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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커 유물의 주인을 찾아드립니다-147화 (147/300)

147화

오랜만에 만난 딩샤는 밝고 명랑할 뿐만 아니라 수다스럽기까지 했다.

“저는 선배가 분명히 최고의 유물복원 전문가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설마 감정가가 되어서 나타나다니! 그건 정말 꿈에도 예상을 못했어요. 하지만 그럼 어때요? 감정가로서도 최고시잖아요. 천재는 역시 뭘 해도 남들과는 다른가 봐요.”

“어, 아니 천재라고 할 거까지야……. 근데 학교 다닐 때 네가 나를 그렇게까지 높이 평가했었는지는 몰랐는데? 아무튼 칭찬 고맙다.”

야, 이제 그만 좀 하지? 하지만 딩샤는 수다는 계속되었다.

“에이, 선배가 천재가 아니라면 저 같은 사람은 그냥 바보 멍청이일 거예요. 우리 학교 다닐 때 선배가 얼마나 전설적인 인물로 통했는지 모르죠? 교수님은 물론이고 동기나 후배들이 죄다 선배 얘기를 할 때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고요. 어, 물론 가끔은 괜히 질투하면서 뒤에서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요. 헤헤.”

이러다가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내 흑역사까지 죄다 공개되겠군. 도윤이 이 난감한 후배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황화가 등장해서 그를 구원해주었다.

“이 박사님? 시간 맞춰서 오셨네요. 곧 상견례가 시작될 테니 그만 들어가시죠.”

“아, 네. 그래야지요.”

도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대형 강의실로 들어가려고 하자 딩샤가 얼른 따라붙으려고 했다. 그러나 황하가 표 나지 않게 슬쩍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도윤의 오른쪽에 섰다. 그의 왼쪽에는 이미 석훈이 함께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강의실까지 따라와 도윤의 양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바람에 딩샤는 결국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얘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학교 다닐 때 아주 가까이 지냈던 후배였나 봐요?”

황화가 약간 뾰로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딩샤를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아뇨. 학교 다닐 때는 사실 제대로 얘기를 나눠본 적도 없는 후배예요. 이름하고 얼굴만 간신히 기억하는 정도였는데 저렇게까지 나를 반가워할 줄은 몰랐네요.”

“오호. 자신도 모르게 후배들로부터 흠모를 받던 선배였나 보네요?”

“여기저기 미움을 받고 다닌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흠모를 받았던 기억도 없어요. 괜히 아는 척 하다가는 미움을 받는다는 걸 비교적 일찍 깨달았거든요.”

초등학교 때 샤프에 찔리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두기까지 했었지. 도윤은 문득 당시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라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대형 강의실 한 가운데에는 기다란 회의용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상석에 자리 잡은 한 명을 제외한 참석자들은 모두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줄로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건릉 발굴단은 모두 스물 네 명이었다. 그 가운데 네 명은 황화처럼 발굴단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후방 지원을 담당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미리 배포된 명단에 의하면 황화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전부 국가문물국에서 파견 나온 이들이었다. 나머지 스무 명은 모두 발굴을 직접 지휘하거나 현장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감정하고 보존 조치를 할 사람들이었다.

“형. 근데 저만 김치 항아리 속에 빠진 단무지 같은 생각이 드네요. 유물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고 중국어도 못하잖아요. 어색해서 죽겠어요.”

참가자들을 쭉 둘러본 석훈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도윤도 고소를 머금었다.

석훈이 이번 발굴에 참여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그의 요구 때문이었다. 현장에서 자신을 도울 사람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을 왕이푸가 받아들였고, 왕이푸는 다시 국가문물국에 압력을 넣어 인원을 추가시킨 것이다. 그로서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신변 보호를 꾀한다는 뜻이었지만, 막상 발굴단이 한 자리에 모이자 새삼 석훈의 위치가 애매하긴 했다.

“어차피 너는 나하고만 붙어 다니면 돼. 저 사람들하고 얽힐 일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잡자 국가문물국 직원으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이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자 상석에 앉아 있던 중년 남자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국가문물국 국장으로 있는 장린펑입니다. 이렇게 학계에서 명망 있는 분들을 한 자리에서 모시게 되어서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당 고종과 측천무후의 합장묘인 건릉은 우리 중국 역사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분묘로서…….”

간단하게 자기소개만 하고 끝날 줄 알았던 장린펑의 인사말은 뜻밖에도 길게 이어졌다. 자기 입으로 학계에서 명망 있는 사람들이 모아놓았다고 했으면서도, 그는 마치 중국 역사와 측천무후의 일대기에 관한 강연을 할 생각으로 이 자리에 나온 듯했다. 도윤의 옆에 앉았던 석훈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형. 저 사람이 발굴단 대빵이에요? 무슨 소리인지 한 마디도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말하는 스타일이 꼭 무슨 교장 선생님 같아요.”

도윤은 하마터면 실소를 터트릴 뻔 했다.

“국가문물국 국장이긴 한데, 발굴단 대빵은 아니야. 발굴단장은 따로 있어.”

“근데 도대체 무슨 말을 저렇게 길게 하는 거예요?”

“할 필요 없는, 아니 그냥 안 하는 게 더 나을 말.”

두 사람이 속삭이기 시작하자 장린펑이 그들을 한 차례 노려보더니 드디어 말을 끝내고 자리에 앉았다. 그의 뒤를 이어 이번 발굴단의 단장인 탕가오위안 교수가 일어나서 간결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석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느껴졌다.

본래 장린펑은 도윤의 스승인 장웨이닝 교수에게 발굴단장을 맡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끝내 고사하는 바람에 결국 시안(西安)대학교 고고학과 교수인 탕가오위안에게 발굴단장 자리가 돌아갔다. 탕 교수의 입장에서는 남이 사양한 자리를 떠맡게 된 셈이었지만, 어제 황화가 했던 얘기에 의하면 그는 내심 발굴단장을 맡게 된 걸 상당히 기뻐하는 모양이었다.

탕 교수를 시작으로 참석한 사람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의 이름과 전공, 소속 등을 밝히는 자기소개 시간이 이어졌다. 다들 웃는 얼굴로 일어나 무난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앉는 시간이 이이지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사람들의 순서가 테이블을 반 바퀴 정도 돌자 도윤과 석훈의 맞은편에 앉았던 삼십대 초반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안 대학 고고학과에서 학부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린타오라고 합니다. 이렇게 훌륭하신 분들과 함께 역사적인 발굴에 참여하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대학원에 다닐 때부터 여러 발굴 현장을 두루 경험했지만 아직도 많은 것이 부족합니다. 이 자리에는 학계의 석학들도 계시니 아낌없는 지도편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중국 대학의 경우 교수들의 등급에 따라 지도할 수 있는 대상이 학부, 석사, 박사 과정으로 나뉜다. 린타오가 학부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는 박사 학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젊은 교수임이 분명했다. 실제로 나이도 아직 젊어 보였다.

그의 자기소개는 비교적 무난했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말이 문제였다. 린타오는 잠시 말을 끊더니 맞은편에 앉은 도윤과 석훈을 향해 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한 가지 여러분에게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오래된 유물은 공기를 쐬자마자 곧바로 부식이 시작됩니다. 잘못 건드리면 쉽게 파손될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발굴 경험이 없는 분들은 가급적 유물 근처에 가까이가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분들 역시 혹시 그런 경우를 보시게 되면 곧바로 주의를 주시고요. 다들 적극적으로 협조해서 이번 발굴이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끝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발굴 경험이 없는 분들’이라는 말을 할 때 유난히 도윤과 석훈을 빤히 쳐다봤다. 직접적으로 지명을 하지는 않았지만 실내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일부러 주의를 끈 것이다. 도윤은 속으로 실소를 금치 못했다.

‘뭐야. 벌써부터 텃세를 부리는 거야?’

하지만 그냥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건릉 발굴은 중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 관점에서 봐도 역사적인 발굴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사건이었다. 그런 중요한 발굴 현장에 자기 나라 사람도 아닌데다 나이까지 젊은 놈이 기웃거린다는 게 기분 나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는데 린타오의 도발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참석자들이 한 명씩 순서대로 돌아가며 인사를 하다 보니 어느덧 도윤과 석훈의 차례가 되었다. 자리 배치 때문에 석훈이 먼저 일어났다.

“안석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미리 도윤에게 배운 간단한 중국어로 자기 이름만 말하고 얼른 자리에 앉았다. 그의 뒤를 이어 도윤이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린타오가 질문을 던졌다.

“자기소개가 너무 간단하네요. 다들 처음 만나서 인사하는 자리인데 이왕이면 전공과 소속도 좀 밝혀주시죠? 이번 발굴에 임하는 각오를 말해주면 더 좋고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석훈은 상대를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지만 도윤은 얼굴이 굳어졌다. 그의 옆에 앉았던 황화를 비롯한 몇몇 참석자들도 슬며시 인상을 찌푸렸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참가자들이 신상명세가 적힌 명단을 받아보았다. 따라서 석훈이 고고학적 발굴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더구나 조금 전의 간단한 인사말만 들어봐도 그가 중국어에 능통하지 않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태연히 석훈의 전공과 소속을 물어본다는 건 그 의도가 뻔히 짐작되는 행동이었다.

“아니, 명단을 봤으면…….”

발끈한 황화가 나서려는 걸 막은 도윤이 미소를 머금은 채 라리에서 일어났다.

“한국에서 온 이도윤이라고 합니다. 북경 중앙미술학원에서 유물복원학을 공부했고, 미국에서 유럽 미술사로 박사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감정가로 활동하고 있지요.”

그는 되도록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옆에 있는 석훈을 가리켰다.

“제 옆에 계신 안석훈 씨는 한국에서부터 오랫동안 저와 함께 일해 온 동료입니다. 비록 중국어는 못하지만 제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 제가 발굴단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드려서 함께 오게 됐지요. 부족한 저 때문에 바다를 건너온 사람이니 부디 여러분께서 따뜻하게 환영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몇몇 사람이 도윤의 말에 따라 박수를 쳐주었다. 석훈을 환영하겠다는 뜻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절반가량의 발굴 단원들은 그냥 묵묵히 입을 다문 채 앉아 있었다.

‘크게 환영을 받지는 못할 줄을 알았지만 생각보다 분위기가 쌀쌀맞네.’

도윤은 이번 발굴이 어쩌면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 * *

자기소개가 모두 끝난 다음에는 발굴단장인 탕가오위안 교수의 주도로 이번 발굴에 대한 개략적인 브리핑이 이어졌다. 대부분 미리 받은 자료를 통해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지만, 첫 전체 모임인 관계로 한 번쯤은 하고 넘어가야 하는 과정이기는 했다.

브리핑이 끝나자 발굴단원들은 곧바로 인근의 커다란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저녁 식사를 겸한 회식을 했다. 중국의 회식, 그중에서도 특히 공금으로 마련된 자리에서는 으레 술병과 술잔이 난무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서 그런지 만취할 정도로 마시는 사람은 없었는데 린타오는 예외였다.

인원이 많은 관계로 일행은 각자의 신분이나 친분 관계에 따라 세 개의 테이블에 흩어져서 앉았다. 도윤은 황화와 석훈, 딩샤를 비롯해 주로 젊은 단원들이 모인 테이블에 합류했고, 린타오는 국가문물국 국장인 장린펑과 발굴단장 탕가오위안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도윤으로서는 녀석이 그쪽으로 가준 게 오히려 속이 편했다.

“선배. 근데 왜 갑자기 서양 미술사를 전공하기로 마음을 바꾼 거예요. 선배가 우리 학교에서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교수님들이 얼마나 실망하셨는지 모르죠? 그냥 유물 복원학을 게속 공부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식당에서 기어코 도윤의 옆자리를 차지한 딩샤는 만취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알딸딸할 정도로 술이 오른 상태였다. 아울러 혈중 알콜 농도에 따라 언어 중추도 활성화되는지 아까보다 수다가 더 심해졌다. 도윤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되도록 그녀의 말을 받아주려고 애쓰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그들 사이로 불쑥 끼어들었다.

“근데 우리 이 박사께서는 측천무후에 대해 공부를 좀 하고 오셨나?”

린타오였다. 분명히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을 확인했는데 어느새 이쪽으로 건너온 것이다. 녀석은 얼굴이 온통 벌게진 데다 혀도 살짝 꼬인 상태였다.

“많이는 못했습니다. 계속 공부하고 배우면서 일을 해야지요.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도윤은 되도록 그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린타오는 처음부터 그가 물러설 틈을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며칠 후면 발굴이 시작되는데 이제 와서 언제 공부하고 언제 배운다는 말이야? 공연히 민폐 끼치지 말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어때? 서양 미술사를 공부한 친구가 중국 황제의 분묘 발굴 현장을 기웃거린다는 것 자체가 좀 웃긴다고 생각하지 않아?”

“웃기기까지야 하겠습니까? 지식이 부족하면 몸으로라도 열심히 거들겠습니다.”

“아냐. 진짜로 웃겨. 뭐? 몸으로 거들어? 이 몸으로? 이 몸으로 뭘 거든다는 거야?”

린타오는 도윤이 자꾸 물러서려는 뜻을 오해한 게 분명했다. 녀석은 술 냄새가 풀풀 풍기는 비웃음을 계속 흘리더니 급기야는 손가락을 들어 그의 몸을 쿡쿡 찌르기까지 했다.

아, 진짜 이 자식이. 도윤은 저절로 힘이 들어가려는 주먹을 애써 폈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얼굴은 이미 딱딱하게 굳었다. 린타오가 일부러 시비를 걸고 있다는 게 너무나 명확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윤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면서 상황을 수습하려는 찰나, 그렇잖아도 알딸딸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딩샤가 먼저 발끈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봐요. 댁이 뭔데 민폐니 뭐니 하는 거예요? 우리 선배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아요? 모르죠? 근데 왜 건방을 떠는 거야? 뭐 측천무후에 대해 공부해? 당신이나 가서 공부 좀 더 하고 오시지? 쥐뿔도 없는 주제에 남더러 공부를 하라 마라야?”

야야, 그래도 너까지 이러면 안 되지. 도윤은 린타오를 향해 마구 삿대질을 하는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겨 도로 자리에 앉히려고 했다. 그러다가 그녀의 몸이 비틀하면서 하필이면 삿대질을 하던 손가락이 눈 근처를 쿡 찌르고 말았다. 순간 술에 취한 녀석의 흉성이 제대로 폭발하고 말았다.

“이 빌어먹을 년이 어디서 감히. 중국 년이 까오리 빵즈(한국 놈)하고 놀아나는 건 나라 망신이라는 걸 몰라?”

도윤이 미처 그녀를 주저앉히기도 전에 린타오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 게 보였다. 명백하게 딩샤의 얼굴을 노린 일격이었다. 기겁을 한 그가 몸으로 그녀를 가리는 찰나, 녀석의 주먹이 마치 정지화면처럼 갑자기 뚝 멎었다. 석훈이었다. 어느새 앉았던 자리에서 튀어나온 녀석이 린타오의 팔목을 꽉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뭐? 까오리 빵즈? 이 개자식이 입이나 손이나 모조리 쓰레기네.”

까오리 빵즈. 혹은 한궈 빵즈(한국 놈). 그건 도윤이 석훈에게 가르쳐 준 몇 안 되는 중국어 단어들 가운데 하나였다. 만일의 경우에 적어도 상대방이 욕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으로 일어준 것이었다. 그런데 린타오가 바로 그 욕을 내뱉으면서 술에 취한 여자를 때리려는 장면을 목격하자 석훈의 눈이 홱 돌아갔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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