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화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게롯이 눈앞에 보이는 집을 가리켰다.
“집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저기인 것 같군요.”
최소한 하루 동안 사람이 있었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발자국.”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게롯을 잠깐 멈춰 세운 다음 주변을 훑어봤다. 열다섯 종류가 넘어가는 발자국들이 어부의 집 근처에 찍혀 있고, 뭔가를 끌고 간 흔적이 있다. 벽에 기대어져 있는 삽에는 흙이 묻어있다. 색이 진한 점토는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있어서 색이 약간 붉었다.
삽으로 손을 뻗은 나는 삽에 묻은 흙을 약간 집어서 문질러보고는 중얼거렸다.
“표토가 아니군. 하층토야.”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인데 표토층의 때깔이 이렇게 시뻘건 경우는 열대우림이 아닌 이상 거의 없다. 삽질을 굉장히 깊게 했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이 삽으로 시체를 묻은 모양이네요. 집 안에는 시체가 없을 겁니다.”
나는 대충 주변의 확인을 끝낸 다음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정말이군요.”
게롯이 나를 귀신이라도 보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점괘 같은 거 안 봐줘요.”
가끔 사람들이 착각하더라. 간단하게 대답을 마친 나는 집 안으로 들어와 방을 살펴봤다. 꽤 큰 테이블 위에 스튜와 삶은 감자 따위가 차려져 있다. 저녁을 먹던 중에 당했군.
“개인 그릇과 식기가 일곱 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침실의 침구의 숫자를 확인했다. 원래 이 집에 사는 사람은 세 명이었다. 그런데 테이블 위에 일곱 개나 그릇을 차렸다는 건…….
“밥 한 끼 얻어먹겠다는 식으로 말하며 안으로 들어온 다음에 해치웠군요.”
7 빼기 3은 4. 집 안에 들어온 녀석은 네 명이다.
테이블과 의자는 모두 멀쩡하게 서 있고, 냄비 안의 스튜도 전혀 쏟아진 흔적이 없다. 저항이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아주, 멱 따는 전문가네.”
강한 상대와 싸울 만한 실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방심하고 있는 사람 멱 따는 건 낮잠 자고 일어나서 냉수 한 잔 마시듯이 해치우는 녀석들이다.
“이건 또 뭐야.”
창문으로 다가간 나는 검지로 창틀을 살짝 쓸어보았다. 하얀 가루가 묻어나온다. 코를 가져가 보니, 희미하게 붓꽃 향기를 닮은 냄새가 난다. 시간이 꽤 지나서 냄새가 진하지는 않지만, 알 수 있다.
“화장분이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픽 웃었다.
“그 마법사 새끼, 여자였군요.”
아, 년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자기 목소리를 변조한 모양이다. 내 말에 게롯이 나를 바라봤다.
“부하 중 하나가 여자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죽이고 난 다음 바로 시체를 처리하느라 분주했을 거예요. 남들 다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 고용된 아랫사람이 화장을 고칠 여유가 어디 있습니까.”
창가에서 화장을 고친 건 이 일행의 리더다. 즉, 우리가 상대했던 마법사가 아니라면 성립하지 않는 이야기다.
“좋아.”
한동안 더 창틀 주변을 살펴보던 나는 뭔가를 발견해서 집어 올렸다. 머리카락이다.
“백금발, 길이는 50cm 정도. 끝에 살짝 웨이브가 져 있군.”
머리카락 끝의 웨이브는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니다. 원래는 직모인데 고데기로 멋을 낸 거다. 전기로 작동하는 고데기가 있을 리 없으니, 숯불 같은 걸로 달군 다음 사용하는 고데기를 사용했겠지. 잘못 다루면 머리를 망치기 쉽다. 보통 그런 까다로운 일은 하녀에게 시킨다.
“꽤나 귀한 집 아가씨인 모양인데.”
말을 마친 나는 후우, 하고 숨을 내쉰 다음에 게롯을 바라봤다.
“키는 165cm 정도, 백금발을 어깨 아래까지 기른 부유한 집안의 여자. 발 크기는 235, 285, 270. 세 가지 중 하나.”
집 안으로 향한 발자국은 네 개였고. 그중에 두 개는 270, 하나는 235, 다른 하나는 285였다. 즉, 저 발 치수 중 하나는 그 마법사의 것이다. 여자 발이 270 이상으로 올라가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으니까, 아마 235가 마법사겠지. 잠깐 고민하던 나는 게롯을 바라봤다.
“혹시, 향수에 대해 좀 아십니까?”
내 말에 게롯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 잘 모를 줄 알았다. 이건 로델린에게 물어봐야겠는데. 화장분의 향기는 분명히 붓꽃의 향기를 닮았다. 아예 처음 맡는 생소한 향기가 아니기 때문에 기억할 수 있을 거다.
“화장분에 섞인 향이, 얼마나 귀한 물건인지에 따라 여자의 신분이 조금 더 구체화될 겁니다.”
그냥 돈 많은 상인이나 부농 정도인지. 아니면 제대로 된 귀족인지.
“일단 집 안에서 알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전부네요. 시체, 찾아볼까요?”
내 말에 게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립니다.”
니 가족이 죽은 것도 아닌데 뭘 부탁까지 하고 있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시체를 질질 끌고 멀리 갈 수는 없었을 테니까.
집 밖으로 나온 나는 삽을 챙겨 게롯에게 건네주었다.
“찾아내면 파세요.”
내가 팔 수는 없잖아? 몸 쓰는 일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면 넘겨주는 편이다. 머리는 내가 썼으니 몸은 니가 쓰렴. 게롯도 군말 없이 삽을 받아들고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이 근방이네요.”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발로 땅을 툭툭 쳤다.
“파세요.”
그리고 게롯이 열심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얼마나 땅을 파기 시작했을까. 마침내 시체를 찾을 수 있었다.
“…….”
시체는 세 구다. 성인 남녀, 그리고 어린애 하나. 시체를 살펴보던 나는 성인 남자의 시체를 뒤집어 목 뒤를 확인해봤다.
“이러니 피가 한 방울도 없지.”
이렇게 깔끔하게 사람 죽이는 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이다. 기껏해야 아이스픽 정도 크기의 송곳으로 정확하게 경추 2번과 3번 사이의 틈을 쑤시고 들어가 척수를 작살 냈다.
심지어, 찌르는 깊이까지 조절한 모양인지 시체의 앞판에는 송곳이 뚫고 나온 흔적조차 없다.
“이건 소리도 못 내고 죽었겠네요. 불쌍하게도.”
“그렇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목 뒤를 찔리면 위험하지만, 이 시체가 찔린 장소인 2번과 3번 경추 사이는 특별히 더 치명적이다.
그쪽의 척수는 횡경막의 신경과 바로 연결되어있으니까. 찔리면 들숨이고 날숨이고 쉴 수가 없다. 따라서, 비명도 지르지 못한다.
그 상태로 10초 정도 있으면 죽을 거다. 당연히, 상처는 작은 송곳 하나가 파고 들어간 정도의 크기니 피가 많이 나올 리도 없지.
나머지 시체도 다 같은 방식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시체로 손을 뻗은 나는 턱을 잡고 살짝 움직여 보았다. 움직인다. 상지는 아직 사후경직이 남아있어 움직이지 않는다.
“최소한 하루는 지났군.”
사후경직은 시간이 지나면 풀린다. 일반적으로 30시간이 지나면 턱관절의 경직이 풀리고, 거기에서 추가로 6-7시간 정도 지나면 상지의 경직이 풀어진다.
하지만 이 시체들은 아직 상지가 경직되어있다.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일단 하루는 지났다고 보는 편이 맞다.
“이건 뭐, 너무 깔끔하게 죽어서 더 알아낼 것도 없네.”
집에서 찾아낸 것들이 더 많을 지경이다.
“일단, 알아낼 수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그렇군요. 그래도 시체라도 찾아서 다행입니다.”
내가 아니어도 이 정도는 찾아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님 말고.
“수습해서 사제들에게 보내고, 찾아낸 사실들은 상황을 파악하러 온 치안대에게 말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도련님이 찾아낸 것만으로도 사람을 특정 짓는 게 훨씬 쉬워질 겁니다.”
그렇겠지.
“직접 찾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우리가 하는 일은 여기까지다. 시체를 찾아내고 용의자의 범위를 좁히는 걸로 쿠르스트 산맥에서 게롯의 지인에게 도움을 받을 만한 값은 하고도 남았다. 나는 대가를 받은 만큼만 일한다. 내가 해주기로 한 일은 끝났다. 이 정도로 수사 범위를 좁혀줬으면 충분히 받기로 한 물건에 대한 대가를 치렀으니까.
“……알겠습니다. 도련님 없이 혼자 왔다면 이 정도의 성과를 낼 수는 없었을 겁니다. 애초에, 그 짓거리를 저지른 녀석이 여자라는 것도 몰랐을 겁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나서 나를 바라봤다.
“발현점에 도달하고 얻게 된 능력이 분신이었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말에 게롯을 바라봤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내 말에 게롯이 대답했다.
“도련님에 대한 소문이나, 백작님의 이야기와는 많이 다릅니다. 지금까지 거짓 속에 자신을 숨기고 있으셨기에 그런 능력이 발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 발현점에 도달해서 얻게 된 능력은 내가 살아온 삶과 연관이 있다고 했지. 그래서 저런 식으로 해석한 모양이다.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일단, 시신을 챙기죠.”
사제한테 보낸다고 했잖아. 바로 레온 백작의 성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밤 중에는 마을을 들를 수 있을 것이다. 시신은 마을의 치안대에게 넘기고, 우리가 찾아낸 집의 위치를 알려주고, 알아낸 용의자의 정보를 공유하면 될 것이다.
“성으로 돌아가면 어머니에게 제가 맡은 화장분의 향기에 대해 물어보겠습니다. 아마, 그걸로 더 확실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게롯이 몸에 마력을 돌리면 시신 세 구 정도는 어렵지 않게 옮길 수 있다. 우리는 시체를 짊어진 채로 호수로 돌아와, 시체를 챙기고, 떠나기 전에 저녁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이 첫 살인 아니십니까?”
나는 그 말에 아, 하는 소리를 냈다.
“그렇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겠다. 오늘 나는 사람을 여럿 죽였다.
나는 흥신소 일을 하다가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 느꼈던 시궁창 같은 감정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보통은 식사도 제대로 못 합니다.”
그래, 식사만 못 하는 게 아니지. 나는 잠깐 이전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가 대답했다.
“괜찮아 보인다고 하시니 참 다행이네요.”
내 말에 게롯이 잠깐 나를 바라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많이 힘드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제 앞에서 숨기실 이유는 없습니다.”
“게롯 경은 저를 기사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죠.”
말을 마친 나는 그릇 안의 음식을 한 숟갈 떠먹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는 기사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게롯 경이 그 마법사에게 죽었을 시신들을 찾으러 가자고 했을 때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던 겁니다.”
내 말에 게롯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때는 도련님에게 약간 실망했습니다.”
“기사의 미덕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사가 아니라, 귀족이지요.”
내 말에 게롯이 대답했다.
“많은 귀족들이 명예를 중시합니다.”
나는 그 말에 대답했다.
“이야, 귀족 입에서 나오는 말을 믿으시는 건가요? 그건 참……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군요.”
내 말에 게롯이 입을 다물었다. 귀족은 지배계층이고, 다르게 표현하자면 정치를 하는 족속들이다. 정치하는 녀석들 입에서 흘러나오는 건 이산화탄소 빼고는 다 구라다.
이해득실을 따지고, 이 행동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하나하나 전부 따진다.
우직하고 충성스러운 기사보다는 손익계산이 밝은 장사꾼에 가까운 족속이 바로 귀족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결국 도련님은 제 청을 일부나마 들어주셨습니다.”
“받기로 한 것이 있으니까요. 그 점을 까먹지 마세요.”
게롯은 나에게 쿠르스트 산맥에 있는 지인을 소개해 주고, 내 편의를 봐줘야 한다.
내 말에 게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바로 짐을 싸고 성으로 향하는 길을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