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강원도 산간 지방에서는 벌써 서리가 내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상해는 아직 코트를 걸치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날씨가 따뜻했다. 상해 중심가인 난징루에 자리 잡은 창하이(滄海) 옥션 경매장으로 들어가던 한치호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시야에 절대로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간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도윤 박사?”
그가 부르는 소리에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던 이남일녀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이도윤과 안석훈, 그리고 최서라였다. 뒤늦게 최서라의 얼굴을 확인한 한치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라? 저 여자는 또 왜 여기에 온 거지?
“최서라 씨가 아닙니까? 이거 반갑습니다. 상해에는 어쩐 일이세요?”
도윤을 불러 세운 한치호는 정작 그를 젖혀둔 채 일부러 환한 웃음을 지으며 최서라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상대를 반기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안면이 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초면은 아니었다. 한성 옥션과 청파 갤러리에서 개최한 행사에 각각 참여했다가 두세 번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 3층에서 오늘 비공개 경매가 있어서요. 한 실장님이야 말로 웬일이세요?”
다소 냉기마저 흐르는 그녀의 목소리에 반갑게 말을 걸던 한치호가 움찔했다.
“저도 오늘 비공개 경매에 참여하는…, 설마 한국 불교미술 경매에 응찰하러 온 겁니까?”
“맞아요. 내용을 아는 걸 보니까 한 실장님도 참가하는 모양이네요. 한성 옥션에서도 이번 경매에 초대장을 받은 모양이죠? 뜻밖이네요?”
뜻밖이라고? 뜻밖인 건 내 쪽이다. 한치호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회사가 아니라 제가 개인적으로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회사를 초대한 거나 마찬가지지요. 작품을 사고파는 건 어차피 제가 아니라 회사가 될 테니까요. 그런데 청파 갤러리에도 초대장이 간 겁니까?”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한치호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 도윤이 나섰다.
“저희는 초대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응찰 대리인 자격으로 여기 온 거예요.”
한치호의 고개가 도윤을 향해 홱 돌아갔다.
“대리인 자격? 누굴 대리해서 오셨는데요?”
도윤이 어깨를 으쓱하며 씩 웃었다.
“그건 당연히 비밀입니다. 오늘 경매는 비공개 경매니까요.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대리인은 보통 자신이 대리하는 사람의 신분을 밝히지 않죠.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한치호는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억지로 폈다.
“물론 그렇죠. 다만 천재 감정가와 청파 갤러리의 실장님을 대리인으로 내세울 정도의 거물이 누군지 궁금해서 저도 모르게 결례를 했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럼 오늘 좋은 성과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도윤은 그 말과 함께 한치호를 외면하고 걸음을 옮겼다. 세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지자 한치호가 이를 살짝 악물더니 손짓으로 수행원 한 명을 불렀다.
“이도윤이 누구를 대리해서 여기에 왔는지 알아봐.”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창하이 옥션과 내밀한 공모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치호로서는 얼마든지 경매와 관련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의 지시를 받은 부하직원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잠시 후 작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토마스 리히터의 대리인 자격으로 왔다고 합니다. 의뢰를 받은 사람은 이도윤과 최서라 두 명이고, 다른 한 사람은 수행원 자격으로 따라온 듯합니다.”
“토마스 리히터? 드라이바인 그룹 회장 말이야? 그 자가 이 경매에 왜 대리인을 보내? 불교미술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관심을 보인 적이 없는 사람이잖아?”
“창하이 옥션 관계자들도 당황한 모양입니다. 불과 한 시간 전에 드바인 그룹으로부터 대리인이 참가할 거라는 통보가 왔답니다.”
빌어먹을. 한치호는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이도윤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물건을 알아보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소문이 이미 파다한 신예 감정가였다. 거기다 청파 갤러리는 자금력에 있어서 오성 그룹의 아리움 미술관에 비견될 정도로 큰 화랑이었다.
“아버지가 분명히 최서라와 내 결혼 문제를 가지고 미래 그룹 쪽에 말을 넣겠다고 하셨잖아? 그런데 저 여자가 이도윤까지 앞세워서 내 일을 방해하고 나서? 어떻게 된 거야?”
이번 경매는 한성 옥션에게 큰 이익이 걸린 한 판이었다. 금동보살입상은 왕이푸에게 넘기기로 했지만, 나머지 물건들 가운데 상당수는 한성 옥션이 매입하기로 각본이 짜여있었던 것이다. 우치무라는 금동보살입상을 시세보다 훨씬 거액에 넘기는 대신 한성 옥션이 미리 점찍어 놓은 다른 물건들은 시작가를 크게 낮추어서 내놓기로 했다.
“하지만 이도윤이 매입할 물건을 찍고 최서라가 돈질을 하면 완전 개판이 되겠군.”
잘못하면 미리 선정해 놓은 물건을 사지 못하거나, 어렵게 낙찰을 받더라도 예상보다 높은 금액을 지불하게 될 공산이 컸다.
한치호는 다급하게 창하이 옥션의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경매가 임박해서 그런지 창하이 옥션 사장과는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왕이푸 회장에게 직접 연락을 넣고 싶었지만, 그는 아직 그 정도의 거물과 직접 통화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이런, 빌어먹을.”
그는 휴대폰을 땅에 패대기치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눌러 참았다. 한동안 근신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다가 모처럼 큰 건을 맡아 상해까지 왔다. 이미 다 차려진 밥상에 앉아 수저만 놀리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왔다. 그런데 자칫하면 상이 송두리째 엎어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 * *
쉬주하오에게서 명단을 받은 도윤은 온갖 인맥을 동원해 초청장을 받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보냈다. 자신을 경매 대리인으로 지정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그게 비공개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영국의 장예주 박사와 뉴욕 소더비의 까미유에게도 다리를 놓아달라는 연락을 했다. 청파 갤러리의 최수아 관장 또한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주었다. 한국에서 1, 2위를 다투는 큰 규모의 갤러리 관장답게 최수아는 국제적인 VIP들과 두루 인연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대답들은 하나같이 거절이었다.
“다들 창하이 옥션의 경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요. 참여하지도 않을 경매에 공연히 대리인을 보낼 생각은 없다는 소리뿐이에요.”
도윤과 함께 VIP들에 대한 연락을 맡았던 최수아의 한숨 섞인 말이었다. 정말 안 되는 건가? 적잖게 낙담하고 있던 그에게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도쿄 나마타 갤러리에서 만났던 크리스틴 리히터였다. 그녀의 아버지인 드라이바인 그룹 회장 토마스 리히터는 이번에 창하이 옥션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VIP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 박사가 갑자기 이메일을 보내서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왜 창하이 옥션에 참가하려는 거예요? 일본에서 발견되었다는 백제 불상 때문인가요?”
크리스틴의 목소리는 친절하고 부드러웠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보여주었던 도발적인 모습을 떠올린 도윤은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글쎄요. 백제 불상에도 관심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나저나 전화를 주신 걸 보니 대리인을 지정할 생각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크리스틴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소리가 도윤에게는 왠지 도발적으로 들렸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빠나 저는 아시아의 불교 미술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하지만 이 박사가 우리 일을 하나 도와준다고 약속하면 상해에서 열리는 경매에 참가할 대리인으로 지정할 의사가 있어요. 제가 아니라 아빠를 대리하는 거예요.”
“도와달라고요? 흐음. 어떤 일인지 먼저 물어봐도 될까요?”
“별 거 아니에요. 이번 연말에 아빠가 베를린에서 조촐한 파티를 열 계획이에요. 참석 인원은 많지 않지만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귀빈들만 초대되는 특별한 파티죠. 이 박사가 그 파티에 참석해서 저와 아버지를 위해 물건을 몇 개 감정해주시면 돼요.”
“어떤 물건들입니까?”
“그건 지금 말씀드릴 수 없어요. 하지만 이 박사에게 부탁하는 거니까 당연히 미술품이나 유물이겠죠? 단, 파티가 끝난 뒤에도 어떤 물건을 감정했는지 절대로 발설하면 안 돼요.”
“굉장히 위험한 느낌이 드는 제안이군요.”
“위험할 건 없어요. 비밀을 지킨다는 약속만 잘 지키시면요.”
도윤은 잠시 고민했다. 설마 장물을 감정해달라는 건가? 하지만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귀빈들만 초대되는 파티라고 했는데? 물론 돈이 많고 사회적인 명성이 높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꼭 합법적인 일만 하는 건 아니었다. 사실 진짜 큰 범죄는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경우가 더 많았다.
“죄송하지만 불법적인 일에 연루되는 거라면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아직은 합법적이고 안전한 세상에서 살고 싶거든요.”
불과 얼마 전에 잘츠부르크에서 거창하게 사기를 친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도윤은 일단 거절하기로 했다. 그러자 크리스틴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이 박사님. 모든 비밀이 꼭 불법과 연관된 건 아니에요. 그리고 합법적인 일이라고 해서 다 안전한 것도 아니고요. 그 정도는 박사님도 아실 텐데요?”
“그래도 합법적인 일이 아무래도 안전할 확률이 더 높지 않겠습니까?”
“좋아요. 최소한 불법적인 건 아니라고 장담할게요. 그리고 말씀드렸듯이 박사님이 비밀을 잘 지켜주시기만 하면 저희도 박사님의 안전을 책임지겠어요. 그 정도면 될까요?”
그 정도로 될 리가 있겠냐?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내가 그걸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거 아냐? 하지만 도윤은 짧은 고민 끝에 결국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번 상해 경매에서 낙찰 받은 물품은 모두 제 소유입니다. 물론 낙찰대금은 제 돈으로 내겠습니다. 그걸 약속하시면 제안을 받아들이죠.”
“깔끔하고 좋네요. 그럼 거래가 성립된 거예요? 구두로 맺은 계약이라고 해서 나중에 오리발을 내밀면 제가 굉장히 실망할 거예요. 아셨죠?”
“베를린 파티에서 조금이라도 불법적인 일이 발생하면 저 역시 매우 실망할 겁니다.”
그렇게 해서 도윤은 크리스틴의 감정 의뢰를 한 번 수락하는 조건으로 상해에서 열리는 비공개 경매의 대리인 자격을 얻어냈다. 경매 개시 한 시간 전에 대리인의 참가를 통보해 달라고 한 것 역시 도윤의 요구였다.
* * *
석훈은 경매장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대기해야 했다. 경매장 안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이 초대장 한 장 당 두 명으로 제한되었고, 그나마 응찰을 위해 팻말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초대장을 소지한 한 사람 뿐이었기 때문이다. 도윤과 최서라는 경매장 안데 들어섰을 때는 이미 서른 명 정도의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마련된 의자의 수로 봐서는 대략 오십 명 정도가 참여할 모양이네요.”
최서라가 속삭이듯 말을 건넸다. 실내를 둘러본 도윤도 고개를 끄덕였다.
“초대장 한 장 당 두 명씩 입장할 수 있으니까 실제 응찰자 수는 25~30명 정도 되겠네요. 아예 나타나지 않을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어쩌면 그보다 더 적을 수도 있고요.”
“아무리 비공개 경매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출품되는 물건들을 감안하면 정말 소규모 경매네요. 왕이푸 회장하고 한치호 그 사람을 빼면 의미 있는 응찰자는 몇 명 안 되겠죠?”
“모르죠. 금동보살입상을 제외하고도 괜찮은 물건들이 여러 점 나오더라고요. 어쩌면 그 물건들을 노리고 일부러 참석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도윤은 크리스틴으로부터 초대장과 함께 창하이 옥션에서 보낸 위탁 물품 도록을 받았다. 그 도록을 훑어본 도윤은 적지 않게 놀랐다.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일본에 밀반출된 것으로 보이는 문화재급 미술품들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자리를 찾아 앉으려는데, 문득 사십대 후반의 남자가 수행원으로 보이는 남자 둘을 데리고 다가왔다. 분명히 초대장 한 장에 두 사람밖에 입장할 수 없다고 들었는데 남자에게는 그런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도윤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게 누굽니까? 이도윤 박사가 아닙니까? 오신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는데 여기서 만날 줄이야. 정말 반갑습니다.”
남자는 상당히 능숙하게 영러를 구사했다. 도윤은 어색하게 웃으며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상대는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모르기도 어려운 인물이었다.
“아리쓰의 왕이푸 회장님 아니십니까? 저야말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 얼굴을 아시는지…….”
도윤에게 악수를 청한 남자는 아리쓰 온라인의 회장 왕이푸였다. 규모로는 전 세계에 걸친 판매망을 가진 아마존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중국에 한정해서 말하면 아리쓰 온라인이 인터넷 쇼핑몰의 패자였다.
도윤의 말에 왕이푸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껄껄 웃었다.
“올해 초에 방영되었던 트루쓰 앤 밸류를 아주 감명 깊게 봤습니다. 정말 귀신 같은 안목으로 끝내 우승을 차지하시더군요. 젊은 천재를 만나게 되어서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마치 오랜 지인을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던 왕이푸의 눈이 옆에 있던 최서라에게 향했다.
“그런데 옆에 계신 미인은 누구십니까?”
그 말에 최서라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한국에 있는 청파 갤러리의 최서라 실장입니다. 견문을 넓히기 위해 이도윤 박사와 함께 이번 경매를 보러 왔어요. 한국 불교 미술품이 이렇게 한꺼번에 나오는 기회는 드물거든요.”
“아, 미래 그룹 최 회장님의 손녀께서 청파 갤러리에서 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소문대로 정말 미인이시군요.”
왕이푸가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최서라는 조금 놀랐다.
“왕 회장님께서 저와 청파 갤러리에 대해서 알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래 그룹과 청파 갤러리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회사가 아닙니까? 저도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니 이웃 나라의 소식에 대해서는 늘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도윤과 최서라가 왕이푸 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한치호가 자신의 일행과 함께 경매장으로 들어서다 그 장면을 보았다. 그는 도윤을 잠시 노려보더니 왕이푸에게 다가왔다.
“왕 회장님 안녕하셨습니까? 이번에 한국의 한성 옥션을 대표해서 경매에 참여하게 된 한치호라고 합니다.”
왕이푸는 도윤을 보고 반가워하던 때와는 달리 다소 덤덤한 표정으로 한치호와 악수를 나눴다.
“누구신가 했더니 한성 옥션에서 오신 분이군요. 오늘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네. 왕 회장님도 원하시는 물건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한치호는 왕이푸와 조금 더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그가 악수를 나누자마자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고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자기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그가 자리를 떠나자 왕이푸가 도윤에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경매 중간에 잠시 쉬는 시간이 있을 겁니다. 두 분 모두 괜찮으시면 그때 잠시 차라도 한 잔 하시면 어떻겠소? 이왕 상해까지 오셨으니 내가 좋은 차를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
갑작스러운 제안에 도윤과 최서라 모두 약간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그런 거라면 차라리 경매가 끝난 다음이 낫지 않을까요?”
도윤의 말에 왕이푸가 눈을 찡긋했다.
“경매가 끝난 뒤에는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가능하면 중간에 봅시다. 내 생각에는 그게 좋을 것 같아요.”
뭣 때문에 그러지? 도윤은 눈빛으로 최서라의 의사를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도윤도 동의를 표시했다. 경매 시작 시간이 다 됐기 때문에 세 사람은 일단 서로 명함을 나누고는 각자 자리를 찾아 앉았다. 잠시 후, 자리가 몇 개 비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시간이 되자 어김없이 경매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