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아침에 눈을 뜨자 세자로부터 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달받았다. 왕도에서는 귀족들 중 상당수가 나를 즉시 왕도로 귀환하라고 하는 일종의 시위 비슷한 걸 벌이고 있는 모양이다.
거기에 더해, 내 아버지도 교단 쪽에 붙기로 한 모양이다.
“거참, 누가 보면 아주 아들이 아니라 원수인 줄 알겠어.”
어떻게 하다가 이런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모르는 건 아니고, 새삼스럽게 놀랄 이유도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한 일이 있으니 이렇게 될 수밖에 없지. 내 아버지는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을 빌미로 나를 쿠르스트 산맥에 유배 보내려고 했고, 나는 그 장소에서 살아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영지를 떠났다.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사실,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 입장에서도 나는 더 이상 아들로 보이지 않겠지.
“괜찮으세요?”
“안 괜찮을 것도 없지. 어차피 그렇게 사이가 좋던 것도 아니니까.”
짐을 다 챙긴 나는 아직도 모래와 함께 소용돌이치고 있는 거대한 회오리를 바라봤다.
“가자.”
짐을 챙겨 회오리 쪽으로 접근하기 시작하자,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모래가 마치 커튼처럼 시야를 가린다. 나는 클로에에게 건네주었던 브레이서를 다시 돌려받아 보호막을 만들었다. 클로에도 보호막의 도움을 받기 위해 내 옆에 바짝 붙었다.
회오리로 퍼 올려진 모래가 다시 떨어지며 보호막 위로 스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흘러내린다. 모래시계 속에 투명한 우산을 쓰고 서 있으면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점점 바람이 거세진다. 더 이상 하늘에서 모래는 쏟아지지 않는다. 대신, 몰아치는 바람이 쉬지 않고 주변의 모래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 보호막, 괜찮은 거 맞죠?”
부드럽게 스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흘러내리는 모래를 막아내던 보호막은 이제 타다다다다다, 하며 매서운 바람을 타고 날뛰는 모래를 막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방금 전까지는 보호막의 천장 부분에 모래들이 부딪치고 있었지만, 이제 모래는 우리 뒤편에서 불어닥치고 있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아직 회오리에 도착한 게 아니다.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을 타고 휘몰아치는 모래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면 바위도 깎아 낼 수 있다. 바람이 강해질수록, 보호막에 부딪히는 모래가 뿜어내는 소리가 점점 살벌해진다.
“달리 방법도 없잖아.”
나는 그렇게 말을 줄이고 나침반을 들고 방향을 확인하며 계속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건.”
마침내 우리는 목적한 장소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친 듯이 몰아치는 바람과, 거기에 딸려 날뛰는 모래는 이제 보호막의 형체가 일그러질 정도로 강렬하게 날뛰고 있었다. 이리저리 출렁거리며 모양이 일그러졌다 복구되는 보호막은 딱 봐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세상에…….”
클로에가 기가 막히다는 듯한 어조로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리저리 출렁거리며 모양이 일그러지는 보호막보다 훨씬 더 신경 사나운 풍경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었다. 몰아치는 모래 때문에 시야가 제한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형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몰아치는 회오리는, 얼핏 보기에는 하늘 높이 솟은 모래의 벽 같아 보일 정도였다.
“멀리서 볼 때는 장관이었는데, 코앞에서 보니 오금이 다 저리네.”
내 말에 클로에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안돼요. 저걸 뚫고 들어가는 건 자살 행위에요.”
“동감이다.”
저건 더 이상 바람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차라리, 모래를 연마제 삼아 뿜어지고 있는 초고압 분사기 같은 거다. 금속 연마에 사용되는 샌드블라스트 같은 거라고.
사람의 몸뚱어리는 저 안에 들어가는 즉시 고속으로 몰아치는 바람과 모래에 의해 믹서기처럼 갈려 나갈 것이다. 비유적인 표현의 칼바람이 아니라, 저건 문자 그대로 칼바람이다.
브레이서를 활용해 만들어낸 보호막도 마찬가지다. 근처에 도착한 것만으로 모양이 일그러질 정도라면 지금 우리 눈앞에 자리 잡은 회오리는 발을 내디디는 즉시 보호막을 뜯어내 버릴 거다.
당연히, 보호막이 사라지면 우리는 더 이상 저 강풍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 저 정도 풍속이라면 사람 몸뚱어리 정도는 가볍게 띄워 올리겠지. 그럼 허공에 떠오른 몸이 토마토 주스가 되는 건가. 생각만 해도 짜릿하네.
“일단 잠시 후퇴해서 방법을 생각해볼까요?”
클로에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뒤로 빠져서 기다리고 있어.”
클로에가 그 말에 나를 응시했다.
“들어갈 생각이세요?”
“달리 방법이 없잖아. 폭풍에 휘말릴 거야.”
보호막 없이 저 바람에 휘말리면, 내 몸은 하늘 높이 띄워 올려질 것이다. 노려야 하는 건 그 순간이다. 휘몰아치는 폭풍이 하늘과 닿은 장소에 도달하면 바람이 약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바람을 타고 빙글빙글 회전하던 힘에 의해 밖으로 튕겨 나가야겠지.
하지만, 그 순간 분신을 밟고 튕겨 나가는 대신 안쪽으로 향하면 된다.
몰아치는 모래바람을 견디고 하늘 높이 솟구친 다음, 착지해야 하는 곳은 이 거대한 회오리의 중심부다. 태풍의 눈이라고 불리는 장소가 내 목적지다.
“태풍의 중심은 고요한 무풍지대인 경우가 많아.”
삭풍의 족쇄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알 것 같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것 같지만. 그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마틴 님이 저 모래바람을 견딘다는 전제가 필요하잖아요.”
나는 그 말에 입맛을 다셨다.
“물론, 좀 심하게 다치겠지만 내 몸은 회복력이 좋잖아.”
거기에 더해, 벽해의 피 덕분에 출혈도 없을 거다. 클로에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입을 벙긋거리다가 이내 심호흡을 한 다음 나에게 일반 교신용 수정구를 하나 내밀었다.
“기다릴게요. 여태 동안 그래왔듯이, 성공하실 거라고 믿어요.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 도착하면 연락주세요.”
나는 수정구를 건네받은 다음 브레이서를 클로에 쪽으로 내밀었다.
해야 할 일을 마친 나는 보호막 밖으로 나왔다.
“그래, 뭐. 죽지 않으면 살겠지.”
그래도 고래한테 물리거나 벼락에 얻어맞는 것만큼 아프겠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거대한 회오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끄으.”
바람으로 얻어맞는다, 라는 표현에 대한 나의 이해도는 이 경험을 통해 완성되었다. 몰아치는 바람 속으로 뛰어들자 곧바로 내 몸을 덮친 건 트럭에 치인 것 같은 충격을 동반한 바람의 강타였다. 동시에, 내 몸이 붕 뜬 채로 바람 속에서 끈 떨어진 연처럼 멋대로 휘날리기 시작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내가 입고 있던 옷은 휘날리는 매서운 모래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졌다. 옷을 걸레짝으로 만든 모래의 다음 목표는 당연히 내 맨살이었다. 전신을 면도날로 난도질당하는 것 같은 고통이 몸을 엄습한다.
“아…… 흡.”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려던 나는 곧바로 입을 악물었다. 입을 벌리는 순간 구강 안쪽도 걸레짝이 될 거다. 그저,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살을 깎아내는 바람 속에서 마력을 돌리며 이를 악물고 버틴 지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정신도 혼미해지고 바람과 모래에 깎여나가는 몸처럼 정신은 밀려오는 고통에 깎여나간다. 한 번 진입한 이상 포기할 수 없다.
“믕… 흘…….”
이를 꽉 문 채 나는 망할, 하고 중얼거렸다.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포기를 못 하는 거다. 이 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바람이다.
“아.”
그리고 마침내, 내가 원하던 순간이 왔다.
아주 잠깐, 내 몸이 우주에 떠 있는 것처럼 무중력 상태에 빠져든다. 이 몰아치는 회오리의 꼭대기에 도착한 거다. 바람이 내 몸을 떠미는 힘이 서서히 약해지며, 내 몸을 땅으로 끌어 내리는 중력과 정확히 맞아떨어진 순간이다.
나는 눈을 팍 뜨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래, 이거지. 이러면 이제……!”
이제 분신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되었다. 모래바람 속을 벗어나도 몸에 새겨진 모래바람의 손톱자국들에는 분명히 고통이 잔류하고 있어서, 분신을 만들어내는 것도 굉장히 힘들다.
발아래에 살벌하게 휘몰아치는 회오리의 중앙. 나는 분신의 도움을 받아 허공에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목적한 위치에 도착하자, 그대로 대지를 향해 추락하기 시작했다. 후우웅, 하는 바람 소리가 귀를 괴롭힌다. 내 몸이 땅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여기서 한 번.”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지기 전에, 분신을 이용해 속도를 늦춘다. 그리고 다시 추락한다. 가속도가 다시 지나치게 붙는다 싶으면 다시 분신을 만들어 속력을 줄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등이 모래에 파묻힌다. 도착한 장소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겁나게 맑았다.
“씨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허리춤을 뒤졌다. 물통이 있을 텐데. 손에 잡히는 건 내 맨살뿐이다. 나는 허탈함에 빠진 채 중얼거렸다.
“당연하잖아.”
그 폭풍 속에서 옷이고 뭐고 다 잃어버렸다. 그나마 가지고 있는 건 바람에 휘말리기 전부터 꽉 잡고 있던 검 한 자루와, 다른 손에 쥐고 있던 연락용 수정구가 전부다.
“이제 어쩐다냐.”
목은 마르고, 모래바람에 찢어진 몸은 미친 듯이 아프다. 허벅지를 보니 살갗이 갈려 나가다 못해 그 아래에 숨어있던 근육까지 보일 지경이다.
“벼락 맞고도 회복에 성공한 몸이니,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회복은 되겠지.”
나는 검을 모래 속에 박아넣고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래서, 그 망할 놈의 삭풍의 족쇄인지 나발인지는 이 바람 한 점 없는 땅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 걸까.
“이건.”
눈앞의 모래가 갑자기 퍽, 하고 움푹하게 들어나가 싶더니, 거기에 물이 차오른다. 이런 고운 모래에 물이 고이다니, 위대하신 자연의 법칙께서 보기에 흐뭇한 상황이 절대 아닌데.
― 마셔라.
갑작스럽게 들린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2m 정도는 될 것 같은 키에, 다리가 부러져도 근손실이 두려워서 휠체어를 타고 턱걸이를 할 것 같은 우락부락한 구릿빛 근육을 한 회색 머리의 형님이 한 명 서 있었다.
“누구?”
내 말에 녀석이 대답했다.
― 실피드 카얀이다.
드라이어드와 네레이드에 이어 실피드라. 원하는 장소에 제대로 도착했다는 확신이 든다. 일단, 나는 모래 위에 고인 물에 입을 가져갔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고통에 멍해져 있던 머릿속이 대번에 맑아지는 기분이다.
이제 살겠네. 물을 잔뜩 들이켜고 입가를 훔친 나는 자신을 실피드라고 소개한 녀석을 바라봤다.
“정신 차렸으면 일어나라.”
나는 그 말에 잠깐 머리를 흔들고 나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금 전까지 온몸을 타고 흐르던 고통이 사라졌다.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었다.
“좋아, 몸 상태는 괜찮아졌군. 그럼 검을 들어라.”
나는 그 말에 살짝 인상을 썼다. 다짜고짜 검을 들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녀석이 나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나는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올렸다.
쩌엉, 하는 쇳소리와 함께 내 몸이 옆으로 쫙 밀려나고, 밀려난 경로를 따라 모래가 확 일어난다.
“무슨 짓거리야.”
“삭풍의 족쇄를 얻고 싶다면 힘을 증명해라. 레드우드의 후계.”
녀석은 녹색 빛을 머금은 대검을 손에 쥐고 있었다. 시험 삼아 녀석이 검을 몇 번 휘두르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울려 퍼진다.
“본디 만록의 심장은 자애심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주어진다. 벽해의 피는 진실된 사람에게 주어지지. 그리고, 삭풍의 족쇄는 강한 자에게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