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201화 (201/300)

201화

<31. 프로포즈>

성당에 들어갈 때는 입구를 지키는 사제들이 있었지만 나갈 때는 아무도 없었다. 그 사제들이 어디론가 도망을 쳤는지, 아니면 총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사살을 당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사실 그들의 행방은 상관없었다. 지금 도윤과 석훈에게는 그저 끔찍한 학살의 현장으로 변한 성 게오르기오스 성당을 빨리 떠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먼저 나갔던 사람들은 벌써 죄다 이곳을 떠났나 보네요?”

주차장을 메웠던 차들 역시 대부분 사라졌다. 성당 밖으로 뛰쳐나갔던 참석자들이 모두 이곳을 떠났다는 뜻이다. 수십 대의 차량들이 가득 들어찼던 주차장에는 도윤의 SUV를 비롯한 몇 대의 차들만이 어둠 속에 버려진 것처럼 듬성듬성 서 있었다.

도윤은 석훈을 차에 태운 뒤 서둘러 현장을 떠났다. 늦든 빠르든 이미 탈출한 사람들의 신고를 받은 경찰들이 조만간 이곳을 덮칠 것이다. 그 전에 성당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은 물론이고,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빨리 에티오피아를 떠나는 게 지금으로서는 상책이었다.

하지만 호텔로 돌아온 두 사람은 그 날 밤을 거기서 묵어야만 했다. 랄리벨라에서 아디스아바바로 향하는 국내선 비행기는 하루에 한 대뿐이었는데 다음날 오전이나 되어야 그것을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윤은 서두르지 않고 하룻밤을 기다렸다가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해서 또 다시 열 몇 시간 동안 운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두 사람은 차례대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마주앉았다. 도윤이 먼저 몸을 씻었고 그의 뒤를 이어 석훈이 샤워를 마쳤다. 녀석이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나왔을 때, 도윤은 소파에 앉은 채로 뭔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압둘이 사제의 몸에서 꺼내 건네준 블루 다이아몬드, 일명 시바의 여왕이라는 보석이었다.

“그거 진짜 다이아몬드 맞죠? 몇 캐럿이나 될 거 같아요?”

석훈이 도윤의 맞은편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내가 보기에는 진짜 다이아몬드가 맞아. 무게는 정확히 재어봐야 알겠지만 대략 30캐럿이 약간 넘을 것 같다.”

“우와! 30캐럿이요? 그럼 그게 도대체 얼마짜리예요?”

30캐럿이 넘는다는 말에 석훈의 입이 떡 벌어졌다. 잘 연마된 중급 정도의 다이아몬드 1캐럿이 600~700만 원정도 한다. 하지만 보석의 값은 무게가 커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30캐럿이면 가격이 얼마나 나갈지 얼른 짐작이 되지 않았다. 석훈의 반응에 도윤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걸 그대로 팔면 무게에 비해 값을 제대로 받기 힘들 거야. 커팅이 너무 엉망이라서 현재로서는 보석이라기보다는 그거 굉장히 단단한 돌멩이에 지나지 않거든.”

“커팅이 엉망이라고요? 그럼 다시 잘라내야 된다는 거예요?”

“이걸 제대로 된 보석으로 만들고 싶다면 당연히 그래야지. 연마 비용이 엄청나게 들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게 보석에 대한 예의라고 할 수 있어.”

“얼마나 잘라내야 하는데요?”

“내가 보석 장인도 아닌데 그것까지 알 수 있겠냐? 하지만 지금 상태로 봐서는 제대로 커팅할 경우 10캐럿 정도는 무게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색깔이나 투명도는 뛰어나니까 솜씨 있는 장인에게 맡기면 좋은 보석이 될 수 있을 거야.”

“10캐럿이나요? 아까워라! 그 만큼이나 잘라내면 돈으로 얼마나 손해 보는 거예요?”

“손해를 보는 게 아니야. 오히려 그렇게 해야 제대로 된 값을 받을 수 있다니까? 30캐럿짜리 시바의 눈물보다는 제대로 커팅한 20캐럿짜리 블루 다이아몬드의 가격이 훨씬 비쌀 거다. 보석은 금하고 달라서 무게만 가지고 값을 매기는 게 아니거든.”

흔히 보석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4C라고 한다. Carat(무게), Clarity(투명도), Color(색상), Cut(연마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정해서 등급과 가격을 매기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시바의 눈물은 무게와 투명도, 색상은 모두 뛰어나지만 커팅이 너무 엉성했다. 이 상태로는 절대로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때 석훈이 조금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그거 ‘시바의 눈물’이라고 이름까지 붙어 있는 걸로 봐서는 무슨 역사적 유물 같은 거 아닐까요? 그런 건 함부로 손대지 않는 게 낫지 않아요?”

그의 말에 도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타당한 지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진짜로 솔로몬이나 시바의 여왕과 연관이 있는 유물이라고 보지 않았다. 비록 연마 상태가 조악하기는 하지만 기원전에는 이 정도라도 다이아몬드를 세공하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연마 상태로 봐서는 아무리 늦어도 중세 이전에 만들어진 물건이 분명해 보였다.

‘사람의 손이 닿은 흔적이 뚜렷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유물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이 다이아몬드에 감긴 능력은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게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자연이 오랜 세월을 거쳐 빚어낸 천연 유물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지구가 남긴 유물?’

도윤은 석훈이 몸을 씻는 동안 다이아몬드에 남겨진 잔류 기억들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이 보석이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 계기가 될 만한 것들은 없었다. 만약 시바의 눈물에 그것을 가지고 있던 사람의 능력이 남았다면 그에 관한 잔류 기억이 남아있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 정도로 강렬한 경험은 대개 쉽게 흩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바의 눈물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그것이 땅 속 싶은 곳에서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자연스럽게 깃든 것이라는 뜻이었다. 도윤으로서도 이런 형태로 잠재된 능력은 처음 접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든 이 다이아몬드가 말 그대로 자연의 축복이 낳은 결과라는 점은 분명했다.

도윤이 굳이 시바의 눈물을 새로 커팅하려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는 압둘로부터 처음 보석을 전해 받을 때부터 어설픈 커팅이 오히려 능력의 발산을 방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나마 원석 상태였다면 능력이 거의 발산되지 않았을 테니까 아예 손을 대지 않은 것보다 낫기는 해. 하지만 이왕 손을 대려면 확실히 댔어야지. 이 상태로 두는 건 너무 아까워.’

그는 시바의 눈물을 잘 세공해서 최서라에게 줄 생각이었다. 반지로 만들기에는 너무 크니까 사제가 가지고 다니던 것처럼 목걸이 형태로 만드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최고의 장인들에게 보석을 맡기는 게 중요했다. 제대로 작업할 수만 있다면 시바의 눈물은 아마 최고의 프로포즈용 선물이 될 것이다.

“근데, 형. 압둘이 죽인 그 사제 말이에요. 그 사람 정말로 치료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거 맞을까요? 본인 입으로는 진통 효과를 내는 능력만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그것만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멀리까지 와서 집회에 참석한다는 건 좀 이상하잖아요?”

도윤이 한참 동안 시바의 눈물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자, 석훈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도윤이 씩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다이아몬드를 들어보였다.

“아마 이 보석 덕분이었을 거다. 본인은 물론이고 이걸 선뜻 건네준 압둘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지만.”

“시바의 눈물이요? 그게 치료의 힘을 가지고 있단 말이에요?”

석훈이 눈을 크게 뜨자 도윤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치료의 힘은 아니야. 나도 조금 더 살펴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겠지만,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건강유지 효과인 것 같아. 잔병치레를 하지 않고 몸의 활력을 유지시켜주는 정도?”

“그럼 그게 유물이라는 뜻이에요?”

“글쎄다. 나름 오래된 거니까 일종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이 보석에 담긴 건강유지의 능력은 사람으로부터 전해진 게 아니야. 그보다는 이 보석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능력이라고 보는 게 맞을 거야.”

“사람이 만든 유물도 아닌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요? 그런 것도 가능해요?”

“가능하니까 만들어졌겠지. 하지만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는 몰라. 나도 처음 보는 거니까. 어쨌든 이 보석이 담고 있는 능력이 사람과 무관하다는 건 분명해.”

도윤의 설명을 들은 석훈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또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근데 형은 어떻게 그 보석에 담긴 능력이 건강유지라는 걸 알았어요? 형이 저번에 그랬잖아요. 유물에 담긴 능력은 그걸 전해 받은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른다고.”

도윤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 요즘 들어 질문이 날카롭네?

그는 어떤 유물이 능력을 담고 있는지의 여부를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의 성격이나 특성까지 아는 건 불가능했다. 그건 능력을 전해 받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윤은 시바의 눈물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는 동안, 거기 담긴 능력의 정체를 대충 느낄 수 있었다. 능력을 전해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나도 솔직히 잘 몰라. 애초에 나한테 유물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그걸 주인에게 전해줄 수 있는 링커의 능력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아마 이 보석에 담긴 능력에 특별한 주인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주인이 없다고요? 그럼 다른 사람에게 옮겨줄 수도 없다는 뜻이에요?”

“내 생각에는 그래. 대신 이걸 가지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활력이 북돋워지면서 건강을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되기는 할 거야. 그리고 너나 장은서처럼 유물의 능력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시바의 눈물에 담긴 힘을 잠시 누군가에게 머물게 해줄 수 있을 테고.”

“그건 또 어떻게 아는 거예요?”

“어떻게 알긴? 성당에서 봤잖아? 그 사제가 이걸로 사람들을 속이는 걸. 그 환자들은 아마 병의 증세가 잠시 완화되는 걸 가지고 자신이 치료되었다고 생각했을 거야.”

시바의 눈물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치료가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약간의 노화방지 효과와 함께 병이 악화되는 걸 잠시 막아주기는 하겠지만 도윤처럼 아예 완치시켜주는 힘은 없었다. 그것은 말하자면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 그대로의 건강한 상태를 유지시켜주는 힘과 비슷했다.

* * *

다음날 오전, 도윤과 석훈은 비행기를 타고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했다. 그들은 거기서 곧바로 새로 비행기 표를 끊어 에티오피아를 떠났다. 그들이 공항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TV에서는 랄리벨라에서 벌어졌던 참극이 뉴스 속보로 나오고 있었다.

열 구가 넘는 시체가 다른 곳도 아닌 성당에서, 그것도 하필이면 마스켈 축제 기간에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에티오피아 전체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게다가 시체들이 하나같이 에티오피아인이 아닌 외국인이라는 사실도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아직은 죽은 사람들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모양이네요? 다니엘 로스차일드가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영국이 한바탕 들썩일 텐데 말이에요.”

뉴스에서는 아직까지 사망자의 신원이 모두 불명이라고 나왔다. 아마도 압둘과 그의 부하가 사망자들이 가지고 있던 여권을 비롯해서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물건들을 모두 회수해서 처리한 모양이었다. 하긴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는 편이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에티오피아를 빠져나갈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병을 치료해준다고 설치던 그 사제들이 누군지는 궁금했는데…….”

뉴스를 보며 중얼거리던 석훈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그 사제들은 어떻게 그런 가짜 집회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걸까요? 만약 그 자의 능력이 본인이 자백했던 거처럼 고통만 잠시 멈춰주는 정도였다면 결국 치료는 못해준다는 뜻이잖아요? 더구나 눈치를 보니까 굉장히 많은 돈을 내야 집회에 초대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사람들이 어째서 계속 속아 넘어갔던 거죠?”

“같은 사람들이 속은 게 아닐 거야. 계속해서 집회 참가자들이 바뀌었겠지. 그리고 본인은 몰랐겠지만 사제가 진통의 능력을 쓸 때마다 시바의 눈물에 담겨 있던 건강 유지의 힘이 환자에게 옮겨간 것 같아. 그 덕분에 치료는 안 되지만 집회 참석 뒤에는 한 동안 병세가 악화되지 않는 상태를 유지했을 거야. 결국 잠시 머물던 능력이 사라지면 사망했을 테지만.”

기도를 받으면 병세가 악화되지 않고 고통이 줄어든다. 그럴 경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병이 나았다고 착각하기 십상이다. 한 번 집회에 참석해서 나름대로 효과를 보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주변의 다른 지인들에게 입소문을 내면 시간이 갈수록 집회 참석을 원하는 이들의 수는 더욱 더 늘어날 것이다.

“나 같으면 한 번 참석했던 사람들에게는 다시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을 거야. 어느 정도 입소문이 난 뒤에는 어차피 참석 희망자들의 수가 굉장히 많았을 테니까 굳이 그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부를 사람들은 넘쳐났겠지.”

도윤의 말에 석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결국 그 참 십자가라는 통나무보다 이 다이아몬드가 훨씬 귀한 물건이라는 거잖아요. 압둘이라는 그 사람은 진짜 보물을 넘겨주고 쓰레기를 들고 간 셈이네요?”

석훈의 말에 도윤은 그만 웃고 말았다. 그로서는 여전히 집회에서 보았던 통나무가 예수의 참 십자기인지 아니면 석훈의 말마따나 쓸모없는 쓰레기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그 통나무가 예술품이 아니며 아무런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 분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참 십자가가 아니라는 보장 또한 없었다.

그는 처음 시바의 눈물을 건네받을 때부터 즉석에서 그것이 심상치 않은 물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유물이 간직한 능력을 알아볼 수 없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집회에서 목격한 기적이 통나무로부터 비롯되었을 거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안목이 있는 자만이 보물을 차지할 수 있는 법인데, 이번 일이 영락없이 그런 경우였다.

* * *

아디스아바바를 떠난 두 사람은 한국이 아니라 영국으로 향했다. 그곳에 시바의 눈물을 세공해서 목걸이로 만들어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윤은 아디스아바바 공항에서 먼저 전화를 걸어 허락을 구했고, 목걸이를 만들어 줄 두 명 가운데 한 명으로부터는 일단 흔쾌히 승낙을 받았다. 나머지 한 명은 물건을 본 다음에 세공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도윤과 석훈은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택시를 타고 듀란 상점으로 향했다. 영국 전체에서 손꼽히는 금속 공예의 장인이자 최서라의 스승이기도 한 아이작 듀란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흔쾌히 일을 맡아주겠다고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윤은 듀란을 보자마자 먼저 정중히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그러자 듀란이 껄껄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자가 예물로 받을 물건이라는데 당연히 내가 힘을 써야지. 아참, 인사하게. 고든 뱅크스네. 영국에서 보석 세공 실력으로는 이 친구를 따라갈 사람이 없을 거야.”

“영국에서라고? 전 세계라에서 나를 따라올 사람은 없어.”

그의 옆에 서 있던 노인이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척 봐도 자신의 실력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듀란이 소개한 고든 뱅크스라는 노인은 키가 작고 턱이 뾰족한 사람이었다. 원래의 머리카락 색깔이 무엇이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온통 백발인 그는 얼핏 보기에 듀란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였다. 하지만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빛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여전히 초롱초롱했다.

“블루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온다고 들었네. 물건부터 먼저 보세. 다이아몬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세공을 받지 않겠다고 한 얘기는 들었겠지?”

“물론입니다. 최고의 장인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려면 역시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어야 하겠지요. 잘 부탁합니다.”

도윤은 씩 웃으며 품속에서 시바의 눈물을 꺼냈다. 순간 약간 심드렁하던 뱅크스의 눈빛이 확 바뀌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보석을 건네받은 뒤 주머니에서 감정용 외눈 확대경을 꺼내 착용한 뒤 세심하게 그것을 살펴보았다. 한참 동안 시바의 눈물을 감정하던 그가 마침내 나지막한 탄성을 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하군. 무엇보다 색깔과 투명도가 아주 뛰어나. 이 정도면 최상급(Excellent)을 받겠는 걸? 이런 보석을 도대체 어디서 구했나?”

뱅크스의 빌문에 도윤이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물건의 출처는 비밀입니다. 하지만 남의 것을 훔치거나 빼앗은 것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세공을 맡아 주시겠습니까?”

원래 사제의 것이기는 했지만 도윤은 그걸 빼앗거나 훔치지 않았다. 다만 압둘이 먼저 그것을 사제의 목걸이에서 떼어내 그에게 건네주었을 뿐이다.

그의 말에 뱅크스가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석을 세공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귀한 물건을 만질 기회를 놓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하지만 세공을 하면 아무래도 무게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거야. 그건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그걸로 목걸이와 반지를 하나씩 부탁드려도 될까요? 반지에 쓸 다이아몬드는 2, 3캐럿 정도면 됩니다.”

그 말에 시바의 눈물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피던 뱅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떼어내면 그 정도 크기의 반지를 만드는 건 가능하겠군. 그런데 이 정도 보석으로 만든 목걸이라면 보통은 이름이 있어야 해. 어떤 이름을 붙였으면 좋겠나?”

도윤이 씩 웃더니 말했다.

“서라의 기쁨으로 해 주십시오.”

“서라의 기쁨? 서라가 목걸이와 반지를 받을 아가씨의 이름인가?”

“네. 세상에서 이 보석들과 가장 잘 어울릴 여인의 이름이기도 하죠.”

도윤은 블루 다이아몬드가 시바의 여왕과는 무관한 물건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렇다면 굳이 원래의 이름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프로포즈 용 선물에 눈물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서라의 기쁨’은 새로 다듬어질 보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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