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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빛이 옅어지고, 드디어 알림이 보였다.
-동시 개방을 선택하셨습니다.
-랜덤박스 하나가 합성용으로 소모됩니다.
시작과 동시에 하나의 상자가 날아갔다.
“잠깐!! 이게 무슨 개 같은 일이야!!”
“너굴너굴!”
너굴맨도 빛 때문에 주위가 보이지 않는지, 당황한 것 같았다.
-2족 보행 조종 키트를 획득하였습니다.
-A파츠 업그레이드 장비를 획득하였습니다.
-합성할 수 없습니다.
-대체제를 확보합니다.
빛 때문에 주위는 보이지 않고,
알림만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인공아 저게 무슨 말···”
현규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새로운 알림이 떠올랐다.
-A파츠가 존재합니다.
-A파츠에 업그레이드 장비가 강제로 부착됩니다.
강제라는 단어에 화들짝 놀랐다.
“강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휴먼.”
인공이가 대답했다.
“야!! 평소엔 설명충이더니 이럴 때에만!! 설명 좀 해줘!”
“꼭 필요한 장비입니다. 휴먼.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인공이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불안감이 밀려왔다.
-A파츠에 업그레이드 장비가 부착됩니다.
-합성 조건이 충족됩니다.
-2족 보행 조종 키트가 합성됩니다.
현규의 의지와는 다르게 계속 진행됐다.
-조종 대상을 확인합니다.
“조종!?”
조종이란 말에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나!! 내가 할 거야!!”
-관련 면허를 소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른 대상을 확인합니다.
-2종 보행 면허 소지자가 검색됩니다.
인공이는 업그레이드 중이고, 현규는 거부당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한 명뿐이었다.
“너굴!!”
-<집사 너구리>. 코드명: ‘너굴맨.’ 면허가 확인되었습니다.
-조종석을 너굴맨에 맞춰 조정합니다.
너굴맨이 면허 소지자였다.
“너굴맨? 면허가 있어!?”
“너굴너굴!!”
빛 때문에 보이진 않아도, 너굴맨의 기세등등한 모습이 그대로 전해졌다.
“BGM을 출력합니다.”
“갑자기!?”
-빠바바밤! 빠바바밤!
웅장한 BGM이 집안에 울려 퍼졌다.
“야! 이거 로봇 등장할 때 나오는···”
묘하게 익숙한 BGM과 함께.
-합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주인공 mk.2 완성입니다.”
퍼져 있던 빛이 한곳에 모였다.
“탑승을 요청합니다. 너굴맨님.”
“너굴너굴!!”
너굴맨이 멋지게 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위이이잉!!
-주인공 Mk2. 기동.
“너굴너굴!!”
빛이 사라지고, 무언가 걸어 나왔다.
“너굴!”
“너굴맨!!”
로봇은 로봇이었는데.
“너굴맨!! 그거 지지야. 내려!!”
“너굴?”
메탈의 제질로 이루어진 멋진 팔과 다리.
너굴맨이 타고 있는 조종석 또한 멋졌다.
다만 문제는.
“너무 극혐이잖아!!!”
몸통에 ‘커다란 인공이 머리’가 자리했다.
“너굴?”
정수리 부분에 설치된 조종석에서 너굴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녹화가 중단됐다.
2.
“이게 무슨 미친 짓거리야!!”
“동시 오픈은 휴먼이 했습니다.”
현규는 인공이의 이마를 때렸다.
“야!! 이걸로 말하지 마!”
커다란 얼굴만으로도 기괴했는데, 심지어 몸통에 달려 있었다.
말할 때마다 기묘한 감정이 요동쳤다.
-휴먼. 진정하기를 요청합니다.
“진정은!! 지금 상황이 이런데 진정하게 생겼어!? 얼굴이 몸통이 됐는데!!”
작은 얼굴이 몸통만 하게 변하고, 너굴맨은 정수리에서 조종한다.
어디서 잘못된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휴먼의 불만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인공이의 말을 무시하고, 심호흡했다.
복잡한 감정들을 털어냈다.
“좋아. 우선, 모습이 너무 기괴해. 세상에 어떤 로봇이 몸에 얼굴이 달렸어!”
-얼굴이 달린 로봇은 찾아보면 있겠지만, 쓸데없는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다행히 대책 없이 저지른 건 아니었다.
-몸통의 형태변환이 가능합니다. 재질, 형태, 모습. 전부 변화할 수 있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휴먼.
“그건 다행이네. 근데 이게 왜 필요한 거야?”
로봇을 어디다 사용할지, 이게 왜 필요한지.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너굴!”
대답은 인공이가 하지 않았다.
“너굴맨?”
너굴맨에 손에는 쟁반이 들려 있었다.
“너굴너굴.”
쟁반에서 케이크와 커피를 내려놓았다.
“잘하네?”
“너굴! 너굴너굴!”
-휴먼. 이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
너굴맨은 <집사 너구리>였다.
‘집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던 것이다.
“설마, 너굴맨의 기본 장비 같은 거야?”
-그렇습니다. 휴먼.
“너굴너굴!!”
너굴맨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케이. 인정. 필요한 건 맞아. 그동안 불편했을 텐데 고생했어. 너굴맨!”
“너굴!”
“그래도! 얼굴은 좀 바꿔! 꿈에 나오겠어! 꿈에! 우리 꿈에서까진 보지 말자. 쫌.”
-저도 사절입니다. 바로 변경하겠습니다.
-키이잉. 키잉. 키잉.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계음을 시작으로.
살색 피부는 금속 재질로 변했고 눈, 코, 입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래도 여전히 얼굴 느낌이 드는 거 같기도 한데?”
-휴먼. 본질은 얼굴이 맞습니다. 모든 흔적을 지우는 건 불가능합니다.
의식하고 보면 보였지만, 얼핏 보면 모를 정도였다.
“그래도 조금 전을 생각하면, 대만족이야! 머리 원래대로는 돌아갈 수 있어?”
-가능합니다.
원상태로 복귀도 가능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나쁠 게 없었다.
“첫 등장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그렇지, 괜찮은데? 나쁘지 않아.”
-단점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 건 당연했다.
“뭔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A형 파츠에 추가 개조가 이루어진 관계로 다른 파츠가 나와도 부착할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담담히 말했지만,
“앞으로 네 머리에 몸통, 팔다리 추가 안 된다는 거야!? 괜찮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제가 필요한 건 머리였으니. 별로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활용도는 지금이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이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이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랜덤박스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십니까?
듣지 않아도 대충 예상이 됐다.
“여러 개를 동시에 오픈할 때는 합성으로 하나가 제외되고, 나머지들에서 나온 게 하나로 합쳐진다. 맞아?”
-정확합니다. 보통은 이런 방법으로 상자를 열지 않습니다.
당연한 말이었다. 무조건 상자 하나가 소모되고, 랜덤으로 나온 물건들이 하나로 합쳐진다. 손해도 이런 손해가 없었다.
“이번이 운이 좋았던 거지?”
-그렇습니다. 나온 물건들은 따로 사용하는 게 활용도는 더 높았습니다.
실패였고, 실수였지만. 방송을 놓고 보면 나쁘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써먹을지 이야기해볼까?”
-휴먼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계획이 하나씩 쌓이기 시작했다.
3.
영상은 다시 시작됐다.
현규는 수건으로 손을 닦고있었고, 뒤에는 조각할 때 썼던 각목들이 나뒹굴었다.
“아! 죄송합니다. 내부 문제로 잠시 녹화를 끊어갔습니다.”
손을 닦던 수건에 빨간 얼룩들이 보였다.
“수건이랑 뒤에 각목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별거 아닙니다. 설정팀이랑 잠시 면담하고 왔습니다.”
현규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설정 및 특수효과팀에서 로봇의 디자인이 이상한 것 같다고, 바꾸고 싶다고 하도 그래서 바꿨습니다. 그럼 불러 보겠습니다.”
수건을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의 심장을 울린다!! 너굴맨과 인공이의 합체!! 합체 로봇 등장입니다!!”
“너굴너굴!!”
로봇은 인공이 얼굴이 몸통이었던 끔찍한 모습이 아니었다.
매끈한 금속 몸체의 멋진 모습이었다.
“풀 메탈 바디! 완벽한 균형! 면담한 보람이 있습니다!”
“너굴너굴!!”
현규의 말에 너굴맨이 호응했다.
“여기서 여러분들 머릿속에 의문이 하나 떠올랐을 겁니다.”
“너굴?”
너무나 당연한 의문.
“그래서 이 로봇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엄청난 일이 가능할까!? 궁금하십니까!?”
“너굴!!!”
로봇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바로! 청소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박수 주세요!! 이제 너굴맨이 안절부절 서 있지 않아도 됩니다!”
“너굴너굴!”
“보여드리겠습니다!”
둘은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각목과 수건을 치우고, 널브러진 상자들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청소가 끝났다.
“너굴맨의 청소실력 보셨습니까?”
“너굴너굴!”
그저 정리하고 치웠을 뿐이었지만,
너굴맨의 표정은 의기양양했다.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셨다면! 오산입니다! 저희가 청소를 왜 했겠습니까!”
“너굴너굴!”
갑자기 청소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너굴맨이 청소할 수 있다면, 요리는 어떨까요?”
“너굴너굴!!”
너굴맨은 할 수 있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새로운 식구도 생겼는데, 여태 회식도 못 했습니다.”
현규는 카메라를 보고 미소지었다.
“벌써 눈치채신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오늘 라이브 방송. 너굴맨 요리쇼!! 가겠습니다. 요리 전문가와 노래 전문가. 2분이 오실 예정이니. 오늘 라이브 기대해 주세요!”
“너굴너굴!!”
마지막으로 구독자들을 도발했다.
“요즘 고양이 집사로 취업했다느니 하는 말이 도는데, 다들 반려동물들이 밥 해주고, 청소해주고 하잖아요. 혹시? 직접 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너굴.”
둘의 얄미운 표정과 함께 영상은 끝났다.
4.
rlaalswo-역시! 너굴맨님! 로봇 조종 정도야 껌이시지.
ㄴ란스-네!? ㅋ 로봇 조종을요?ㅋㅋ
히나리-ㅋㅋ큰그림 오졌네ㅋㅋ 나머지 파츠 모으겠거니 했는데ㅋ 로봇 돼버림ㅋ
ㄴ피망-깜짝 놀랬다. 머리가 몸통이 되다니 ㅋㅋ
ㄴ히나리-몸통 됐는데도 말할 때 진짜ㅋㅋ 빵터졌다.
새초롬-여긴 뭐 정상적으로 돌아가질 않냐ㅋ 그냥 인공 누님 풀세트 드리라고!!
ㄴ인공사랑-SNS로 얼른 팔다리 붙여달라고 했더니ㅋㅋ 얼굴에 붙임.
팔랑귀-그랑죠 느낌 아니었음? ㅋ 노래도 그거 같던데.
ㄴ사랑채-아재.. 그랑죠가 뭐죠? 그렌라간 간멘(안면)로봇이죠!
ㄴ팔랑귀-아재 아니다! 그랑죠가 맞지!
ㄴ촐랑-제가 결론 내드립니다. 주인공 mk2 가 맞습니다ㅋㅋ
ㄴ수치나-현자님!!
개구리콘-ㅋㅋㅋ난 화면 전환 됐을 때 빵터짐 ㅋㅋㅋ 각목, 빨간색 묻은 수건 뭐냐고 ㅋㅋㅋ
ㄴ루나-ㅋㅋㅋㅋ그 설정도 존나 웃김ㅋ
ㄴ개구리콘-설정팀이랑 메일로 연락 주고 받는다고 해놓고 ㅋㅋ 랜덤박스 유니버스 설정 충돌났죠 ?ㅋㅋㅋㅋ
린다린-근데 저거 어떻게 한거임? 불안하긴 하지만 로봇 잘 움직이던데.
ㄴ김호찬-영상 특수효과는 얼마 없었음. 물리적이나 기계적으로 만든거 확실함.
ㄴ린다린-ㅎㄷㄷ...진짜 등판.
ㄴ김호찬-라이브 보면 대충 각 나올거 같음ㅋㅋㅋ 안 나오면? 로봇 제작회사에서 광고 받은거임 ㅋㅋㅋㅋ
ㄴ유나스-기술이 그렇게 발전했어?
ㄴ김호찬-ㅇㅇ. 세계 최정상급은 저 정도 움직임 가능함 ㅋㅋ 아니 근데 유튜브에 왜 저런 기술을 쓰냐고 ㅋㅋㅋ
할랑-고양이 집사가 뭐 어때서! 난 행복하다!! 나는 행복합니다!!
ㄴ키위로-ㅋㅋㅋ그래서 너굴맨 부럽다? 안부럽다?
ㄴ할랑-너무너무 부럽고!!
-유튜브 댓글은 여기까지입니다.
“거봐. 상자깡은 실수였어도, 방송은 성공 맞다니깐.”
-조금 더 왼쪽입니다. 휴먼.
“이쪽?”
-그렇습니다.
인공이가 댓글을 읽어주는 동안 집안을 돌아다니며, 와이어를 설치하고 있었다.
“이걸로 속겠어?”
-단서를 던져주면 시청자 쪽에서 알아서 착각할 겁니다. 사람의 의심은 끝이 없습니다.
현규가 설치하고 있는 것은 시청자들이 납득할 단서였다.
“주방부터 식탁 쪽까지만 하면 되지?”
-그렇습니다. 로봇의 동선은 주방에 한정하겠습니다.
평소에 비하면 과한 준비였다.
“이족보행이 그렇게 어려운 거야?”
-이족보행으로 걷는 기술은 지구의 기술로는 난이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와이어를 통해 외부요소가 개입된 걸 보여줘야 합니다.
“안 보여주면?”
-그런 기술이 있다고 믿지는 않겠지만, 귀찮은 일이 발생할 확률이 있습니다.
결론은 간단했다.
“무조건 설치해야 한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휴먼.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너굴맨!! 재료 준비 끝났으면 설치 도와줘!!”
-너굴맨 님도 요리 준비로 바쁘십니다.
“아··· 주여.”
진짜 없었다.
5.
“여러분! 너굴너굴!!”
시청자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rlaalswo-도랐ㅋ 고깔모자는 뭐임?ㅋㅋ
루나스-회식에 무슨 고깔모자야 ㅋㅋ
휘리-랜하!(랜덤박스 하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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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깔모자를 쓴 현규가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오세요! 라이브 방송 시작했습니다!”
라이브 방송이 시작됐다.
라이브방송-13. 너굴맨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