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마 무신의 기억-1화 (1/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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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초패왕과 사자심왕.

1. 서초패왕과 사자심왕.

항우(項羽). BC 232년 3월 29일 ~ BC 202년.

만인지적(萬人之敵)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8척이 넘는 장신에 힘이 장사라 청동으로 된 큰솥도 번쩍 들었다.

BC 207년 거록대전.

진시황(秦始皇)이 세운 최강 진나라군을 상대로 하루 동안 9번 싸워 모조리 이기고 진나라군을 궤멸, 결국 진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만든다.

BC 205년 팽성대전.

유방과 그의 수하 대원수 한신이 삼진을 공략, 56만 대군을 이끌고 항우의 본거지 팽성을 점령하자 제나라를 공략 중이던 항우는 격노하여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진격해 유방의 군대를 정오가 채 되기도 전에 격파한다. 유방은 하루 동안 결국 30만에 이르는 병사를 잃고 겨우 목숨만 부지하여 달아난다.

압도적인 무력, 뛰어난 지휘력과 통솔력 등 무장으로서는 그야말로 완전체라 할 수 있다. 항우의 군사적 능력을 폄훼할 수 있는 자도 있을까?

그럼에도 결국 그가 패배한 것은 다름이 아니다. 항우는 그 재능 때문인지 참으로 교만하고 오만한 자였으며 포악한 자였다.

첫째 그는 옛것만 고수하고 개혁할 줄 모르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옛것을 고수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나 그는 새로운 것을 전혀 받아들일 줄 모르는 아집과 고집에 가득찬 사람이었다.

둘째 잔혹한 형벌을 즐겼는데 심지어 자신에게 조언하는 자마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삶아 죽였다.

셋째 수많은 학살과 파괴를 자행했다. 양성, 성양, 신양, 함양, 제나라 등지에서 온갖 학살을 자행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포로로 잡은 진나라군 20만을 방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신안에서 모조리 생매장해 죽인 사건이다. 제나라 공략 중에는 진격로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을 학살하고 생매장하고 여인과 노인은 포로로 삼아버렸으니 그의 포악함은 학을 뗄 지경이다.

가는 곳곳마다 불태우고 파괴하고 약탈하고 강간하는 일이 항우의 군대가 하는 일이었느니 대세는 유방에게 기울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를 서초패왕으로 분봉하며 높이며 제후를 멸시한 일과 자신의 수하마저 멸시했으니 천하의 모든 인재가 유방에게 몰렸다. 유방도 결코 영웅이 아니다. 그런 유방에게 천하패권이 몰릴 정도로 항우의 패악질이 엄청났다.

BC 202년 12월 해하전투.

유방은 제후의 마음을 얻고 항우의 빼어난 수하를 빼돌리고 항우에 대한 반대급부로 민심까지 얻어 항우 없는 초나라 군을 격파, 결국 100만 대군으로 항우를 포위한다. 이에 항우는 모든 근거지를 잃고 패주한다. 패주하는 항우를 잡고자 유방은 기병 5천을 보내고 항우는 자신과 함께하는 28명의 수하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군사를 일으킨 지 8년, 나는 70여 번을 싸워 모조리 승리했고 한 번도 진 적이 없기에 천하를 제패했다. 오늘 내가 이 지경에 처한 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지 내가 싸움을 못해서가 아니다. 오늘 반드시 목숨을 걸고 세 번 싸워 모두 이김으로 적의 포위망을 뚫어 내가 싸움을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겠다.”

남은 기병들을 네 방향으로 달려가게 하면서 항우가 다시 외쳤다.

“오늘 너희들을 위해 적장의 목을 베리라.”

과연 항우는 한 명의 장수와 병사 100여명을 베어버리고 기어코 탈주한다. 심지어 단 2명의 사상자만 냈고 적의 깃발까지 꺾었다. 그러나 결국 수하 모두를 잃고 오강(烏江)에 이른다. 거기서도 수백의 추격병을 베어낸 후 스스로 자결하여 생을 마감한다.

‘내가 하늘이라도 너 같은 말종은 망하게 한다. 업적이 그토록 찬란하면 뭐하냐? 인간말종이나 다름없는데. 썩을. 억울하게 죽은 사람 중에 네 업적을 찬란하다 드높여 말할 자가 한 명이라도 있을까? 그리고 뭐 하늘이 망하게 해? 어이가 없어서. 에라이 썩을놈아.’

유방의 맹장 중 한신, 팽월, 영포는 항우 휘하에 있던 장수들이다. 그렇다고 항우에게 책사가 없었던가? 대표적으로 유방을 미리 죽이려던 범증이 있었고 범증과 항우 사이를 갈라서게 한 진평마저도 항우의 수하였다. 그들을 등지게 한 것이 하늘인가? 아니면 항우 본인인가? 잘되면 오 나 항우가 잘나서 이렇게 되었도다라고 지껄이고 못되면 하늘 탓인가?

고금 이래 항우와 같은 무장은 없다. 딱 한 사람, 십자군 시절 사자심왕 리처드 1세(1157년 9월 8일 ~ 1199년 4월 6일)정도가 있긴 하다. 극의 재미를 위해 과장한 소설이나 신격화하기 위해 만든 신화 따위가 아니라 교차대조가 가능한 역사기록이건만 두 사람의 기록은 허풍처럼 여겨질 정도다.

아르수프 전투에서 단 15명의 부하만을 거느리고 기습해온 투르크대군의 32명 아미르(적장)를 베어 넘기고 적진까지 밀어붙인 일이나 야파요새를 점령하려던 살라딘의 병력 6만 2천을 상대로 갑옷은 고사하고 선박용 신발(사실상 슬리퍼)만 신은 채 80명의 병사들만으로 요새를 점령하려는 사라센군(이슬람군)을 물러나게 만든 점 등 항우와 유사한 점이 많다. 그를 상대하던 살라흐 앗 딘(살라딘)이 저 자는 사탄이 아니냐? 라고 경악을 터트릴 정도였다.

하지만 검을 잃어버리자 농부들을 상대로 도망친 일이나(자신을 상대하려는 농부들을 비웃으며 검면으로 툭툭 치다가 칼날이 손잡이에서 빠져버림;) 부왕 헨리 2세의 왕위를 찬탈하려 할 당시 그의 기사 윌리엄 마셜과의 예화를(사자심왕의 말을 찔러 그를 낙마하게 만듦.) 생각해보면 용력이 초인적인 수준에 이르렀던 것 같진 않다. 대신 무예가 극에 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적이었던 살라딘과 예의를 갖추며 대화를 했던 걸 볼 때 지략가형 맹장으로 보인다. 심지어 분열된 이슬람권을 통일시킨 이슬람의 영웅이라 불리는 백전무패였던 전략가 살라딘을 맞수로 두고 싸우면서도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그러나 결국 예루살렘은 탈환할 수 없었다.)

물론 둘 모두 믿기지 않을 정도의 무용을 보여줬기에 누가 강하다고 알 수도 없고 판단할 수도 없지만 나타난 예화만으로 봤을 때 일신의 무력은 항우 쪽에 손을 들어준다. 항우는 그런 예화 자체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무장으로 누구를 택할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더 볼 것도 없이 사자심왕 리처드 1세다. 사자심왕도 결코 좋은 인품은 아니었지만 항우에 비한다면야.. 모욕을 주었다고 할 수 있는 윌리엄 마셜을 자신의 기사로 들이는 부분만 봐도 부하를 다루는 인용술 역시 사자심왕이 월등하다.

또한 항우였다면 검면으로 사람을 치다가 칼날이 빠지는 일은 겪지도 않았을 거다. 자신에게 대항하려는 농부들을 그 즉시 참해버렸을 테니까. 리처드가 농부들로부터 도망친 일도 검 없이 죽이지 않고 제압하기 힘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걸 볼 때 항우에 비해 자비심도 월등하다.

‘그나저나 뭔 꿈이 이리도 길어? 내용이라도 참신하고 좋으면 모를까? 전쟁터에서 사람 죽이는 게 뭐 좋은 일이라고. 잠깐.. 꿈? 내가 어떻게 꿈을? 설마 살아남았나? 그럴 리가? 그런 폭발에서 어떻게?’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던 서후는 눈을 번쩍 떴다.

절그럭.

몸을 움직이는 순간 발에 걸려있던 쇠고랑이 절그럭거리며 소리를 냈다.

‘이.. 이건 뭐야? 웬 쇠고랑이?’

서후는 발목에 있는 묵직한 쇠고랑을 보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어났나?”

서후가 눈을 들어 말을 건넨 이를 살피자 그는 노예복장을 하고 역시 발에는 쇠고랑을 차고 있었다. 건장한 체격의 흑인이었다.

“여기가 대체?”

경황 중이라 무엇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파도소리와 함께 요동치는 바닥을 보니 이곳은 배의 밑창이 아닌가 싶었다. 그것도 영화에서나 보던 나무로 만든 그런 종류의 배 말이다.

“어디긴 어디겠나? 노예선이지.”

“노.. 노예선? 설마 그 말은 사람을 사고 판다는 뜻입니까?”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노예선? 노예는 그러니까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을 시작으로 종식된 악습이 아닌가?

흑인은 자신의 발목에 채워진 쇠고랑을 가리킨 뒤 어깨를 으쓱거렸다.

“보다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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