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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93화 (293/300)

293화

경매 첫날의 오전은 대체로 무난하게 지나갔다. 오늘 등장할 작품들은 모두 회화였는데,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호크니의 작품은 오후부터 입찰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 때문에 오전에도 괜찮은 작품들이

여러 점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경매사의 외침에 반응하는 응찰자들의 열기는 그다지 뜨겁지 않았다.

“오전에 나오는 그림들 가운데 대작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서 그런가?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미지근하네. 다들 오후를 생각하고 몸을 사리는 것 같다.”

최수아의 말에 최서라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도 만약을 대비해서 애초에 매입을 고려했던 작품들을 그냥 통과시키고 있잖아요. 다들 이러면 오후에 시작될 호크니 경매의 낙찰가가 예상보다 높아질 것 같아요.”

“그러게 말이다. 사람들 생각이라는 게 대개 비슷하니까 아마 네 말이 맞을 거다.”

사람들이 오전에 돈을 아끼는 분위기로 볼 때, 오후에 시작될 경매에서 그 돈을 모두 쏟아 부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면 최서라의 말마따나 호크니 작품의 낙찰가가 예상보다 올라갈 게 뻔했다. 결국 청파

갤러리의 입장에서는 돈은 돈대로 쓰면서도 미리 점찍었던 그의 작품들을 모두 손에 넣기 힘들어졌다는 뜻이다.

“근데 경매 일정이 조금 이상하지 않으세요? 저 같으면 경매의 흥행을 위해서라도 호크니 작품의 입찰 순서를 오늘 오후가 아니라 내일 오후로 미뤘을 텐데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걸 노리는 사람들이 경매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거 아니에요.”

얼핏 일리 있게 들릴 수도 있는 얘기였지만 사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였다. 가뜩이나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경매장의 분위기 때문에 속이 상해 있던 최수아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넌 도대체 지금까지 뭘 보고 뭘 듣고 있었던 거냐? 지금 오후에 시작될 호크니 경매 때문에 오전 분위기가 계속 죽을 쑤고 있는 거 안 보여?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뭐해? 다들 나중을 생각해 몸을 사리면서

소극적으로 경매에 임하고 있는데?”

호크니의 작품이 비싼 값에 팔리면 그걸 내놓은 소장자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작품들의 낙찰가가 예상보다 낮아질 경우 경매 회사의 입장에서는 마냥 기뻐하기 곤란해진다. 그 작품들을

맡긴 고객들로부터 볼멘소리를 들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경매회사가 받는 수수료의 비율은 낙찰가가 높아질수록 줄어들어요. 그 때문에 특정 작품의 낙찰가가 지나치게 높아지면서 그 여파로 다른 작품들의 낙찰가가 내려가면 오히려 전체적인 수수료의 합계는 줄어들

염려가 있어요. 회사의 평도 나빠지고요.”

최서라가 얼른 상황을 설명했지만 이미 유세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진 뒤였다. 공연히 가볍게 입을 놀렸다가 최수아로부터 또 다시 야단을 맞은 유세희는 그때부터 계속 침묵을 지켰다. 오전 경매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그녀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시간에 누굴 잠깐 만나기로 했어요. 식사는 두 분이서 드셔야 할 것 같아요.”

그녀가 정말로 선약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최수아와 함께 밥을 먹기 싫어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얼굴에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이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크게 상했는지 유세희도 더 이상은

자신의 기분을 애써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저 버르장머리하고는 쯧쯧…. 명색이 기업을 운영하는 집안에서 자랐다는 아이가 어떻게 공무와 사적인 여행조차 구분하지 못할까? 그렇게 청파가 탐이 나면 미리미리 공부라도 해 두던지. 그림 그리는 것하고

갤러리 운영이 똑같은 건 줄 아나?”

유세희가 시늉뿐인 양해를 구하고 휑하니 사라지자 최수아가 혀를 끌끌 찼다. 기껏 설명했다가 고맙다는 인사도 듣지 못한 최서라도 속으로 고소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유세희가 혼자 사라지는 바람에 최수아와 최서라는 둘이서만 함께 점심을 먹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두 사람이 경매장 근처의 식당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을 때쯤 갑자기 최서라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 죄송해요, 고모. 잠시 전화 좀 받고 올게요.”

그녀는 얼른 최수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식당 밖으로 잠시 나갔다.

“네, 도윤 씨. 이 시간까지 안 자고 계셨던 거예요?”

전화를 건 사람은 도윤이었다. 뉴욕 현지 시각이 12시 20분이니 서울은 새벽 1시가 넘은 때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아까 경매장을 나오기 전에 짧은 문자를 보내놓기는 했지만 설마 그가 직접 전화를

걸어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침 할 일이 좀 밀려서 그거 정리하고 있던 참이에요. 근데 무슨 일이에요? 크리스티 경매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거예요?”

사실은 자다가 일어나서 문자를 보낸 사람이 최서라인 걸 확인하고 얼른 세수를 하고 정신을 가다듬은 뒤에 전화를 건 것이었다. 하지만 도윤은 마치 계속 깨어있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뚝 뗐다.

“고모하고 호크니 그림을 낙찰받기 위해 크리스티 경매장에 왔는데 여기 분위기가 갑자기 과열됐어요. 이틀 전에 호크니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기사가 나왔거든요.”

간단한 설명이었지만 도윤은 대번에 일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렇잖아도 호크니가 위독하다는 기사를 보고 그 역시 이번 경매가 만만치 않을 거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그림을 살지, 아니면 이번 기회는 그냥 보내고 다음을 기약할지 고민스러운 거예요?”

“네. 고모는 그냥 강행하시려는 것 같은데 저는 좀 생각이 달라서요. 가격이 너무 올라가면 낙찰을 받더라도 부담이 너무 커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여기 오니까 조금 재미있는 물건이 나와 있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프랑스 혁명 때 왕실이나 귀족의 집에서 흘러나온 게 분명한 금속 공예품들이 많아요.”

“호크니 그림을 포기하고 차라리 그 돈으로 금속 공예품들을 사고 싶다는 말이군요.”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하지만 고모가 이곳까지 온 이유가 애초에 호크니 그림을 사려던 것이었잖아요. 내놓고 말씀드리기도 어려워서 도윤 씨 생각은 어떤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도윤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림이나 금속 공예품을 직접 봤다면 모를까, 전화상의 내용만으로는 그도 쉽게 판단을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잠깐만요. 제가 일단 전화를 끊고 뉴욕 크리스티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도록에 올라온 그림하고 금속 공예품을 좀 살펴볼게요. 그런 다음에 다시 전화할게요.”

“거기 시간이 벌써 새벽일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주무셔야 할 텐데….”

“별로 피곤하지 않아요. 한 시간 정도면 되니까 얼른 살펴보고 나서 다시 전화 드릴게요.”

한 시간이면 점심 식사가 끝나고 크리스티 경매장으로 이동할 때쯤이었다.

“고마워요.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근사한 곳에서 식사 대접할게요.”

“정말이요? 그럼 그때를 기다릴게요. 일단 잠시 뒤에 다시 통화해요.”

도윤과의 통화를 끝내고 나자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놓이면서 저절로 미소가 배어나왔다. 이도윤이 미술 감정에 있어서는 천재인 게 맞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새삼 자신이 그를 엄청나게 신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서라가 자리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포크로 샐러드를 찍어먹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고모.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금속 장신구들 말이에요. 그거 경매 시작가가 너무 낮게 책정되어 있다는 생각 혹시 안 드세요? 입찰 순서도 내일 오후니까 이번 경매 마지막이잖아요?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그때 가면 응찰 열기가 확 식을 것 같은데 그럼 적정 가격보다 싸게 낙찰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최수아가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피식 실소를 터트렸다.

“꼭 사고 싶은 게 있는가 보구나? 하지만 경매에서 물건을 낙찰 받는 건 백화점 명품 쇼핑하고는 달라. 충분히 신중하게 생각해 본 다음에 응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거 알지?”

“제 입으로 신중하게 생각했다고 말씀드리기는 그렇지만 이번에는 제 눈을 믿어보고 싶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고모가 반대하실 경우에는 갤러리 이름이 아니라 제가 개인적으로라도 낙찰 받고 싶은 것들이 몇 점

있어요.”

평소와는 달리 의욕을 내비치는 그녀를 보고 최수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 정도야? 나는 사실 봐도 잘 모르겠던데. 우리나라 금동불상이나 장신구들이라면 몰라도 유럽 금속 공예품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을 둔 적이 없어서 말이야.”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프랑스 혁명 당시의 물건이 틀림없어요. 시작가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싸게 책정됐고요. 혹시라도 호크니 작품을 낙찰 받는데 실패하면 그 돈으로 내일 오후 경매에서 쓰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러자 최수아가 신중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내일 오후 경매에서는 유찰되는 물건들이 속출할지도 모르겠다. 물건만 진짜라면 좋은 공예품을 싸게 사들일 수 있는 기회이기는 한데…. 알았다. 오늘 경매 결과 보고, 자금에

여유가 생기면 네 말대로 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

“고마워요, 고모. 그렇다고 호크니 그림 경매에 소극적으로 임하실 필요는 없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갤러리 자금이 부족하면 제 돈으로라도 몇 점은 사둘 테니까요.”

“아무리 네 부탁이라도 예정에도 없던 공예품을 매입하기 위해 일부러 돈을 아낄 생각은 없다. 일단 이따가 시작될 오늘 오후 경매에만 집중하자. 공예품 낙찰은 그 다음에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았으니까.

알았지?”

“네.”

일단은 반 승낙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최서라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맴돌았다. 그런 그녀를 쳐다보며 최수아는 다시 한 번 피식 웃었다.

말과는 달리 그녀는 웬만하면 내일 오후에 있을 경매에서 가급적 최서라를 지원해줄 생각이었다. 앞으로 갤러리를 책임질 아이였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녀 스스로 결정해서 작품의 매입하는 경험을 쌓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런 경험이 쌓이면 최서라를 성장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 *

식당을 나와 경매장에 도착하자마자 도윤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최서라는 최수아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녀를 먼저 들여보낸 뒤 곧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네, 도윤씨. 지금 크리스티 경매장에 막 도착했어요. 도록을 보니까 어떤 거 같아요?”

길게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도윤도 그걸 느꼈는지 빠르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가격이 너무 올라간다 싶으면 그냥 포기하세요. 제가 보기에 호크니의 작품은 이미 충분히 고가에 거래되고 있어요. 5천만 달러 이상에 팔린 작품의 수만 해도 열점 가까이 되니까요. 아무리 그가 현대

회화의 거장이라고는 해도 미술 시장 전체에 인플레이션 바람이 불지 않는 한 작품 가격이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올라갈 가능성은 희박해요.”

“무리해서 사둔다고 해도 별 이익이 없을 거라는 말씀이죠?”

“미술품의 특성상 가격이 떨어지지는 않겠죠. 하지만 기다리다 보면 지금이 아니라도 비슷한 가격에 사들일 기회는 더 있을 거라는 뜻이에요. 그는 이미 일흔이 넘은 뒤로는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어요. 오래 전부터 작품 수가 늘어나지 않고 있으니까 지금 당장 사망한다고 해도 그로 인한 급등 효과는 별로 없을 거예요.”

도윤의 뜻은 충분히 전달받았다. 잠시 숨을 고른 그가 미안한 듯 몇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금속 공예품들은 사진만 봐서는 진위를 확실하게 구분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문양 자체는 서라 씨 말마따나 18세기 프랑스 양식이에요. 하지만 시작가가 낮게 책정되었다는 건 크리스티 쪽에서도

작품의 진위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했다는 걸 의미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지금 당장은 뭐라고 확실히 말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미안해요.”

“아뇨. 미안하다니요. 덕분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고마워요, 도윤 씨. 서울로 돌아가면 제가 한 턱 톡톡히 낼게요.”

“그 말을 믿고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경매 잘 하세요.”

“네. 들어가세요. 나중에 봬요.”

전화를 끊고 난 최서라는 이빨을 질끈 깨물었다. 이젠 전쟁터로 나갈 시간이었다.

오후 경매는 시작도 하기 전부터 열기가 뜨거웠다.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사람들이 경매장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모여 열심히 뭔가를 논의하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역시 만만치 않겠구나. 분위기가 너무 뜨거워.”

최수아도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쩌면 꼭 매입해야 될 작품의 수를 한두 점으로 제한해야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잘못하면 애매한 작품을 낙찰 받은 대가로 진짜 노렸던 그림은 놓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네 생각에도 그래. 아무래도 선택과 집중을 조금 더 좁게 가져가야 할 것 같다.”

두 사람이 걱정스러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단상에 경매사가 올라왔다. 오전과는 사람이 바뀌었는데, 최수아의 말에 의하면 크리스티가 자랑하는 유명한 경매사라고 했다. 이번 경매의 핵심이나 마찬가지인

순서이니까 그만큼 능력 있는 사람을 올린 모양이었다.

점심시간에 사라졌던 유세희는 경매사가 단상에 오른 뒤에야 비로소 나타났다. 그녀는 이미 자리에 앉아있던 두 사람에게 고개만 까딱 숙여 인사하고는 아무 말도 없이 최수아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최수아는 그런

그녀에게 뭔가 한 마디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곧바로 경매가 시작되는 바람에 그냥 입을 다물었다.

“자, 오후에 등장할 첫 작품은 로트 번호 31번, 데이빗 호크니의 ‘산타 모니카’라는 작품입니다. 시작가는 30만 달러이고 한 번 호가할 때마다 만 달러 씩 올라갑니다.”

경매사의 선언과 함께 곧바로 사람들의 응찰 팻말을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산타 모니카’는 말 그대로 LA 북서쪽 해변에 위치한 산타모니카의 풍경을 그린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캔버스를 가득 메운 것은 집 한 채뿐이었고 색채의 배합이나 터치 역시 그다지 성의가 보이지 않는

일종의 습작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티는 그 그림의 시작가를 무려 30만 달러로 책정했다.

“기가 막히는군. 저 그림은 기껏해야 50만 달러 정도가 적정 낙찰가야. 그런데도 사람들이 손을 내릴 줄을 모르는구나. 벌써 호가가 70만 달러를 넘겼어.”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응찰용 팻말을 들어올리는 바람에 경매사도 이곳저곳으로 계속 시선을 바꾸면서 호가를 높여 부르느라 바빴다. 전화는 물론이고 인터넷을 통해서도 실시간으로 호가를 높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산타 모니카’의 가격은 멈출 생각이 없이 올라갔다. 간신히 상승세가 주춤한 것은 호가가 80만 달러를 넘어가면서부터였다.

“91만 달러 한 번 갑니다, 91만 달러 두 번이에요. 91만 달러 세 번. 낙찰됐습니다.”

결국 호크니의 첫 작품은 최수아가 예상했던 것보다 두 배에 가까운 금액에 낙찰되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사람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다들 분위기가 과열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거친 흐름 밖으로 몸을 빼려는 기색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흐름이 이제 고작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들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흐름이 너무 거칠어. 여기서 한 번 몸을 빼면 다시는 발을 담그기 힘들 거야. 그냥 몸을 일으켜서 경매장 밖으로 나가는 게 낫다는 뜻이지. 그렇다고 무작정 흐름에 몸을 맡기면 빠져죽고 말 테고. 사람들이

모두 미쳐 날뛰니까 나 혼자 냉정을 유지하려고 애쓴다는 게 별 의미가 없을 것 같구나.”

최수아가 한숨을 내쉬며 내뱉은 말에 최서라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아무리 가격이 높이 올라간다고 해도 앞으로 호크니의 그림이 그보다 더 비싸질 거라 생각한다는 말씀이죠? 사두면 무조건 이익이 될 거라는 인식이 팽배한 거 같아요.”

“그래. 그리고 아마 그 생각이 틀리지 않을 거다. 지금이야 그저 호크니가 위독하다는 정도지만 그가 정말 죽기라도 하면 그림 값이 폭등할 게 번하니까.”

도윤의 말에 의하면 그럴 가능성은 낮아보였다. 그러나 최서라는 그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경매장 한복판에 있다 보니까 사람들의 뜨거운 분위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함을 유지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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