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108 --------------
95화.
1.
-휴먼. 신체 분리 기계를 외계 건물로 옮겨주길 요청합니다.
“신체 분리 기계를? 왜?”
뜬금없는 요구였다.
-신체 분리 기계에 들어있는 장치 중 박리하는 부분이.
“왜 말을 하다 말아?”
설명 도중 인공이는 입을 다물었다.
-관리자의 호출입니다. 휴먼. 신체 분리 기계를 가지고, 외계 건물로 이동해 주길 요청합니다.
“어!? 우리가 쓰려고 하던 거 아니었어?”
-관리자에 의해 제한된 정보입니다. 대답할 수 없습니다.
인공이가 하려던 일을 관리자가 막은 것 같았다.
“심각한 일이야?”
-그건 아닙니다. 관리자 쪽에서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느낌이 왔다.
“우리 잘못은 아닌 거지?”
-그렇습니다.
우리의 실수가 아니었다.
관리자 쪽에서 하는 부탁이며, 요청이었다.
우리가 갑이었고, 관리자가 을이었다.
기계를 들고, 당당하게 외계로 넘어갔다.
“아이야. 왔느냐.”
그녀는 언제나처럼. 소파에 누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예. 관리자님.”
“뚫어지겠구나.”
그녀에게 고정된 시선은 불가항력처럼.
통제가 되지 않았다.
“오늘도 짓궂으시네요.”
“귀여운 맛이 사라졌구나. 예전 같았으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을 터인데.”
말하는 것과 달리. 지금 상황이 즐거운지 얼굴에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딱딱하구나. 아이야.”
그녀의 시선은 현규의 하체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건 성희롱이나 다름없었다.
“제 태도가 딱딱하다는 뜻이시지요?”
“그럼, 다른 것도 딱딱한 것이냐?”
뻔뻔하고, 아저씨나 다름없는 센스.
저 모습이 진짜였다.
아름다운 겉모습에 현혹되면 안 됐다.
“그래서, 부르신 이유는요?”
“고놈. 잠깐 농담할 시간도 주지 않는구나.”
“관리자님.”
관리자를 부르며 빤히 쳐다봤다.
현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반항이었다.
“마음을 잘 숨기는구나. 그리 뜨겁게 쳐다볼 거면서. 뜨겁구나. 아이야.”
“아니. 제가 언제 뜨거웠다고···”
쓸데없는 오해에 황급히 대답했지만.
“그럼, 왜 불렀는지 말해주마.”
변명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쓸데없는 농담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어느새 주도권은 그녀에게 있었다.
“신체 분리 기계를 반납했으면 한다.”
“규칙을 어기거나. 법을 어긴 건 아닐 텐데요.”
방송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됐다는 것이.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택배가 왔다는 건. 모든 검토를 끝내고 허가됐다는 뜻 아닙니까?”
“맞다. 그래서 부탁하는 것이다.”
거부할 수는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됐다.
현규는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인공이가 기계를 이용해서 하려는 것이. 안된다고, 판단하신 게 맞습니까?”
“그렇다. 아이야. 네 인공지능은 굉장히 영특하구나.”
인공이를 업그레이드하고, 개조한 효과였다.
“제가 쓸데없는 호기심이나. 욕심이 없는 건 아실 겁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 방송이지. 외계의 비밀을 밝히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있다. 그러니 이곳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현규는 자신의 안전함을 어필했다.
한 번의 실수는 모든 것을 무너트린다.
“게다가, 전 관리자님과 이렇게 지내는 게 좋습니다.”
“퍽 마음에 드는 말이구나.”
적당한 아부는 필수였다.
“관리자님께서 무작정 부탁을 하실 분이 아닌 것도 알고 있습니다. 기계를 바로 드리면 되겠습니까?”
거래의 느낌이나. 대가를 바라면 안 된다.
기분 좋게, 신뢰를 담아. 부탁에 응했다.
“아이야. 가까이 와보려무나.”
“가까이요!?”
‘실수?’ ‘오바?’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조심스럽게 관리자에게 다가가자.
“말을 이쁘게 했으니 해주는 포상이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
나이 먹고 쓰다듬을 받는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었다.
“그렇게 좋으냐.”
“음···복잡한 기분이네요.”
현규의 대답에 그녀가 웃음 터트렸다.
“그래. 네가 내 체면을 챙겨주었으니. 나도 너의 체면을 챙겨주마. 원하는 것이 있느냐?”
드디어. 현규가 기다리고 있던 말이 나왔다.
작으면서 도움이 될 만한 요청.
“새로운 외계인들이 채팅창에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온다고 들었습니다. 조금 확장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더 많은 이들에게 방송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외계채팅방 확장. 이것이 현규의 목표였다.
그녀는 재밌다는 듯. 현규를 쳐다봤다.
2.
“여러분! 너굴너굴!”
“너굴너굴!”
오늘 방송은 조금 특이했다.
크라나-ㅋㅋㅋ 랜하!! 기다렸어!!
지노스-랜하. 우리 종족에게 화가 나지 않았으면 한다.
휴라타-랜하. 너굴. 너굴.
격투파-너굴너굴! 오늘도 멋지십니다!
원래의 외계 시청자들이 들어오고.
플로나-아이고! 선생님! 처음 뵙겠습니다! 플로나라고 합니다!
‘플로나’라는 새로운 외계인이 접속했다.
“오늘 새로 입장하신 플로나 종족을 환영해주세요!”
크라나-ㅋㅋㅋ저 아부쟁이들이 들어옴?
ㄴ플로나-아이고! 우주의 개척자! 크라나 족은 이곳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지노스-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ㄴ플로나-지식의 탐구자 여러분도 계셨군요! 역시, 지구의 지식까지 노리고 계셨다니. 지노스 족이 한층 발전하겠습니다!
ㄴ지노스-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군.
ㄴ플로나-아이고! 아닙니다! 진실만을 말할 뿐입니다!
휴라타-플로나. 아부. 우주. 최고.
ㄴ플로나-휴라타 분들께서 이런 칭찬을 해주시다니! 다시 없을 기쁨입니다!
그런데 상태가 이상했다.
“음···아부쟁이?”
크라나-ㅋㅋㅋㅋ좀 다르긴 한데. 우린 아부쟁이라고 부름 ㅋㅋ 신기한 애들임.
플로나-아부라뇨! 저희는 진실을 말할 뿐입니다!
이건 새로운 컨셉충이었다.
“소개 좀 부탁할게요.”
플로나-우주의 도서관 지기 플로나입니다.
도서관 지기와 아부쟁이.
둘은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도서관 지기요?”
플로나-예! 선생님! 저희는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하고 있습니다.
플로나-어라!?
ㄴ크라나-아부쟁이야! 말 못 하겠지!?ㅋㅋㅋ
휴라타-점쟁이. 대체. 가능.
ㄴ플로나-예! 저희는 점쟁이입니다!
도서관 지기는 다시 점쟁이가 되었다.
“도서관 지기랑 점쟁이랑 관련이 있어요?”
플로나-그러게나 말입니다! 말씀드릴 수 없어서 너무 죄송스럽네요!
ㄴ크라나-ㅋㅋㅋ 형! 이쪽은 더 물어보지마. 저쪽은 빡센 설정 갖고 있음 ㅋㅋㅋㅋ
ㄴ플로나-아이고! 선생님! 아닙니다! 오히려 크라나의 <관리자의 의해 삭제된 메시지입니다.>를 생각하면 우주의 홍복입니다!
ㄴ크라나-크!! 아직 기억하고 있는 종족이 있다니깐! 역시! 플로나!
채팅창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도서관은 과거의 기록을 뜻하고.
점쟁이의 능력은 미래를 뜻한다.
과거의 기록과 미래를 관장하는 종족.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자.
UP-,,방송,,진행,,,해야지~!,,딴~~~,,생각,,허면,,쓰나,,ㅎㅎ,,,
관리자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짝!
반사적으로 손뼉을 치고.
“여기서 잠깐 편집점 잡을게요!”
“너굴너굴!”
편집점을 잡았다.
(귓속말)UP-구~~~,,,뜨!,,-_-)b
이모티콘도 아재 냄새를 풍길 수 있었다.
“좋아요. 뭐, 플로나님 설정은 여기까지 하고! 오늘 뭐 할지 아시겠습니까?”
크라나-상자깡 아님?ㅋㅋ 아니다. 플로나 소개 방송임?
ㄴ지노스-플로나 소개 방송이 합리적인 것 같다.
플로나-저를 위해서 소개까지 해주시다니! 역시, 선생님께서 우리형이라 불리시는 이유가 있으시네요!!
전부 아니었다. 외계인을 새로 받았으면, 이득이 있어야 한다.
“우리 점쟁이 플로나님! 제가 무슨 방송을 해야할지. 점쳐보세요.”
플로나-이거 참, 우리형 대단하시네요. 전 관리자님이 궁금해서 들어온건데. 이런 방송이라니. 흥미롭네요! 대단한 방송입니다!
아부 솜씨가 뛰어난 건 확실했다.
“그럼, 기대해도 될까요?”
플로나-잠시만요.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하고 있습니다.
점을 봐주는 게 가능한 모양이었다.
“진짜 돼요!?”
플로나-상자를 여는 방송? 이게 뭔지 모르겠지만, 좋아 보입니다.
설마 했는데. 진짜로 가능했다.
“그럼! 오늘 상자 한 번 열어 볼까요!?”
크라나-이게 이렇게 되네 ㅋㅋㅋㅋ
지노스-우리형. 확실히 직감이나 본능이 뛰어나군. 이렇게 진행이 될 줄이야.
외계인 소개 방송은.
상자깡 방송으로 급선회했다.
3.
“플로나님 하나만 물어볼게요. 이 점이 지구의 점과 비슷한 건가요? 대략적인 미래만 알려주는?”
플로나-예! 맞습니다! 역시 우리형! 감각이 있으시네요!
ㄴ크라나-ㅋㅋㅋ 괜히 짐승으로 불리는 게 아님 ㅋㅋㅋ 우리형 본능 엄청나다 ㅋㅋㅋ
현규는 모든 기준을 자기로 잡았다.
내가 상자를 연다면.
내가 상자깡 방송을 한다면.
그렇다면 고민할 필요 없었다.
“그럼!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거잖아요!? 평소대로 간드앗!! 상자부터 가져오겠습니다!!”
상자를 4개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렸다.
“너굴너굴!”
“그래! 너굴맨! 모든 준비는 끝났다! 상자깡 방송 가겠습니다!”
현규는 거침없이 상자 위에 손을 올렸다.
-랜덤박스 4개를 오픈하시겠습니까?
어김없이 알림창이 떠올랐다.
“우주의 점쟁이가 대박을 예견했다!!”
“너굴너굴!”
-정말 동시에 오픈하시겠습니까?
“상남자는 노빠꾸인 법! 가즈아!!”
“너굴너굴!!”
현규와 너굴맨이 소리치고.
-빠밤! 빠밤!
동시 개방 전용 BGM과 함께.
눈 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동시 개방을 선택하셨습니다.
-랜덤박스 하나가 합성용으로 소모됩니다.
매번 랜덤이었다면. 이번엔 달랐다.
점괘가 상자깡 방송을 가리켰다.
“와라!! 대박이여 와라!!”
“너굴너굴!!”
-A-21450 적색모래 200g
-특수 나노 머신
-업그레이드 키트
적색 모래는 꽝이었지만. 나노 머신과 업그레이드 키트는 괜찮아 보였다.
-나노 머신에 합성됩니다.
-업그레이드 키트가 합성됩니다.
-나노 머신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나노 머신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나노 머신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적색모래가 합성 되기도 전에. 업그레이드 키트가 합성되고, 등급 상승 알림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이었다.
-적색모래 200g이 합성됩니다.
-나노 머신이 증식을 시작합니다.
-적색 모래가 강제 변화합니다.
-적색 모래가 강제 변화합니다.
-적색 모래가 강제 변화합니다.
-모두 나노 머신에 합성되었습니다.
-대용량 업그레이드 나노 머신을 획득했습니다.
“이게···”
“너굴너굴?”
빛이 사라지고, 눈앞에 나온 결과물은.
책상 위에 올려진 빨간 모래뿐이었다.
“이게 뭐야!!!”
“너굴!!”
4.
망했다는 생각을 할 새도 없이.
<지노스 님이 100 Point를 후원하셨습니다.>
<지노스-떠올랐던 알림을 다시 출력해주길 강력히 요구한다.>
후원이 도착했다.
지노스는 마음이 급해 보였다.
“왜요?”
“너굴?”
인공이는 알림을 화면에 출력했다.
지노스-나온 물건이. 적색모래, 업그레이드 키트, 특수 나노 머신. 3가지가 확실한가?
“맞아요. 왜 그러세요?”
“너굴너굴.”
저런 반응이 나왔다는 것은.
엄청 좋거나, 나쁘거나. 둘 중 하나다.
지노스-<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다.
지노스-<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지노스-<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ㄴ크라나-ㅋㅋㅋ너 뭐하냐?ㅋㅋㅋ 안 돼. 포기해 ㅋㅋㅋㅋ
지노스의 채팅은 계속해서 삭제됐다.
지노스-별수 없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에요?”
지노스-엄청난 물건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건 안 되는 것 같군.
지노스가 흥분한 게 이해되지 않았다.
“어디에 쓰이길래 그러는 거예요?”
지노스-무엇이든지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추가 설명이 필요했다.
“간략하고, 쉽게 설명해주세요.”
지노스-생물을 제외한 ‘모든 것’에 사용하면 나노 머신은 그 물건을 업그레이드한다.
물건을 업그레이드하는 나노 머신.
그게 이 모래의 정체였다.
“업그레이드가 좋아진다는 뜻이죠? 뭐가 어떻게 좋아지는 데요?”
지노스-알 수 없다. 하지만,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의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어떻게 업그레이드될지 알 수 없지만.
뛰어난 효과를 발휘할지도 모르는 물건.
더 나빠질지. 좋아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뭐야! 개똥이잖아!!”
“너굴너굴!!”
한 마디로. 개똥 같은 물건이었다.
“플로나!! 상자깡 방송하면 된다며!!!”
“너굴너굴!!!”
인생은 절대 쉽지 않았다.
창의력 대장들의 선택.(1)-<업그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