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09 세상을 내 손에(최종화) =========================================================================
하늘의 눈동자가 제공하는 종합 안전보장 기능은 사람들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범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대참사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안전사고를 경계하고, 적절한 대처를 내렸다.
한계가 전혀 없진 않았다.
하늘의 눈동자는 어디까지나 사람이 이용하는 시설물, 주변 환경 등을 정밀 스캔하여 위험이 발발할 가능성을 고도로 예측하는 것이기에.
아무 문제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사고까지는 막을 수 없다. 미래를 예언하는 게 아니니까.
「기적, 기적입니다! 강변에서 얼음낚시를 하던 중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진 미국인 관광객 스티븐 로지스 씨가 세 시간 만에 무사히 구출되었습니다! 영하의 차가운 물속에서 무려 세 시간 동안 사망하지 않고 버틴 겁니다!」
―기억이 잘 안 나요. 근데 춥다는 느낌은 지금도 전혀 들지 않네요…….
「H컨설턴트는 하늘의 눈동자가 스티븐 로지스 씨가 물에 빠지자 물에 체온을 빼앗기지 않게 차단 및 조절하는 한편, 폐에 직접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능을 작동시켰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하늘의 눈동자의 기능 중 하나로…….」
하늘의 눈동자는 지구상의 모든 것을 감시한다. 그리고 허용된 권한 내에서 적절한 개입을 취한다.
살인이나 강도, 강간 등은 100% 미수로 그치게 되었다. 범죄 실행에 착수하면 하늘의 눈동자가 즉시 개입해서 범죄자를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경제 범죄나 비리 같은 것도 남김없이 잡아낸다.
어떤 대기업 CEO는 자사 제품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자 개인적 손해를 막기 위해 조작 작업에 몰두하던 도중, 긴급 출동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물론 자잘하고 사소한 비리까지 일일이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경찰이나 검찰에 정황과 증거를 제공하는 것에서 그친다.
러시아는 하늘의 눈동자가 제공하는 기능 중 화재 진압 기능만 제공받았다. 미국은 화재 진압 외에 총기 범죄자 제압 기능까지 추가로 제공받았다.
완전한 풀 패키지가 활성화된 곳은 아직까지 한국뿐이었다. 한서진이 거부해서가 아니라, 그 나라들이 아직 받아들이는 것을 망설이기 때문이었다.
「SJ그룹이 제공하는 하늘의 눈동자 등 여러 가지 사회적 헌신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눈에 띄게 살기 좋아졌습니다. 안전사고도 0에 수렴하고, 강력범죄도 사실상 소멸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새로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바로 일자리가 급감하고 있다는 겁니다.」
「복지정책으로 인해 생계에는 문제가 없지만, 직업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회 환경이 비약적으로 좋아졌지만, 그에 비례해서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소방관과 경찰 등 치안 인력이 가장 먼저 대폭 감소했다.
회계사나 세무사는 소멸의 길을 걷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늦어도 5년 안에는 두 직업이 완전히 없어질 거라고 예측했다. 약사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전국의 모든 약학대학에 응시 지원생이 사라져버렸다.
의사 지원생도 그 수가 급감했다. H시리즈 덕분에 환자 수가 급감했고, 그나마도 가벼운 질환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의료수가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외과 쪽에 지원자가 쏠렸지만, 그마저도 안전사고 급감의 영향을 받았다.
살기 좋아졌고, 여러 지원도 다양해서 생계도 여전히 문제가 없지만, 일자리의 빠른 감소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이 새로운 문제로 대두했다.
그리고 그것은 새 정부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했다.
「언젠가는 모든 인간이 근로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안락만을 누리는 삶에 접어들게 됩니다. 문명이 발달하는 한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는 재산의 독점이 아닌, 지식의 독점이 일어나게 됩니다. 황금과 돈이 아니라 지식 그 자체가 재산이자 부로 직접 취급되는 겁니다.」
한서진은 하늘을 주시했다. 찬란한 태양이 높이 떠올라 세상을 비추고 있다.
저것은 오래 전 한 인간, 아니 지적 존재가 만들어낸 인공 구조물이다. 인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에테르, 그 만능의 힘을 뿜어내는 존재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자신과 송하나, 신효진뿐이다.
이것 역시 프리덤이 말하는 지식의 독점이라 할 수 있으리라.
「모든 것이 동등하게 풍요로운 세상, 이상향이지만 인간은 그런 환경을 오래 견디지 못합니다.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경쟁 본능은 다른 이들과 차별화된 자신만의 장점을 갖추고자 끊임없이 노력할 겁니다.」
“그리고 그 경쟁심은 지식의 탐구로 향할 수밖에 없다……. 네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거지?”
「그렇습니다.」
물질적인 부가 공평해진 이상, 그것은 더 이상 부귀와 가난의 척도가 될 수 없다. 인간은 새로운 부의 기준을 찾아내고자 노력할 것이고, 그것은 지식으로 향할 것이다.
안다는 것이 힘이 되고, 곧 부 그 자체가 된다.
그런 인식이 널리 퍼진 사회가 오래 지속되었을 때, 과연 인류가 태양의 비밀을 계속 모를 수 있을까?
“니트론 교수님은 가장 먼저 에테르의 존재를 깨닫고 탐구하셨지. 아무런 기반이나 단서도 없고, 그저 과학적 가설만으로 그런 성과를 거뒀어.”
「그것이 인간이 지닌 저력입니다.」
“레노지안도 그것 때문에 두 번이나 망했지. 제독이 실험했던 무수한 문명들도 지식에 대한 탐구욕을 제어하지 못해 멸망했고.”
100년, 아니 10년 후 이 지구의 모습은 어떻게 될까.
전능한 힘을 얻었지만, 미래를 예지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한서진은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이 지구와 레노지안, 그리고 나 역시 제독이 행한 문명 실험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겠지?”
「제독, 그 어떤 문명도 전대 제독에게 특별하지 않은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실패할 때마다 안타까워 하셨죠.」
제독의 마지막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며, 한서진은 조용히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때 저벅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누구랑 이야기해요? 프리덤?”
“박사님, 우리 셋이서 아랍 여행 한 번 가야죠. 언제 날 잡아볼까요?”
“신효진, 너 자꾸 그럴 거면 집에 가.”
“아, 왜애.”
두 여자가 티격태격하며 자리에 앉았다.
“애는?”
“자고 있어요. 이제 좀 숨 돌릴 것 같네요.”
얼마나 애가 보챘으면, 송하나는 한눈에 보기에도 조금 지쳐 보였다.
최수한이 음료를 가져와서 야외 테이블 위에 놓았다. 셋은 각자 손을 뻗어 잔을 쥐었다.
신효진이 눈웃음을 치며 물었다.
“요즘 박사님, 프리덤하고 이야기 자주 하시는 것 같네요?”
“저와 동기화되어 있으니까요. 녀석도 오래 잠들어 있어서 심심한가 봐요.”
“근데요, 박사님. 그럼 우주여행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프리덤과 태양의 힘을 합치면 가능하지 않나요?”
“태양 자체가 프리덤이 만든 에너지원 아니야? 그럼 태양은 별로 필요 없지 않아?”
“어, 그런가?”
둘의 대화를 들은 한서진은 친절하게 부연설명을 해줬다.
“태양, 아니 에테르 에너지원을 애초에 만든 건 제독이야. 프리덤은 자기 엔진으로 쓰던 에너지원을 태양의 형태로 변형시킨 거고.”
“아, 그럼 우주여행을 하려면…….”
“태양을 회수해야지. 그리고 지상도 없어져버려. 지금 지상은 프리덤 위에 토양이 쌓인 거니까.”
신효진이 눈에 띄게 아쉬워했다.
“에이, 그럼 어쩔 수 없네요. 외계생명체는 나중에 만나보는 걸로 미뤄야하나요?”
한숨과 함께 기지개를 켜던 신효진이 문득 한서진을 똑바로 보고 물었다.
“그런데 박사님, 혹시 요즘은 꿈 안 꾸세요?”
“꿈이요?”
꿈이라는 말에 한서진은 괜히 가슴이 철렁했다. 신효진은 이번에는 송하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하나, 너는? 너는 꿈 안 꿔?”
“안 꾸는데. 왜? 혹시 너는 꿔?”
“응, 자주 꾸는데. 두 사람만 안 꾸나 봐.”
신효진이 다시 꿈을 꾼다고? 한서진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송하나도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얼마나 큰 고생을 했는데, 그걸 또 반복하라고?
“우리 셋 아랍 가는 꿈.”
신효진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하는 순간, 한서진은 온몸에서 긴장이 쫙 빠져나가며 맥이 탁 풀렸다. 송하나도 비슷한 기분이었는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째려보았다.
“야! 신효진! 그놈의 아랍 타령!”
“아, 그러니까 한 번 가자니까.”
“됐고, 이번 생은 내 차지니까 넌 다음 생이나 기약해.”
“다음 생에는 양보해줄 거야?”
“아니. 안 해줄 건데?”
“야, 송하나. 그런 게 어딨어. 그럴 거면 그냥 이번 생에 같이 좀 쓰자.”
두 여자가 티격태격 하는 소리를 흘리며, 한서진은 의자에 눕듯이 털썩 등을 기댔다. 긴장감이 빠져나가며 기운도 함께 끌고 갔나 보다. 몸에 힘이 안 들어간다.
그는 조용히 두 여자를 바라봤다.
전생에 못 다한 인연, 그러다가 지금 다시 이어진 인연.
조금 엇나간 채 이어지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아쉬운 마음은 없다.
‘전생은 전생일 뿐이지.’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현재이니까.
그는 눈을 돌려 태양을 주시했다. 통찰안이 태양이 지닌 온갖 진실을 비춰냈지만, 가뿐히 무시했다. 그저 태양이 뿜어내는 강렬한 빛을 탐독하듯이 바라보기만 했다.
꿈을 꾸었다.
그는 찬란한 별빛으로 가득한 우주 한복판에 홀로 있었다. 드넓은 우주가 손안에 잡힌 듯 좁게만 느껴진다.
팔을 뻗기만 해도, 우주 끝에서 끝까지 이어질 것만 같은 감촉이 온몸을 사로잡는다.
우두커니 우주 끝을 바라보던 그는 문득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고, 그쪽을 돌아봤다.
그곳에는 희미한 빛에 감싸인 제독이 서 있었다.
반투명한 모습은 마치 이 차원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주 먼 곳에서 이미지만 보내온 것 같다.
제독은 아무 말도 않은 채,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천천히 등을 돌려, 우주 끝을 향해 미끄러지듯이 이동하다가 서서히 지워지듯이 사라졌다.
그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던 한서진은 천천히 눈을 떴다.
조금 전까지 느꼈던 광활한 우주의 모습 대신, 주스 잔을 부딪치는 두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꿈을 꾼 것은 아니다. 자신은 잠들지 않았으니까.
「메시지를 받으셨군요.」
의식을 통해 프리덤이 말을 걸었다. 녀석도 무언가를 감지한 모양이다.
한서진은 덤덤히 대답했다.
“제독을 만난 거 같아.”
“네? 오빠, 뭐라고 하셨어요?”
“그게 정말이에요?”
두 여자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이쪽으로 눈을 돌렸다. 한서진은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대답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분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뭐라고 말하던가요?”
“그냥, 태양계 관리하면서 잘 먹고 잘 살라고 하던데.”
「…….」
“정말요?”
「그분이 그럴 리가 없을…….」
“진짜야. 우주 밖이나 다른 우주, 혹은 이차원의 우주 같은 곳으로 진출할 생각은 하지도 말래. 나하고 인류한테는 아주 버겁다나? 그냥 태양계에 눌러 앉아서 태양 안 터지게 조심하고, 지구나 잘 관리하면서 살라고 신신당부하더라.”
신효진이 팔짱을 낀 채 끄덕거렸다.
“레노지안이 두 번이나 망한 거 보고 그분도 느낀 게 많나 보군요. 다행이에요. 전 또 괜히 박사님이 그분의 유지를 잇는다며 우주로 진출한다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유지는 못 이어도 남긴 말은 꼭 지켜야지요.”
「전대 제독께서 그러실 리가 없는데…….」
“그래도 선조님께서 양심은 있네요. 마지막에 좋은 말씀 남기셨네요, 오빠.”
한서진은 기지개를 크게 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원을 거닐면서 하늘의 눈동자에 접속했다. 그러자 지구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인간의 일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보통 인간이라면 스쳐보는 것만으로도 미쳐 버릴 만큼 무수한 인간의 생로병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서진은 인간의 눈으로 그 모든 것들을 훑어봤다. 얼마쯤 그러고 있었을까. 연락 채널이 활성화되며 비서실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박사님, 곧 회의 시간입니다. 참석자 전원이 지금 기다리고 계십니다.」
“얼마나 왔죠?”
「참가 의사를 밝힌 112개국의 정상 전원께서 오셨습니다.」
“알겠어요.”
하늘의 눈동자를 끄기 직전, 한서진은 눈길을 끄는 풍경에 잠시 멈췄다.
옛 일본이었다. 지금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불모의 땅.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인 백골의 모습이 보인다. 그 옆에는 두개골만 남은 초룡이 그의 최후를 기억하듯 남아 있었다.
생명이란 참 질겨서, 백골과 두개골은 어느새 푸른 덩굴 잎으로 뒤덮여 있었다. 과거를 흙으로 삼아 딛고, 새 생명이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한참이나 관조하던 한서진은 문득 고개를 뒤로 돌렸다. 송하나와 신효진, 그 둘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다시 발을 내딛었다.
대회의장 문이 열리며, 착석해 있는 국가 원수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집 앞으로 산책을 나온 사람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대회의장 안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