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607화 (607/609)

00607  [에필로그] 세상을 내 손에  =========================================================================

대통령 의전 차량이 경호대의 호위를 받으며 웜홀을 통과했다. 서울에서 순식간에 북부 H타운으로 넘어온 대통령 일행은 한서진의 사택으로 향했다.

저 멀리에서부터 사택이 보이기 시작했다. 옛날 중국의 황제가 살았다는 자금성보다 훨씬 넓은 면적이라는데, 언뜻 상상이 가지 않는다.

도원패 대통령은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저기가 한서진 박사 새 집인가?”

“그렇습니다만, 사택을 포함해서 H타운 전체가 한서진 박사의 집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자기 집 정원 안에 초거대 도시를 만든 셈이지요. 앞으로 그 어느 누구도 그 스케일은 절대 따라잡지 못할 겁니다.”

경기도에 버금가는 거대 도시가 자기 집 정원이라니. 도원패는 새삼 그에게 머리를 숙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국회의원 시절 감히 그를 통제하려 했던 자신이 혐오스러울 정도다. 어떻게 그렇게 멍청하고, 어리석으며, 앞뒤 분간을 못하는 천치처럼 굴 수 있단 말인가.

몇 년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때의 자신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기고 싶은 마음뿐이다.

“대통령님, 미국과 러시아 대통령은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합니다.”

“그래? 내가 제일 늦었군.”

도원패가 늦었다기보다는 두 정상이 예정 시간보다 훨씬 빨리 온 것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살짝 초조해졌다.

대통령 경호대는 거대한 정문을 통과해서, 넓게 깔린 도로를 가로질러 올라갔다.

사택은 살짝 높이가 있는 기슭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지대가 높은 편이었다. 그 말인즉 H타운 전체가 내려다보인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통령 차량이 기슭 정상에 세워진 거대한 본채 앞에 섰다. 밖에서 보니 집이라기보다는 궁전 그 자체다.

대통령은 차에서 내렸다. H컨설턴트 임원들이 나와서 맞이하며, 안으로 안내했다.

대통령은 1층에 위치한 회의실로 안내받았다. 널찍한 홀에는 커다란 원탁을 중심에 놓고, 한서진과 다른 두 대통령이 둘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한서진이 일어나서 대통령을 맞이했고, 두 대통령도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통령은 악수를 나누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홀 안에는 그들 넷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통역은 한서진이 설치한 개별 통역 시스템을 통해 이뤄지며, 이 자리에서 일어난 세 나라 사이의 극비로 취급된다.

회의실의 한쪽 벽은 전체가 통짜 유리로 되어 있어, 드넓은 H타운의 시내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이곳에서 저 초거대 도시를 매일 내려다보는 기분은 대체 어떨까. 하물며 그 도시가 자신의 것이고, 자신의 집 정원에 세워진 것이라면?

도원패는 가늠하기 힘든 그 기분을 상상하다가, 얼른 현실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한서진 박사가 무슨 일로?’

그는 다른 두 대통령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들도 자신처럼 못내 궁금증을 참고 있는 듯이 보였다.

오늘 이 자리를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한서진이다. 무엇 때문에 세 나라의 대통령을 불렀을까.

“요즘 세계가 많이 혼란스럽지요? 특히 경제적으로 문제가 심한 것 같습니다.”

한서진이 먼저 천천히 운을 떼었고, 미국의 케인 대통령이 얼른 말을 받았다.

“한때 붕괴 직전까지 몰린 건 사실입니다만, 지금은 회복세에 접어들었습니다. 위축된 소비 심리도 살아났고 기대지표도 아주 좋습니다. 박사님께서 굳이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케인 대통령은 진심이었다.

외계 종족의 침공에서 지구와 인류를 구한 것만으로도 한서진은 할 일을 다했다. 세계 대공황 같은 사소하고 세속적인 문제에 감히 신경을 쓰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우리 러시아는 그리 큰 타격은 없습니다만, 유럽과 중동 쪽의 혼란이 극심합니다. 그쪽은 정말 제대로 얼어붙었지요.”

키틴 대통령이 묵직한 어조로 분위기를 상기시켰다.

도원패 대통령은 자신도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속으로 잠시 고민했다.

사실 잘 와 닿지는 않았다. 세계 경제가 극심한 혼란에 빠진 건 사실이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강 건너 불구경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경제혼란과 거리가 먼 순서를 따지면 한국, 그리고 러시아와 미국, 이 정도 순서가 되지 않을까.

“세 분도 아시겠지만, 그간 제가 일부러 에너지 쪽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무선 송전 시스템을 개발했어도 H타운에만 적용한 상태지요.”

에너지 이야기가 나오자 세 대통령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세계 경제는 한서진이 봐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는 의도적으로 에너지 시장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에테르는 다른 어떤 에너지원보다 효율적이고 청정하며 안전한 힘일 텐데.

“실은 제가 근래에 느낀 게 좀 있습니다.”

“어떤 것인가요?”

“혼란을 억누를 힘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일부러 변화를 지연시킬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 수 있는데 자제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선 송전 시스템 역시 그렇고요.”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이 셋의 안색을 스쳤다.

“무선 송전 시스템을 먼저 한국에 활성화할 생각입니다.”

매를 가장 먼저 맞는 건 한국으로 결정이 났다. 하지만 도원패 대통령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이건 아픈 매질이 아니라 좋은 매질이다.

“그리고 전기료는 무료로 할 생각입니다.”

“바, 박사님!”

이번 것은 좀 컸다. 도원패는 사색이 돼서 한서진을 바라봤다. 만약 그렇게 되면 국내 에너지 관련 산업이 입을 타격이 크다.

“아, 반대는 하지 마세요. 어차피 에너지 해방은 언젠가 이뤄질 일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무공해 청정에너지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사회는 언젠가 옵니다. 그리고 지금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상태고요.”

“하지만 그러면 산업에 타격이 큽니다. 에너지 관련 기업들도…….”

“그 기업들의 손해는 제가 전부 보전해주죠. 어차피 돈 쓸 데도 없는데 잘 됐군요.”

손해를 몽땅 보전해 주겠다는데 더 이상 반대를 할 명분이 없었다. 도원패 대통령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세 분 모두 다른 오해는 마십시오. 미래를 그린 영화 같은 곳에서 자주 나오죠? 모든 인간이 물질적 풍요를 제한 없이 누릴 수 있는 사회 말입니다. 적어도 에너지만큼은 지금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뜻 깊은 일을 하시겠다는데 반대할 수야 없는 노릇입니다.”

케인 대통령이 겨우 입을 열었고, 키틴 대통령도 그 뒤를 받쳤다.

“그러나 그런 전격적인 개방은 당금에 세계가 처한 경제 혼란을 더 가중시키지 않을까 우려 됩니다.”

“그럼 미리 공표를 하고 3년이나 5년에 걸쳐 천천히 진행하면 됩니다. 에너지 시장을 장악한다 해서 그걸 가지고 어떤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취할 목적은 전혀 없습니다. 그 점을 분명히 알아주세요.”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덤핑을 통해 시장에서 경쟁자를 쓸어버린 후, 독점적 지위에서 마음껏 이익을 취할 것이다.

하지만 한서진은 그럴 의도가 없다.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

이것은 세상, 그리고 인류를 위해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기부다.

“무선 송전은 시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선 송전 시스템이 자리 잡은 이후에는 에테르를 이용한 동력 에너지를 제공할 겁니다. 마찬가지로 이 역시 무료입니다.”

설상가상으로 한서진은 한 술 더 떴고, 세 대통령은 아무 항변도 못한 채 듣기만 했다.

“한 가지 제약은 있습니다. 에너지의 사용은 어디까지나 평화적인 목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전쟁이나 범죄 등 용납할 수 없는 일에 사용하는 건 제한을 둘 겁니다.”

한서진은 대답 없는 세 대통령을 둘러보며 말을 계속 이었다.

“물론 러시아와 미국에 제가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만, 두 분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만약 우리 세 나라가 힘을 합치면 인류 전체가 진정한 에너지 해방을 맞이하는 날을 좀 더 앞당길 수 있습니다.”

키틴 대통령은 한서진을 가만히 주시했다.

그는 정녕 인간의 신이 되고자 함인가. 초절정 과학이라는 권능을 통해서?

“세 분 모두 아시겠지만 지금 저는 전 세계의 부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마치 블랙홀처럼 말이죠.”

그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언젠가는 저 혼자만 부유하고, 저를 제외한 모든 나라는 가난해지고 말 겁니다. 제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시기는 생각보다 더 일찍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누시겠다는 겁니까?”

“지식을 나눌 순 없지만, 풍요는 나눌 수 있지요. 지갑에 돈을 수십 경 AU씩 쌓아둬 봤자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세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두텁게 형성되는 공감대이자 우려이기도 했다.

여러 선진국에서 구축된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부의 집중 현상이 완성되어 가고 있다. 그 경제의 블랙홀은 다름 아닌 한서진이었다.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제가 내놓겠다는 겁니다. 인류라는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목적이기도 합니다. 사실 전 조금 무섭습니다. 제가 돈을 너무 많이 버는 게 말입니다.”

케인 대통령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돈을 너무 많이 버는 것 정도가 아니라, 세계 경제 그 자체가 되셨지요.”

“그렇다고 박사님이 이제 와서 경제 활동을 중지하거나 제한을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참 어쩔 도리가 없군요.”

그만이 홀로 세계의 부를 독차지하는 것은 결국 언젠가는 큰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일부러 반도체를 팔지 않거나, H시리즈를 생산하지 않거나, AU화를 발행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흐름은 굳어졌고, 그것은 그조차도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 되었다. 만약 그가 일부러 생산 및 소득 활동을 중단한다면 세계는 오히려 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에너지 해방 역시 크게 보면 결국 시작에 지나지 않겠군요.”

“H시리즈 등 의료서비스도 궁극적으로는 모든 이들에게 무료로 돌아갈 수 있게끔 해야겠지요.”

“의료산업에서 죽는 소리를 하는 게 벌써부터 들립니다.”

“그들의 일자리를 빼앗으려는 게 아니라, 인류를 병마의 고통에서 해방하기 위해서입니다. 에너지와 의료뿐만이 아니라 제 지식으로 일궈내는 모든 풍요로움을 모든 인간이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미래 사회의 생태계입니다.”

“유토피아가 생각납니다. 모든 인간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게 될까요?”

“글쎄요, 인간은 차별을 좋아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정말 그렇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풍요로운 세상이 몇 십 년만 지속돼도 모두가 똑같이 가난하다고 여기게 될 수도 있겠지요.”

키틴 대통령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그 길을 가지 않을 수도 없는 길이군요.”

“가지 않으면, 제가 세계의 부를 독점하게 될 뿐이니까요. 여기서 멈추면 대공황이 올 뿐이고요.”

“허어, 이거 참 제대로 외통수로군요.”

이미 세계의 경제의 중심핵이 된 한서진은 이 흐름에서 이탈할 수 없다. 그 자신이 아닌 세상을 위해서다.

나아가야 할 길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좌회선이나 정지 신호, 유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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