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아이로 남느냐. 어른이 되느냐.
"아이야. 왔느냐?"
"예.관리자님."
이 상황 자체가 싫은 기분이었다.
"어찌 그리 죽상일꼬."
"아닙니다."
끔찍하거나 위험한 느낌이 아니었다.
귀찮고 뒤숭숭한.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었다.
관리자는 미소를 짓고 현규를 쳐다봤다.
"물건은 찾은 게냐?"
"예. 이상한 물건들을 찾았는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카트에 담긴 물건을 관리자에게 보여줬다.
"끔찍한 물건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예. 업 확인기로 봤는데 정말 끔찍한 모습입니다."
관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짓궂게 물었다.
"이 업이 잘못되긴 했지만, 굉장한 업을 지닌 것을 알고 있느냐?"
많은 업을 지닌 물건.
탐이 나는 것도 잠시,욕심은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은 모양이구나."
"예. 그 정도로 멍청이는 아닙니다."
작은 욕심에 모든 걸 포기할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었다. 게다가 업 확인기로 끔찍한 모습도 본 상태였다.
"잘 받았느니라. 이것은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바퀴벌레들을 찾을 수 있겠구나."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너는 정말이지 호기심이 없는 게냐.아니면 눈치가 빠른 게냐."
관리자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외계에는 물론 지구에도 도움 되는 물건이니. 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관리자님께 드리는데 애초에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지구에 있어서는 안 되는 물건이고 외계에서 지구로 보내서는 안 되는 정보다.무슨 물건을 찾았는지 알겠느냐?"
바퀴벌레들.
지구에 있어서는 안 되는 물건.
외계에서 지구로 보내서는 안 되는 정보.
단서가 머릿속에서 맞춰지며 답을 추론했다.
"외계의 정보가 지구에 들어온 거군요."
"그래. 절대 있어선 안 되는 곳에 절대 있어선 안 되는 정보가 있으니. 거기서는 끔찍한 업이 피어난 게다."
끔찍하지만 많은 업을 담고 있는 이유였다.
"과거의 것은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전해진 것이고, 최근의 것은
법이 있는데도 전해진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이 이상의 정보는 필요 없었다.
"거기까지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또 절묘한 곳에서 멈추는구나."
언제나처럼 여기서 멈추리라 생각했는데.
"분기점이구나."
"네?"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아이야. 어째서 방송을 하는 게냐?"
"저… 관리자님?"
그녀의 말을 멈춰 보려고도 해 봤고,
"아이야.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 게냐?"
"갑자기요?"
웃음으로 얼버무리려고도 해 봤지만.
"아이야. 이제 결정할 때가 왔구나. 아이로 남겠느냐? 아니면 어른이 되겠느냐?"
그녀의 물음은 진짜였다.
이건 단순한 물음이 아니었다.'분기점'이라는 그녀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머리가 복잡해지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시간 좀 주셨으면 합니다."
"그 또한 나쁘지 않겠지.나가보거라. 결정되면, 다시 찾아오거라."
지구로 돌아가는 길은 뒤숭숭한 기분이었다.
***
"너굴너굴!"
별일 없었냐는 너굴맨의 인사도.
-휴먼. 내부 카메라가 모두 꺼져 있었습니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인공이의 질문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방해하지 말아 줘."
"너굴!"
- 알겠습니다. 모든 일정을 뒤로 미루겠습니다.
너굴맨과 인공이는 별말 없이 자리를 비켜줬다.
아무런 방해도 없는 혼자만의 시간.
주위는 조용했지만 머릿속은 아니었다.
"이제 와서? 갑자기?"
이건 너무 뜬금없는 일이었다.
분기점.
방송하는 이유.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철학적이고 심오한 질문이었다.
"그딴 게 어딨어! 사람이 그냥 사는 거지!"
현규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대단한 대의 목표를 갖고 사는 그런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냥 재밌게! 즐겁게! 사는 거지 무슨…"
한참을 생각해 봐도 이건 혼자서 깨달을 만한 게 아니었다.
"집합!! 인공이 너도 휴머노이드 탑승하고 거실로 와!! 긴급 상황 발생!!"
"너굴너굴!!"
너굴맨이 기다렸다는 듯 뛰어나오고.
"휴먼. 전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게으름을 부리던 인공이까지 뛰어나왔다.
"기억 출력할 수 있지?"
"가능합니다."
"너굴?"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빨랐다.
"관리자님과 대화. 기억 모니터에 출력해."
"휴먼의 기억을 출력합니다."
"너굴너굴."
관리자와 현규의 대화가 화면에 출력되고 인공이와 너굴맨은 그 모습을 지켜봤다.
현규는 기억재생이 끝나자마자 바로 질문했다.
"어떻게 생각해?"
"너굴. 너굴너굴!"
"예, 제 의견 먼저 말하겠습니다."
첫 타자는 인공이였다.
"궁금한 게 무엇입니까?"
"복잡해. 전체적인 네 의견을 듣고 싶어."
인공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설명을 시작했다.
"관리자님이 말한 내용은 정말 간단합니다."
"간단하다고?"
"분기점. 어른과 아이. 이 속에 모든 단서가 들어 있습니다."
인공지능다운 방법이었다.
관리자의 말을 분석해서 해답을 도출했다.
"관리자님이 질문한 의도는 간단합니다. 더 개입할지. 아니면, 여기서 멈출지. 결정을 내리란 이야기입니다."
"개입?"
"그렇습니다.단순히 외계를 접해 본 방송인이 될지. 깊숙하게 개입하는 사람이 될지 선택할 순간입니다."
이일이 벌어진 이유는 가까이 있었다.
"그 물건들이 문제였네."
"그렇습니다."
외계와 지구의 일에 이미 개입한 상태였다.
"손익은?"
"어른이 될 경우, 책임과 권한이 생길 겁니다."
권한이 생기는 만큼 책임이 생긴다.
"반대는?"
"그대로 아이로 남아 있을 경우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
"외계와 연결이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뿐이야? 인공이 너랑 너굴맨이 회수되는 일은 없는 거지?"
"확답은 할 수 없지만,회수는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법에 어긋납니다."
최악의 상황도 그다지 나쁠 게 없었다.
"랜덤박스가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외계와 연결이 끊어진다면,당연한 일입니다."
손해와 이득.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그런데, 모두 부질없는 고민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결정하는 건 관리자님입니다. 어떻게 살지 물었고, 대답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어른이 될지. 아이가 될지.
판단하는 사람은 현규가 아니었다.
"내가 어른이라고 소리쳐 봐야.관리자님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아이로 결정될 겁니다."
"이건 손해와 이득이 중요한 게 아니네."
"맞습니다. 손익은 부수적일 뿐입니다."
돌고 돌아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너굴너굴!"
"너굴맨 님께서 해줄 조언은 간단하다고 하십니다."
"너굴! 너굴너굴!"
"관리자는 모든 걸 알고 있으니. 그냥 솔직한 심정을 말하는 게 어떠냐고 하십니다."
그 말에 현규는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고민한다고 해서,평생 가져 본 적 없던 삶의 목표나 그럴싸한 이유가 생기는 게 아니었다.
현규는 관심종자에 행복하고 싶을 뿐인 어리석고 멍청한 인간이었다.
인공이가 있어서, 너굴맨이 있어서, 랜덤박스가 있어서, 사람 구실하며 대단하단 소리를 들을 뿐이었다.
"역시. 너굴맨이야!"
"너굴너굴!!"
오랜만에 너굴맨은 우쭐한 자세를 취했다.
"생각이 끝났습니다!"
"명쾌하게 정리가 된 모양이구나."
명쾌한 정리? 전혀 반대였다.
아무것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아닙니다!"
"아니다? 그런 것 치곤 당당하구나."
현규는 미소를 지었다.
정리되지 않아도, 엉망이어도 상관없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패기를 보여주려는 거였다면,합격이구나."
"감사합니다!"
어느새 관리자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잘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확고한 목표는 없습니다.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고,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여유가 있다면 사람들도 도와주고요!"
"소인배의 삶이구나."
소인배의 삶. 적절한 비유였다.
현규는 영웅도 대인배도 아니었다.
"네! 소인배의 삶입니다! 그런 인생을 살고 싶고,그렇게 살아갔으면 합니다."
"사람을 어찌 돕겠느냐? 돈?랜덤박스에서 나온 물건?"
"방송으로 즐거움을 주고 싶은 게 첫 번째고, 넉넉해진 지금은 주위와 좀 나누고 싶은 게 두 번째입니다. 물론, 저 먹고살 돈은 있어야겠지만요."
관리자는 질문을 이어갔다.
"즐거움은 배고픔을 잊게 하지 못 하며,돈으로는 모두를 도울 수 없을 것이다. 어찌하여 랜덤박스의 물건을 쓰지 않는 것이냐."
랜덤박스에서 나온 물건을 쓰지 않는 이유.
"저 바보 아닙니다. 랜덤박스의 물건을 쓰면 식량난을 해소하거나 극복하지 못 한 질병을 극복하거나, 여러 가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어째서냐. 그저 위선에 그치는 헛된 나눔만 하겠다는 생각이냐?"
위선, 헛된 나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모두를 도울 수도, 직접적인 도움도 줄 수 없다.단지 능력이 되는 곳까지만 도울 뿐이다.
현규도 알고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감입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기분입니다.마치 제가 가져다 드린 물건처럼요."
"감을 믿는 게냐?"
"예. 믿습니다. 감을 믿었기에 관리자님이 여기 계시는 거니깐요."
"내가 증거란 소리구나."
"그렇습니다.랜덤박스보다 더 큰 행운은 관리자님을 만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은 진심이었고,반은 아부였다.
관리자는 뻔히 알면서도 웃음을 터트렸다.
"왜 방송을 하는 게냐."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즐거우니깐요!행복합니다."
현규답지 않은 확고한 대답이었다.
"앞으로는 어찌할 생각인 게냐."
"별로 달라질 게 없습니다. 그저 지금처럼 재밌게 방송할 생각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행복합니다. 방송할수록 더 행복해지는 기분이구요."
"별다른 목표도, 목적지도 없이 말이냐?"
"물론,욕심은 있습니다.한국 1등 세계 1등. 해 보고 싶습니다. 근데 그건 부수적인 것 같아요. 재밌게 방송하고 능력 되는 만큼 도와준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업도 쌓이고, 구독자도 쌓일 거라 생각합니다."
관리자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얼굴에 띤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결국, 목표도 목적지도 없단 소리 아니냐."
"아닙니다! 세계 유튜버 1등 한번 해보겠습니다! 이건 비밀인데. 세계콘서트 투어도 해보고 싶습니다!"
짙은 미소는 웃음이 되었다. 소리 내어 웃는 관리자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분기점인 이 중요한 때에 관리자의 웃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심장이 뛰고, 충동이 느껴졌다.
"아이야.아이야.너는 언제나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구나. 이 순간은 언제나 즐겁구나."
그녀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온몸을 휘감고 있는 감정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진정하거라."
그녀의 명령에 날뛰던 감정이 수습됐다.
"하아-하아- 감사합니다."
"오늘이 분기점이라고 했던 말 기억하느냐?"
"기억합니다. 아이와 어른 중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아이라고 하기엔 생각이 깊고, 어른이라고 하기엔 즉흥적이구나. 이를 어찌해야 할꼬."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라면,
현규는 별생각 없이 입을 열었다.
"청소년쯤으로 할까요?"
아이와 어른의 중간 청소년.
무리수인가 싶어 관리자를 쳐다봤는데.
"그거 나쁘지 않구나."
"네?!"
의외로 괜찮은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하겠다. 지금까지 발언 중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느냐?"
발언 수정은 다른 사람이 확인할 때.
이런 절차가 존재했다.
관리자님이 결정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말을 수정하고 바꾼다면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이득과 손해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을 끊었다.
"네! 괜찮습니다. 수정하지 않겠습니다."
"또 참았구나."
"작은 욕심에, 제가 하고 싶은 걸 하지 못 하는 상황은 원하지 않습니다."
"이리 오너라."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했고,
"네? 잠시… 으아!"
대답하기도 전에 관리자의 품으로 빨려 들어갔다.
"못된 늙은이들이 이곳에 오니.눈을 감고, 아무것도 듣지 말고, 아무것도 보지 말고, 아무것도 느끼지 말거라."
그녀의 말에 모든 감각이 차단됐고,차단된 감각이 아쉽다는 멍청한 생각이 들었다.
-관리 회의…
멍청한 생각도 잠시.모든 감각이 차단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존재감이 느껴지는 무언가가 여럿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숨 자거라."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 뭐가 달라지나?'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현규는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