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604화 (604/609)

00604  [에필로그] 세상을 내 손에  =========================================================================

한국은 세계에서 빈부 격차가 가장 심한 국가로 선정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정의 원인은 바로 한서진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한 명의 개인이 부의 99.9%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 우스갯소리가 거리낌 없이 회자될 만큼, 한서진의 보유 재산은 엄청났다. 일부에서는 아예 그를 한국과 별개의 경제 주체로 집계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반도 북부는 사실상 한서진 공국이나 마찬가지다. 국제 사회는 H타운을 한서진 자치국으로 승인해야 한다.”

국가는 개인들의 사회적 결합으로 이뤄진다. 국가가 개인에게 행사하는 공권력이란 결국 힘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러나 만약 개인이 그 국가를 넘어서는 힘과 규모를 지닌다면 어떻게 될까.

“총칼로 무장한 군벌도 나라를 세우는데, 한서진 박사가 못할 게 뭔가?”

“힘, 돈, 국제 사회의 지지, 미래에 대한 비전, 없는 게 없지. 아주 다 가졌지. 나라를 몇 개를 세워도 문제없을 걸?”

“한서진 박사님이 건국하면 나도 그 나라 국민이 되고 싶어.”

“그냥 SJ그룹을 당장 국가 체제로 바꿔도 위화감 없이 적응할 거라고 본다. SJ그룹 다니는 직원들은 완전히 별세계던데.”

남의 잿밥에 더 관심이 있다고, 한서진이 자치국을 세우느냐 마느냐를 놓고 많은 이들이 논쟁을 벌였다.

한서진이 한국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 이들은 그런 논쟁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박사님은 절대 한국을 버리지 않으실 거야! 니들이 하는 말은 다 헛소리야!”

“상식적으로 박사님한테 한국이 무슨 의미가 있어? H타운도 박사님 혼자 힘으로 알아서 잘 돌아가는데. 거기는 한국 정부도 사실상 노터치라고.”

한서진이 언젠가는 자신만의 왕국을 세울 거라는 예측을 내놓는 사람들, 그리고 한서진이 한국을 버리지 않기를 기도하는 사람들. 그들의 미래 예측 논쟁으로 한국의 정치경제 부문 SNS는 언제나 시끄러웠다.

H컨설턴트 입장에서 봤을 땐 코웃음이 나오는 논쟁이었다.

“아니, 나라를 따로 왜 세워? 한국을 통째로 먹은 지가 언젠데, 기껏 먹은 걸 뭐 하러 내버려? 안 그래, 송하나?”

“그래도 적당한 논쟁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건 좋아요. 언제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있어야죠.”

“그게 우리, 아니 오빠한테 더 좋긴 하겠네. 뭘 해도 반발을 못할 테니까.”

“지금도 반발 못하는 건 마찬가지예요.”

한지혜는 늘 그렇듯 한씨 가문의 위상을 드높이기 위한 업무 때문에 바쁘다. 친오빠가 그 부분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기에 여동생인 자신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한씨 가문이 한국에서 떨어져 나가느니 마느니 하는 것은, 그녀들이 보기에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애초에 전제가 잘못 됐다니까. 오빠가 이 나라 구성원인 게 아니라, 이 나라가 오빠 소유물 중 하나인데. 중이 절을 버리고 나가지 절이 중을 어떻게 버리고 나가.”

현재 한국 기업의 70% 이상은 한서진의 소유다.

옛 북한 땅, 북부 지역의 토지 소유권은 한국 정부에 있지만, 그 한국 정부는 현재 한서진에게 5조 달러 이상의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북부 지역의 토지가 담보로 잡혀 있는 상황이다.

원래 북부 재건을 위해 발행한 특별 국채는 3조 달러 규모였지만, 이것은 오로지 북한 재건을 위해서만 쓸 수 있었다.

한서진은 다시 2조 달러의 특별 국채를 매입했는데, 그 돈은 북부 재건 외에도 쓸 수 있었다.

정부는 H컨설턴트의 권유에 따라 2조 달러의 추가금을 마음껏 썼다. 저소득층에 생활보조금을 잔뜩 지원하기도 하고, 만년 적자에 시달리는 건강보험공단의 빚을 탕감하기도 했다. 국민연금기금의 손실을 채워 넣어, 몇 년 안에 연금이 고갈난다는 주장이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대학생들이 진 학자금 대출을 모조리 대신 갚아주었고, 예산이 부족해 지지부진하던 지자체 및 중앙정부의 사업을 집행하기도 했다.

2조 달러를 가지고 제대로 돈 잔치를 벌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맞다. 정부가 특별 국채 발행한 거 돈 다 썼대. 북부 재건에 써야 하는 돈 말고.”

“2조 달러를 벌써요? 빠르네요.”

“청와대에서 혹시 또 추가 발행 안 해주나 은근히 눈치 보고 있던데, 어떡할까? 오빠 돈 좀 여유 있니?”

“오빠한테 돈이 없을 리가요.”

“사실 말해놓고 나도 순간 민망했어. 번데기 보톡스 맞는 소리도 아니고.”

한서진한테 돈 여유가 있냐는 질문이라니. 심지어 그 발언자가 한서진의 친동생, 만약 SNS에 올라간다면 꽤 재밌는 반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근데 행정부는 나중에 그 돈 다 어떻게 갚으려고 신나서 끌어다 쓴대? 선심성 정책 남발해서 정권 지지율 올라가니 지들은 좋겠지만, 그거 결국 다 빚인데.”

빚이 너무 커지면 채무자가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우는 그게 불가능하다. 한서진 앞에서 누가 큰소리를 칠 수 있을까.

“행정부도 모르고 하는 게 아니죠. 빚으로 국가를 묶어두면 사실 우리한테도 좋잖아요. 그거 다 알고 하는 거죠.”

H컨설턴트는 현재 한서진의 돈을 한국 국고에 마구 퍼서 들이붓고 있는 중이다.

부정하게 새는 돈은 없는지만 철저하게 감시할 뿐, 그 돈을 가지고 돈 잔치를 얼마나 벌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돈 맛에 빠져 더 큰 잔치를 벌일 수 있도록 장려한다.

결국 한국은 국가나 기업, 개인의 살림살이가 모두 비약적으로 나아졌다. 그만큼 천문학적인 빚이 고스란히 남긴 했지만.

“어차피 받을 생각 하고 빌려준 것도 아니지만.”

빚은 이 나라를 제어하기 위한 족쇄다. 한국 경제는 이미 한서진한테 완벽하게 종속된 상태였다.

한국 기업의 70% 소유, 5조 달러 규모의 채무액, 여기에 다양하게 벌이는 자선복지사업, SJ그룹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고 살아가는 무수한 기업과 자영업자, 근로자들까지.

많은 국민들은 한서진이 조국을 버리고 새로운 나라를 창설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품고 있지만, 자세한 내막을 따져보면 이미 한국은 한서진의 일부가 된 지 오래라 할 수 있다.

“맞다. 오늘 아침 기사 봤어?”

“어떤 거요?”

“한국대 조지원 교수라는 학자가 쓴 건데, 반응이 제법 폭발적이더라.”

한지혜는 태블릿을 터치해 기사를 찾아서 건넸다.

「한국은 지금 행정부, 기업, 국민을 포함한 나라 그 자체가 SJ그룹에 취직한 거나 마찬가지다.」

논평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시작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주장은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한국의 모든 기업은 SJ그룹에서 벌이는 사업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 통신, 의약산업, 심지어 석유와 자원, 인터넷과 정보산업, 그리고 금융산업까지. SJ그룹의 원천사업을 피해서 영업을 한다는 게 불가능한 구조가 되었다. 오직 딱 두 가지, 식량과 유통에만 관여하지 않는데 그것은 SJ그룹이 귀찮아서 놔둔 것일 뿐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진출하고, 지배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한국 시가총액의 70% 이상이 SJ그룹의 소유이며, 한국 정부는 5조 AU 이상의 막대한 채무를 지고 있다. 이는 채무를 지기 전 해를 기준으로, 100년치 국가 예산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런 천문학적인 빚을 갚는다는 건 불가능하며, SJ그룹 역시 빚을 받을 마음으로 돈을 빌려준 게 아니다.」

교수가 칼럼에 담은 논리는 결국 하나의 사실을 주장하고 있었다.

「한서진 박사가 우리나라의 일부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한서진 박사의 사실상 일부가 된 것이다.」

다 읽고 난 송하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조금 시끄러워지겠네요.”

“그리고 금방 또 조용해지겠지.”

이미 나라 전체가 한서진의 아래로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 자극적인 주장에 많은 이들이 반발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많은 이들이 안심했다.

“우리가 알고 보면 모두 한서진 박사님한테 취직한 거라고? 우리 회사는 SJ그룹과 아무 연관이 없는데? 문구용품 생산하는 회사가 SJ그룹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

“넓게 보면 우리 회사 매출도 SJ그룹의 원천사업에서 발생한다는 거지. 우리 상품의 30%가 기업 일괄 납품이잖아. 그리고 그 기업들은 거의 다 SJ그룹과 얽혀 있고.”

“나머지 70%는 일반 문구점 판매잖아.”

“근데 문구점에서 그거 사주는 소비자가 SJ그룹에 다니거나, 아니면 SJ그룹과 관련된 일을 하는 기업에 다니잖아.”

“……아.”

“이제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겠냐? 우리나라 경제를 사다리 타고 올라가다보면 맨 위에는 무조건 SJ그룹, 아니 한서진 박사가 나온단 말이야.”

“그, 그렇구나. 이해했어.”

“차라리 다행이지. 한서진 박사님이 우리 모두를 떠나는 것보단 우리 모두가 한서진 박사님 아래로 들어가는 게 나아.”

“그래도 민주주의가 있고 주권이라는 게 있는데, 그건 좀…….”

“민주주의하고 무슨 상관이야? 한서진 박사님이 어디 인간인가? 인간의 탈을 쓴 신이지.”

“…….”

“신의 밑으로 들어가는 게 왜 민주주의와 주권을 포기하는 건데? 전혀 상관없잖아.”

“그, 그런가?”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지만, 다수의 국민들은 차라리 한서진의 지배하에 놓이는 것을 반겼다.

인간의 다스림을 받는 건 굴복이지만, 신의 다스림을 받는 것은 은총이다. 그를 인간이 아닌 신적 존재로 여기자, 오히려 모든 게 홀가분해졌다.

한편 서울은 전대미문의 빠른 속도로 인구 감소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일단 주요 소재 대학의 이과 인력이 H타운으로 빠져나갔다.

약 60개에 달하는 소재대학 모두가 H타운에서 모든 학사 일정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H타운에서 제공한 사무용 빌딩을 캠퍼스로 쓰고, 숙소를 기숙사로 쓰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 연구나 학업에 필요한 설비도 H타운은 아낌없이 제공했고, 그 품질도 월등했다.

말이 60개지, 그 대학에 재학하는 모든 이과생들의 수를 따지면 만만치 않다.

여기에 교수진이 가족을 데리고 H타운으로 이주했고, 교무원들도 당연히 따라 나갔다. 서울 본진은 텅 비어버렸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제약 등의 첨단연구산업 인력이 줄줄이 스카우트를 받고 H타운으로 이전했다. 당연히 가족들을 데리고 나섰다. 그곳에 가면 무료로 거주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서울은 웜홀 설치가 되지 않아 인구 유지가 버거웠다. 여기에 H타운으로 이주 러시가 시작되자 본격적인 위기를 맞았다.

한때 1,000만 인구에 달하던 서울은 어느덧 700만 대까지 떨어진 상태였다. 부동산 상승은 완전히 멈춘 지 오래였다. 그나마 하락하지 않는 건 지주들이 땅을 움켜쥐고 내놓지 않기 때문이었다.

인구의 감소는 서비스 업종의 매출 감소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인구 감소가 이어지게 만드는 악순환이 되었다.

“요즘 누가 서울에 집 사나? H타운에서는 다 무료로 거주지를 주는데. 입주권 얻기가 빡세서 그렇지.”

“서울은 이제 끝났어. 웜홀 설치에서 밀려났을 때부터 이미 결정된 게임이었지.”

증권가에는 청와대가 H타운 이전을 기획했다가 퇴짜를 맞고 슬퍼했다는 찌라시가 나돌기도 했다.

============================ 작품 후기 ============================

2017년 안에 끝내려고 했는데..ㅠㅠ

1월 초까진 마무리해볼게요.

어차피 에필로그 몇 편 안 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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