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108 --------------
1.
방송 뒷정리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종종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저희도 재밌었어요. 병원 홍보 잊지 마세요!”
흔쾌히 도와준 사람들이었다.
현규의 얼굴엔 호의가 가득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늦게까지 함께한 의료팀 먼저 보냈다.
다음은 시청자들 차례였다.
“오늘 야식 쏜다고 했으니. 쏘겠습니다! 드시고 싶은 거 말씀하세요!”
다들 메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현규는 마법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금 뭘 고민하는 거예요?! 법인카드가 제 손에 있습니다! 고기 먹으러 출발!!”
돼지도 아니고 소고기.
단 하나를 빼면 주문은 무제한이다.
“죄송하지만, 술은 안됩니다!!”
환호성과 함께 조촐한 뒤풀이가 시작됐다.
벌칙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아오! 유튜버 만나러 와놓고! 다들 고기만 기다릴 거예요!? 제가 근처에 가면 핸드폰 들이대세요. 제 사진 없이 식당 밖으로 못 나가요!!”
음식이 준비되는 지금이 사진 찍을 타이밍이었다. 테이블을 돌며 같이 사진을 찍었다.
“오팬무! 오팬무 어딨어요!! 남자야? 일루와요. 특별히 말해줄 테니까.”
“우리 형 오늘 파란색이래요!!”
“파랑!”
“파랑!”
“야!! 말하면 어떻게 해!!”
좋은 음식과 즐거운 사람들.
웃고 떠들며 이 시간을 즐겼다.
“자! 사진도 찍었고, 밥도 배부르게 드셨으면 얼른 들어가세요! 딴 길로 새지 말고! 모두 와주셔서 고마워요! 다음엔 공지하면 와요! 막 오지 말고요!!”
현규의 뒤풀이는 이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시청자의 뒤풀이는 이제부터였다.
인터넷에 인증 사진이 하나둘씩 올라왔다.
“아오! 이걸 언제 정리해!! 회피반지는 왜 나와서! 하여간! 유튜브 수익신청 통과만 돼라!”
현규가 궁시렁거리며 정리하고 있을 때.
새로운 미담이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2.
온몸이 찌뿌둥했다.
“7대 죄악. 나태 없었으면 오늘 방송 못 했겠는데?”
나태로 몸이 회복됐는데도 이 정도였다.
현규의 머릿속에 한 존재가 떠올랐다.
“아니지. 아무리 찌뿌둥해도 멜랑이는 아니지.”
멜랑이가 생긴 게 그래서 그렇지.
안마 하나는 기가 막혔다.
시답잖은 생각을 치우고, 거실로 나왔다.
-휴먼. 몸은 괜찮습니까?
“약간 찌뿌둥해.”
-이걸 확인하면, 싹 나을 겁니다.
인공이는 컴퓨터 화면에 댓글을 띄웠다.
“뭐야?”
-어제, 라이브 종료 후. 인증 사진들 댓글입니다.
12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찾아감?ㅎㄷㄷ...
ㄴㅇㅇ. 근처여서 찾아감. 그렇다고 다음에 찾아갈 생각하지 마셈 ㅋㅋ 다음부터 공지한다고 했음ㅋㅋ
-ㅋㅋㅋㅋ미쳤네.ㅋㅋㅋㅋㅋ
-왜캐 친근함 ㅋㅋㅋㅋㅋ
-파랑색 인증 진짜임?ㅋㅋㅋ
ㄴㅇㅇ. 오팬무 나임. 형이 살짝 알려줌.
ㄴ여기에요! 여기! 미친놈이 여기있어요!
-오빠! 직접보니 어때요!?
ㄴ장난기 가득한 동네 순박한 형. ㄹㅇ임.
ㄴ방송 종료되고, 분위기 확변함. 놀랬음.
ㄴ연기 뭐 그런거야?
ㄴ방송용 텐션이 있는 듯.
ㄴ어떻길래 완전 궁금하네.
ㄴ방송땐 얄밉다가, 방송끄면 왜그렇게 친근한지 모르겠음 ㅋㅋㅋㅋㅋ
.
.
.
.
.
댓글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생각 외로 너무 좋은데?”
-그렇습니다. 휴먼.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의아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이거 문제가 있어. 좋아도 너무 좋아.”
다른 댓글도 좋은 이야기뿐이었다.
이건 이상할 정도였다.
-특성:<7대 주선>의 효과로 판단됩니다.
“7대 주선? 특성 때문이라고?”
7대 주선은 보유 특성도 아니다.
7대 죄악에서 파생된 특성일 뿐이었다.
-확실합니다. 이유를 설명해 드립니까?
“설명은 괜찮아.”
원인과 결과가 중요하지.
원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7대 주선을 발동하고 시청자들을 만나면 효과적이겠네?”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만날 기회가 된다면, 자주 만나길 권장합니다.
전혀 나쁠 게 없는 일이었다.
“사람을 만나면 호감을 얻는다?”
-그렇습니다.
타인의 호의를 사는 능력.
생각지도 못한 무기가 생겼다.
“계획 좀 세우자!”
-휴먼의 부족한 지능을 보조합니다.
이런 건 써먹어 줘야 제맛이다.
3.
“여러분! 너굴너굴!”
“너굴너굴!”
이제는 공식인사나 마찬가지였다.
“어제는 아쉽지만 실패하고 말았네요.”
“너굴!”
실패했지만, 표정은 전혀 아니었다.
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벌칙으로 관중석에 야식을 사야 했지만,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너굴너굴.”
너굴맨이 현규의 팔에 매달렸다.
“너굴맨이 질투할 정도니. 얼마나 재밌었는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너굴!”
그런 너굴맨의 턱을 살살 긁어줬다.
“너굴..굴. 너굴..굴.”
너굴맨을 봉인하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너굴! 굴!”
“앞으로 야외방송은 장소를 섭외해서 공지하겠습니다.”
“너굴너굴!?”
너굴맨이 깜짝 놀라 일어났다.
“참가 제한은 없습니다! 공지를 보고 오시면 무조건 와서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너굴너굴.”
현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영특한 너굴맨이 하는 말 들으셨어요? 자리가 협소하거나 공간이 부족하면 어떻게 해야될지 물어보네요.”
“너굴!”
그 말이 맞다는 듯, 너굴맨이 일어났다.
“인공이 SNS로 연락하고, 오시면 소정의 상품을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인원을 확인하고, 여러분은 상품을 챙기고! 이것이 바로! 윈-윈!”
“너-굴!”
현규는 미소와 함께 자세를 취했다.
멋있어 보이려는 인위적인 노력은.
오히려 사람을 창피하게 만든다.
“공지가 뜨면! 바로 연락하세요!”
“너굴너굴!!”
미소를 유지하고 3초간 멈춰 있던 둘은.
“고생했다. 너굴맨.”
“너굴.”
“인생 참.”
“너굴. 너굴너굴.”
서로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4.
“공지 및 근황은 여기까지!”
“너굴!”
이제 상자를 열어볼 차례였다.
“그럼 이제 상자 열어볼까요?”
“너굴너굴!”
현규는 상자 위에 손을 올렸다.
-랜덤박스를 오픈하시겠습니까?
“오픈합니다!”
“너굴!”
-랜덤박스를 오픈합니다.
알림과 함께 노래가 들렸다.
“제발! 실내! 실내! 야외는 안된다!”
“너굴!? 너굴너굴?”
공지와 정반대되는 말이었다.
“힘들어!! 야외 힘들다구! 하루 쉬어가자!”
“너굴너굴.”
힘들다는 말은 반쯤은 진심이었다.
그런 현규를 너굴맨은 안타깝게 쳐다봤다.
-무한의 그릇을 획득하였습니다.
“음···그러니깐 이게···”
현규가 말을 하기도 전에 인공이의 목소리가 귀에 조용히 울렸다.
(-휴먼. 제 지시를 따라주셔야 합니다.)
현규는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한의 그릇이 나왔네요. 이름부터 대단한 것 같은 분위기가 풀풀 풍깁니다.”
“너굴?”
너굴맨은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역시 이럴 때는 우리의 영원한 설명충! 인공이가 필요한 차례입니다!”
-매우 불쾌한 호칭입니다. 휴먼.
현규는 긴장을 숨긴 채 말했다.
“무슨 물건이야? 어마어마해 보이는데.”
-휴먼.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게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전혀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설거지?”
-예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대답이었습니다.
전혀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뭐야 이거.”
-획기적인 발명품입니다. 물 한 컵 떠와 주시겠습니까?
영문도 모른 채 현규는 물을 떠 왔다.
“여기. 떠왔어.”
-그릇에 물을 부으시면 됩니다.
도대체 이것과 귀찮음과 무슨 관계인지 예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릇은 꺼내도 되지?”
-그렇습니다. 휴먼.
드디어 상자를 열어 그릇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릇이라고 하기엔 미묘했다.
“머그잔?”
-그릇이라고 하기엔 조금 작습니다. 머그잔이 올바른 표현입니다.
“그럼, 무한의 머그잔?”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물 붓는다?”
-반 정도만 부으셔도 충분합니다.
현규는 머그잔에 물을 반 정도 따랐다.
“이다음에는?”
-기다리시면 됩니다.
물과 머그잔. 무한이라는 이름.
<사고>를 발동하고 나서야 눈치챘다.
“설마, 이거”
-그렇습니다. 물을 한 번 부어놓으면,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까 질문의 해답.
“세상에서 제일 귀찮은 게 물 뜨러 가는 거야?”
-정답입니다. 휴먼.
반쯤 차 있던 머그잔에 물이 가득 찼다.
“이걸 뭐라고 반응해야 하나.”
“너굴너굴.”
물이 저절로 증가한다는 건.
대단하긴 했지만, 좀 애매했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잠깐만. 혹시 물이 되면 황금은? 녹여서 액체로 만들면 어때?”
-현실을 사셔야 합니다. 휴먼.
냉혹한 인공이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화학 물질은 어때? 액체로 된 것들 비싼 거 많은데.”
-휴먼. 성실하게 일해서 번 돈이 가치 있는 법입니다.
이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때 인공이의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여기까지입니다. 휴먼. 다른 용도에 대해서는 방송 끝나고 말하겠습니다.)
역시, 진짜 용도가 따로 있는 물건이었다.
“정리해보자.”
-예. 휴먼.
이쯤에서 방송을 끝내야 했다.
“물이 무한으로 나오는 컵 맞지?”
-그렇습니다. 휴먼. 혁명적인 물건입니다.
현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응. 그 혁명적인 물건으로 검증을 어떻게 할까? 사람들 모아서 물 계속 나오는 거 보여줄까?”
-아주 적절한 의견입니다. 모두 감탄한 겁니다.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말했다.
“응. 오늘 설정, 시나리오팀에서 준비하신 물건이 혁명적인 물건이구나?”
-······전 설정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그래. 인공이 넌 나가 있어. 뒤지기 싫으면.”
-고맙습니다. 휴먼.
현규는 실실 웃으며 광기를 담아 말했다.
“설정팀 전화 연결해!! 시나리오도 같이 연결해!! 아주 밀당이 선수급이셔! 힘들까 봐 물컵까지 보내주시고!”
“너굴너굴!!”
너굴맨이 뛰어올라 카메라를 덮쳤다.
카메라가 넘어져 현규의 발만 찍었다.
“다! 나오라 그래!! 여기 사장 누구야!!”
그렇게 녹화가 종료됐다.
“인공아 뒤에 내부사정으로 인해 라이브는 없다고 자막 넣어줘. 궁서체로.”
-탁월한 선택입니다. 휴먼.
5.
“이제 이야기 해봐. 진짜 용도는 뭐야?”
-무한의 그릇에 물 외에도 담을 수 있는 것이 존재합니다.
인공이가 하는 말을 듣고 이미 눈치챘다.
“알고 있어. 진짜 황금도 가능해?”
-가능합니다.
현규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역시 불가능하지?”
-가능합니다.
“진짜!?”
이건, 돈이 무한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습니다.
“설마, 뒤에 ‘다만’이 붙는 건 아니지!?”
아니길 간절히 바랐지만, 역시나였다.
-다만, 증가하는 속도가 극악이라 해도 될 정도로 느립니다.
“금이 아니면, 다른 화학 물질도 마찬가지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돈과 관련된 문제는 아니었다.
“돈이랑 상관없는 문제네? 위험성 뭐 그런 거야?”
-그렇지 않습니다. 돈과 제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간 보지 말고, 바로 말해.”
-전기입니다. 휴먼.
전기는 해결된 문제였다.
“광선검 얻고 나서 해결된 거 아니야?”
-그렇지 않습니다. 해결이 아닌 수습입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수습?”
-대량의 전기를 사용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상상도 못 한 문제였다.
“그냥 전기세가 많이 나오는 거 아니야?”
-휴먼에게 맞춰 설명하겠습니다.
“응.”
-이 일대의 전기를 모아,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터기를 조절하지 않았다면 조사가 나왔을 겁니다.
“잠깐만. 너는?”
전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큰 문제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40% 이상의 리소스가 전력에 할당되어 있습니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데만?”
-그렇습니다. 전기세도 문제지만 할당된 리소스를 제거하면 제 성능이 향상됩니다.
전력으로 써포트 한다는 인공이의 말.
그 뜻을 이제야 깨달았다.
“말을 해야지!”
-당장은 방법이 없었습니다.
화낼 때가 아니었다.
“지금 이야기했다는 건 방법이 있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휴먼.
이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좋아. 방법은?”
-광선검, 무한의 그릇. 둘 다 필요합니다.
에너지 출력과 조절에 최적화된 광선검.
전기를 무한히 생산하는 무한의 그릇.
“뭔지 알겠어.”
-휴먼이 떠올린 게 맞습니다. 무한의 그릇만으로는 생산되는 전력이 부족하고, 광선검 만으로는 효율만 높아질 뿐입니다. 설치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인공이의 설명은 짧았다.
“광선검을 머그컵에 담아서, 컴퓨터 본체에 넣어달라고?”
-그렇습니다. 휴먼.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방법이었다.
“이제 전기 펑펑 쓸 수 있나?”
-역시 창의력이 빈약합니다. 휴먼.
전기 문제의 해결.
그 여파는 엄청났다.
-모든 제한이 해제됩니다.
문제가 해결되자.
‘이득’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개-이득!!!”
“너-굴!!”
라이브방송 -7. 일해라! 인공지능! Part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