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브레이서에 마력을 불어넣는 사이, 뭔가 휙 하고 내 앞으로 튀어나왔다. 클로에가 부풀어 오른 시체의 가슴을 양손으로 꽉 누르고 있었다.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큰일 날 뻔했네요.”
그렇게 중얼거린 클로에는 하늘로 손을 뻗었다. 쿠쿵, 하는 천둥 비슷한 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충격파가 쫙 뿜어져 나온다. 휙휙 손을 털어낸 클로에가 시체를 확인하고 나를 바라봤다.
“베로나 제국에서 보낸 녀석들은 아닌 것 같아요.”
클로에는 그렇게 중얼거린 다음 가슴이 활짝 열려있는 시체를 확인하고 약간 인상을 쓴 다음 고개를 돌렸다. 에일리언이 까놓은 알이 부화해서 죽은 사람 시체를 닮았다. 나는 시체 쪽으로 다가가서 그 열린 가슴팍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뭐 하세요?”
“살펴보는 거지.”
나는 그 말에 대답 대신 뭔가를 꺼내 클로에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목재 파편 같은데요.”
“정확히 말하면, 태엽이었던 나무 파편이지.”
폭발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진 거다. 나는 그 부서진 조각들을 있는 대로 꺼냈다. 잠시 뒤 바닥에 깔아놓은 천 위에는 내가 집어낸 나무 조각들이 꽤 많이 모였다.
“거기, 물러나라!”
나는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 이 항구 주변의 치안을 담당하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우리는 곱게 뒤편으로 물러났다.
“잠시, 돌아가지 말고 대기했으면 하는데.”
테네스 공국 경비대의 간부로 보이는 자가 우리를 향해 말을 걸었다. 말을 들은 클로에가 혀를 잠깐 차는가 싶더니 그를 향해 말했다.
“현 상황의 처리를 위해 필요한 서류들이 있어요.”
“두 사람이 현 사태에 대한 피해자라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발생한 사건에 대한 정확한 조사를 위해서는 두 사람의 협조가 필수다.”
클로에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저희도 그렇고 싶죠. 그렇기에 챙겨야 하는 서류들이 있다는 거예요. 저희도 이 사태의 해결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싶으니, 잠시 시간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클로에의 말에 경비대의 간부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인다.
“저희는 테네스 공국의 국민이 아니에요.”
“그럼 어느 나라 사람이지?”
클로에가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내부 방침으로 인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내부 방침?”
“외교적인 문제 사안이 될 수도 있는 내용입니다. 경비대의 간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말에 경비대의 간부가 상당히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경비대의 사람을 두어 명 저에게 붙여주세요.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나면 그들의 안내를 받아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나와 저 여성은 동행 중이다. 만약의 사태가 걱정된다면 나는 저 여자가 필요한 일을 끝내기 전까지 여기에 머무르지.”
클로에와 내 말을 들은 간부의 표정이 약간 풀렸다.
“그쪽에서 그렇게까지 협조 의사를 밝혀준다면 나로서도 약간의 편의를 봐주지 않을 수는 없겠군. 좋다.”
클로에가 그 말에 감사 인사를 한 다음 나를 바라봤다.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요.”
이후, 약 한 시간 정도가 경과한 다음 클로에가 경비대의 사람들과 함께 돌아왔다.
“좋아, 이제…….”
간부가 뭐라고 말하려고 하는 사이, 저 멀리에서 누군가 급하게 말을 타고 달려왔다.
“경비대장님?”
말을 타고 달려오는 사람을 확인한 간부가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곧바로 경비대장이 말 위에서 외쳤다.
“두 사람에 대한 진술은 받더라도, 신분에 관련된 질문은 일체 허가하지 않는다. 또한, 절차의 간략화를 위해 진술에 협조하는 시간을 제한한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간부의 말에 경비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간부에게 다가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대답을 들은 간부가 살짝 몸을 굳히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간부가 나와 클로에를 보고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두 분, 방금 전까지의 무례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잠시 협조를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무슨 이야기를 나눈 건지 궁금하네. 사람 태도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변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법인데. 누가 보면 내가 이 사람을 협박이라도 한 줄 알겠다.
협조라고 해도 그렇게 대단할 건 없었다. 죽은 사람들의 인상착의나 발견 이후 일어난 일에 대한 진술 정도였다.
“같은 종류의 마차가 계속 주변을 돌아서 수상함을 느꼈다는 것은…….”
간부가 서류를 작성하며 내 눈치를 슬쩍 봤다.
“여러 가지로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아무래도 주변 경계를 좀 하고 있었죠.”
“구체적으로 어떤 사정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여기까지 말해주었다는 건 그 이상으로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었거든. 내 말에 녀석이 퍼뜩 정신을 차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라면 어쩔 수 없겠죠. 알겠습니다. 그럼, 진술을 다시 한번 확인해보겠습니다. 우선…….”
우선이고 뭐고 필요 있나. 나는 그 말에 내가 녀석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쭉 읊어주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녀석은 서류의 내용과 내가 다시 한 진술을 확인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한 것 같습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고생하세요.”
경비대 막사에서 나오자, 클로에가 문에 기댄 채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난감한 질문 같은 걸 했으면 말씀해주세요.”
“그런 건 없었어. 그나저나, 긴 시간이 주어진 게 아닌데 제법 그럴듯하게 일 처리를 끝냈네.”
내 말에 클로에가 엄지를 한 번 척 올려준 다음 심각한 표정을 한 채 말했다.
“제국에서 보낸 녀석들 같지는 않았어요.”
클로에의 말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에서 나를 공격하고 싶었다면 고작 두 명만 보내지는 않았겠지.”
녀석들은 나에게 당한 게 꽤 많다. 고로, 나에게 실제로 상해를 끼치기 위해서는 실력을 갖춘 인원이 얼마나 필요한지 잘 알고 있을 거다. 이번에 나를 노린 건 꼴랑 두 명이었고, 두 명으로 나를 제압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도 아니었다.
차라리, 간을 보기 위해 보내봤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는 인선이다.
광대가 보낸 녀석들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사람이 자기 말을 지키지 않는다 해도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바로 칼과 석궁으로 무장한 녀석을 보내지는 않을 테니까.
“꿈에 나타난 사람이 둘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래, 광대는 너도 얼굴을 봤으니 알 테고…… 아직 하나 남아있었지.”
클로에도 그쪽에서 보낸 사람들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숙소에 도착한 나는 엘렌과 나누었던 대화를 클로에에게 말해주었다.
“마법사를 추가로 보낸다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요. 엘렌 양이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을까요?”
“뭐, 이런 일로 실망시킨 적은 없는 친구잖아.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했으니, 지금은 믿고 기다려야지.”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머무르고 있던 여관으로 돌아왔다.
저녁 시간이 되어, 새로 합류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던 와중 메이슨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그나저나, 두 분은 굉장하네요.”
“응? 무슨 말씀이신지.”
내 말에 메이슨이 대답했다.
“저번에 파티에서 두 분을 먼발치에서나마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말에 클로에가 순간적으로 포크질을 멈췄다. 그래, 우리는 파이크 왕국 사람들 앞에서도 연기를 해야 했지.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서 순간적으로 까먹고 있었다. 파티에서 우리 모습을 봤다면, 서로 좋아서 죽지 못하는 연기를 하고 있는 우리를 봤다는 소리잖아.
메이슨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임무를 수행 중인지는 저희로서는 알 수 없지만, 파티에서와는 다른 모습을 보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분명히, 왕국의 미래를 위해 성공시켜야만 하는 중요한 임무 앞에서 개인의 감정을 뒤로 미뤄둔 거겠죠.”
세상에, 사람이 어찌 저리 아무렇지도 않게 오글거리는 말을 토해낼 수 있는 거지? 지독하게 부담되는데. 그리고 미안하다. 왕국의 미래 그딴 게 아니라 사실 그냥 내 개인 사정이야.
“크흠.”
옆에서 클로에가 메이슨의 시선을 피하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무래도 양심에 찔리는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클로에가 이해해줘서 고마울 따름입니다.”
내 말에 클로에가 순간적으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뭐해? 빨리 맞춰줘. 내 표정을 본 클로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마틴 님의 그런 점에 반한 거니까요.”
순식간에 연기에 들어가는 클로에를 보고 다소 안심한 나는 말을 이었다.
“그것보다, 엘렌 리버플로우 양에게 뭔가 소식이 전달되지는 않았습니까?”
“시간을 좀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포경선 쪽에 연락을 해봤는데, 이미 로니세라 경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모양이더군요. 아마, 며칠 정도는 걸릴 것 같습니다.”
며칠이라. 내가 주문한 일이 뭔지 생각해본다면 사실 그것도 짧은 편이지. 이후, 메이슨이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늘 습격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뭐. 습격이라고 해야 할지 어떨지.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내 말에 메이슨이 고개를 저었다.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하루에 두 번이나 습격당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그 정신 나간 광대가 사용한 마법은 용납할 수 없는 사악한 수단입니다. 항구 일대의 경비대에 협조를 구해, 저희가 머무르고 있는 여관 일대의 경계를 요청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클로에가 바로 입을 열었다.
“첩보국에도 연락을 해뒀어요. 뭔가 수상한 움직임이 보인다면 연락을 보내줄 거에요.”
“테네스 공국이 협조를 많이 해주는 모양이군.”
내 말에 클로에가 어깨를 으쓱했다.
“외교로 달성한 호의라고 해야겠죠. 베로나 제국과의 전쟁 당시, 아군을 지원했던 상인들도 있지만 반대로 베로나 제국을 지원했던 상인들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폐하께서는 왕국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높게 평가하며 감사패와 선물을 보냄과 동시에, 베로나 제국을 지원한 상인들에 대한 항의는 일절 하지 않았어요.”
즉,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테네스 공국의 협조는 그 점에 대한 감사 표시로군. 무역을 주 수입원으로 삼는 테네스 공국에서는 이런 호의를 받고 입을 닦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
직접적인 지원을 해주는 건 베로나 제국의 눈치가 보이지만, 여관 주변에 경계 병력을 배치하거나, 첩보국에게 협조해주는 정도는 문제없는 모양이다.
“여기까지 와서 테네스 공국의 눈까지 피해야 했다면 난감했을 텐데, 다행이네.”
“테네스 공국은 경비대의 장비에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같은 숫자라면 그 효율이 월등히 좋습니다.”
그래, 이전에 보니 성벽 지키는 녀석들 칼에 막 미스릴 같은 거 섞어주고 그러더라.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대답했다.
“어차피 편히 자기는 힘들 겁니다. 불편하시겠지만, 휴식 중에도 전투에 꼭 필요한 장비는 몸에 지니셔야 합니다.”
그 광대가 좀 정신이 이상하긴 하지만 바보는 아닌 것 같았으니까. 우리가 계속할 생각이라는 건 결국 녀석도 눈치챌 것이다.
“그렇게까지.”
메이슨의 말에 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 광대는 어떤 면에 있어서, 베로나 제국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베로나 제국은 잃을 게 많은 친구들이지만, 그 광대는 잃을 게 거의 없으니까. 어르신들이 노숙자랑 시비 붙지 말라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 씻은 다음 모처럼 일찍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