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우드-41화 (41/275)

041화

내 말에 녀석들이 잠깐 침묵한다. 더 해줄까? 못할 거 없는데.

“가슴팍에 검댕이 약간 묻어있는데. 불을 피웠던 모양이지. 배낭은 젖어있지 않고, 대신 돌가루가 묻어있군. 동굴 같은 곳에서 야숙을 했나. 그럼 사냥꾼? 아니, 활이 없어.”

나는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그것뿐이 아니지. 너희들 손의 굳은살은 활시위를 당겨서 생긴 게 아니야. 뭔가를 잡고 휘두르면서 생긴 굳은살이지. 불을 피우고 손에 뭔가를 들고 휘두른다라. 대장장이? 역시 아니야. 달군 쇠를 두들길 때는 집게로 달궈진 쇠를 집고, 다른 손으로 망치를 두들기거든.”

애초에 그걸 넘어서, 야숙을 하며 돌아다니는 대장장이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뭐 단체로 쿠르스트 산맥으로 바캉스 온 것도 아닐 테고.

게다가 양손 중 하나는 뭔가를 잡고 휘둘러서 생긴 굳은살이 아니라, 집게를 오래 들고 있어서 생긴 굳은살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녀석들은 그런 굳은살이 없다.

“그리고, 발달한 근육도 대장장이와는 다르지. 대장장이는 망치를 들고 휘두르지만,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기만 하기 때문에 발달하는 근육이 한정되어있거든.”

이 녀석들은 그렇지 않다. 녀석들은 침묵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테이블 옆에 앉은 남정네들과 내가 서로를 지켜보는 가운데, 젖먹이 어린애는 여전히 놀라서 울음보를 터뜨리는 중이다.

“가서 애 좀 진정시키고 있어.”

내 말에 얼굴이 파랗게 질린 토마스의 아내는 다리를 달달 떨면서 조심스럽게 아이 쪽으로 향한다.

“문제는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이렇게 빨리 왔을까? 라는 건데.”

수색대 본부와 가장 가까운 관문에서 여기까지.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왔다면 며칠이 걸리는 거리다. 근데 이 녀석들은 당일치기로 왔다. 꼭 나처럼. 실력이 없는 녀석들이 아니다.

“그걸 받고도 살아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 소포? 나는 그 말에 입맛을 다셨다. 누가 계획을 짰는지 모르겠지만 머리 좀 더 굴려야겠는걸. 사람이 그렇게 어설프게 살면 안 되지.

“차라리 내가 심장마비 걸려서 죽으라고 백일기도를 하지 그랬어.”

어차피 성공률은 별 차이 없었을 텐데. 다음부터는 사람에게 소포를 보내기 전에 생각이라는 걸 좀 해봐. 다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그냥 서 있을 생각이면 내가 먼저 한다?”

다 죽이지 말고, 하나는 생포해야 한다. 서 있는 녀석 중 하나의 등 뒤에 내 분신이 나타나 검을 들어 올린다.

“어딜.”

분신에게 노려지는 대상은 눈치채지 못했던 모양이지만, 그 반대편에 앉아있던 녀석에 재빠르게 단검을 뽑아 분신을 향해 던졌다. 분신이 사라진다.

이야, 잘하는데. 엄청 빠르잖아. 순간적으로 단검을 꺼내는 폼을 보니 로티샤 호수를 습격했던 사람은 죽이는 기술은 기가 막혀도 싸울 줄은 모르는 바보들은 아닌 모양이다.

“그럼 아는 것도 많겠지.”

실력자는 언제나 아는 게 많다. 어딜 가도 변하지 않는 법칙이다. 녀석들이 양손에 단검을 들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

나름대로 나를 압박해보겠다는 생각인 모양이지만.

녀석들이 둘러싼 건 슬프게도 허상이다. 나는 허상을 남겨놓고 은신한 상태로 기다리다가 한 녀석의 목을 땄다. 영문을 모른 채 한 녀석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당연히, 다른 녀석들은 여전히 은신한 나를 보지 못한다.

“젠장! 방금 뭐가……!”

한 녀석이 당황하며 내 허상을 향해 단검을 던진다. 그 사이, 한 녀석의 목이 또 달아났다. 그리고, 녀석이 던졌던 단검은 허상을 통과해 벽에 박힌다.

그리고, 당황하던 녀석이 뒤늦게 자기 몸 주변에서 차가운 냉기를 흘린다. 뭐야, 발현점에 도달한 녀석이었어? 생각보다 더 실력이 좋은 녀석들이었던 모양이네.

꼭 사람들이 비장의 수단이랍시고 저런 좋은 능력들을 아껴놓는다니까. 이미 녀석을 끌어안은 나는 팔꿈치를 이용해 목을 졸랐다.

반항하는 녀석의 몸에서 살벌한 한기가 쏟아져나오지만, 이 정도는 마력으로 강화한 육체가 버텨준다.

녀석의 목을 조르며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건 원래 보는 눈이 있으면 안 쓰는 능력이야.”

모르는 사람이 많은 편이 훨씬 더 유용하게 쓸 수 있거든. 하지만 니들은 어차피 다 죽을 녀석들이고, 아이 엄마는 지금 공포에 질려서 이쪽을 보고 있지도 않으니까.

“케흑…… 커업…….”

은신을 사용해도 다른 곳에 이야기가 흘러 들어갈 일은 없지. 반항하던 녀석의 눈이 흐려지고, 몸이 축 늘어진다.

목을 조른 다음 녀석이 기절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그 잠깐 사이에 나는 서리를 뒤집어쓴 꼴이 되었다. 이거, 조금만 더 일찍 저 녀석이 능력을 사용했다면 결과는 몰랐겠는걸.

한동안 목을 더 조르고 있던 나는 칼로 녀석의 다리와 팔의 힘줄을 끊고, 밧줄로 묶은 다음 입에 재갈을 물렸다.

이걸로 반항은 못 하겠지. 제아무리 마력을 돌려도, 따로 회복할 수단이 없는 한 끊어진 힘줄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멈춰!”

밧줄로 포장한 녀석을 데리고 조용한 곳으로 가려고 하는데 무장한 병사 몇 명이 내 쪽으로 창을 들이민다. 나는 녀석들을 보고 있다가 주머니를 뒤져 신분패를 휙 던져주었다.

“제7수색대 소속 간부 마틴 레드우드다. 빨리빨리 다녀 새끼들아.”

몇 분이 지났는데 이제서야 무기 들고 기어오고 있어. 녀셕들 중 간부로 보이는 녀석이 내가 던진 신분패를 확인하고 뒤를 보며 말했다.

“창 대기.”

그 말에 병사들이 잠깐 주춤거리다가 나를 겨누고 있던 창을 거둔다.

“실례를 저질러 죄송합니다, 마틴 레드우드 님.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알려 줄 수 없어. 궁금하면 록밸리의 치안대장이 직접 와야 할걸.”

설명하기 힘들면, 설명하지 않는 편이 최고다.

“하지만, 이 자들은 록밸리 마을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신변이 확보되었다면, 당연히 록밸리의 치안을 담당하는 저희에게 신원을 양도하는 게…….”

아, 관할권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이러면 필요한 사실들은 적당히 말해주는 편이 좋겠군.

“생포한 자를 포함한 세 명은 배달부의 살인뿐 아니라, 제7수색대에 위험한 소포를 보내 간부를 살해하려고 시도한 혐의가 있다.”

따라서, 우리도 이 녀석들을 조사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치안대 간부도 자신들이 데려가겠다 고집 피울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다만, 이 녀석을 끌고 다시 제7수색대로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심문실을 빌리고 싶은데.”

내 말에 간부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한다. 그 꼴을 보던 나는 픽 웃고 녀석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이 녀석들은 네가 잡은 걸로 해.”

어차피 수색대 입장에서 범죄자 세 명 잡은 건 공로로 쳐주지도 않는다. 내 말에 곧바로 간부의 표정이 곧바로 밝아지더니, 흔쾌하게 내 제안을 수락했다.

“장소는 바로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저럴 줄 알았다.

딱 봐도 왕국 구석탱이의 외진 마을 치안대에 소속된 걸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녀석이다.

나이도 아직 젊은 편이니 여기에서 빨리 적당한 성과를 올려 벗어날 생각이 한가득이었겠지. 당연히 내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나는 제공받은 장소에 들어가 의자에 녀석을 묶어놓고 말했다.

“일어난 거 알아 새끼야.”

내가 병신으로 보이나. 내 말에도 녀석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 친구 보게. 나는 물끄러미 녀석을 바라보다가 사타구니를 군홧발로 콱 내려찍었다.

“커흐으으읍!”

눈을 번쩍 뜬 녀석이 몸을 부들부들 떤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군홧발로 내려 찍힌 불알에서 밀려오는 고통은 자는 척하면서 견딜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나는 녀석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준 다음 웃었다.

“정신 차렸으면 눈을 떠야지. 우리는 서로 나눌 이야기가 참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거든.”

후딱 끝내자. 그리고 마련된 공간 안에서 나와 녀석은 한참 동안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시간 뒤, 양동이 안에 담아놓은 물로 손과 얼굴을 씻은 다음, 나는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고생했다. 쉬어.”

그리고, 분신이 나타나 눈을 까뒤집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있는 녀석의 목을 꺾는다.

우득,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몸에 힘이 풀린다. 나는 숨이 끊어진 시신을 바라보다가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이거, 엘렌에게 도리어 내가 알려 줄게 생겼는데. 로델린과 함께 오면 또 따로 이야기를 나눠야겠는걸. 마른 수건으로 손을 닦은 나는 혀를 한 번 찼다.

“바보 같은 새끼. 실패했으면 한동안 꼬리나 말고 있을 것이지.”

상식적으로, 일이 이렇게 되었으면 내가 자기를 추적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 정도는 해야 하잖아. 근데도 오히려 일을 벌여주면 내 입장에서는 자기 좀 제발 찾아달라고 애원하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

“엘렌이 다나의 잔으로 연락을 시도하자마자 바로 잔을 못 쓰게 하는 걸 보고 과단성이 있는 녀석이라는 건 알았지만…….”

과단성은 있지만 머리는 그 과단성만큼 뛰어나지 못했던 모양이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원래는 로델린을 노릴 생각이었는데 엘렌이 붙어있는 걸 보고 방향을 선회한 게 아닐까 싶은데.

“무슨 바둑도 아니고.”

사람 심리가, 꼭 상대가 한 수 두면 자기도 한 수 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편이 더 좋을 경우도 꽤 있는데.

문을 나온 나는 기지개를 켠 다음 내 쪽으로 다가온 치안대의 간부를 바라봤다. 녀석이 주변을 슬쩍 살피고는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뭐, 알아내신 거 좀 있습니까?”

“전혀.”

알아낸 건 많지만, 이 친구에게 공유할 만한 내용은 전혀 없다.

“저런…….”

아쉬운 모양이다. 뭐라도 나오면 자기도 숟가락을 좀 올려보고 싶었겠지. 미안하지만 내가 거기까지 해줄 생각은 없거든.

“시신은 알아서 처리하라고. 그 정도 요령은 있을 거 아니야. 야간 순찰 중에 집이 소란스러운 걸 확인하고 들어가서 잡은 걸로 하면 될 테니까.”

동행했던 병사들도 이로 인한 포상을 받게 될 테니, 나중에 딴 이야기를 할 가능성도 낮다. 내 말에 녀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밖으로 나온 나는 멍하니 락밸리 마을을 바라봤다. 자, 여기에서 또다시 수색대 본부로 가야 하는데.

“씨벌…… 또 언제 올라가냐.”

올 때는 괜찮았는데, 다시 기어 올라가려니 개 짜증나네 진짜. 그래도 뭐…… 별수 있나. 올라가야지.

“망할, 내일 점심 중으로 순찰 나갔던 애들 돌아와서 보고할 텐데.”

여유롭게 올라갈 수도 없다. 전투적으로 등산해도 내일 오전 10시는 넘어야 도착할 텐데…… 그럼 또 잠도 못 자고 보고 일해야 한다. 정신이 아찔하네. 일하기도 전에 벌써 지치는 기분이다.

“그래도 뭐.”

잠 하루 정도 못 자는 건 그렇게 대단할 일도 아니다. 사실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정말 돌아버릴 정도로 짜증 나는 건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일했는데 얻는 게 하나도 없을 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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