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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203화 (203/275)

203화

밤이 깊었다. 클로에는 근처에 머무르고, 나는 혼자 은신 능력을 사용한 채 저택을 둘러싸고 있는 벽 앞에 섰다.

“조금만 더 높게 쌓았으면 아주 성벽이 될 뻔했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벽 위를 살펴보았다.

벽 위에는 뾰족한 창끝과 동물 모양의 장식이 다음과 같이 그 형태를 반복하고 있었다.

…―…―…―…―

과연, 이게 엘렌이 말했던 것처럼 어떤 종류의 보안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일까?

나는 수정구를 들어 엘렌에게 연락했다.

― 어, 도착했어?

“지금 벽 앞에 서 있는데. 벽 위의 장식물들이 수상해서.”

― 설명해줘. 에릭 폴란스키가 사용하는 보안 마법의 원리는 나도 이해하고 있어. 자세히 설명하면, 파훼법을 생각해낼게.

엘렌의 말에 따라 나는 벽 위를 장식하고 있는 물건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창날 두 개에 동물 모양의 장식 하나. 이게 계속 반복되고 있어.”

― 재질은?

“청동.”

이어서 나는 엘렌의 요구에 따라 장식들의 크기나, 담장의 높이와 같은 정보들을 말해주었다. 수정구에서 책을 넘기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뒤 엘렌의 대답이 돌아왔다.

― 좋아. 벽을 그냥 넘으려고 하면 그 움직임을 감지하는 형식인 것 같은데. 혹시, 동물 장식이 반복되고 있어?

“그래, 세 종류.”

곰, 참새, 개구리다. 세 가지 동물의 장식이 반복되고 있다.

― 반복되는 동물 장식 세 개를 한 번에 파괴하면 무력화될 거야. 무력화에 성공하면 순간적으로 벽 위로 붉은 스파크가 튈 테고…… 실패했다면 저택 전체에 경보 알람이 울려 퍼지겠지.

“그거면 충분해. 계속 연결 유지해줘.”

말을 마친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곰 모양의 장식은 내가 망가뜨리고, 참새는 분신이 망가뜨리고, 개구리는 쇠구슬을 던져 망가뜨리면 된다.

속으로 시간을 재던 나는 벽을 향해 뛰어오름과 동시에 분신을 만들어내고, 쇠구슬을 던졌다.

팍, 하고 순간적으로 장벽 위로 붉은 스파크가 번쩍하는 게 보인다. 성공한 모양이다. 잠깐 주변을 살피던 나는 은신을 유지한 채 벽에 매달려, 벽 너머를 살폈다.

― 어때?

“정원이 있어. 중앙에 분수대가 보이네. 그 분수대를 중심으로 여덟 갈래로 물길이 뻗어 나와 있는데. 그 물길들이 다시 분수를 중심으로 다시 큰 원을 그리고 있어. 마치, 마차 바퀴의 바퀴살처럼.”

내 대답을 들은 엘렌이 대답했다.

― 그래, 혹시 물 위에 떠다니는 것들은 없어?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나무를 깎아서 만든 조각배 모형 같은데. 위에 꽃다발이 올려져 있네. 분수 외곽에 만들어진 원형의 물길을 따라 떠다니고 있어.”

― 조각배 모형 위에 올려져 있는 꽃은 정원에도 심겨 있지?

“맞아. 뭔가 관련성이라도 있는 거야?”

내 말에 엘렌이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 조각배 모형 위에 있는 꽃, 아무거나 한 종류 말해봐.”

“천일홍.”

저건 지금 피는 꽃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뭐, 어때. 애초에 마법사의 저택인데 필 시기가 아닌 꽃이 피어 있는 것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다.

― 좋아, 그럼 정원에도 천일홍이 심겨 있다는 뜻이지? 머릿속으로, 천일홍이 올려진 조각배와 정원에 심어진 천일홍 사이에 직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움직여.

“그 가상의 직선에 닿으면?”

내 말에 엘렌이 대답했다.

― 조각배가 너를 노리고 날아와 근처에서 폭발할 거야. 물론, 네가 끼고 있는 브레이서 덕분에 피해는 없겠지만…… 폭발음은 저택 전체에 퍼지고도 남을걸.

쉽게 말해서 계속 움직이며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레이저 경보기 같은 거다.

― 그 이외에 다른 건?

“저택 2층의 창문이 신경 쓰이는데.”

내 대답을 들은 엘렌이 책장을 이리저리 넘기면서 대답했다.

― 어떤 형태인지 말해줘.

나는 엘렌에게 저택의 창문들에 대해서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택의 2층은 색유리로 만들어져 있어. 미닫이 형식으로 만들어진 창문으로 보여.”

스테인드글라스라고 하는 물건이다. 성당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창유리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구성하고 있는 색깔은 네 가지. 하나같이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남자와 여자가 반복되고 있네. 멀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유리에 색을 입힌 게 아니라 석영 같은데.”

자수정, 황수정, 연수정과 장미석영이다. 내가 거기까지 설명하자 엘렌이 내가 한 말을 따라 중얼거리더니 10분 정도 뒤에 대답을 돌려주었다.

― 알았어. 우선은 스테인드글라스에 도착하는 걸 목적으로 움직여. 정원을 통과하면 스테인드글라스를 네 모습이 비치면 죽는 거울이라고 생각해. 창틀에 매달리면 될 거야. 순찰하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건 걱정하지마. 성공하면 다시 연락하마.”

어차피 녀석들은 나를 보지도 못한다. 클로에도 모르고 엘렌도 알지 못하는 비밀인데, 이 저택을 경비하는 녀석들이 알고 있을 리 없지. 정원에 착지한 나는 곧바로 분수대 외곽을 순환하는 조각배들과 정원에 심어진 꽃의 위치를 살피며 정원에 만들어진 가상의 직선들을 상상했다.

여기서 점프. 나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살짝 점프해 가상의 선을 피하고, 재빨리 저택으로 접근해 벽을 타고 올랐다. 그리고, 정확히 엘렌이 지시한 대로 창틀에 매달린 채 입을 작게 속삭였다.

“도착했어. 따로 잠금장치는 없어 보이는데. 그냥 손으로 밀면 밀릴 것 같아.”

내 말에 엘렌이 대답을 돌려줬다.

― 그건 노림수야. 그 스테인드글라스는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반응하는 물건이야. 약 3초 정도, 그림자가 스테인드글라스의 일부를 가리면 바로 반응해서 폭발하고, 마력이 담긴 파편이 네 몸을 휩쓸어버릴 거야.

저런, 그래서 창문 근처에 나무 한 그루 없었던 거군. 마찬가지로 잠금장치 같은 것도 필요 없겠네.

“극복 방법은?”

― 설치된 마법이 반응하기 전에, 스테인드글라스의 대부분을 가리는 데 성공하면 폭발하지 않을 거야. 아마도.

“아마도? 그건 지금 상황에서 듣고 싶은 단어가 아닌데.”

내 말에 엘렌이 약간 변명하는 것 같은 어조로 대답했다.

― 나라고 전부 알 수 있는 건 아니야. 애초에 내가 참고하고 있는 논문은 에릭 폴란스키가 자신의 저택에 걸어놓은 보안 마법 전부가 적혀있는 게 아니라고. 네 설명을 듣고 작동 방식을 유추하는 것뿐이야.

다소 미심쩍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게다가 생각해보면 두 번 연속으로 성공했잖아? 그럼 세 번째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 나를 믿어. 아무 근거 없이 추측을 늘어놓는 게 아니야.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라고.

“알았어. 시키는 대로 할게.”

말을 마친 나는 주변을 살폈다 좋아, 어디에서 이 유리를 가릴 수 있는 크기의 천을 찾지? 적어도 이불보 정도는 되는 크기여야 할 것 같은데.

“망할, 이 밤중에 이불보 같은 걸 어디에서 구해.”

저택의 빨래방 같은 곳에 가면 있을까. 근데 그건 마왕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열쇠가 마왕성 안에 있는 꼴이잖아.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나는 입을 열었다.

“정확히, 이 색유리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 거야?”

― 색유리에 닿는 빛의 양에 반응하는 거야. 사람의 몸이 유리의 일부를 가리면, 자연스럽게 몸으로 가려진 장소와 다른 색유리 사이에 들어오는 빛의 양이 차이나게 되잖아?

그 차이를 감지해서 폭발하는 건가. 그렇다면 여기에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이 색유리는 빛의 차이를 얼마나 세밀하게 감지할 수 있는 걸까.

“그럼, 이 색유리에 촛불 같은 걸 가져가면 어떻게 될까?”

수정구가 잠깐 침묵하다가 대답을 돌려주었다.

― 촛불을 색유리에 가져가면 촛불이 닿은 부분만 감지되는 빛의 양이 확 늘어날 테고…….

유리에 닿는 빛의 차이로 반응해서 작동하는 물건이라면 촛불을 가져가는 순간 자연스럽게 촛불이 밝히는 장소를 제외한 나머지는 가려진 상태와 같게 될 것이다.

이불보 같은 걸로 스테인드 글라스 전체를 가릴 필요가 없게 되는 거지.

― 하지만, 촛불의 빛은 사방으로 퍼지잖아? 촛불로 색유리의 일부를 밝혀놓는다고 해도, 밝혀지는 범위가 너무 넓으면 네 생각은 무용지물이야. 네가 생각한 것처럼, 색유리를 천 같은 걸로 가리지 않고도 가린 것과 같은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아주 좁은 범위에만 빛이 닿아야 하는데…….

“컵 같은 걸로 촛불을 가린 다음, 그 컵을 유리에 딱 가져다 붙이면 충분하지.”

그러면 촛불은 컵 안에 있는 산소를 다 태우고 나서 꺼지겠지만, 촛불이 꺼지기 전까지는 컵이 닿은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가 다 가려진 것과 같은 효과를 보게 될 거다.

그리고, 촛불이 꺼지는데 필요한 시간이라면 이 색유리를 열고 안에 들어가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잠시 뒤, 엘렌에게서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 성공할 것 같아. 하지만, 촛불은 어디에서 구하려고?

나는 그 말에 배낭에서 초와 나무컵을 꺼내며 대답했다.

“챙겨왔어.”

무사히 도착하는 데 성공하면 챙겨온 촛불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저택 안에도 불을 붙일 조명은 있겠지만, 챙겨온 조명 대신 저택 안에 마련된 등불이나 초를 밝히는 건 영 불안했거든.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이 저택 안의 양초나 등불에 불을 댕겨? 당장 분수랑 창문에도 이 지랄을 해놓는 녀석인데.

― 나무컵은 어디에 쓰려고 챙겨온 거야?

“바닥에 구멍을 뚫고 벽에 가져다 붙이면 소리가 증폭되니까. 문 너머에 누군가 있는지 확인하기에 딱이지.”

나도 그냥 맨몸으로 덜렁덜렁 여기까지 온 건 아니라고. 초에 나무컵을 씌운 나는 가느다란 솜뭉치를 꺼내 부싯돌로 불을 붙이고, 그 불을 촛불로 옮겨붙였다.

그다음, 빠르게 스테인드글라스에 가져갔다.

“좋아.”

별 반응 없다. 만약 이게 먹히지 않았다면 지금쯤 저 스테인드글라스가 폭발하면서 내 손모가지가 날아갔어야 정상이니까. 나는 그대로 스테인드글라스를 옆으로 밀었다.

― 어차피 안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하면 그냥 평범하게 닫아도 상관없어.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만 감지할 테니.

그렇겠지. 하녀가 스테인드글라스 주변의 복도를 청소하다가 유리 파편을 뒤집어쓰는 슬픈 사태가 발생할 테니까.

창문이 열리고 나는 저택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손수건에 물을 약간 묻혀 신발과 바닥을 깨끗이 닦아내고 다음 복도를 살폈다. 벽에는 손님들을 위해 마련된 건지, 이런저런 팻말이 붙어있었다.

[3층 침실, 서재, 연구실]

[2층 식당, 응접실. 손님방]

[1층 홀, 대기실, 주방, 연회장, 휴게실]

[―> 식당, 응접실]

[<― 계단, 손님방]

“그래 뭐…… 대충 2층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는 저거 덕분에 정확히 알게 되었네.”

그 팻말과 기억해둔 지도를 서로 비교하던 나는 복도를 걸어 3층으로 향하며 수정구에 말을 걸었다.

“여기부터는 필요할 때마다 연락을 재개할게.”

말을 마친 나는 서서히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듣고 숨을 죽였다. 등불을 한 손에 든 채 저택 안을 돌아다니는 경비들이 보인다. 나는 벽에 붙었고, 경비들은 별다른 수상한 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나를 지나쳤다. 녀석들이 멀어지는 걸 확인한 나는 수정구로 다시 신호를 보낸 다음 작게 속삭였다.

“에릭 폴란스키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 경보 마법, 피아를 구별할 수 있나?”

내 말에 엘렌이 대답을 돌려줬다.

― 그 건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 중이라고 알고 있어. 피아 식별이 가능하도록 뜯어고치면 어지간한 마법사들이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경보 마법의 마력이 짙어지거든.

마법사들에게 걸리지 않는 경보 마법을 만들어내는 게 에릭 폴란스키의 목표였는데 마법사들이 감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마력이 짙어지면 의미가 없다.

즉, 경비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장소라면 따로 경보 마법이 설치되어 있지는 않다는 뜻이다. 조금은 자유롭게 움직여도 될 것 같네.

“고마워, 연락 끊는다.”

― 고생해. 대기하고 있을게.

말을 마친 나는 재빨리 계단이 자리 잡은 방향으로 향했다. 내가 원하는 토큰을 찾아낼 수 있는 장소는 3층이다. 에릭 폴란스키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으로 보이니까.

마침내 3층에 도착한 나는 선택의 기로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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