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우드-21화 (21/275)

021화

내 말에 피터가 잠깐 멈칫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사람은 불 수 있지. 하이랜더를 발견했다는 신호는 변경한 적이 없고,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워. 너는 처음에 우리가 들었던 피리 소리가 가짜라고 생각하는 거냐?”

“네.”

막사에 사라진 페미컨의 숫자를 생각해보면 수색대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에스칼 산머리를 돌아다니는 중이라는 건 확실하다. 대원들 중 하나가 그런 나를 보고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저렇게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짓게 된다면 그다음에 나오는 말은 너무 뻔하다. 그리고, 내가 별로 좋아하는 대사는 아니다.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 숙소를 누군가 사용했다고 해도, 그게 이번 사태와 연관이 있는 겁니까?”

이런 씨팔. 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눈을 감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부족한 페미컨의 숫자, 깨끗하게 청소된 막사. 그리고 하나 더 질문이 남아있어. 도리안 대장은 왜 아직까지 피리를 불지 않고 있는 거지?”

“어쩌면 이미…….”

뒤졌다고? 나는 그 말에 인상을 팍 쓰고 녀석을 바라봤다.

“수색대에서 머무른 경험이 다들 나보다 많을 테니, 뭐 좀 물어보지.”

말을 마친 나는 사람들을 쭉 훑어보고 입을 열었다.

“도리안 대장님은 물론이고, 동행한 수색대원 전원. 하이랜더를 마주치면 피리 한 번 불어볼 시간 없이 순식간에 당할 정도의 실력밖에 없는 사람들인가?”

그럴 리가.

그런 허접들이 하이랜더와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위험한 보직인 수색대에 들어와 있겠냐. 심지어, 도리안은 대장이잖아. 잠깐 입에 피리 물고 불 시간도 내지 못하고 전멸했을 리 없다. 즉…….

“안 분 게 아니야. 못 분 거다.”

저 자식 이름이 뭐였지. 알렉스였나. 알렉스, 제발 머리로 생각해. 하지만 녀석은 나에게 한마디를 더 던졌다.

“왜?”

녀석의 말에 확 하고 짜증이 오른다. 진짜 왜 이래 이 사람아!

“인질이 잡혀 있으니까! 망할, 도리안 대장이 에스칼 산머리 근처로 향하기 전부터 이 산에 있던 수색대원들이 어디로 갔겠어. 하늘을 날아서 탈영이라도 했겠냐?!”

“인질을 잡았다니……?”

이런 씨, 화를 내는 게 아니었는데. 나는 속으로 후회하면서 가늘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 도리안 대장이 피리를 불지 못한 이유는 일단은 그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로 오면서 수색대원들의 발자국은 다들 봤겠지.”

내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발자국. 눈대중이긴 하지만 분명히 도리안 대장을 비롯한 수색대원의 발자국 수치가 맞았어. 다른 녀석들이 뒤를 쫓았다면 녀석들의 흔적이…….”

아, 발자국 수치 정도는 볼 줄 아는군. 하지만 이번에 내가 말하려고 하는 건 그게 아니다.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발자국이 뭉개져 있었습니다. 누군가, 이미 수색대원들이 눈 위에 남긴 발자국을 그대로 밟으며 따라갔다는 겁니다.”

심지어, 자국이 남지 않도록 밑창이 평평한 신발을 신었다. 그래서 발자국 위에 발자국이 덧씌워지는 대신, 기존에 남아있던 발자국이 뭉개진 거다.

“하이랜더는 그런 거 못 하는 걸로 아는데.”

지성이 있다고 해도, 몇 미터가 되는 거대한 잿빛 거인이 몰래 수색대의 뒤를 밟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고로, 사람이다.

누군지 모를 녀석들이 이미 여기를 돌아다니던 수색대원을 인질로 사로잡고, 목에 걸린 피리로 신호를 보냈다.

신호를 들은 도리안 대장이 여기로 향하자, 이미 생포했던 수색대원을 보여주며 피리를 불면 전부 죽이겠다 협박한다.

그래서 도리안은 피리를 불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 우리가 여기에 왔다. 이게 지금으로서는 제일 말이 되는 설명이다.

“도대체 인질을 뭐하러 잡은 거야?”

피터의 말에 나는 이마를 짚고 대답했다.

“도리안 대장에게 볼일이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명백하다. 목적 없이 인질을 잡는 경우는 없다. 녀석이 도리안을 노리고 인질을 잡았다면, 당연히 도리안에게 볼일이 있는 것이다.

무슨 볼일이 있는 걸까?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지려는 순간 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후우,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나는 탐정이 아니다. 왜 인질을 잡았는지 같은 범행 동기는 별로 안 중요해. 방금 전 의문은 개인적인 호기심일 뿐이다.

나는 호기심 풀이를 하기 위해 온 게 아니다. 도리안을 찾아야 한다.

“발자국을 그대로 밟으며 따라갈 정도로 주의 깊게 행동했다면, 남은 흔적이 많지 않을 텐데.”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장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피터를 바라봤다.

“도리안 대장과 동행한 수색대원 숫자, 그리고 인질로 사로잡힌 수색대원의 숫자를 생각해보면. 아, 거기에 더해서, 수색대원들을 제압하기 위한 충분한 머릿수까지.”

절대로 적은 숫자가 아니다. 나는 말을 이었다.

“아무리 적어도 스물은 우습게 넘는 숫자가 한 장소에 모여야 합니다. 게다가, 그 녀석들이 인질로 도리안을 협박한다면 당연히 인질을 잡은 쪽과 도리안 사이에는 적정한 수준의 공간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납치한 녀석들은 도리안 대장이 몇 명이나 부하를 데려왔는지 모르기 때문에, 주변이 탁 트여있는 장소를 골랐을 겁니다.”

그래야 누군가 몰래 접근하는 걸 미리 알 수 있을 테니까. 내 말에 피터가 잠깐 눈을 감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 피터, 빨리 말해줘.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너는 나보다 이 에스칼 산머리 일대를 훨씬 더 잘 알잖아. 그런 장소, 몇 개나 있어?

“에스칼 산머리 일대는 험준하다. 네가 말한 조건을 충족하는 장소는 그렇게 많지 않아. 기껏해야…… 세 곳 정도.”

세 곳이라. 좋아.

“그렇다면 그중에 하나일 겁니다.”

“말했지만, 남의 발자국을 밟으면서 따라갈 정도로 주의 깊은 녀석들이 흔적을 남길 리가…….”

나는 지적을 던진 대원을 바라봤다.

“그래. 녀석들이 흔적을 남길 리는 없지. 하지만, 도리안 대장은 어떨까?”

내 말에 피터가 흐ㅤㅎㅡㅎ,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래, 대장이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흔적을 남길 만한 양반이지.”

그 말에 다른 대원들도 동의했다.

치밀한 납치범은 자신을 뒤쫓을 만한 흔적을 최대한 숨긴다. 흔적이 남으면 자신이 잡힌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납치된 사람은 자신을 뒤쫓을 만한 흔적을 남기려고 기를 쓴다. 흔적을 남기면 누군가 자신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 납치범의 흔적이 아니라, 도리안이 남긴 흔적일 것이다. 뭐, 띨빵한 납치범이어서 굳이 도리안이 남긴 흔적을 뒤쫓을 필요가 없다면 더 좋고.

“그럼 바로 이동한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아까 나도 모르게 성질을 냈던 대원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알렉스, 방금 전에는 미안하다.”

내 말에 그가 응? 하는 소리를 내고 다소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봤다. 기분이 좋을 리 없지. 자기 상사도 아니고 이제 막 들어온 신병 자식의 고함을 들었으니 얼마나 기분이 더러울까.

“평상시에 나에게 신경을 많이 써준다는 걸 알고 있어. 수색대 생활이 많이 힘들 텐데 모르는 걸 물어보면 성실하게 대답해 주고, 혹시라도 내가 모르는 게 있나 싶어서 자주 살펴보기도 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내 말에 녀석이 으음, 하는 소리를 냈다.

“그거야 뭐, 새로 오지 않으셨습니까. 저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방금 전에는, 정말로 미안하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대장님은 물론이고, 이 산에 있을 다른 대원들이 너무 걱정된 나머지 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목청을 높였어.”

나는 점점 목소리를 줄이고, 말머리를 흐리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잠깐 그런 나를 보던 녀석이 이내 후, 하는 소리를 내고 픽 웃었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대장을 비롯한 다른 대원들의 생사가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대화는 그걸로 일단락되었다. 일단, 급한 대로 봉합은 성공해서 다행이다. 여기에서 알렉스가 비꼬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면 해결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사실, 이걸로 알렉스의 상한 기분이 완전히 나아졌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거야 차차 다시 관계를 개선해 나가면 될 일이니까, 나중에 생각하자.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맙다.”

인사를 한 나는 잠깐 알렉스의 눈치를 보는 시늉을 했다.

“서두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러는 동안에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나는 그의 말에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알았다.”

말을 마친 나는 짐을 싸서 다른 대원들과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은 확실히 내가 보기에도 이런 고산지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것 같은 평평한 지대였다.

“어디.”

한 번 볼까. 분명히 여기에는 사람들이 머물렀던 흔적이 남아있다. 발자국은 뭉개져 있지 않다. 쌓인 눈과 흙에 남은 자국을 보던 한 대원이 입을 열었다.

“발자국이 사방으로 뻗어있어. 이건…….”

나는 그 말에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이 쌍놈들.”

나는 바닥에 남아있는 자국들을 가리켰다.

“맨발 자국 보이십니까? 신발을 벗겼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미리 준비해온 신발로 갈아 신겼다. 사이즈는 모두 동일하게 290mm 이다. 큰 신발을 신고 걸을 수는 있지만, 작은 신발을 신고는 움직일 수 없으니까. 일부러 신발의 사이즈를 넉넉하게 통일해 모두에게 신긴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도 도리안 일행에게 신긴 신발과 같은 물건으로 갈아신었다. 이후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계속해서 공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인질을 잡은 녀석들이 남긴 흔적으로 추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도리안 대장이 남긴 게 뭘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눈 속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쉽게 눈에 띄면 안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신호가 되어야 한다. 뭐가 있을까.

“여기, 핏자국이 있습니다! 드문드문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가짜다.”

내 말에 피터가 대답했다.

“확신하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눈 위에 피를 뿌려서 신호를 남긴다니.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그 정도는 누구나 찾아냅니다. 여기서도 보일 정도예요.”

즉, 그런 짓거리를 시도했다면 바로 뒤를 쫓고 있던 인질범들도 알게 된다는 거다.

“단지 그것 때문에?”

피터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도리안 대장은 상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주변을 살폈다. 피를 흘렸다면 상처가 있다는 거고, 상처가 있다는 건 계속해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피가 남은 장소를 제외하면 나머지 장소는 깨끗하다.

그리고 피터가 새로운 의견을 제시한다.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일부러 상처를 냈다면…….”

“뒤를 쫓아오는 인질범들에게 안 들키고?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봐도 저 피는 가짜일 확률이 너무 높다. 나는 바닥에 엎드려 바닥에 찍혀 있던 수많은 발자국들을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아, 도리안…… 흔적을 남긴 건 좋은데,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면 어쩔 생각이던 거야. 나는 히죽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저 같으면 이 발자국을 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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