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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101화 (101/275)

101화

정글에서 말을 타는 건 베트남에서 스키부대를 운용하는 것만큼이나 어이없고,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마침내 언데드가 형성한 전선을 뚫고 정글 앞에 도착한 우리는 말에서 내려야 했다.

“이제부터가 진짜지.”

정글에 도착한 병력들이 말에서 내리고, 후속 병력이 도착하는 동안 진형을 바로잡기 시작한다. 우린 이 자리에서 더럽게 빡세고, 힘든 싸움을 해야 한다.

“빠르게 움직여라, 여기는 지금 적진 한복판이야!”

간부들이 빠르게 병력을 통제해 진형을 바로잡기 시작한다. 정예병을 가려 뽑았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병력들은 직면한 위험 앞에서 공포에 빠지는 대신 긴장 속에서 해야 할 일을 서두른다.

방패, 창, 활. 마법사들과 기사들이 지정된 위치에 자리잡는다. 검을 든 병사들이 질척이는 진흙 위에 발을 딛고 덩굴을 잘라내고, 초목을 칼로 쳐내 시야를 확보하기 시작한다.

“무슨 놈의 안개가…….”

클로에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검을 든 채 주변을 살폈다. 운무림이라고 하던가. 대낮인데도 울창한 밀림에 해가 가려져 어두컴컴하고, 뭉클거리는 뿌연 안개가 구름처럼 사방을 덮고 있다.

습도가 이렇게 높으면 부싯돌 같은 걸로 조명을 밝히는 건 어림도 없다.

주변의 정찰을 위해서 소수의 병력을 빼 사방으로 뿌린 나는 곧바로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마법사들은 병사들이 조명을 밝히도록 도와!”

마법사들이 횃불에 불을 붙이고, 그 횃불을 이용해 다른 횃불에 불을 붙이는 식으로 조명을 확보했다.

그사이 뚫어낸 전선을 타고 아군 병력들이 정글 안으로 빠르게 진입한다. 간부들은 계속해서 보고를 올리며, 새로 도착한 병력들의 숫자를 파악하고 지정된 위치로 통솔한다.

“서북쪽은?!”

간부 한 명의 외침에 내가 대답했다.

“창이 오백에 방패가 칠백, 궁수 삼백이 위치했다. 배치되기로 한 마법사들은 어디 있어!”

“지금 바로 향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나는 엘렌을 바라봤다.

“마법은?”

내 말에 엘렌이 대답했다.

“이제부터 시작할 거야.”

대답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가 내려야 한다. 엘렌이 말하길 늪지대 안으로 들어서면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 번꼴로 소나기가 쏟아진다고 했지.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의 우기 평균 강수일수가 이틀에 한 번꼴이잖아.

하다못해 거기는 사람이 사는 곳이니 좀 덜한 편이지. 여기는 엘렌이 말했던 것처럼 하루에 한 번꼴로 스콜이 쏟아져도 신기할 게 없어 보인다.

우리는 작전을 준비하면서 최대 3일을 버텨야 할 수도 있겠다는 가정을 하고 짐을 꾸렸다. 비가 오기 전에 보급이 다 떨어질 일은 없을 거다.

“큰울림 기사단장님이 도착했습니다!”

그럼 이제 뚫고 들어왔던 전선의 구멍이 막혔다는 뜻이다.

“기우제라도 지낼까요?”

“개뿔.”

그럴 인력이 있으면 무기 쥐여주고 싸우라고 해야지 돼지머리 앞에서 절을 시키고 있겠냐.

정글 외곽은 이미 유물을 발굴하던 마법사들에 의해 어느 정도 연구가 진행되어 있다. 우리가 자리 잡은 곳은 이 정글 외곽 중에서도 특히 비가 잘 쏟아지는 곳이다. 기우제는 필요 없다.

“보고합니다!”

준비하고 있으려니, 주변을 살피러 나갔던 병사들이 복귀해서 미로스에게 보고를 시작했다.

우리가 위치한 장소로 언데드가 개미 떼처럼 몰려오고 있다는 정말 듣기 좋은 이야기였다.

“준비해라.”

병력들이 다시 한번 자세를 바로잡고, 투구를 눌러쓴다. 흐물거리듯 정글을 감싼 짙은 안개 너머로 시체들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한다.

― 발을 딛지 말아야 하는 곳도 있는 법이다. 대왕의 휴식을 방해한 걸로는 교훈을 얻지 못한 모양이지.

그 말과, 함께 쏴아 하고 몸에 소름이 돋아오르기 시작한다. 이토록 덥고 습한데도 불구하고, 전신을 타고 번져나가는 소름과 함께 섬뜩함을 이기지 못한 피부가 닭살을 뱉어낸다.

“크흐…….”

병사들 몇 명이 작게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라! 어차피 물러날 곳은 없음을 알아라!”

미로스의 외침에 병사들은 몸을 떨면서도 진형을 유지하고 다가오는 실루엣들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살피면서 엘렌에게 말했다.

“마법진은, 얼마나 남았어?”

내 말에 양손의 연결점을 빛내고 있던 엘렌이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30분 정도.”

그럼 앞으로 30분 동안은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거다. 배치한 부대에 적절하게 마법사를 섞어놓기는 했지만, 이 마법사들은 현재 하늘 위에 설치한 성역화 마법을 안정시키는 중이니까.

―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움직여라 노예들아. 너희들의 주인에게 이제껏 그래왔듯이 다시 한번 승리를 헌상해라.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진정한 대왕께서는 저들의 피를 원하신다.

안개 너머에서 일렁거리던 실루엣들이 일제히 붉은 안광을 뿌리며 안개에서 뛰쳐나와 진형을 유지하는 병력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좋아, 와라!”

나는 그렇게 외치고는 밀려드는 언데드를 향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틴 레드우드, 동북쪽으로 향해라!”

미로스의 외침에 나는 곧장 시체에 박아넣은 검을 뽑아 올리고 미로스가 지시한 방향으로 달렸다. 밀려오는 언데드의 숫자에 무너지려고 하는 방어선이 보인다. 저기를 말한 거겠지. 뛰어올라 하늘에서 떨어진 나는 검이 닿는 범위 안에 있는 언데드를 모조리 작살내고, 분신을 만들어 주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 으아아아아아!

고함과 함께 달려든 거대한 시체가 나를 향해 거대한 폴암을 내려찍는다. 검을 들어 막자 쿠쿵, 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며 나와 시체 주변을 휘감고 있던 안개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좌악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이끼가 엉겨 붙은 갑옷을 입은 시체는, 머리가 없었다. 대신, 머리가 있어야 하는 부분에는 기괴하게 생긴 버섯들이 마구 자라나 있다.

“머리 고기는 배고파서 뜯어먹었냐?”

몸의 마력을 움직이며 검을 들어 올려 폴암을 밀어낸 나는 갑옷의 틈을 노리고 검을 내질렀다. 튕겨 나갔던 폴암이 다시 내 검을 내려찍고, 그 틈을 노려 분신이 녀석의 등짝에 검을 박아넣는다.

그 사이 근처에 있던 시체들 중 몇 녀석이 손에 머금고 있던 시커먼 덩어리를 나에게 쏘아낸다. 여기에서 피해버리면 뒤에 병사들이 있다.

“크흐.”

검으로 막아내자 화악, 하고 덩어리가 흩어진다. 동시에, 팔뚝에 장착한 브레이서에 금색 문양이 떠오른다. 엔더슨의 갑옷으로 만든 거라 했지. 확실히 뿜어내는 빛은 희미하지만 떠오른 문양은 같다.

그사이 대가리 없는 시체가 횡으로 크게 폴암을 휘둘렀다. 앞으로 뛰어나가 손을 뻗어 폴암의 자루를 받아내자 내 몸이 옆으로 약간 밀렸다.

손에 힘을 쥐고 폴암을 확 잡아당기자, 무기를 쥐고 있던 시체가 휘청거리며 앞으로 딸려온다.

가슴팍을 밟고 뛰어올라 머리통 대신 자리 잡은 버섯 틈으로 칼을 내려찍었다. 내려찍은 검은 녀석의 몸뚱어리에 절반 정도 박혀 들었다. 이내, 시체가 움직임을 멈춘다.

“너 같은 새끼들 한둘 상대해보는 줄 아냐?”

양손으로 검을 움켜잡고 발로 녀석의 가슴팍을 힘껏 밀어내자, 힘을 잃은 시체가 훙,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다음 바닥을 구르며 다른 언데드들을 깔아뭉개버린다.

“돌아버리겠네.”

숨을 몰아쉬던 나는 검을 땅에 박아넣고 얼굴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땀을 한 번 훔쳤다못 이기겠는 게 아니라, 몸뚱어리가 하나뿐이라는 점이 불편하다. 정확히 말해서, 분신을 쓰면 몸이 두 개가 되기는 하지만, 오래 유지되지 못하니까 또 다른 한 명으로 칠 수는 없다.

어쨌든, 도움을 요청하는 곳이 너무 많다. 지금으로서는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기 힘드니까. 강력한 언데드를 상대할 수 있는 건 기사들로 한정되어있다.

“서남쪽의 진형이 무너졌습니다…….”

병사의 말을 들은 나는 씁, 하는 소리를 내고 땅에 박아넣었던 검을 다시 들고 서남쪽으로 달렸다.

“이건 또 무슨.”

언데드가 죽은 시체들의 살점과 내장을 씹고 있었다. 동시에, 허공을 천천히 부유하며 낄낄거리는 반투명한 유령들도 보인다. 녀석들은 하나같이 희끄무레한 덩어리를 움켜쥔 채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고통에 차 일그러진 얼굴이 보인다.

혼 같은 걸 뽑아내서 가지고 노는 모양이다. 병사들 중 아직 살아있는 몇몇 녀석들은 입에 게거품을 물고 허공에 무기를 마구 휘두르며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녀석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했다. 녀석들이 내 손등을 보고는 자리에서 비척거리며 일어나 얼굴을 가리고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어딜 가려고 이 개새끼들아.”

무기를 쥐고 녀석들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죽었다 일어난 시체가 다시 쓰러지고, 하늘을 돌아다니던 유령들의 낄낄거리는 소리가 하나씩 비명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마치 오델로처럼, 죽은 자들은 아군의 주검이 되는 대신 적군으로 변한다.

“기다렸지?”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일렁이는 기운이 안개를 뚫고 언데드의 머리 위에 내려 찍힌다. 철벅, 하는 끈적한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남은 거대한 손바닥 자국.

나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엘렌이 서 있다.

“설치는?”

“문제없어. 이제 정말로 비를 기다리면 끝이야.”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비를 오게 하는 마법 같은 건 없어?”

내 말에 엘렌이 대답했다.

“그런 마법이 있으면 왕국에 가뭄은 왜 들겠어.”

틀린 말은 아니네. 엘렌이 자신에게 달려든 언데드의 머리통을 작살내며 말했다.

“여긴 병력들이 다시 진형을 갖추기 전까지 내가 막고 있을 테니, 다른 곳으로 가. 여기 말고도 급한 곳 많아. 우선은 동쪽부터.”

“욕봐라.”

말을 마친 나는 미련 없이 자리를 이탈해 동쪽으로 달렸다.

“젠장, 끝이 없군. 도대체, 얼마나 몰려온 거야.”

동서남북 사방팔방 뛰어다니면서 무너지려는 방어선을 억지로 다시 유지시키기 시작한 게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

“기뻐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전장을 뛰어다니다가 마주친 클로에의 한마디.

“기뻐해야지. 그래도 지휘관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잖아.”

안개 속에서, 무수한 언데드를 지휘하는 목소리는 세 가지다.

즉, 이 정글의 안개 속에는 이전에 마주쳤던, 카루토스의 창이라고 불리는 언데드가 최소한 세 녀석 있다는 뜻이다. 아직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짐작이 된다.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거겠죠.”

클로에의 말이 맞다. 우리는 포위되었고, 구축한 방어선은 서서히 뒤로 밀리고 있었다. 휴식 없는 싸움은 언젠가 한계를 맞이한다.

내가 보고 들은 내용이 맞다면, 이미 우리는 가용한 전력의 약 20%를 날려 먹었고, 방어 부대의 재편성도 벌써 다섯 번이 넘게 했다. 언데드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이긴 싸움이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카루토스의 창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건, 우리의 계획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거니까…….”

클로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머리 위에 성역화된 하늘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면, 속전속결을 위해서 카루토스의 창들도 교전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을 거다.

“얻어맞고 나면 그때는 모습을 드러내겠지.”

“가능하면, 폭우를 견디지 못하고 전부 뒈졌으면 좋겠는데.”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괜히 있겠어. 큰 피해를 입고 약해지겠지만, 강력한 언데드들의 마무리는 우리 손으로 직접 해야 할 거다.

“사령관님이 병력을 다시 뒤로 물리시라고 합니다!”

“또?”

그렇게 부지런히 뛰어다녔건만, 또다시 한 곳이 무너지려는 모양이다.

그 순간, 불쾌한 열기와 습기로 가득한 정글 속으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사방을 뒤덮고 있던 안개도 몰아치는 바람을 타고 넘실거리며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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