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인천 공항에 도착한 한대길 일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엄청난 수의 기자들이었다. 하지만 기자들보다 앞서 서울 중앙 지검의 검사와 수사관들이 입국장 안에서 그들을 만났다. 담당 검사는 세 사람 모두에게 각각의 이름으로 발부된 소환장을 내밀었다.
“지금 밖에 기자들이 잔뜩 몰려 있어서 나가시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소환에 응하시면 저희들이 검찰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한대길이 씁쓸하게 웃으며 물었다.
“소환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 거요?”
“그럼 저희는 이대로 돌아가야겠죠. 그리고 세 분은 밖에 있는 기자들을 뚫고 댁까지 돌아가셔야 할 겁니다. 물론 소환장은 나중에 재차 발부될 테고요.”
한대길이 실소를 터트리더니 포기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검찰로 갑시다. 하지만 내 아들은 중간에 내려주시오. 그래도 가족 중에 한 명은 집에 들러야 하지 않겠소? 어차피 아는 것도 별로 없는 녀석이니 나중에 불러도 될 겁니다.”
검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수사관들이 곧바로 세 사람을 별도의 출구로 인도했다. 덕분에 기자들은 허탕을 치고 한치호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검찰로 소환됐던 한대길과 성진아는 다음날 새벽까지 조사를 받은 다음 일단 귀가했다. 이번에는 검찰청 입구에서 진을 치고 대기하던 기자들의 마이크 세례를 피할 수 없었지만 두 사람 모두 차에 올라탈 때까지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날 오후, 이번에는 한치호가 검찰로 소환되어 밤늦게까지 조사를 받았다.
세 사람 가운데 누구도 체포되지 않은 채 검찰 수사가 진행되었다. 그 사실을 놓고 각종 언론에서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지만 검찰은 묵묵부답이었다. 다만 중국 측에서 넘어온 심문 자료와 증거를 바탕으로 열심히 수사하고 있다는 짧은 브리핑을 한 차례 했을 뿐이다.
귀국한 지 일주일가량 지난 어느 날 저녁, 한대길이 아내와 아들을 거실로 불러 모았다. 한참 동안 한숨을 내쉬고 들이쉬던 그가 무거운 목소리로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공천은 이미 탈락이 확정됐고, 이참에 아예 정계를 은퇴하라는 압력이 들어왔다. 기자들을 모아놓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라는 얘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검찰에서 바로 구속 영장을 신청할 모양이다.”
성진아가 펄쩍 뛰며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누가요? 누가 감히 당신한테 그런 걸 요구한 거예요?”
한대길이 손가락을 들어 위를 가리켰다.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뜻이라더군. 당내에서도 같은 얘기가 나왔고.”
“완전히 내치겠다는 거예요? 청와대든 국회든 당신이 입을 열면 무사하지 못할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같이 죽자고 하지 그랬어요?”
한대길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봤자 죽는 건 나 하나뿐이야. 이미 알고 지내던 언론사 간부들이 모두 등을 돌렸어. 그렇다고 내가 직접 당 중진들이나 청와대 고위 인사들을 검찰에 고소할 수도 없잖아? 고소해봤자 먹힐 리도 없을 테고.”
“그래서 이대로 앉아서 죽겠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들인 공이 얼만데…….”
“버틸 상황이 아니야. 선거가 코앞이잖아? 나 때문에 당 전체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져서 총선 승리가 불투명해졌다는 전망이 나왔어. 청와대에서도 부담을 많이 느끼는 눈치고. 계속 버티면 나를 희생양으로 삼아서라도 실추된 지지율을 끌어올릴 속셈이야.”
“당신을 희생양으로 삼겠다고요? 정말 구속시키겠다는 거예요? 여당 중진의원을?”
“중진은 무슨. 이제는 귀찮은 혹 덩어리 취급이야. 국회도 이미 회기가 다 끝난 상태니 불체포 특권도 통하지 않고. 그나마 늦기 전에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 구속은 면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어. 재판에서도 내가 몰랐다고 계속 우기면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
“그럼 당신이 은퇴하는 조건으로 이번 일을 묻어주겠다는 뜻이에요?”
한대길이 성진아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당신은 아마 유죄 판결을 받을 거야. 어쨌든 누군가는 위조 사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니까. 대신 집행 유예 정도로 풀려날 수 있도록 힘을 쓸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자신의 유죄를 받을 거라는 얘기에 성진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무서운 눈으로 한대길을 한참 동안 노려보더니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열린 창문을 통해 4월 초의 서늘한 밤바람이 불어 들어와 거실을 한 바퀴 휘돌고 나갔다.
며칠 후, 한대길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각 정당마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나갈 각 지역 후보자 명단을 발표하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저 한대길은 본의 아닌 잘못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깊은 심려를 끼치게 된 점을 사과드리며,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에 많은 고민 끝에 정계를 은퇴하고자 합니다. 코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 어떤 종류의 선거에도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만이 저와 제 가족이 당과 국가의 끼친 피해에 대해…….”
미리 적어온 원고를 읽는 그의 표정은 자못 비장했고, 중간에 몇 번이나 눈물을 훔치느라 낭독을 멈추기도 했다. 은퇴 발표문을 모두 읽은 그는 다시 한 번 기자들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인 뒤 서둘러 퇴장했다. 무수히 많은 질문이 쏟아졌지만 대답은 일절 없었다.
한대길이 흘린 눈물은 진짜였다. 다만 반성의 눈물이 아니라 분노와 회한의 눈물이었을 뿐이다. 당과 정부에서는 기자회견의 대가로 위조 사건에 대한 공범 혐의를 벗겨주기로 약속했다. 다만 앞으로 남은 손해배상 소송은 법대로 갈 것이라고 통보했다. 그에게서 먼저 권력을 빼앗고, 재기하는데 필요한 경제적 디딤돌까지 걷어차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 * *
한성 옥션의 위조 미술품 사건은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반입된 중국에서는 별로 화제가 되지 않았다. 언론에서 거의 보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합작 파트너가 공안에 끌려가 조사까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흘 동안 진행된 아리스 옥션의 개관 기념 경매는 큰 잡음 없이 무사히 끝났다.
도윤이 경매에 올렸던 작품들은 모두 합해 1800만 위안, 원화로 30억 가량에 낙찰되었다. 심주의 ‘삼여도’가 예상을 뛰어넘는 거액의 낙찰가를 기록한 덕분이었다. 그로 인해 도윤은 백담에게 준 작품 값과 세금을 비롯한 여러 가지 비용을 제하고도 이번 경매에서 20억에 가까운 순수익을 올렸다. 한성 옥션의 위작들을 감정해주고 받은 감정료는 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계좌를 들여다보며 울상을 지었다.
“생각지도 않게 빈털터리가 됐어. 설마 아리스 옥션의 지분을 인수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말이야. 이걸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네.”
그동안 에스코바르의 동굴에서 얻었던 미국 국채는 모두 세탁했다. 그 돈의 대부분을 조세 피난처에 세운 회사들을 통해 여기저기 투자했지만 그래도 통장 잔고가 몇 백 억은 남아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아리스 옥션의 지분 49퍼센트를 인수하는 바람에 그게 거의 바닥난 것이다. 당분간 현금 동원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엄살을 피우는 도윤을 옆에서 보고 있던 석훈이 어이가 없는지 혀를 찼다.
“이야, 누구는 돈 몇 십 억이 그냥 껌 값에 불과하구나. 나도 통장에 몇 십 억씩 넣어놓고 주머니가 비었다고 투덜댈 수 있었으면 좋겠네.”
그 얘기를 들은 도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노트북을 켰다.
“그래? 그럼 잠깐만 기다려.”
그는 곧바로 키보드를 또닥거렸다. 잠시 후 일을 끝낸 그가 석훈에게 말했다.
“네 통장에 1100만 위안 이체시켰다. 원화로 18억 원 정도 될 거야. 확인해 봐.”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1100만 위안이라니?”
황급히 핸드폰을 켜서 자신의 계좌를 확인한 석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이게 무슨 돈이에요?”
“우리가 전에 쉬주하오에게 무후의 보물을 팔아달라고 넘겼잖아. 그 친구가 지금까지 판매된 물건 값을 계산해서 보냈어. 너한테 이체시킨 건 그 가운데 삼분의 일이다.”
“삼분의 일이요? 정말 셋이서 똑같이 나누는 거예요?”
“나, 돈 가지고 농담 안한다. 너도 그만한 비율을 받을 자격이 있기도 하고.”
“형! 정말 고마워요.”
석훈이 후다닥 달려오더니 그를 와락 껴안았다. 간신히 녀석의 얼굴을 밀어낸 도윤이 또 다른 희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얘기해 주려고 했는데, 비에코의 고정혁 사장님이 드디어 회사를 상장 신청했어. 상장이 확정되면 전에 말했던 대로 너한테 1퍼센트의 지분을 넘길 거야. 그거 함부로 팔지 말라고 했던 거 기억하지? 아직 무후의 보물을 팔아서 들어올 돈이 더 있으니까 내가 말할 때까지는 주식을 꽉 쥐고 있어. 알았지?”
“알았어요. 형이 얘기하기 전까지는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더라도 끝까지 쥐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녀석은 진짜로 감격한 표정이었다. 이미 도윤으로부터 현재 있는 집을 등기 이전 받은 데다 새로 현찰도 20억 가까이 생겼다. 처음 전역해서 한성의 보안요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에게 이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도윤은 그에게 있어서 재신이나 다름없었다.
* * *
“나 때문에 고생 많았지? 이번에 정말 고마웠어. 귀국하면 꼭 보답할게.”
도윤의 얘기에 최서라가 푸훗 하고 웃더니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 얘기 하지 말고 얼른 귀국해서 맛있는 것 사 주세요. 그거면 충분해요.”
전화를 끊은 도윤은 미안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이번에 한성 옥션의 위작들을 감정하면서 한국에 있는 최서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자료 때문이었다.
감정을 하면서 늘 부딪히는 문제지만 감정 자체보다는 그 결과를 남에게 납득시키는 일이 더 어렵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성 옥션이 경매에 올리려고 했던 작품들에 대해 감정서를 써주는 대신 그것들이 명확하게 위작임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기로 했다. 그런데 몸이 중국 땅에 있고 시간마저 촉박하다 보니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그때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적극적으로 도와준 사람이 바로 한국에 있던 최서라였다. 그녀는 도윤이 부탁하는 자료들을 일일이 찾아서 사진을 찍어 파일로 전송했다. 그 양이 워낙 많은데다 어떤 것들은 지방의 박물관까지 직접 찾아가 허락을 받고 촬영을 해야 했다. 그 때문에 최서라는 며칠 동안 아주 전국을 돌아다녀야 했다.
“뭔가를 선물하고 싶어도 워낙 부잣집 딸이다 보니 마땅한 걸 쉽게 구하기가 어렵네.”
최서라에게 뭔가를 선물하려다 보면 언제가 그게 문제였다. 명품 핸드백이나 비싼 장신구 같은 것들은 이미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게 적지 않았다. 더구나 본인 스스로가 금속 공예에 대한 안목이 워낙 뛰어나니 웬만한 물건으로는 성이 찰 리가 없었다.
“에이,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 주는 건 다르죠. 형이 냇가의 조약돌을 주워서 가져다 줘도 좋아하실 걸요? 물건의 가격보다는 역시 주는 사람의 마음이잖아요.”
석훈의 얘기도 아주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물건을 적당히 골라 선물하는 건 그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똑같이 화랑을 하는 입장에서 미술품을 선물하는 것 역시 왠지 과일 가게 주인에게 사과를 선물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거다 하는 물건이 눈에 띄면 좋을 텐데…….”
그게 요즘 도윤의 고민거리였다. 그런데 귀국을 앞둔 그에게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경매가 모두 끝나자마자 한대길과 성진아 부부가 한국으로 강제 송환되는 것을 지켜본 그는 귀국을 며칠 미뤘다. 혹시라도 이번 일과 관련해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지 않을까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며칠이 지나도 언론에서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그가 막 짐을 꾸리려고 할 때, 왕이푸 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박사를 꼭 보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신데, 혹시 시간을 좀 내줄 수 있겠습니까?”
“저를 보고 싶어 한다고요? 누군데요?”
왕 회장으로부터 상대의 이름과 신분을 전해들은 도윤이 혀를 차며 석훈에게 말했다.
“야. 짐 도로 풀어라. 아무래도 중국에 하루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날 저녁, 왕 회장이 보낸 비서가 도윤을 데리러 호텔로 찾아왔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석훈을 동행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그는 혼자서 차에 올라야 했다. 도윤을 태운 차가 도착한 곳은 북경에 있는 다른 호텔의 스위트룸이었다.
비서의 안내에 따라 객실에 들어서자 커다란 만찬용 테이블에 왕이푸가 60대 초반의 남자와 함께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놀랍게도 상석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중국 최대 온라인 기업의 사장인 왕이푸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온 감정가 이도윤이라고 합니다. 귀인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도윤이 테이블 가까이 다가가 인사하자 남자가 환한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우바오량이오. 귀국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어서 감사합니다.”
우바오량.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직을 맡고 있는 그는 건릉 발굴을 뒤에서 조종했던 린카이창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도윤은 그에게 공경을 다하는 왕이푸의 모습을 보고 우바오량이 그의 뒷배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긴 도윤도 자신을 부른 사람이 우바오량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선뜻 귀국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기도 했다.
도윤이 자리에 앉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게 아니라 왕 회장이 스위트룸으로 부른 요리사들이 다른 방에서 직접 조리해 내오는 것들이었다. 호화롭지는 않지만 정성이 가득한 요리들이 테이블 위에 오르자 우바오량이 먼저 젓가락을 들며 식사를 권했다.
“많이 드시오. 이번에 이 박사께서 왕 회장을 많이 도와주었다고 들었습니다. 덕분에 자칫하면 국가적 망신이 될 수도 있었던 일을 피해가기도 했고요. 고마운 일을 하셨소.”
“저도 뜻하지 않게 얻은 것이 많습니다. 작은 수고를 하고 큰 보답을 받았으니 오히려 제가 감사를 드려야 할 일이지요.”
우바오량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에 비해 실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인품도 훌륭하다고 하더니, 역시 겸손하시오. 이번에 아리스 옥션의 지분을 인수했으니 앞으로도 중국에 자주 들르겠지요? 중국에 올 일이 생기거든 모른 척하지 말고 한 번씩 인사하고 지냅시다.”
“감사합니다. 언제든지 필요하면 불러주십시오.”
되도록 부드럽게 말을 하면서도 도윤은 속으로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우바오량은 인상이 좋고 말투도 점잖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국가 주석이 조만간 물러날 거라는 소문이 파다한 상태에서 강력한 차기 권력자로 지목되는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런 사람이 마냥 사람 좋은 척만 하면서 현재의 자리까지 올라갔을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식사가 끝나고 사람들 앞에 차가 놓이자, 우바오량이 마치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질문을 던졌다.
“이 박사는 미술사를 전공하셨으니까 알지도 모르겠군요. 혹시 ‘오허스(?合師)’라는 말을 들어봤습니까?”
도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오허스? 그게 뭐지?
“죄송하지만 처음 들어보는 말입니다. 미술과 관계된 용어입니까?”
그 말에 우바오량이 가볍게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아무리 이 박사라고 해도 모를 수 있겠군요. 고대 중국어이기는 하지만, 정작 중국 서적에서는 나오지 않는 말이니까요. 오히려 극히 일부의 서양 서적에서만 볼 수 있는 용어입니다.”
뭐야?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 도윤은 조금 전에 먹은 맛좋은 요리들이 뱃속에서 슬그머니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