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석훈이 있는 곳에서 타운 하우스의 지하층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집을 빙 돌아서 주차장 쪽으로 접근해야 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한 그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석훈은 곧바로 두터운 커튼이 처져있는 거실을 향해 돌진했다.
와장창
그는 양손에 든 쇠몽둥이를 휘둘러 거실 유리창을 박살내고 곧바로 안으로 진입했다. 그가 눈앞을 가리는 커튼을 밀어젖히며 안으로 뛰어드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몇 발의 총알이 날아왔다. 마침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올렌코가 재빨리 반응한 것이다.
그가 쏜 총알 가운데 두 발이 석훈의 오른쪽 아랫배와 왼쪽 팔에 박혔다. 그 바람에 그는 왼쪽 팔에 들었던 쇠몽둥이를 놓치고 말았다.
“이 개자식들아!”
석훈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자신에게 총을 쏜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그를 보고 올렌코는 기겁했다. 분명히 상대가 총에 맞는 걸 확인했는데 쓰러지기는커녕 오히려 미친 듯이 달려든다고? 순간적으로 움찔한 그가 당황하며 물러서는 순간, 석훈이 오른손에 들었던 쇠몽둥이를 맹렬히 휘둘렀다.
빠각
뼈가 부서지는 끔찍한 소리가 들리면서 올렌코의 머리가 옆으로 홱 돌아갔다. 일격을 당한 그의 몸이 무너지듯 바닥에 쓰러졌다. 석훈이 놈의 손에서 빠져나온 권총을 집어 들려는 순간, 거실을 둘러싼 식당과 안방 등에서 네 명의 괴한들이 일제히 뛰쳐나오더니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석훈은 권총을 집는 걸 포기하고 그 중 한 명을 향해 몸을 날렸다.
“컥.”
안방에서 뛰쳐나오던 놈이 석훈의 어깨에 가슴을 정면으로 가격 당하면서 허공에 붕 떴다. 그는 뛰쳐나왔던 안방으로 도로 날려 들어가 붙박이장을 박살내면서 기절해버렸다.
몸을 돌리는 석훈의 뒤를 세 놈이 동시에 덮쳤다. 석훈은 왼쪽 무릎을 살짝 굽힌 채 몸을 회전시키면서 오른 다리를 쭉 뻗었다. 그 다리에 가장 왼쪽에서 달려들던 놈의 정강이가 걸렸다. 빠각하고 상대의 정강이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기우뚱하는 순간, 어느새 일어난 석훈이 왼손으로 상대를 머리를 잡아 옆으로 확 밀어버렸다.
가운데 있던 놈이 얼떨결에 동료의 몸을 안아들며 비틀하는 사이, 가장 오른쪽에 있던 놈이 기어코 석훈의 어깨 위에 칼을 내리찍었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내리찍은 놈의 칼은 끄트머리만 살짝 석훈의 살갗을 파고들었을 뿐이다. 놈의 눈이 크게 떠지는 순간, 이미 한 번 뒤로 뺐던 석훈의 오른손이 회전하면서 쇠몽둥이로 상대의 정수리를 가격했다.
빠각
마지막에 힘을 뺐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피와 뇌수가 사방에 튀는 끔찍한 장면이 연출되었을 것이다. 단 일격에 정신을 잃은 상대가 그 자리에서 스르르 무너졌다.
“이 망할 놈이!”
마지막 남은 한 놈이 안아들었던 동료의 몸을 팽개치면서 달려들었다. 뚜렷한 힘의 격차를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달려들었다는 점에서 그 용기만큼은 인정해줄 만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너무나 허망했다.
빠악
석훈은 오른발 하이킥으로 상대의 안면을 정확하게 가격했고, 그 한 방으로 놈은 얼굴뼈가 부러지면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완전히 정신을 잃은 것이다.
정강이가 부러졌던 놈은 그제야 엉금엉금 기면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순식간에 다가온 석훈의 가벼운 발길질 한 방에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기절하고 말았다. 석훈은 그제야 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집어 들고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마침 그쪽에서 누군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 * *
지하층에 있던 그리넘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잠깐 위에 올라가서 식사를 하고 내려왔을 뿐이다. 시간으로 따져도 삼십분 정도 자리를 비운 것에 불과했다. 지하층에서 연결되는 곳은 주차장으로 향하는 문과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뿐이었다. 그런데 그 잠깐 사이에 도윤은 죽고 부하는 사라진 상태에서 어디로 들어왔는지도 모를 놈의 경호원만 총을 들고 방안에 서 있었다.
재빨리 반응해서 경호원을 쏘아죽이기는 했지만 사라진 부하의 행방을 파악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위에서 요란하게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마당에 부하들끼리 싸울 리는 없으니 누군가 1층에 침입한 게 분명했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알고?
“따라와.”
그리넘이 권총을 든 손으로 손짓하며 윗 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도윤은 어떻게 합니까?”
부하의 물음에 그리넘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잔말 말고 따라와. 이미 죽은 놈을 지켜서 뭐하겠다는 거야?”
그리넘은 권총을 단단히 그러쥔 채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갔다. 중간이 디귿 자로 꺾인 계단이었는데, 그가 모퉁이를 돌자마자 위에서 총을 들고 내려오는 석훈이 보였다. 거의 동시에 서로를 발견한 두 사람이 지체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두 사람의 총에서 한꺼번에 총성이 울렸다. 다만 총을 쏜 이후의 행동은 서로 달랐다. 그리넘이 사격을 한 다음 재빨리 모퉁이 뒤로 몸을 숨긴데 반해, 석훈은 그대로 상대가 숨은 모퉁이를 향해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위에서 누군가 쿵쾅대며 뛰어내려오는 소리를 들은 그리넘이 모퉁이에서 한 발 뒤로 몸을 빼며 총을 겨눴다. 그때 무언가 모퉁이 위로 날아 내리더니 공중에서 벽을 한 번 차고 자신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그리넘이 다급하게 방아쇠를 당겼지만 조준이 제대로 되지 않은 총알은 상대의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허공에서 몸을 튼 석훈이 왼손에 바꿔들었던 쇠몽둥이로 상대의 오른쪽 어깨를 내리쳤다.
“악!”
그리넘이 비명을 지르면서 손에 들었던 권총을 놓치는 순간, 석훈이 이번에는 오른손에 든 권총으로 그의 관자노리를 후려쳤다. 아무리 온갖 특수 훈련으로 단련된 그리넘이라고 해도 그 강력한 일격에는 버티지 못했다. 정신을 잃은 그가 권총을 놓치면서 계단을 구르자 뒤에서 따라오던 마지막 남은 부하가 두 손을 머리 위로 번쩍 치켜 올렸다.
“항복하겠습니다.”
살벌한 미소를 지은 석훈이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왼손에 들었던 쇠몽둥이로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녀석은 항복한 보람도 없이 자신의 대장처럼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넘의 권총을 마저 회수한 석훈이 곧바로 지하층으로 뛰어들었다.
“형! 괜찮아요?”
도윤이 실내에 걸어놓았던 환상은 이미 해제된 상태였다. 석훈의 눈에 온 몸이 테이프에 칭칭 감긴 채로 의자와 한 몸이 되어 있는 도윤이 보였다. 그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꺼내 테이프를 모두 잘라내자 그제야 도윤이 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밖에도 다른 놈들이 있었을 텐데, 모두 처리한 거냐?”
“네. 죽은 놈은 없지만 성한 놈도 없어요. 저 친구만 빼고요.”
석훈이 방안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데이빗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옷 위로 드러난 흔적으로 볼 때 총에 맞아 쓰러진 것 같은데, 얼핏 볼 때 이미 숨이 끊어진 것 같았다.
“저 자식들 모두 다니엘 로스차일드가 보낸 놈들이야.”
그가 몸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테이프를 마저 떼어내며 말하자 석훈이 입맛을 다셨다. 놈들의 외모를 통해 그 역시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 억만장자가 이젠 살인 청부까지 하는 모양이네요. 설마 했는데 총까지 가지고 있더라고요. 도대체 그만큼 가진 사람이 뭐가 부족하다고.”
“날 붙잡아서 진신사리의 행방을 알아내려던 거겠지. 하지만 원하는 정보를 얻은 뒤에는 죽여 버리려고 했던 것으로 보아 살인청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야.”
“앞으로 어떻게 할 거예요. 이대로 계속 놈에게 쫓기기만 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요?”
석훈의 말에 도윤의 눈이 잠시 새파랗게 빛났다가 잦아들었다.
“당연히 그렇게 살 수는 없지. 하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여기부터 정리하자.”
여덟 명의 그리넘 일당 가운데 한 명은 시체가 되었고 나머지 일곱은 정신을 잃었다. 아마 깨어나더라도 대부분 병실 신세를 져야 하는 건 물론이고 일부는 불구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윤과 석훈은 자신들이 과도하게 손을 썼다는 생각이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자칫했으면 그들의 목숨이 달아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도윤은 먼저 석훈의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전력을 다해 환각 능력을 쓰고 난 뒤에 연거푸 치료 능력까지 시전하자 몸에 기운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는 간신히 힘을 내어 석훈과 함께 여기저기 쓰러진 놈들의 팔을 꺾어 테이프로 칭칭 동여매었다. 그 일을 거의 끝내갈 무렵, 석훈의 전화기가 울렸다. 윤다솔 과장이었다.
“석훈 씨. 지금 어디 있어요? 살아 있으면 대답 좀 해 봐요.”
그녀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석훈이 혹시 죽거나 다치지 않았을까 걱정이 된 것이다.
윤 과장이 이끄는 형사들은 타운 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거실 통유리가 박살이 나 있는 걸 발견했다.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한 형사들이 안으로 뛰어들려는 찰나, 간신히 그들을 제지한 윤 과장이 먼저 석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는 죽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저는 멀쩡히 살아 있는데요, 여기 있던 놈들 상태가 좀 안 좋아요. 몽땅 제압해서 테이프로 묶어놓기는 했는데, 한 명은 죽었어요.”
뭐? 사람이 죽었다고? 게다가 몽땅 제압했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윤다솔은 그제야 급히 형사들을 지휘해서 타운 하우스 안으로 진입했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건 무슨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었다. 그녀와 형사들은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 * *
윤다솔은 골치가 아팠다. 일단 현장을 확인한 그녀는 재빨리 종로 경찰서에 지원을 요청해서 타운 하우스에 있던 서양인들을 모두 병원으로 옮겼다. 다들 죽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여서 곧바로 유치장에 가둬둘 수 있는 인간이 한 명도 없었다.
“뭘 어떻게 했기에 범인들이 죄다 죽거나 병신이 된 거예요?”
그녀의 뾰족한 추궁에 도윤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다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아리움 미술관에서 나오다 습격을 받아서 납치가 됐고, 그런 저를 구하려고 석훈이가 단독으로 뛰어든 거예요. 놈들은 여덟 명이었고 하나같이 총과 흉기를 든 상태였어요. 반면에 석훈이는 무기라고는 쇠몽둥이 두 개가 전부였고요. 결과적으로 다친 건 저놈들뿐이지만 우리도 사정을 봐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윤다솔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두 사람을 노려봤지만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그녀가 보기에도 도윤과 석훈은 죽지 않고 살아난 게 다행이라고 할 만큼 상황이 심각했었다. 석훈이 미리부터 연락을 취했기 때문에 그녀 역시 서울에서부터 그를 쫓아 용인까지 왔다. 비록 싸우는 과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석훈에게 다른 조력자가 없었다는 건 분명했다.
‘그래서 더욱 더 이해가 안 가. 아무리 싸움을 잘 해도 그렇지 어떻게 한 명이 8대1로 싸우고서도 저렇게 멀쩡할 수가 있어? 더구나 상대는 칼과 총까지 들었는데.’
물론 도윤의 말에 의하면 죽은 한 명은 저희들끼리 총격전을 벌이다 당한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완전히 믿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도윤이나 석훈이 원래부터 총을 가지고 다녔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문제는 나중에 집 여기저기에 난 탄흔과 탄두를 확인해서 좀 더 정확하게 당시의 정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석훈의 몸이 그녀의 생각처럼 멀쩡한 건 아니었다. 비록 관통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팔과 배에 얕게나마 탄두가 박혀 있었고, 어깨에도 칼에 찔린 상처가 남아 있었다. 단지 형사들이 뛰어들기 전에 도윤이 치료를 해서 흔적을 없애주었을 뿐이다.
그리넘 일당에게 수갑을 채워 병원에 입원시킨 윤다솔은 도윤과 석훈을 종로 경찰서로 데려가서 간단하게 피해자 심문을 실시했다. 정확히 말하면 심문이라기보다는 양해를 구하고 서로 입을 맞추기 위한 절차였다고 보는 게 더 옳았다.
“이미 총소리가 들렸다는 신고가 접수되었고, 저희 쪽에서도 대대적으로 경찰 병력이 출동한 사안이에요. 기자들로부터 사실을 숨기는 게 불가능하다는 뜻이에요. 다만 피해자의 신분을 보호한다는 명목을 내세워서 도윤 씨와 석훈 씨의 이름이 언론에 공개되지 않도록 해줄 수는 있어요. 놈들을 제압한 사람도 우리 형사들이라고 하면 되고요.”
그렇게 되면 도윤과 석훈은 용감한 시민이 아니라 단지 불쌍한 피해자로 처리된다. 반면에 윤다솔과 그의 형사들은 사건을 초기에 발견해서 해결한 공로를 독차지할 것이다. 윤다솔은 그 점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했고, 도윤과 석훈은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다.
사로잡힌 일당이 모두 외국인이다 보니 기자들 입장에서는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 만한 사건이었다. 윤 과장은 서장의 허락을 받고 검찰 측과 협의해서 이번 일을 외국인 범죄 조직이 몸값을 노리고 벌인 납치사건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놈들이 내국인을 납치해서 협박하려다, 신고를 받고 급히 출동한 경찰에 의해 일망타진됐다고 발표한 것이다.
사실 그런 발상은 그리넘 일당이 먼저 제공했다. 놈들은 자신들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는 것을 감추고 싶어 했고, 도윤과 석훈 역시 굳이 다니엘 로스차일드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리넘은 도윤이 부자라는 말을 듣고 납치를 해서 몸값을 받으려 했다고 진술했고, 윤다솔 과장은 은근슬쩍 놈들이 병원에서 미리 입을 맞출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사건을 종결해서 검찰로 넘긴 후에, 윤다솔은 두 사람을 따로 만났다.
“놈들의 배후에 뭔가 더 있다는 건 경찰도 짐작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두 분의 부탁도 있고 해서 더 이상 파고들지 않겠지만 혹시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연락하세요. 다른 것보다도 두 분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꼭 그렇게 하셔야 해요.”
도윤과 석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녀의 걱정어린 질책을 받아넘겼다. 결국 그리넘 일당에 관한 사건은 서로 입을 맞춘 대로 언론에 보도되었고, 그로 인해 외국인 범죄가 날로 흉악해지고 있다는 기사가 이삼일 동안 지면을 달구었다.
그리넘 일당에 한국에서 체포되었다는 보도가 나간 며칠 후, 다니엘 로스차일드가 마침내 자신의 집밖으로 나왔다. 이번 일로 인해 그로서는 가장 편하게 사용하던 손발이 잘려나간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쓸 수 있는 도구가 그들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리넘처럼 능력 있는 부하를 또 구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당장은 두고 보겠지만 결국 넌 곱게 죽지 못할 거야, 이도윤.”
다니엘은 도윤을 향해 이를 갈았다. 이상하게 녀석과 얽히기만 일이 꼬였다. 라스푸친의 목걸이는 결국 이브라힘 왕세제에게 뺏겼고, 파라켈소스의 검에 들어있던 현자의 돌은 가짜였다. 게다가 건릉에 있을 것으로 짐작했던 석가모니 진신사리마저 행방이 묘연했다. 그는 도윤을 이대로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그 시각, 도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다니엘을 이대로 두면 언제 또 비슷한 일이 재발될지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번 당한 것도 억울한데 놈이 보낸 부하들에 의해 두 번이나 납치당했다. 파라켈소스의 가짜 검으로 한 번 골탕을 먹이기는 했지만, 그런 식의 어정쩡한 보복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나방이 왜 제 몸이 타는 줄 알면서도 불을 향해 달려드는지 알아? 놈은 불을 거부하지 못하는 본능을 타고났기 때문이야. 다니엘 네가 그렇게 불을 좋아한다면 원하는 대로 시원하게 불을 지펴주마. 기다려 봐.”
이번 일로 인해 두 사람은 결국 좋게 해결할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물론 그렇다고 다짜고짜 총을 들고 상대방의 집으로 쳐들어가는 건 곤란했다. 상대를 처리하면서도 이쪽에는 피해가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양쪽 모두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