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두 사람은 고흐 미술관 내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 두 잔을 놓고 마주앉았다. 페르베이 관장은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그는 커피에는 입도 대지도 않더니 잔에서 피어오른 커피향이 미처 테이블을 떠나기도 전에 질문부터 시작했다.
“아까 감정 의뢰가 이미 해결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방향이 어느 쪽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나마타 보험의 해바라기는 진작입니까, 아니면 위작입니까?”
사람들이 나만 보면 그림의 진위 여부만 묻는구나. 도윤은 속으로 고소를 삼켰다.
“방향이 완전히 잘못되셨네요. 그렇게 해결된 게 아닙니다. 의뢰자가 먼저 매입을 포기했어요. 나마타 갤러리에서 가격을 좀 세게 불렀나 보더군요.”
도윤은 굳이 솔직히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조금 예상 밖의 대답이었는지 페르베이 관장이 움찔하더니 살짝 눈웃음을 쳤다.
“그래도 그림을 직접 감정하셨으니까 개인적인 의견이 있을 거 아닙니까? 이 박사가 보기에는 그 그림이 진작인 것 같던가요? 아니면 위작으로 보셨습니까?”
“제 의견을 말씀드릴 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삼만 유로를 내셔야 합니다.”
“삼만 유로요?”
“네. 제 의뢰인에게 감정료로 받은 액수입니다. 모르셨습니까? 저 프로 감정가입니다. 감정을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죠.”
커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던 페르베이 관장이 잠시 말을 멈추고는 커피 잔을 입에 댔다. 이왕 마실 거면 식기 전에 드실 것이지. 관장이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호기심이 지나쳐서 결례를 한 것 같군요. 우리 고흐 미술관에는 일 년에 수십 점씩 진위 감정 의뢰가 들어옵니다. 대부분 고흐의 그림이죠. 하지만 그 가운데 진작으로 판명되는 것은 한두 점도 채 되지 않습니다.”
“힘드시겠네요. 수많은 가짜들을 퇴짜 놓느라.”
“하지만 가끔씩 진작이 발견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보람을 느끼죠. 아시겠지만 고흐는 평생 2000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을 늦게 시작했고, 사십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열심히 그린 셈이죠. 저는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고흐의 진작이 아직도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 점에는 동감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어딘가에는 위작이 진작의 탈을 뒤집어 쓴 채 버젓이 사람들 앞에 걸려 있을 수도 있죠. 늘 있는 일이니까요.”
페르베이 관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시다시피 우리 고흐 미술관에서는 나마타 보험의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가 진작이라는 공식적인 감정 의견을 냈습니다. 테오가 죽기 전에 작성한 문서에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의 두 번째 레플리카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니까요.”
도윤 역시 비슷한 웃음을 입에 머금었다.
“저도 오늘 자료를 살피다가 그 문서를 확인했습니다. 아주 특이한 문서더군요.”
“특이하다고요? 어떤 점이 말입니까?”
“관장님이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고흐가 그림을 그리거나 편지를 쓸 때 사용한 물품은 모두 테오가 사서 보내준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고흐는 그 점에 대해 늘 동생에게 감사했지요.”
“그런데 고흐는 편지에 자신이 최근에 완성한 그림의 스케치를 그려서 동생에게 보내곤 했습니다. 그때 그가 사용한 잉크가 아이언 갤 잉크였다는 걸 혹시 아십니까?”
페르베이 관장의 얼굴이 굳었다. 이 양반 알고 있었군. 도윤이 말을 계속했다.
“아이언 갤 잉크는 선을 긋고 그 위에 다른 선을 그어도 잘 번지지 않기 때문에 스케치하기에 좋지요. 테오는 화가인 형을 위해 특별히 그 잉크를 사서 보냈습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것도 아시겠군요. 아이언 갤 잉크는 이름 그대로 철분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액체 상태일 때 철 이온이 산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염산을 섞죠. 그걸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잉크의 염산 성분이 날아가면서 종이가 품고 있는 수분을 빼앗아 버립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글씨나 그림의 색이 오히려 진해지죠.”
“그게 나마타 해바라기가 진작이냐 위작이냐 하는 문제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글쎄요? 한 번 생각해 보시죠. 테오가 형에게 아이언 갤 잉크를 서서 보냈다면 본인은 어떤 잉크를 썼을까요? 아마 같은 걸 쓰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그랬겠죠. 이미 산 걸 놔두고 굳이 다른 걸 쓸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자료실에서 고흐와 테오의 편지를 쭉 훑어봤지요. 시간이 부족해서 내용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두 편지의 글씨가 세월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하다는 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언 갤 잉크로 쓴 글씨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죠.”
“그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렇죠.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의 두 번째 레플리카가 언급된 문서는 글씨가 흐릿하더군요. 유독 그 문서만 그랬어요.”
페르베이 관장의 얼굴이 석고상처럼 변했다. 그는 한참 동안 도윤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마지못한 듯 입을 열었다.
“형이 죽은 뒤에 잉크를 바꿨나 보지요. 더 이상 형을 위해 아이언 갤 잉크를 살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그럴 수도 있죠. 바꿨으면 아마 수용성 염료 잉크로 바꿨을 겁니다. 그건 빛에 약해서 시간이 오래 되면 흐려지거든요. 두 번째 레플리카가 언급된 그 문서처럼 말이에요.”
그 대목에서 도윤은 남아 있던 커피를 마저 마셨다.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테오가 죽은 뒤 그의 부인이 작성한 요한나 리스트의 글씨도 아직까지 선명하더군요. 아이언 갤 잉크로 썼다는 뜻이지요. 그때까지 쓰고 남은 아이언 갤 잉크가 집에 남아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럼 테오는 왜 남아 있는 잉크를 다 쓰지도 않고 굳이 새 잉크를 사서 썼을까요?”
페르베이 관장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무서운 눈으로 도윤을 노려봤다. 그의 앞에 놓인 커피는 반 넘게 남은 채로 차갑게 식어 있었다. 더 이상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겠군. 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마지막 한 가지를 더 짚었다.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의 두 번째 레플리카가 언급된 그 문서 말입니다. 거기 적힌 글씨가 테오의 필체가 맞는지에 대한 검사를 전혀 하지 않으셨더군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저 같으면 그렇게 생소한 문서가 발견되었으면 당연히 검사했을 것 같거든요. 테오가 쓴 편지가 그렇게 많이 남아있으니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관장은 여전히 그를 노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오늘 굉장히 유익한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럼 저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도윤이 악수를 청했지만 페르베이 관장은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이 양반 계속 신사인 척하더니 옹졸하긴. 그는 그냥 씩 웃어주고는 자리를 떠났다. 미술관 밖으로 보이는 암스테르담의 하늘은 여전히 차갑고 무거웠다.
* * *
“2월은 넘어야 그림을 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전에 누군가 사겠다고 나서면 할 수 없지만 그게 아니면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서울로 돌아온 도윤은 먼저 고베의 아오키 씨한테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다. 당장이라도 그림을 팔아줄 수 있을 것처럼 얘기를 해둔 터라 약간 미안했지만 최 회장이 구매를 포기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오키 씨는 불안해하면서도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림을 알아본 사람도, 그걸 팔아주겠다고 한 사람도 자네뿐이야. 춘강이 말고 다른 사람한테는 그림에 대해 입도 뻥끗 안했어. 그러니까 너무 오래 기다리게만 하지 않으면 돼.”
“적당한 구매자가 나서지 않으면 저라도 살 테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자네가? 자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지금은 없지만 2월에 돈이 들어올 곳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림은 꼭 팔아드릴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알았네. 평생을 옆에 걸어두고 살았는데 저게 돌멩이가 아니라 다이아몬드라니까 요즘은 자꾸 불안해. 누가 알면 훔쳐갈까 봐. 되도록 빨리 처분해주게.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만약 예상치 못하게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 유찰되어서 돈을 구하지 못할 경우, 소더비에 고베 해바라기의 존재를 알릴 생각이었다. 소더비의 감정가들이라면 그 그림이 진작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적어도 그림을 파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라는 게 도윤의 생각이었다.
아오키 씨한테 양해를 구한 뒤, 도윤은 꼬박 사흘 동안 자기 방에 틀어박혀 나마타 해바라기에 대한 원고를 쓰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런던과 암스테르담에서 서류를 살필 때, 필요한 자료들은 양해를 구한 뒤 모두 사진을 찍어두었다. 몇 가지 정황 증거에 새로 모은 객관적인 증거들을 덧붙여 추론을 이어나가자 상당히 설득력 있는 글이 완성됐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지나치게 방대해진 글을 소더비 리뷰라는 잡지의 성격에 맞게 줄이는 것이었다. 도윤은 원고가 완성되자마자 즉각 소더비 리뷰 편집부로 전송했다. 이메일을 보낸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까미유 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편집부에 부탁해서 이 박사님이 보낸 원고를 읽어봤어요. 이거 발표되면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소더비 리뷰가 학술 잡지는 아니지만 주요 수집가들은 대부분 한 번씩 읽어보거든요.”
“그래서 부탁한 겁니다. 그 잡지가 학술적인 권위는 없어도 파급 효과는 빠르니까요.”
“캔버스 재질은 또 뭐예요? 테오의 필체에 관한 내용도 그렇고, 이러면 고흐 미술관과는 완전히 척을 지게 될 거에요. 그 사람들 신뢰성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한 셈이잖아요.”
“그러니까 고흐 미술관도 애초에 조사를 철저히 했어야죠. 애매하게 넘어가지 말고.”
도윤은 고흐 미술관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페르베이 관장과의 만남을 돌이켜볼 때, 그쪽과의 관계는 이미 다리를 건넌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실 까미유가 언급한 캔버스 재질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예전에도 의문이 제기됐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 원본과 필라델피아에 있는 레플리카는 캔버스 천의 재질이 면포다. 반면에 나마타 해바라기의 캔버스는 아마포로 만들어졌다. 앞의 둘은 네덜란드 산인데 반해 뒤의 것은 프랑스 산이기 때문에 생긴 차이였다.
고흐 미술관에서는 두 번째 레플리카의 캔버스 천이 아마포인 이유를 고갱에게서 찾았다. 고갱이 고흐의 초대를 받아들여 아를의 화실로 올 때 아마포로 만든 캔버스 천을 가지고 왔고, 고흐가 나중에 그걸 빌려 썼을 거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렇게 설명하면 그림의 제작 시기가 꼬인다. 나마타 해바라기, 즉 두 번째 레플리카를 경매했던 런던 크리스티에서는 그림의 제작 시기를 1889년 1월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고흐기 자신의 귀를 자른 것은 1888년 12월 23일이고, 고갱은 그 직후 아를을 떠났다.
즉 고흐 미술관의 설명을 따르면 고흐는 고갱이 떠난 뒤에 그의 캔버스 천을 빌려 썼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고갱이 아를을 떠날 때 캔버스 천을 두고 갔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설명 자체가 궁색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여담이지만 고갱은 몹시 인색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소더비 리뷰에 원고를 보낸 뒤에 미래 그룹 최인탁 회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수고했으니 밥이나 한 끼 사겠다는 얘기였다. 도윤은 소더비에 보냈던 원고 두 부를 인쇄해서 그 자리에 들고나갔다. 식사 자리에는 청파 갤러리의 최수아 관장도 나와 있었는데, 두 사람은 원고를 읽어보더니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 글을 읽으니 새삼 자네 말을 따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 고생했어.”
최 회장은 미련을 떨어버릴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도윤은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사람을 믿을 거면 끝까지 믿든가. 얼마 안 있으면 최 회장은 그러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마타 보험이 소장하고 있던 그림들이 하나둘 팔려나갔다. 아직 경매까지 가기 전이었고, 미술품 거래가 늘 그렇듯이 구매자들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고흐의 해바라기는 끝내 매각되지 않았다. 미술계에서는 나마타 보험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고집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도윤의 글이 실린 소더비 리뷰가 전 세계 소더비 매장을 중심으로 주요 수집가들에게 배포되었다. 처음엔 잠잠한 듯하더니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미술계가 발칵 뒤집혔다.
“아쉽네요. 이렇게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힐 거였으면 전에 만났을 때 미리 귀띔이라도 해 주실 것이지. 아무튼 덕분에 큰 웅덩이를 피할 수 있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나마타 갤러리에서 만났던 크리스틴 리히터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녀는 드라이바인 그룹의 리히터 회장이 나마타 해바라기 구입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네 글 때문에 오르세가 한 바탕 발칵 뒤집혔어. 여기도 나마타 해바라기에 대해 은근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거든. 아무튼 넌 대단하다.”
오르세 미술관에 큐레이터로 취직한 파비앵 말레로부터의 연락이었다. 그런 식으로 도윤의 글을 읽고 나마타 해바라기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는 전화가 여기저기서 걸려왔다.
뒤늦게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나마타 보험에서 해바라기의 가격을 크게 낮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림은 끝내 팔리지 않았고, 결국 경매장까지 나가 무려 세 번의 유찰을 거듭한 끝에 연말이 다 되어서야 20억 엔이 약간 넘는 가격에 낙찰됐다. 달러로는 약 2천만 달러. 구매자는 우에노 공원에 있는 국립 서양 미술관이었다.
“그 때문에 정부가 부실기업에게 간접적으로 금융 지원을 해 준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많은가 봐요. 어쨌거나 나마타 보험은 지금쯤 도윤 씨에게 이를 갈고 있을 거예요.”
최수아 관장의 얘기였다. 어째 이 바닥에서 일을 하면 할수록 원수만 자꾸 많아지는 것 같네?
나마타 해바라기와는 달리, 2월 중순에 뉴욕에서 열렸던 소더비 정기 경매에서 도윤이 지목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무려 2170만 달러에 팔렸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고가였고, 덕분에 도윤은 수수료를 제하고도 무려 19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그 돈이 계좌에 입금되는 것을 확인한 도윤은 몇 가지 준비를 마친 뒤 곧바로 일본으로 다시 날아갔다. 고베의 해바라기를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