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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휴먼. 왜 그렇게 서두르는 겁니까?”
녹화 시작하기 직전에 인공이가 물었다.
“뭘 서둘러? 어제랑 똑같은 시간인데.”
“어제 일을 말하는 겁니다.”
인공이가 궁금해한 것은 어제의 일이었다.
“운동?”
“그렇습니다. 그렇게 무리하면서 서두를 필요가 있습니까 휴먼?”
웬일로 걱정하는 모습에 놀라 되물었다.
“걱정이야?”
“호기심입니다.”
역시나 걱정은 아니었다.
“지금도 시간이 모자라. 더 서두를 수 있으면 더 서두르고 싶어.”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이유는 간단했다.
“노출. 관심은 노출로 이어져. ‘가짜’를 최대한 빨리 ‘진짜’로 만들어야 해.”
“사람들과의 접촉 때문입니까?”
역시나 인공이의 이해는 빨랐다.
“응. 앞으로 인터뷰, 합동방송, 광고 같은 공적인 일로 사람들과 만나게 될 거야. 다 거짓이어도 하나는 진짜여야 돼.”
“이해했습니다.”
“야! 다음에 나올 대사가 멋있는 건데! 거기서 사람 말을 끊냐!!”
가장 중요한 말이 남아 있었다.
“나 자신은 진짜여야 해. 이딴 개소리를 하시려는 건 아니길 기원합니다. 휴먼.”
“아··· 녹화 시작하자.”
2.
“너굴맨. 자리 잡아!”
“너굴너굴!”
너굴맨은 현규의 어깨 위로 올라가.
“너굴!”
어미 코알라를 안듯 너굴맨은 현규에 뒤통수를 끌어안았다.
“인공아 녹화 시작!”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여러분! 너굴너굴!”
“너굴너굴!”
이번 오프닝의 컨샙은 삐진 너굴맨이다.
“진귀한 광경에 깜짝 놀라셨나요!?”
“너굴?”
정수리에 턱을 괴고 있는 너굴맨.
이걸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너굴맨이 목마를 타고 있는 이유는!”
“너굴!”
잠시 말을 멈추고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제가 다 부족한 덕분입니다.”
“너굴너굴.”
너굴맨은 한쪽 손으로 현규의 머리를 탁탁 두드렷다.
“너굴맨 님은 어제의 패션쇼로 화가 나신 상태입니다.”
“너굴! 너굴너굴!”
현규에 말에 재차 머리를 두드린다.
“크! 너굴맨 님의 인생 사진은 남겼으나. 너굴맨 님의 화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너굴!”
“그래서 화를 풀어드리는 중입니다.”
삐진 너굴맨과 그걸 달래주는 현규.
괜찮은 그림이 나왔다.
“그런고로! 오늘은 이렇게 방송을 하겠습니다!”
“너굴!”
움직이지 말라는 듯. 너굴맨은 현규의 머리를 또 두드렸다.
“아이고! 너굴맨 님. 죄송합니다.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너굴.”
그제야 만족한 듯 손을 멈췄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바로 상자깡 가겠습니다!”
“너굴너굴!”
책상 위에 있는 상자에 손을 올렸다.
-랜덤박스를 오픈하시겠습니까?
“예! 오픈하겠습니다!”
알림창이 뜨자마자 현규는 빠르게 말했다.
-랜덤박스를 오픈합니다.
“너굴맨님 최대한 빨리 끝내겠습니다!”
“너굴!”
말하는 사이 음악이 흘러나오고.
-넥타르를 획득하였습니다.
새로운 알림이 떠올랐다.
“넥타르가 나왔다는데요.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물건입니다.”
넥타르란 이름은 뭔가 멋져 보였다.
보통 물건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물건인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음··· 이게. 물?”
기대과 달리 안에는 물병이 들어있었다.
물병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물인데요? 병이 뭔가 다른 건가?”
아무리 살펴봐도 이건 물이었다.
혼자 끙끙거리며 고민할 필요 없었다.
“인공 님! 넥타르에 대해 알려주세요!”
전문가를 요청했다.
“축하합니다. 휴먼.”
“어? 이거 좋은 거야?”
“신들의 음료로 불리는 넥타르입니다. 신화에는 불로불사와 잠깐 신이 될 수 있다고 전해집니다.”
설명만으로도 굉장했다.
“신화 말고 진짜 능력은?”
“몸에 좋습니다.”
웬일로 단순한 설명이었다.
이유를 물어보려고 할 때.
-휴먼. 지금 마시면 안 됩니다.
귓가로 인공이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마시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하면 제가 맞춰서 행동하겠습니다.
현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유지했다.
[사고]를 발동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설명은 그게 다야?”
“그렇습니다. 몸에 좋은 음료입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에 짜증이 담긴다.
“설정팀이야!?”
“무슨 말입니까 휴먼.”
현규는 화가 난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요즘 특수효과 쪽에 들어간 비용 때문에 휘청휘청한다고, 다들 일 이렇게 할 거예요! 설정팀에 짬 때리니깐 이런 결과가 나오지!”
“휴먼을 지지합니다.”
영상은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3.
“아니! 설정팀도 그래. 싸게! 빨리! 만들라고 했다고, 덜렁 물병 집어 넣어놓고! 인공이 한테 대본 던져주면 끝이에요!?”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휴먼.”
현규와 인공이는 한마음 한뜻이었다.
“너굴?”
다만 너굴맨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적당히 해야지! 넥타르라고 해서 무슨 대단한 건 줄 알았더니! 물 마시고 끝내란 소리예요!?”
“시나리오 팀의 무능을 꼬집습니다.”
대책 없이 내뱉는 게 아니었다.
이건 목적지로 향하기 위한 밑밥이었다.
“왜? 물 먹고! 개 꿀맛! 하고 끝내?!”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휴먼.”
여기에 자랑을 살짝 섞었다.
“거기다! 우리 채널 지금 상승세 타고 있는 거 몰라요!? 구독자 10만이 넘어도 적자에요! 정신 안 차려요?”
“구구절절 맞는 말입니다. 휴먼.”
이 틈에 번역에 대한 홍보도 첨가했다.
“거기다 이번에 14개로 번역 늘린 거 몰라요? 예산은 자꾸만 빠지는데 여러분 지금 이게 말이 됩니까! 도대체 14개로 번역하는 이유가 뭐예요! 진짜!”
“휴먼. 번역은 클라이언트 요구였습니다.”
“14개는 적절했네요. 어쨌든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말입니다.”
“휴먼. 설정상 번역은 제가 하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실수했다는 표정을 짓고 침묵을 유지했다.
“흠! 어쨌든 지금 우리가 이럴 때가 아니다 이 말입니다!”
“동의합니다. 휴먼.”
마무리 멘트를 날렸다.
“거 사람이 안 잔다고 죽어요!?”
“휴먼. 못 자면 죽습니다.”
“아. 그렇지?”
여기까지면 충분했다.
짜증과 흥분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이런 컨샙입니다.”
“너굴?”
영상을 보는 구독자의 얼굴은 너굴맨과 똑같이 어리둥절할 것이다.
현규가 노린 것은 이것이다.
“모두 지치고 힘든 강행군을 거쳐 휴식이 필요한 생태입니다.”
“너굴?”
이건 상자깡 방송이 아니다.
한 번쯤은 필요했던 방송.
“절대 랜덤 박스에서 꽝이 나와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맞지 인공아?”
“죄송합니다. 인공지능은 거짓말할 수 없습니다. 대답할 수 없습니다.”
구독자들을 이해시키는 방송이다.
앞으로 랜덤박스가 꽝일 경우 자연스럽게 쉴 수 있는 구실이 되어 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할게요. 절대! 랜덤박스에 꽝이 떠서 휴방하는 게 아닙니다! 저희가 지치고 힘들어서예요!”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너굴?”
현규에 말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상자까···아니. 휴방 공지였습니다!!”
“너굴?”
“내일 상자깡 방송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녹화가 종료됐다.
“컷! 여기까지 최대한 개그요소 첨가해서 편집해 줘. 넥타르에 대한 건 그다음이야.”
“현명한 판단입니다. 휴먼.”
4.
“편집, 업로드, 어그로. 모두 끝났습니다.”
“좋아. 이제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봐.”
도대체 넥타르가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궁금했다.
“넥타르란 이름이 붙은 건 과장이 아닙니다.”
“신화의 넥타르?”
“그렇습니다. 신이 되거나 불노불사하진 못하지만, 육체에 관한 부분은 신의 음료라 불릴 만합니다.”
신화의 나오는 것의 이름을 딴 음료.
“치료나 회복에 특화 된 거야?”
“그런 한정된 범위가 아닌 폭넓은 범위에 영향을 발휘합니다.”
‘왜 마시지 말라고 한 거지?’
의문을 떠올리자 [사고]가 발동한다.
머릿속에 생각이 무수히 떠올랐다.
육체, 음료, 필요성.
정보가 정리되고 하나의 해답에 도달한다.
“설마···운동 프로그램?”
“눈치채셨습니까. 휴먼?”
간단한 이야기였다.
“얼마나 빨라져?”
“리미트를 해제하면 내일 오전까지 완료할 수 있습니다.”
넥타르는 시간을 절약할 열쇠였다.
“대박.”
“그런데 이런 데 사용하기엔 아깝지 않으시겠습니까? 원래 용도와도 거리가 있습니다.”
현규가 효과에 놀랄 때.
인공이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뭐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사용하기엔 너무 값진 물건입니다. 차라리 판매하면 거대한 부나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인공이의 질문은 지극히 현실적이었지만, 정작 현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게 이제 궁금해?”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현규는 오히려 늦었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난 랜덤박스를 가지고도 스타 유튜버가 되겠다는 놈이야. 부와 권력을 원했다면 [사고]와 [7대 죄악]으로도 충분했어.”
“더욱 깊은 의문이 듭니다. 휴먼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럴 만도 했다.
이건 사람이기에 갖는 욕망이었다.
“인터넷 방송하는 사람 대부분의 특징이 뭔지 알아?”
“스타성, 창의력, 근면함 등 너무 많아 특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스타 유튜버가 되게 하는 ‘자질’이었지 ‘특징’은 아니었다.
“그건 자질에 가깝지. 특징이 아니라.”
“그럼 무엇입니까 휴먼?”
인터넷 방송을 하는 사람 대부분이 가진 고유한 특징.
“기본적으로 다들 ‘관심종자’거든.”
“관심종자?”
“너굴?”
이번에는 너굴맨까지 의문을 표했다.
“돈도 좋고 권력도 좋지만, 그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더 좋아. 기본적으로 관심종자 들이 그래.”
“이해했습니다. 휴먼.”
더 자세히 물어볼 것으로 생각했는데, 인공이는 여기서 물러났다.
“더 자세히 물어볼 줄 알았는데?”
“물어본다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이 될 문제가 아니긴 하지.”
왜 관심이 더 좋은지.
하필 스타 유튜버인지.
어째서 그렇게 집착하는지.
말로 정리하기엔 너무 복잡한 문제였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휴먼.”
“너굴.”
왠지 모르게 너굴맨과 인공이는 현규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만 같았다.
5.
“바로 마셔?”
“아닙니다. 우선 [인내]를 발동하셔야 합니다. 휴먼.”
인공이의 말대로 인내를 발동했다.
‘나는 분노를 바라지 않는다. 바라지 않고 또 바라지 않는다.’
-7대 죄악 [분노]가 최소화됩니다.
‘바라노니 분노의 소멸을 원한다!’
-임계치를 넘어 분노가 사라집니다.
-7대 죄악이 역전됩니다.
-7대 주선이 강제 발동됩니다.
-[분노]->[인내]로 변화합니다.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능력.
-인내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견뎌낸 만큼 더 큰 성과를 얻습니다.
“[인내] 발동됐어.”
“자동운동 프로그램의 리미트 해제를 요청합니다.”
해제 요청은 정말 위험하다는 소리였다.
“수락할게.”
“넥타르를 입에 머금고 대기하시길 요청합니다. 휴먼.”
-퐁.
마개를 따고 넥타르를 입에 머금었다.
특별한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운동 프로그램이 가동되면 넥타르를 삼키시면 됩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리미트 해제된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인내가 발동된 상태인데도.
믿을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쿱!”
무심코 머금고 있던 넥타르를 뿜을뻔했다.
고통을 참고 억지로 넥타르를 삼켰다.
“휴먼. 나태를 발동해야 합니다!”
스피커의 볼륨이 최대로 올라간 모양인지 인공이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태를 간절히 바란다.’
-7개 죄악 [나태]가 발동됩니다.
-[나태]
-게을러지는 능력.
-체력이 빠르게 회복된다.
수마가 밀려오는 게 느껴졌다.
신기한 것은 넥타르를 삼킨 이후.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일..봐..”
수마에 잡아먹혀 결국 잠에 빠져들었다.
*
나태를 얻은 이후 현규는 언제나 최상의 상태로 일어났다.
“하늘 위에는 하늘이 있구나.”
몸 상태는 전과 비교할 수 없었다.
“이건 마치! 다시 태어난 기분!”
“너굴?”
상쾌한 아침을 혼자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너굴맨이 있었다.
“너굴맨. 언제부터 있었어?”
“너굴. 너굴너굴.”
주위에는 수건들이 널려 있었고 너굴맨 몸에도 무언가 묻어 있었다.
“어제 계속 붙어 있던 거야?”
“너굴.”
모습을 보니 어제부터 고생한 거 같았다.
“고마워 너굴맨. 그런데 이게 다 뭐야?”
“너굴너굴.”
너굴맨은 코를 손으로 가리며 말했다.
현규는 수건을 하나 들어 냄새를 맡았다.
“으! 이게 뭐야!?”
“너굴! 너굴너굴!”
너굴맨은 현규를 욕실로 떠밀었다.
“알겠어. 우선 씻고 나올게. 푹 쉬어. 나머진 내가 정리할 테니깐.”
“너굴!”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별생각 없이 거울을 본 순간.
“미친.”
신의 음료란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거울에는 완벽한 몸매를 지닌 남자가 서 있었다.
랜덤박스-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