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첫날 경매가 끝나자마자 도윤은 곧바로 과일 바구니를 하나 사 들고 우진이가 입원한 병실을 찾아갔다. 우진이 아빠인 염한성은 아직 퇴근을 안 했는지 아이의 엄마인 김미현 혼자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우진이도 마침 깨어 있었다.
“어머, 이 박사님 오셨어요? 그냥 빈손으로 오시지 뭘 또 이렇게……. 우진아, 얼른 인사 드려. 우진이가 전시장에서 쓰러졌을 때 도와주신 박사님이셔.”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우진이는 엄마에게서 미리 들은 얘기가 있었는지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허리를 굽히며 배꼽 인사를 했다. 동작을 보니 몸을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없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 사이에 김미현은 도윤이 가지고 간 과일 바구니를 받아들더니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하나 꺼내서 권했다. 도윤은 그걸 손에 든 채로 물었다.
“혹시 후유증은 없습니까? 머리가 아프다거나 가슴이 답답하다든가 하는…….”
그의 말에 김미현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이라서 저도 은근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밥도 잘 먹고 화장실도 잘 갔어요. 지금 보기에는 별 이상이 없는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도 내일까지 경과를 지켜보고 다른 증상이 추가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퇴원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다만…….”
그녀는 말끝을 흐리더니 우진이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아이가 갑자기 음감이 좋아졌어요. 깜짝 놀랄 정도로요.”
“음감이 좋아졌다고요?”
“네. 어제하고 오늘 내내 아이 아빠랑 저한테 계속 우진이 안부를 묻는 전화가 걸려왔거든요. 그런데 애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벨 소리 음악을 듣더니 즉석에서 계이름을 줄줄이 읊어대는 거예요. 도미솔라 하면서……. 원래 절대음감을 가진 아이가 아니었는데.”
“우진이한테 절대음감이 생겼다는 말입니까?”
“아무래도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사실은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어요. 그래서 중국으로 발령을 받은 다음부터 집에서 우진이한테 피아노를 가르쳤거든요. 저를 닮아서 그런지 재주가 있긴 했는데 그래도 절대음감까지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제 기절했다가 깨어난 뒤로 갑자기 귀가 확 트인 모양이에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럼 좋은 일 아닙니까?”
“좋은 일이기는 하죠. 그래도 갑자기 너무 확 달라지니까 저로서는 걱정이 돼요.”
그렇군. 도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럴 거라고 짐작했던 일이기는 하지만 우진이가 악보에 담긴 말러의 능력을 전해 받은 게 분명했다.
사실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절대음감이 필요한 건 아니다. 그게 있으면 조금 더 유리한 게 사실이기는 하지만 뛰어난 작곡가들 가운데 상당수는 오히려 상대 음감이 뛰어난 사람들도 많았다. 눈이 밝고 글씨를 반듯하게 잘 쓴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쓴다는 보장이 없는 것처럼, 절대음감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뛰어난 음악가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왕 받은 능력이니까 잘 개발할 수 있으면 좋겠네. 근데 우진이가 말러로부터 받은 능력이 절대음감 하나뿐일까?’
말러는 살아생전 작곡가보다는 지휘자로 더 유명했다. 그가 남긴 곡들이 크게 평가를 받은 것은 오히려 사망한 이후였는데, 그 점을 감안하면 말러가 남긴 능력이 단순히 절대음감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한 방법은 간단했다.
“우진이가 피아노를 배웠다니까 얼마나 잘 치는지 갑자가 궁금해지네요. 애가 피아노 치는 걸 잠깐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도윤이 갑자기 우진이의 피아노 연주를 듣겠다고 하자 김미현이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우진이 피아노 연주를요? 안 될 건 없지만 그래도 여긴 병원인데…….”
“1층 휴게실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습니다. 가끔 지역 봉사활동 단체에서 나와 장기 입원 환자들을 위한 공연을 하기도 하거든요. 제가 관리인한테 허락을 받을 테니까 잠깐 한 번 쳐보게 해보시죠? 갑자기 절대음감이 생겼다니까 정확히 뭐가 달라졌을지 궁금해서요.”
아마 도윤이 아닌 다른 사람의 부탁이었다면 김미현도 대번에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아픈 아이를 급하게 병원까지 데려오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인데다 무엇보다 조만간 아이 아빠의 직장 상사하고 일가족이 될 사람이었다. 그녀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한 번 우진이한테 물어볼게요. 아직은 좀 걱정이 돼서…….”
그녀는 마지못해 묻는다는 기색이 뚝뚝 묻어나오는 표정으로 아이에게 물었다.
“우진아, 너 1층에 그랜드 피아노가 있다는데 한 번 쳐볼래? 피곤하거나 힏들 것 같으면 꼭 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아이는 그런 엄마의 은근한 기대를 단번에 무너뜨렸다.
“네. 좋아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튀어나왔다. 김미현이 애매한 웃음을 흘리며 다시 물었다.
“정말 괜찮겠어? 조금이라도 몸이 불편하면 다음에 해도 돼.”
“저 튼튼해요. 의사 아저씨도 금방 퇴원할 거라고 했어요. 괜찮아요.”
결국 김미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아이에게 신발을 신기고 침대에서 내려오게 했다. 엄마의 내심을 알리 없는 우진이는 오로지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표정이 역력했다. 아들에게 직접 피아노를 가르쳤던 엄마로서도 처음 볼 정도로 적극적인 자세였다. 그녀가 도윤에게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피아노를 배운 지 이제 겨우 일 년 조금 넘었거든요.”
“서투르면 어떻습니까? 내키지 않는 부탁이었을 텐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윤도 김미현이 아이를 걱정한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경매가 끝나는 대로 귀국해야 하는 그로서는 따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는 앞장서서 1층 휴게실로 내려갔다. 다행히 관리자는 별다르게 싫은 내색 없이 선선히 피아노 덮개를 열어주었고, 곧이어 엄마와 함께 내려온 우진이가 피아노 의자 위에 앉았다.
* * *
처음에 우진이가 연주한 곡은 흔히 ‘고양이 왈츠’로 알려진 간단한 곡이었다. 아이가 앙증맞은 손가락을 이리저리 옮겨가면서 건반을 두드리는 것을 본 김미현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연주를 지켜봤다. 평범한 연주였기 때문이다.
사실 제아무리 절대음감이 생겼다고 해서 갑자기 어려운 곡을 척척 쳐낼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재능이 있으면 곡을 더 잘 해석할 수 있을지 몰라도 뛰어난 연주는 천재에게도 피나는 연습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다소 심드렁한 표정으로 아이의 연주를 듣고 있던 그녀의 표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변했다. 처음에는 기억하고 있던 악보 그대로 건반을 두드리던 우진의 터치가 점점 달라졌던 것이다. 템포가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는 건 물론이고 리듬이 제멋대로 바뀌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조를 변경하기까지 했다. 장조가 단조로 바뀐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제멋대로 원곡을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불협화음 없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슨 모짜르트냐? 이제 고작 여섯 살짜리 아이에게 저게 가능해?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던 도윤 역시 기가 막혀서 속으로 혀를 찼다.
“제가 똑바로 듣고 있는 게 맞는다면 우진이가 지금 변주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가 은근슬쩍 묻자 잠시 넋을 놓고 있던 김미현이 화들짝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네? 아, 네. 확실히 그러네요. 하지만 쟤가 저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템포와 리듬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조까지 바꾸고 있어요. 저 정도면 제가 보기에는 타고난 천재인 것 같은데, 어머니가 보시기에는 어떠세요?”
“그, 그렇죠. 저 정도면 분명 천재가 맞기는 한데, 우리 아이가 왜 갑자기…….”
김미현은 하루 사이에 달라진 아들의 음악적 재능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우리 아이가 저런 천재였다고? 그럼 나는 그동안 아이에게 뭘 가르친 거지? 엄마가 피아노를 가르치는 바람에 오히려 그동안 아이의 재능을 막았던 거 아냐? 내가 나쁜 엄마였던 거야?
그녀의 얼굴에 자책의 감정이 드러나는 것을 본 도윤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저는 음악을 잘 몰라서 이런 말 드리는 게 어떨까 싶기는 한데, 우진이가 퇴원한 뒤에 조금 더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가르쳐 보는 건 어떨까요?”
그의 물음에 김미현이 다시 한 번 흠칫 놀라더니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할 것 같네요. 하지만 그럼 전문적인 피아노 선생님을 모셔야 할 거예요.”
“왜요? 어머니가 계속 가르치시지 않고요. 피아노 전공이시잖습니까?”
“오늘 우진이가 피아노를 치는 걸 보니까 그동안 오히려 제가 아이의 앞길을 막아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요. 역시 부모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북경에서 적당한 선생님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요즘 중국 연주자들의 수준도 세계적인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북경만 하더라도 실력이 뛰어난 선생님들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려면 돈이…….”
김미현 스스로가 피아노를 전공했기 때문에 좋은 선생님한테 배울 경우 레슨비가 만만치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남편 월급으로 그걸 다 감당할 수 있을까? 그녀는 새삼 아이의 장래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동시에 일어났다.
우진이의 피아노 연주는 무려 삼십분이 넘게 계속되었다. 아이가 한 곡을 치다가도 흥이 나면 리듬은 물론이고 멜로디까지 바꿔가며 연주에 열중하는 바람에 적당히 끊을 시간을 놓친 것이다. 나중에는 조그만 아이가 피아노를 치는 걸 지켜보던 환자와 간호사들까지 박수를 치기 시작해서 휴게실이 마치 작은 연주장처럼 변했다.
결국 아이가 아직 환자라는 사실을 자각한 김미현이 중간에 억지로 우진이를 말리면서 간신히 연주를 멈출 수 있었다. 아이의 손을 붙잡은 그녀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진이, 앞으로도 계속 피아노 공부할래? 엄마는 우진이가 이렇게 피아노를 잘 치는지 몰랐네? 엄마가 우리 아들한테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서 미안해.”
“엄마는 안 미안해요. 저 피아노 공부 할래요. 피아노 치는 거 재미있어요.”
엄마는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에 눈물까지 글썽이는데, 아이는 그저 신이 나 있었다. 그 자신도 피아노 치는 게 이렇게까지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처음 깨달은 듯한 표정이었다.
“정말 제대로 피아노를 공부할 거야? 그러려면 전보다 훨씬 오래 해야 돼. 매일 같이 연습하는 건 물론이고. 그래도 되겠어? 우리 아들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까?”
“피아노 재미있어요. 하루 종일 연습해도 저는 좋아요.”
“정말?”
“정말이요.”
아무리 아이가 모짜르트 뺨을 때릴 정도로 재능이 충만하다고 해도 하루 종일 피아노를 연습하는 건 무리다. 설사 천재라고 하더라도 아이가 그렇게 오랫동안 집중력을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한 얘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말러의 능력을 물려받은 우진이가 그동안 자신을 계속 가르쳐왔던 엄마마저 깜짝 놀랄 정도로 피아노에 강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도윤이 아는 한 유물에 담긴 능력이 사람의 인성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다만 자신이 잘 할 수 있게 된 일에 대해 강한 호기심이나 의욕을 보이는 경우는 많다. 아마 새로 받은 능력을 조금 더 개발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것 같았다.
도윤의 경우에는 다산이 물려준 지적인 능력을 이용해 경학이나 과학이 아니라 미술사를 공부했다. 전해 받은 능력이 인생의 방향까지 완전히 결정짓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능력을 받았어도 그걸 어떻게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그걸 받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얘기였다.
두 사람은 피아노를 치느라 약간 기운이 빠진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병실로 올라갔다. 우진이를 침대 위에 누인 김미현에게 도윤이 진지한 목소리로 권했다.
“우진이가 음악에 소질이 있으면 한 번 적극적으로 공부를 시켜보시죠. 훌륭한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말에 김미현이 약간 맥이 빠진 웃음을 지었다.
“그러기는 한데, 사실 요즘 세상에 음악을 한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쉽지 않아요. 제가 피아노를 전공해서 아는데, 워낙 재능 있는 아이들이 많거든요. 돈도 적지 않게 들고…….”
“그래도 일단 시켜보시죠. 만약 정말 재능이 있어 보이면 제가 후원하겠습니다.”
“이 박사님이요?”
“네. 마침 제가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재단을 하나 만들었거든요. ‘서윤 문화 재단’이라고 우진이처럼 재능 있는 아이들이 마음껏 뻗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재단입니다. 재단 안에 그랜드 피아노를 연습할 수 있는 연습실을 하나 만들 생각인데, 우진이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거기 와서 피아노를 칠 수 있도록 말해 놓겠습니다. 필요하면 레슨비도 지원하겠습니다.”
레슨비까지 지원한다는 말에 김미현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말씀만 들어도 정말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건 일단 우진이가 공부하는 걸 봐서 결정할게요. 저 나이 때는 어떤 것에 흥미를 느끼다가도 금세 질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기는 하지요. 하지만 정말 재주가 있어서 후원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최대한 돕겠습니다.”
아마 우진이는 여간해서는 피아노를 배우는 일에 싫증을 내지 않을 것이다. 말러가 남긴 재능이 음악에 관련된 것이라면 본능이 그 재능을 개발하도록 밀어붙일 테니까. 도윤은 석훈을 비롯한 재단 직원에게 우진이를 계속 관찰하도록 지시하기로 했다. 마침 아이 아빠가 미래 전자 직원이라서 사정을 알아보는 게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 * *
이틀 동안 계속된 경매는 처음에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끝냈다. 원래 지구상에 경매 제도라는 게 처음 생긴 이후로, 흔히 말하는 걸작이나 명작들은 한 번도 가격이 떨어진 적이 없었다. 거기다 아리스 옥션의 경매는 유찰된 작품이 거의 없을 정도로 큰 성과를 거두었고, 덕분에 경매를 주관한 회사는 엄청난 수수료를 챙길 수 있었다.
도윤은 경매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한국으로 귀국했다. 음력설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바쁜 발길을 다시 한 번 우바오량과 왕이푸가 잡았다. 두 사람은 도윤이 귀국하는 날, 공항으로 가려는 그를 다시 한 번 식당으로 불렀다. 점심을 같이 먹자는 얘기였는데, 그 때문에 도윤은 비행기 시간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브라힘 왕세제가 이 박사를 리야드로 초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무슨 일로 명성이 자자한 감정가들을 한 자리에 모으려고 한 건지 나중에 좀 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들도 마찬가지야? 도대체 다들 왜 이래? 두 사람 모두 크리스틴처럼 이브라힘의 초대에 큰 관심을 보였다. 도윤은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정중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부탁에 대한 대답은 행사에 참석한 뒤에나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솔직히 초대자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옮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건 인간적인 도리일 뿐 아니라 업계의 불문율과도 같은 것이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그렇게 어렵다고만 하지 말고, 우리가 그동안 쌓은 정을 생각해서라도…….”
“죄송합니다. 두 분 역시 우리끼리 나눈 얘기를 남에게 전한다면 꺼림칙하지 않겠습니까? 그 문제는 아무래도 초대해주신 이브라힘 왕세제의 의사를 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적당히들 좀 하지? 내가 당신들 꼬봉은 아니잖아?
도윤의 태도가 단호한 것을 확인한 우바오량과 왕이푸는 떫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더 이상 밀어붙이지 못했다. 그 뒤로는 다소 무미건조한 대화만이 오고갔다. 그들과 헤어진 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도윤은 코웃음을 쳤다.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다들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사는지 모르겠네.”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인간의 마음속은 여전히 요지경이었다. 특히 돈이 많고 큰 권력을 지닌 자들의 마음속은 더욱 그랬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