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화
며칠 동안 같은 일정이 이어졌다. 나는 가끔 로델린을 보러 갈 때를 제외하면 여전히 아침 식사는 방 안에서 하고, 오전에는 게롯이 시키는 데로 몸을 굴리고 오후에는 게롯의 도움을 받아 마력을 느끼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방에 돌아가면 얌전히 방에 틀어박혀 게롯의 도움 없이 어떻게든 마력을 느끼기 위해서 기를 쓴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 속에 수면 시간이 많이 부족해졌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내가 잠을 제대로 못 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
“아.”
그리고 마침내, 3일째 되는 날 새벽 4시 반. 나는 주변을 떠돌아다니는 무언가를 느끼는 데 성공했다. 정확히 말하면, 떠돌아다니는 걸 느낀 게 아니다.
폐 속으로 들어와 온몸을 타고 돈 다음, 다시 폐를 통해 빠져나가는 기운이 느껴진다. 정말, 더럽게 희미하다.
게롯이 나를 도와주기 위해 심장의 구심점에 밀어 넣었던 마력이 양주라면, 폐를 타고 온몸에 퍼졌다가 다시 빠져나가는 마력은 그 양주를 2리터들이 물통에 한 방울 똑 하고 떨어뜨려 놓은 수준이다.
“이걸 어떻게 느낀 거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집중한 정신을 놓치지 않았다. 가까스로 감을 잡았는데 여기에서 다른 생각하면 또 놓친다.
해가 밝아온다. 아침이 되자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린다. 안젤라인 모양이다. 식사는 항상 여기에서 할 거라고 말해두었기 때문에, 안젤라는 트레이를 끌고 안으로 들어와 테이블 위에 식사를 차리기 시작했다.
“도련님, 여행 준비 때문에 여쭈어볼 것이 있는데.”
“뭔데?”
“이번에 로티샤 호수로 가실 ㅤㄸㅒㅤ, 규모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신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지.
“사람이 탈 마차 한 대와 짐을 올릴 마차 한 대 정도면 되겠지.”
어차피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볼일만 끝내고 나면 바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내가 따로 명단을 건네주었던 녀석들은 잊지 말고 반드시 포함시켜 줘.”
레온 백작의 영지는 로티샤 호수와 인접해 있다. 그렇게 오래 걸릴 여행도 아니고, 도로의 치안 상태도 괜찮은 걸로 알고 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해두겠습니다. 아마, 아침 식사가 끝나면 하인들이 와서 옷가지를 비롯해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길 겁니다.”
말을 마친 안젤라가 찻잎을 꺼내 들었다.
“아, 오늘은 차 말고 커피로. 역청 같은 진한 때깔로 뽑아줘.”
잠을 한숨도 못 자서, 카페인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다. 내 말에 안젤라가 꺼낸 찻잎을 다시 집어넣고 커피콩과 작은 맷돌을 꺼내 갈기 시작했다.
식사와 함께 커피를 마시며, 나는 안젤라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침 식사 시중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향해.”
“아, 그래도 되겠습니까?”
내가 이런 걸로 거짓부렁을 말할 만한 이유가 있나? 나는 식사를 마치고 나서 안젤라에게 돌아가 보라고 손을 휘휘 저었다. 안젤라가 돌아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인들 몇 명이 들어와 옷가지를 비롯한 물건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준비는, 언제쯤 끝날 것 같지?”
내 말에 안으로 들어왔던 하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다른 준비는 모두 마쳤습니다. 이제 도련님의 의복과 기타 물품들만 챙기면 바로 출발하실 수 있을 겁니다.”
좋아, 그렇다면…… 나는 게롯에게로 향했다.
“오전 중으로 출발하실 겁니까?”
게롯은 이미 준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나름대로 상당히 적극적인데. 나는 게롯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마력, 오늘 새벽에 느꼈습니다.”
내 말에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던 게롯이 시선을 내 쪽으로 향하고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 예상보다 훨씬 빠르십니다. 놀랐습니다.”
그래, 내가 궁금했던 것도 바로 저거였다. 내가 지금 마력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빠른 편일까, 아니면 느린 편일까. 게롯이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잘되었군요. 그렇다면 마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구심점에 마력을 모으는 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래, 나도 저걸 부탁하려고 했다. 느끼는 건 좋은데, 구심점에 모아야 할 거 아니야.
“안 그래도 그걸 부탁드리려고 했었죠. 가시지요.”
우리는 곧바로 성 앞에 자리 잡은 마차로 들어갔고, 잠시 뒤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력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구심점에 모으는 건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쉬운 편이지요.”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내 말에 게롯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쉬워서 어려운 겁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쉬운데 어렵다니.”
내 표정을 보던 게롯이 약간 허리를 앞으로 숙인 채 말했다.
“절제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욕심을 부려 한 번에 너무 많은 마력을 모으려 들면 죽습니다.”
“이전에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물감이 점점 심해져 스스로의 심장을 파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고.”
내 말에 게롯이 고개를 저었다.
“그 이물감과 방금 전 말했던 내용은 다른 겁니다. 갑자기 많이 끌어모은 마력을 어떻게든 통제하는 데 성공한다면 극심한 이물감 정도로 끝나지만, 통제에 실패하면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게롯이 다시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따로 방향성이 부여되지 않은 마력은 사물을 파괴한다.
미약한 양만을 모으려고 한다면 그 파괴적인 힘을 미처 뿜어내기 전에 마력을 모은 주인의 통제하에 들어온다. 그리고, 통제하에 들어온 마력은 주인의 몸을 파괴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은 마력을 모으고, 그 마력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는데 실패하면 통제되지 않은 마나가 육체를 부순다.
구심점은 심장에 박혀 있다. 따라서 통제되지 않은 마력이 박살 내는 최초의 장기는 심장이다.
고로, 끌어모은 마력을 통제하에 두지 못한다면 즉사한다.
문제는 그 한계점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한 번에 어느 정도의 마력을 끌어모으는 게 좋을지. 이 이상으로 모아도 괜찮은 건지, 아니면 이 이상으로 모으려 들면 위험한 건지.
“게다가 마력을 모으는 데 익숙해질수록 한 번에 끌어모을 수 있는 마력의 양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에…….”
“이 정도로 익숙해졌다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에 마력을 조금 더 끌어모았다가 죽어버린다는 거군요.”
내 말에 게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약간의 마력이라도 통제에서 벗어난다면 목숨이 위험합니다.”
그렇겠지, 마력이 모이는 곳은 다른 곳도 아니고 심장이니까.
“도련님의 경우에는 그런 실수를 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마음을 넉넉히 먹고 천천히 발전하셔야 합니다.”
쿠르스트 산맥으로 끌려가는 입장이니까. 다른 기사들도 강한 힘에 대한 동경이 있겠지만, 나는 강한 기사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마력을 끌어모으는 게 아니다. 쿠르스트 산맥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력을 끌어모아야 하는 거다. 그만큼, 무리하다가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다.
“이해했습니다.”
“그렇길 바랍니다. 조금씩, 꾸준히 끌어모으신다면 분명히 6개월 안에는 발현점에 도달하실 겁니다.”
“발현점?”
내 말에 게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을 통제한다는 것은 결국, 모은 사람의 영혼과 같은 성질을 띠게 한다는 것입니다. 구심점에 쌓인 마력이 일정량을 넘어가게 된다면 마력을 모은 주인의 영혼이 가진 특질을 발현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발현점에 도달한 다음에야 비로소 기사로 인정되지요.”
쭉 이어지는 설명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마력을 사용해 발현할 수 있는 일종의 초능력 같은 것이다.
“게롯 경의 경우에는?”
내 말에 게롯이 자신의 팔을 걷어 피부를 보여주었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데.
“한번, 발현해보겠습니다.”
게롯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눈앞에 보이던 게롯의 피부가 단단한 돌처럼 변했다.
“오랜 시간 유지할 수는 없지만…… 발현 범위를 온몸으로 한다면, 공성추가 제 몸에 부딪혀도 두어 번은 능히 견뎌낼 수 있습니다.”
공성추를? 나는 그 말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돌진할 때 가장 앞에 서는 이유가 있었군.
“성정이 경직되어있고, 고집이 세서 이런 식으로 발현되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력을 통해 발현되는 능력은 개인별로 다르다. 두 사람의 영혼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굉장히 드물지만, 늦은 나이에 발현점에 도달하는 경우에는 두 개의 능력이 발현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두 개?”
내 말에 게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을 살아가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굴곡을 경험할수록 영혼은 강인해지고, 다양한 성질을 품게 될 가능성이 있지요.”
그렇기에, 오래 살며 온갖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은 구심점에 끌어모은 마력이 발현점을 넘게 되었을 때 복수의 능력을 받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최소한 왕국의 기사들 중에서는 한 명도 없습니다. 게다가, 능력을 두 개 발현하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발현점에 도달하는 것이 늦었다는 건, 결국 먼저 발현점에 도달한 사람보다 모은 마력의 총량이 적고 모으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소리니까.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의 양이 적다면 능력이 많아도 제대로 쓰기 힘들다.
“그렇군요.”
설명을 다 듣고 나자, 게롯이 마력을 모으는 법에 대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이전에 느꼈던 것처럼 주변의 마력을 느끼시면 됩니다. 폐를 통해 몸 안으로 밀려 들어온 마력이 혈관을 타고 퍼져 심장에 도착하는 걸 느끼고, 그것들을 강제로 붙들어 놓는다는 마음가짐을 먹으시면 됩니다. 겨우 사흘 만에 마력을 느끼셨으니, 오늘 중으로 마력을 모으는 요령을 터득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붙들어 놓을 수 있다. 게롯은 그렇게 말했다.
“지금은 힘들겁니다. 어느 정도의 마력을 붙들어 놓을 것인지 세심하게 통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하다못해 걸어 다니면서 마력을 축적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한다. 가장 좋은 자세는 편히 누운 채 마력을 모으는 것이고, 하다못해 조용한 곳에 앉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 게롯의 충고였다.
나도 게롯의 조언은 충실히 따를 예정이다. 심장에 손상이 생겨서 죽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마차는 계속해서 이틀 동안 달렸다. 그 와중에 밤에는 잠을 자야 했으니 해가 저물면 마차는 멈췄고, 나는 게롯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력을 끌어모으는 연습을 할 수 있었고, 조금이지만 마력을 구심점 안에 축적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많은 양은 아니었다.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게롯이 몇 번이나 강조했으니까 당연한 결과였다.
“크으.”
마차 안에서 내가 약간 얼굴을 구기고 있자, 게롯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번 쌓은 마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능력을 사용하거나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한다고 해도 이미 거기에 사용된 마력은 내 통제하에 방향성을 얻은 마력이다. 따라서, 허공에 흩어진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자연스럽게 구심점으로 다시 돌아온다. 즉, 한번 쌓으면 그 마력만큼은 어지간해서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력이 구심점 안에 담겨있는 한, 이 이물감도 계속되겠죠?”
게롯이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로티샤 호수에 도착할 겁니다. 이 한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는 거대한 호수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아침 식사는 호수 근처에서 하면 되겠네요.”
그래, 로티샤 호수는 수심이 얕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어지간해서는 얼어붙는 경우가 없고, 설사 얼어붙는다 해도 얇은 살얼음 정도가 고작이다. 온천수 같은 게 솟아오르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하긴, 그러니까 이 겨울에 미쳐서는 뱃놀이를 갔다가 물에 빠져 죽지. 호수가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면 익사할 수가 없잖아. 머리에 드릴이 달려서 얼음을 뚫고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뭔가 이유가 있겠죠.”
알고 보니 아래에서 온천이 터지고 있다던가, 아니면 뭐 호수 바닥에 구멍이 뚫려서 거기에서 마그마가 꿀렁거리며 나오는 중이던가. 뭐, 호수가 얼어붙지 않는 비밀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