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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우드-24화 (24/275)

024화

그 이후, 월버트가 하던 일이 내 일이 된 지 약 일주일 정도가 지났다.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적응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하이랜더를 비롯한 위협적인 생물들의 흔적을 찾아내고 추적한다.

실체를 확인하고 지금 있는 인원만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으면 처리하고, 못할 것 같으면 피리 신호를 날려 친구들을 호출한 다음, 다구리를 놓는다.

그리고 돌아와서 다른 곳으로 순찰을 나갔던 수색대가 가져온 정보와 보고를 통합해 지도와 서류에 반영한다.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내가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병사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것도 있었다.

커다란 지도가 붙어있는 방 안에서, 나는 지도 위에 핀을 팍팍 박아넣는 중이다.

“대충 위치는 알겠네.”

하이랜더들은 게임의 몬스터들처럼 허공에서 쑥쑥 리젠되는 게 아니다. 녀석들도 밥을 먹고 잠을 잔다. 거기에 더해서 합방을 해야 애가 생기고, 그 애가 자라야 새로운 하이랜더가 된다.

너무나도 당연한 자연의 이치를 따라 움직이는 생물일 뿐이다.

“심지어 잡식성이야.”

인간보다 우월한 점도 있다. 녀석들은 초식동물처럼 나무나 풀을 씹어 먹을 수 있다. 이끼고 관목 식물이고 나무고 상관없이 다 뜯어 먹는 모양이다. 개중에는 독이 있어서 인간이 먹으면 안 되는 식물들도 있는 모양인데, 상관없이 잘도 먹어치운다.

그렇게 보고 받은 것들을 정리하고 지도에 표시를 하고 있으려니, 노크 소리가 들렸다.

“어, 들어와.”

문이 열리고 병사가 작은 주머니를 한 아름 안은 채 들어왔다.

“지시하셨던 것들입니다.”

나는 그 주머니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다.”

내 말에 병사가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근데, 이건 다 어디에 쓰시려고…….”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알아놔야 할 거 아니야. 아, 뭐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니. 다른 병사들은 쉬게 하고, 너는 잠깐 내 질문에 대답 좀 해줘야겠다.”

내 말에 병사의 표정이 상당히 애매해진다. 이유는 알고 있다.

“오래 걸릴 예정이니, 이후 순찰 일정은 조정을 해뒀으니 걱정 말고, 편하게 앉아.”

다시, 병사의 표정이 밝아진다. 덜덜 떨면서 밖을 돌아다니느니 따뜻한 방 안에 앉아서 내 질문에 대답 해주는 게 몇 배는 더 편하니까.

일부러 그래서 최선임이라고 할 수 있는 병사에게 가지고 오도록 부탁했다. 아는 것도 많을 테고, 몸이 편한 일이라면 아무래도 다른 병사들보다는 이런 병사를 시키는 편이 좋잖아.

내가 부탁한 건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냥, 수색을 하는 와중에 발견되는 동물의 털이나 영역 표시를 한 흔적 같은 것들을 틈날 때마다 모아서 가져오라고 했다. 주머니 하나를 연 나는 그 안에 들어있는 털을 확인했다.

“늑대인가?”

대충 털 모양새를 보니 그런 것 같은데. 내 말에 그가 어…… 하는 소리를 내고 털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크기는 얼마나 되는 녀석이지?”

나는 두꺼운 공책을 펼친 다음, 미리 준비한 녹말풀을 이용해 그 털을 종이에 붙이고 펜을 들었다. 병사가 아는 것들을 말해주기 시작한다. 나는 그 내용을 받아 적은 다음 다른 주머니를 열었다.

내용물이 뭔지 확인하고, 그 내용물과 관련이 있는 동물에 대한 정보를 정리한다. 그렇게 나는 차근차근 책자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꼭 나만 쓸 생각으로 하는 건 아니다.

“이건 꿀인가?”

내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석청입니다. 하지만, 먹기 전에 꼭 피부에 약간 발라봐야 합니다. 쿠르스트 산맥의 철쭉 중 몇 종류는 독성이 굉장히 강한데, 벌들이 딴 꿀에도 그 독성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그 말에 음, 하는 소리를 냈다.

“먹다가 탈이 난 사람을 본 적이 있나 본데.”

“그렇습니다. 분명히 피부에 발라서 독성이 있는 걸 확인했는데, 기어이 먹고는…….”

죽은 모양이다. 저런.

피부에 바르면 발진이 일어나다가 수포로 변하고, 이내 터진다고 한다. 그 정도 독성이면 내가 알고 있는 철쭉의 독성은 애초에 뛰어넘었다. 거의 광대버섯 급이잖아.

“하이랜더들은 그 철쭉을 먹나?”

“피하는 걸로 압니다.”

그래, 하이랜더에게도 통하는 독이라. 잠깐 내 눈치를 보던 병사가 말했다.

“가져온 주머니 중에 하나에 철쭉 중 하나를 따서 넣어왔습니다.”

좋아, 나는 그 말을 듣고 곧바로 주머니를 열어 철쭉을 확인해봤다. 검은 반점이 있는 짙은 분홍색의 꽃이다. 보기에는 진달래와 그렇게 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데.

꽃을 집게로 집어 든 나는 꽃잎 하나를 으깨서 피부에 발라보았다.

“그걸 바르시면……!”

병사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픽 웃고 대꾸했다.

“바르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니야. 니가 대신 발라볼래?”

내 말에 병사가 입을 다물었다. 지식은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내가 보는 세상은 물음표로 가득한 세상이다.

그 물음표를 분석해 느낌표로 바꾸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지식과 경험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끈거리고 쓰린 느낌과 함께, 피부에 수포가 생긴다. 냄새를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것들을 확인하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귀를 타고 뭐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대장님 오신다. 자리에서 일어나 있어.”

내 말에 병사가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제대로 된 대기 자세를 취했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도리안이 들어왔다.

“마틴, 지금 바쁜…… 이건 다 뭐야.”

도리안이 책상 위에 쌓여있는 주머니들을 보고 황당한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봤다. 나는 기록하고 있던 책을 도리안에게 보여주며 웃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식의 보고입니다.”

나만의 작은 위키피디아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내 말에 도리안이 흠, 하는 소리를 내고 책을 훑어본 다음 벽에 붙어있는 지도를 슬쩍 바라봤다. 이거 하느라 원래 임무를 소홀히 하는게 아닌지 걱정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지도에는 이미 확보한 정도를 분석해 핀을 다 박아두었다.

“업무도 바쁠 텐데, 고생이 많군.”

많기는, 별로 어려울 것도 없더만.

“그럭저럭 할 만합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내 말에 도리안이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왕국에서 지원이 왔다.”

그래? 그럼 둘 중 하나겠네.

우리의 용의자 X와 관련 있는 높으신 분이 머리가 좋아서 내 수를 읽고 울며 겨자 먹기로 지원을 보냈거나.

아니면 진짜로 왕국의 높으신 분은 이전의 도리안 납치 사태에 연관점이 없거나.

“많이 옵니까?”

내 말에 도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본부로 오는 건 다섯 명이다.”

나는 그 말에 하,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면 이야기가 다르지.

“엿 먹이는 것도 아니고 다섯 명이라니.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별로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내 말에 도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다섯 명 전원 궁중 마법사다. 쿠르스트 산맥이 워낙 험준해 대량의 병력이 오기는 힘드니, 대신 마법사로 하여금 필요한 지점에 경계 마법을 사용해 둘 모양이야. 관문의 수비대 병력이 증원되고, 해당 병력들은 경계 마법이 발동되면 즉시 출동해서 우리를 지원하는 형식이다.”

“그렇다면 납득할 만하네요. 왕국도 고민이 많았던 모양이군요.”

궁중 마법사라면 발에 차이는 흔한 마법사와는 급이 다를 것이다.

“마중을 나가 할 텐데…….”

도리안이 그런 말을 하며 나를 바라봤다.

“제가 나가야겠군요.”

대충 이해된다. 쫓겨났다고 해도 어쨌든 나는 레드우드 백작가의 사람이다.

“귀하신 마법사 나으리들이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만들려면 어쩔 수 없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라면 모를까, 그래도 내 앞에서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킬 거라 기대할 수 있고, 기왕에 마중 나가는 거 귀족이 마중해주는 게 그쪽에서도 만족스러울 테니까.

도리안이 나에게 마중 나가라고 하는 건 적절한 지시다.

“알겠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안내를 해야 합니까?”

“락밸리에서 안내하기로 결정되었다. 5일 뒤 도착 예정이니. 그때까지는 락밸리에 도착하도록. 돌아오기 전까지 네 업무는 피터가 임시로 담당할 거다.”

여기까지 올라올 때는 짐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정규 도로를 통해 올라왔지만, 지금은 마음먹고 내려가면 이틀이면 충분하다. 오늘 바로 출발하면 3일간은 락밸리에서 쉴 수 있다. 도리안이 해주는 일종의 배려 같은 거다.

“마을 구경이라. 신난다.”

나는 싱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린 다음 도리안을 바라봤다.

“빨리 기록해두지 않으면 향이 날아가거나 상태가 나빠지는 물건들이 있습니다. 이것만 끝내고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어차피 시간은 충분하잖아?

“상관없겠지.”

“감사합니다.”

도리안이 돌아가고, 나는 다시 병사와 앉아서 2시간 정도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고생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보고 병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저도 데려가 주시면 안 됩니까?”

나는 그 말에 쯔, 하는 소리를 냈다.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네.”

내 말에 녀석이 하아, 하고 숨을 내쉰다.

“여기에 비하면 록밸리는 천국입니다.”

천국 같은 소리 하네, 뭐 딱히 대단할 것도 없는 마을이더만.

“쉬다 온 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놀 생각이야? 저리 가라, 훠이.”

손을 휘휘 저어 병사를 내쫓은 나는 허리에 검을 차고 준비를 마친 채 문을 나섰다.

락밸리라. 유명한 이유는 딱 하나다. 쿠르스트 산맥 국경 수비대가 산에서 내려와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그나마 사람 사는 마을이라는 점. 그 이외에도 특이점이라고 한다면 어지간한 도시 몇 개는 쌈 싸 먹을 정도로 마을의 면적이 넓다는 점과, 그 넓은 땅의 인구 밀도가 형편없다는 점 정도가 있겠네.

“산간벽지 군부대에서 외박 나온 군인들이 쉬는 위수지역 같은 느낌이지.”

그렇다고 막 물가가 미친 듯이 비싸거나, 쉬러 나온 군인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는 없다.

“칼 맞으니까.”

현대 군인이 민간인을 죽였다가는 난리가 나지만, 여기는 현대 한국이 아니잖아? 제아무리 싸가지 없는 녀석이라도 목에 칼날이 들이밀어지면 얌전해지는 법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도리안과 피터에게 인사를 했다.

“출발하냐?’

“네, 그러려고 합니다.”

“잘 다녀와라. 통행증 여기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쿠르스트 산맥 입구를 지키는 수비대에서 들으면 될 거야.”

“뭐, 따로 조심해야 할 건 없습니까?”

내 말에 도리안이 픽 웃었다.

“오는 사람들이 왕국 마법사이긴 하지만, 우리도 어지간한 기사 수준으로 지위가 높은 편이야. 상대도 어지간해서는 트집을 잡지 않을 거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나는 본부 밖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쌩 하고 불어닥치는 바람은 어제와 같이 오늘도 항상 영원히 싸늘하다.

잠깐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곧장 절벽이나 다를 바 없는 경사로 쪽으로 몸을 던졌다.

파바바바바박, 하는 소리와 함께 돌과 눈이 튀며, 굉장한 속도로 떨어지는 나는 이따금 분신을 만들어내 내 몸을 받아주게 해 속도를 줄이며 계속해서 70도에 가까운 경사를 타고 내려갔다.

“아 춥다.”

쌓인 눈 속으로 몸을 던진 나는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잠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고민에 빠졌다.

“여기로 가면 되겠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눈을 털고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마, 느긋하게 움직여도 내일 오전 중에는 도착할 것이다. 길을 무시하고 록밸리로 가는 직선 경로를 쭉 따라가는 중이니까.

얼마나 이동했을까, 해가 저물어가기 시작한다. 눈이 덮여 있던 산도 이제는 눈보다는 돌이 더 많이 보일 정도가 되었다. 많이 내려왔다는 거다. 어두운 밤, 저 멀리 민가의 불빛들이 내려다보인다.

록밸리의 사람들이 밝힌 불이다. 역시, 내일 오전 중에는 도착하겠구나.

어차피 우선 들러야 하는 곳은 쿠르스트 산맥으로 진입하는 경로를 지키는 국경수비대다.

그대로 해가 뜰 때까지 쭉 거칠 산맥을 내려간 나는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정지. 누구냐, 소속을 밝혀라!”

그 질문에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대답했다.

“제7수색대 소속 마틴 레드우드. 자, 여기 통행증이다.”

말을 마치고 통행증을 꺼내 들자 관문이 열리고 병사가 뛰어나와 내 통행증을 확인하고 재빨리 경례를 한다.

“화, 환영합니다.”

말은 왜 더듬어.

“수비대장은 어디 있지?”

내 말에 병사가 딱딱한 자세를 유지한 채 즉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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