우스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으니 상당한 금액이라 할 수 있었다. 1년이라고 해봐야 365 데나리우스가 전부다. 부의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측면이라 할 수 있었다.

노예의 가격은 노예의 나이와 상태, 재능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기록에 남아 있기로 재능있는 문법 교사(grammaticus)노예는 700,000 세스테르티우스(1/4 데나리우스)에 팔렸다고 하고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기록 중 유쿤투스라는 자가 진행한 노예매매 평균 낙찰가도 4,500 세스테르티우스는 되었다.

반대로 보잘 것 없는 액수로 매매되는 경우도 많았다. 노예는 생산성을 우선했기에 여성이라고 해서 딱히 더 비싸지는 않았지만 어린여아의 경우에는 성인여성보다 더 비싸게 매매되었다.

고대로마에선 노예가 시간제 근무를 통해 자신의 재산(peculium)을 모을 수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자유를 사 해방노예가 될 수 있었다. 해방노예는 로마시민이 된다고 해도 일반시민과 같이 공직에는 나갈 수 없었지만 그 자손들은 일반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시민권의 완전한 권리를 누리는 것은 물론 공직에도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늙은 노예는 노예에서 해방되고 주인은 노예의 노환으로 얻는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 물론 그럴지라도 모든 건 주인의 마음에 달렸다. 재산소유를 허가받아 값을 지불할만한 재력이 있어도 주인이 해방시켜주지 않으면 평생 노예로 살 수밖에 없었다. 뭐 그 전에 노예가 그만한 재력을 보유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며 그 가격도 주인 마음이었다.

또한 해방노예의 법적보호자는 전 주인으로 주인은 로마 관습법, 가부장권에 따라서 씨족 구성원의 생살여탈권을 갖고 있었다.(가장은 자기 가문 구성원, 심지어 친자식도 3번까지는 노예로 팔 권리가 있었다. 그러니 해방노예야..)

“뭔가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일단 전 노예가 아닙니다.”

드왈드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비틀어진 입매가 서후를 비웃는 것이 분명했다.

“네가 노예가 아니라는 건 나도 알아. 그리스의 좋은 가문들은 자제를 이곳저곳을 여행하게 하며 교육을 시킨다지? 내가 그리스 사람은 아니지만 테세우스라는 이름을 아무에게나 붙이는 이름이 아니란 건 잘 알고 있다. 그런 이름을 가진 소년이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었으니 확실히 노예는 아니겠지.”

드왈드는 미소를 지우고 진중한 표정으로 서후에게 말했다.

“이 노예선의 주인은 로마인으로 내가 얼핏 듣기로 데메트리우스 라고 했다. 나를 속이려고 하는 건 좋지만 데메트리우스라는 로마인을 속이려고 하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야.”

서후는 드왈드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자신이 뭘 속이려 했단 말인가?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그리고 왜 자꾸 저를 소년이라..”

서후는 말을 꺼내다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 봤다. 이 가냘픈 팔뚝과 새하얀 피부는 뭐란 말인가? 그 사실에 다시 압도되어 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드왈드가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서후를 바라봤다.

“하긴 데메트리우스는 나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래도 폼페이우스 장군은 알겠지?”

“폼.. 폼페이우스?”

폼페이우스라면 시저와 다투던 로마의 명장이 아니던가? 물론 폼페이우스는 단순히 그 정도로 평할만한 인물이 아니었지만 서후가 아는 것은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 마리우스 일파를 잔인하게 처단하여 악명과 명성을 동시에 떨치고 있는 그 폼페이우스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