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업이 업을 벌어온다.
"왔느냐?"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일어나 계셨습니까?"
"아직 안 잤다고 하는 게 맞겠구나."
잔뜩 쌓인 술병과 안주 접시.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어제부터 계속 마신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겠느냐. 이게 다 순리인 것을."
현규는 이해하지 못할 말이었다.
"저 때문에 무리를 하신 겁니까?"
심각한 일인가 싶어 현규가 걱정하자 관리자의 눈이 커졌다. 이런 표정 변화는 처음이었다.
"걱정한 것이냐?"
"평소보다 많이 드시는 것 같아. 혹여나 힘을 많이 사용하신 게 아닌가 싶어서요."
현규가 쭈뼛거리며 대답하자 그녀는 다시 한번 놀란 모양이었다.
"진심이구나?"
"음… 그렇습니다. 주제넘었다면 죄송합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현규가 머뭇거리자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구나."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현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이구나. 누군가가 나를 걱정하다니. 이거 참 나쁘지 않은 기분이구나."
"아니십니까?"
현규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기분이었다.
"늙은이들을 만나고, 상했던 기분이 너를 보니 회복되는구나. 내 오늘 힐링이란 말을 이해했다."
"큰일 아니라고 하시니 다행입니다."
걱정할만한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런 현규를 관리자는 흐뭇하게 바라봤다.
"끝까지 걱정하는구나. 이거 참. 착한 아이구나."
소파와 한 몸인 그녀가 일어나 현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현규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가끔 걱정하거라. 내 포상을 내려 줄 테니."
쓰다듬어주는 건 포상인 모양이었다.
현규는 복잡한 기분이었다.
만족감, 수치심, 부끄러움, 혼란.
다양한 감정이 안에서 끓어올랐다.
"저! 관리자님! 권한을 사고 싶습니다!"
반쯤 패닉에 빠져 현규는 소리치고 관리자는 손주의 재롱을 보는 할머니처럼.
"귀엽구나. 귀여워."
현규를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관리자님!"
"안다. 네 마음 내가 다 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어려웠다.
***
"권리를 사고 싶다고?"
"그렇습니다."
드디어 본론에 들어왔다.
"구매 전에, 심부름 값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
"맞습니다."
뒤틀린 업 회수.
임무에 대한 보상도 아직이었다.
"이런 장사꾼 짓은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시작도 전에 하기 싫어하는 게 느껴졌다. 현규도 편하고 관리자도 편할 방법이 필요했다.
"인공이 불러올까요? 자료만 넘겨주시면, 관리자님이 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그거 괜찮구나!"
순간 공간이 울렁이는 감각이 느껴지고.
-호출에 응합니다.
인공이가 등장했다. 현규는 설명을 기다렸는데 관리자는 할일을 다 했다는 듯 술잔을 들고 있었다.
"인공아! 자료 받았어?"
-대기 중인 자료가 있습니다.
-임시 자료. 관리자님의 참관 시에만 개방할 수 있는 자료를 받았습니다.
자료를 지구에서 씹고 뜯는 건 아쉽지만 불가능해 보였다.
"보상으로 15% 할인을 넣어주마."
"네?!"
상상 이상의 보상이었다.
15% 할인은 엄청난 수치였다.
"이건 과분한 보상이 아닌지."
현규가 망설이자 관리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아……"
어떻게 된 일인지 질문하고 싶었지만, 위험신호에 입을 다물었다. 질문하면 왠지 끔찍한 걸 볼 거 같은 기분이었다.
"알겠습니다. 감사히 사용하겠습니다."
"무엇을 구매할지 궁금하구나."
현규의 쇼핑은 그녀에게 술안주였다.
"내 생각은 최대한 비싼 거 당겨오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어때?"
-15%할인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자는 뜻입니까?
인공이는 빠르게 이해했다.
"자잘한 거 여러 개보다는 큰 거 하나 어때?"
-나쁘지 않은 발상입니다.
할인을 극대화하는 방법이었다.
"잠깐만. 관리자님! 혹시 외상 되나요!? 계약서까지 있습니다! 그림만 보내주면 됩니다!"
"계약서만 확실하다면, 배려해 주는 건 어렵지 않다."
여태까지 점수를 따놓은 보람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골라 보거라."
2,500만 포인트,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인공아! 비싼 거! 간당간당하게 비싼 거!!"
-리스트를 출력합니다.
곧바로 리스트가 떠올랐다.
"이런 것도 권리로 구매할 수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건 어때?"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고 외계인들이랑 연계하면 투자한 업 그대로 회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포인트로 권한을 샀으면, 그만큼 빼먹을 수 있어야 했다.
"이거 느낌 있지 않아? 어차피 지금까지 하던 일이고, 각 잘 보면 괜찮을 거 같은데?"
-업을 받고 파실 생각입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확실히, 투자 대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2,500만 포인트를 투자해서 원금만 회수해도 땡큐였다.
"좋아! 그럼 이걸로 하자! 방송 준비도 하고!"
- 알겠습니다. 업을 소모하여 권리를 구매합니다.
2,941만짜리였다. 15% 할인을 받고 나서야 간신히 구매할 수 있었다.
-11,321포인트가 남았습니다.
그 많던 포인트는 한방에 날아갔다.
그때 관리자가 끼어들었다.
"남은 포인트를 전부 주면, 재미있는 권한을 하나 선물하마."
"재미있는 권한이요?"
"근육이 놀란 요즘 나쁘지 않은 권한일 게다."
관리자의 서비스인 것 같았다.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 재미있겠구나. 선물이니 잘 사용하거라."
선물을 받았는데 불길한 기분이 느껴지는 건 아마도 기분 탓일 것이다.
***
"여러분! 랜하입니다."
"너굴너굴!!"
정장을 입은 너굴맨과 현규.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이 시작됐다.
크라나-ㅋㅋㅋㅋ랜하!! 녹방?
지노스-랜하. 녹방할 것이라 예상했다.
휴라타-랜하. 신남. 녹방, 좋음,
플로나 랜하입니다! 거대한 업의 흐름! 느껴버렸습니다!!
외계인들이 입장했다.
"여러분들. 긴급 보고가 있습니다."
"너굴너굴!"
진지한 현규의 모습.
크라나-ㅋㅋㅋ왜 오바야 형 ㅋㅋㅋ
지노스-업 자랑의 시간이겠군.
휴라타-동의. 상점. 구매. 기대.
플로나 진지한 방송입니까?
외계인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진짜! 진지한 일입니다! 저희는 행사에 참여해 2,500만의 업을 벌었고!"
"너굴너굴!"
진짜 목적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크라나-2500만? 잘못 말한 거 아니야?
ㄴ지노스-아니, 가능한 수치이긴 하다.
ㄴ크라나-2500만이라니깐! 전함도 건조하겠다!
ㄴ휴라타-경악놀람. 납득. 이해.
ㄴ플로나-제가 업의 흐름 느꼈다고 했지요!?
ㄴ크라나-2500만 짜리 흐름이였어?
ㄴ플로나-그건 아닙니다.
채팅창은 떠들썩해졌다.
"2,500만 포인트를 전부 사용해 엄청난 걸 구매해 왔습니다!"
"너굴너굴!!"
크라나-2500만은 벌써 다 썼다고!? 아니 상의 좀 하지!!!
"반대가 튀어나왔는데. 관리자님에게 구매했는데. 다음부터 같이 갈까요?"
크라나 - 아닙니다^^멀리서 지켜보겠습니다.
반대는 단숨에 진압됐다.
지노스-관리자님께 대량에 업을 주고 구매할 건 하나뿐이다.
ㄴ휴라타 -동의. 오직 하나.
플로나- 뭐 사신겁니까? 왜 두분이서 쑥덕거려요!!
눈치챈 것 같았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중계권을 사 왔습니다!!"
"너굴너굴!!"
크라나 중계권? 무슨 중계권?
ㄴ지노스 - 관리자님에게 구매한 중계권리.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
크라나 - 어!? 설마!! 외계 중계권!?
플로나 - 2500만 쓸만 했군요!!!
휴라타 - 인정. 가치. 있음.
별다른 추가설명을 하지 않아도, 빠르게 이해했다.
"맞습니다! 그 중계권입니다! 이걸 보자마자! 바로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굴!?"
크라나-아 형. 이건 좀 아쉽다. 새로운 애들 받게!? 우리는!?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ㄴ지노스-상처가 되긴 하는군. 나만의 랜박이.
ㄴ플로나 - 지노스님들의 감성적인 모습은 또 처음이군요. 랜박이 대단하긴 하군요.
외계인들의 감성적인 모습은 의외였다.
"여러분! 행성을 뛰어넘어 서로를 아껴주는 마음! 저 감동해도 됩니까!?"
"너굴너굴!?"
지노스-말이 긴걸 보니. 다른게 있는 모양이군.
ㄴ크라나-ㅋㅋㅋㅋ 맞네. ㅋㅋㅋㅋ 뭐야! 얼른 꺼내봐!! 우리의 마음을 ㄴ달래줘!
플로나 -역시! 랜잘알!!
이들과 오래 지내긴 한 모양이었다.
"이래서 눈치 빠른 아이는 싫다니까."
"너굴너굴!?"
현규의 말에 너굴맨이 화들짝 놀랬다.
"준비해 온 게 있습니다. 저에게는 중계권이 있고, 여러분에겐 랜박을 아끼는 마음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맞죠?"
"너굴너굴."
크라나 - ㅋㅋ아니 또부끄럽게 확인을 하고 그래. 맞지. ㅋㅋㅋㅋ 맞아 형!!
ㄴ지노스 - 오글거리는군.
ㄴ플로나 - 이거 참. 좋은 예감이 드는 군요.
ㄴ휴라타 - 좋은, 예감. 정답.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처럼 모두의 지식을 모을 때였다.
"새로운 외계인 참여 선정! 여러분께 맡겨보겠습니다! 어때요?"
"너굴!?"
크라나-아니. 잠깐! 이걸 통으로 맡긴다고!?
지노스-우리 형은 냉정해지길 바란다.
오히려 외계인들이 다시 생각해 보길 요청했다.
"크라나는 모험과 상업에 특화돼있는 종족이라고 하셨죠? 학문적으로 지노스는 따라올 종족이 없고요. 거기다 플로나 분들은 기록을 확인할 수 있고, 마지막으로 검사해줄 휴라타 분들까지 있잖아요! 제가 외계에 대해 알아봐야 뭘 알겠습니까."
지노스-합리성을 따지면,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었다.
"여러분이 랜박을 아끼니깐. 부탁드릴 수 있는 거예요. 새로운 시청자. 여러분이 받아보는 건 어떠세요?"
"너굴너굴."
현규는 자신이 있었는데. 너굴맨은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크라나-음. 나쁘진 않은데?
지노스-확실히. 그렇다. 다양한 종족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플로나-제일 좋은 건 이분들이 있는 거죠.
ㄴ휴라타-우리. 확인, 검증. 감사.
ㄴ지노스-휴라타가 감사를 본다면 동의하지.
ㄴ크라나 -우리도! 아무도 못 믿을 땐, 휴라타를 믿어라! 우주의 격언을 따를게.
휴라타가 참여 의사를 밝히자 외계인들의 반응은 급격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저도 여러분께 약속하나 드리겠습니다. 중계권으로 벌어들이는 업은 전부 랜박에 사용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단 1포인트도 사용하지 않을게요."
어차피 방송에 사용할 업이었다.
크라나-오오오!! 전부!? 진짜지?!
ㄴ지노스-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랜박의 변화가 생기겠군.
ㄴ플로나 -이거 참. 지구 시청자에게만 기회가 있더니! 저희에게도 오는군요!
ㄴ휴라타 - 행복. 기대. 흥분, 신남.
외계 시청자들의 의욕을 끌어냈다.
"어때요? 진짜 한 번 해보실래요?"
크라나 - 우리 믿어 형?
ㄴ지노스 - 동감이다.
ㄴ플로나 - ㅋㅋㅋ 크라나님들은 가끔 예리한 구석이 있으십니다.
ㄴ휴라타 - 인정. 형. 우리. 믿음?.
정말 좋은 시청자들이었다.
"당연히 여러분 믿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쌓아왔던 정! 추억! 심지어 마스터피스까지 만들었는데! 제가 여러분을 안 믿으면 누굴 믿어요!"
"너굴너굴!!"
크라나 -좋아! 의욕 풀충전. 우리가 맡는다!
ㄴ지노스-멋대로 결정하지 마라. 물론 맡을 생각이다.
ㄴ플로나 저희가 움직이면 우주가 움직인다는 말 아시죠!? ㄴ크라나ㅋㅋㅋ응 다음 허세충.
ㄴ플로나-ㅂㄷㅂㄷ…저희도 참여합니다!
ㄴ휴라타-감사. 검증. 우리. 참여.
이렇게 중계권 판매 드림팀이 결성됐다.
- 진짜 믿는 겁니까?
방송이 끝나고 제일 먼저 한 질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여?"
-그렇습니다.
반쯤은 감정에 호소한 게 맞았지만.
"우리의 위치는 청소년. 맞지?"
-그렇습니다.
"여전히 보호자가 있는 상태지?"
-그렇습니다.
믿는 구석까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럼, 사기당하면 보호자님이 움직이지 않겠어? 거기다 우리 이쁨도 받고 있잖아."
- 이걸 똑똑하다고 해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그냥 짐승이라고 하겠습니다.
랜덤박스 뒤에는 관리자님이 계셨다.
"이렇게 똑똑한 짐승 봤어?"
-말을 아끼겠습니다.
인공이가 침몰했다.
"덕분에! 중계권 판매! 그 골치 아픈 걸 해결했잖아! 그것도 공짜로! 4개 종족 고용해서!! 크!! 순간 판단 오졌다! 오졌어!!"
-짐승입니다.
"냥!!"
짜증 난 고양이 목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
관리자가 선물한 권한.
"??"
- 이쪽입니다. 휴머노이드 탑승 후, 지구방문 권한 허가가 났습니다.
"?!!"
촉수 하나가 휴머노이드에 탑승했다.
"뀨-웅!!"
무언가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