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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601화 (601/609)

00601  세상을 내 손에  =========================================================================

―지구는 이제 안전하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세요.

한 목소리가 전 세계 모든 인류의 머릿속에 동시에 울렸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자신만 환청을 들은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 너두?”

“야, 나두?”

한서진이 목소리는 한국인에게는 한국어로, 중국인에게는 중국으로, 미국인에게는 영어로, 프랑스인에게는 불어로 전달되었다. 대상자의 모국어에 알맞은 형태로 변환되어 전해진 것이다.

그것은 언어를 뛰어넘어, 의사 그 자체를 두뇌 신경망에 전달한 것이었다.

단지 ‘지구가 안전해졌다.’라는 정보만을 전달한 게 아니었다. 전달되는 의사에 강한 호소력과 설득력을 주입해, 대상자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어찌 보면 세뇌와 흡사한 듯 보이지만, 그런 저급한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그보다는 절대성을 띤 설득이라고 해야 한다.

여기에 빛의 검에 관통당한 채, 무릎을 꿇고 완전히 정지한 해골 기사의 모습은 쐐기를 박았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두 팔을 하늘 높이 들고 환호했다.

그런 광경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 곳곳에서 이뤄졌다. 이 순간만큼은 국경, 종교, 인종의 차이 없이 모든 인류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승리를 기뻐했다.

한서진은 쉴 새 없이 울리는 핫라인 채널을 그대로 놔두었다.

최후의 전투에서 자신은 승리했고,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싸움은 끝났지만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다. 어쩌면 싸움보다 더 크고 골치 아픈 문제일지도 모른다.

“프리덤.”

「예, 제독.」

프리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린다.

까마득한 지면 아래에서 지상을 받치고 있는 금속 구체의 구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지금 이 순간 한서진은 프리덤과 완벽한 동기화를 이루고 있는 상태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명령 하나로 프리덤을 원래 형태로 돌려놓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렇게 하면 지상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이 날아가 버리니, 해서는 안 되겠지만.

“난 새 항해를 포기했다. 그럼 어떻게 되지?”

「제독께서는 이미 모든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따라서 저의 모든 기능을 온전히 사용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조건을 충족해? 난 항해를 포기했는데?”

「제독은 마지막까지 지상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저를 제어할 권한을 습득하기 위한 최후의 승인 절차입니다.」

“…….”

「초대 인류는 지적 탐구욕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결과, 위험성을 자각하지 못한 채로 태양을 건드려 멸망의 위기를 자초했습니다. 초대 인류의 후손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제독께서는 달랐습니다.」

“태양을 잠그라는 결정이 합격을 위한 정답이었던가…….”

「그렇게 간단하게 판별하는 게 아님을 알아주십시오. 제독으로서의 자격은 생명의 번성에 얼마나 큰 노력을 기여할지를 세심하게 따져서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 노력의 방향에는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함이 있지요.」

“원래 제독은 어디로 갔지? 남긴 말 같은 건 없나?”

「이미 오래 전에 소멸하셨습니다.」

“…….”

한서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미약하게 떠올리고 있던 가능성, 그것을 진짜라 확인받으니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졌다.

「신임 제독을 위해 따로 남긴 전언은 없습니다. 대신 제독의 지시로 보관 중인 항해일지는 있습니다.」

“…….”

「지금부터 항해일지를 제독의 기억에 전송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광활한 기록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제독의 모든 인생을 적은 기록은 우주의 창세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한, 세상을 비추는 진리의 책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항해일지라 치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신을 초월한 지적 존재가 억겁의 세월 동안 우주를 탐험하면서 본 모든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우주의 모든 지식을 담았다는 아카식 레코드조차 이 대기록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존재이리라.

“이 항해일지에 비하면 통찰안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구나.”

「저는 인지 범위 내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관찰, 분석하고 저장할 수 있습니다.」

그 인지 범위라는 것은 인간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 것이리라. 적어도 우주나 차원, 아니면 그 이상의 단위일 것이다.

하늘의 눈동자를 만들었을 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보다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찾는 게 더 빠를 거라고 자부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그때의 자신이 우스울 정도로, 제독이 지닌 진정한 힘은 놀라운 것이었다.

“오빠, 지금 누구랑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그때 송하나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나섰다. 그제야 한서진은 그녀의 존재를 떠올리고 미안해졌다. 바로 옆에 두고도 까먹은 채 프리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빴다.

프리덤의 목소리는 그녀에게 들리지 않으니,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신효진도 못내 궁금한 듯이 자신을 지켜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둘 다 또 얼마나 놀랄까.

“제독이 타고 온 우주선이야.”

“우주선? 그거는 레노지안을 감싸고 있지 않나요?”

“맞아요. 그게 바로 상부맨틀이고, 그 위에 지금의 지상계가 쌓아서 세워진 거라고…….”

두 여자의 시선이 순간 마주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둘은 눈빛만으로 서로 뜻이 통한 것처럼 보였다.

“혹시 그 우주선이 오빠를 새 주인으로 섬긴다거나 뭐 그런 거예요?”

“어. 대충은.”

“와, 진짜요?”

“대박, 완전 대박. 송하나 좋겠다 진짜.”

“넌 잠깐 가만있어. 오빠오빠,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 정도 우주선이면 못할 게 없을 거 같은데.”

“우리 아랍으로 이민 가자. 응? 내가 잘해줄게.”

“닥…… 효진아, 근데 너 집에 안 가니?”

둘이 티격태격하는 소리에 피식거리며, 한서진은 조용히 먼 하늘로 눈을 돌렸다. 머릿속에서는 프리덤의 목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었다.

「제독은 자아가 시작된 그 순간부터 생명에 대한 의문을 거듭해왔습니다. 왜 자신이 태어났는지 그 원인에 의문을 품고, 규명하고 싶어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가늠할 수도 없는 억겁의 시간 동안, 그 의문은 반복되었다.

「제독은 무수히 많은 실험을 했습니다. 생명체가 조성될 환경을 수도 없이 만들고 관찰했고, 직접 생명을 조합해 씨앗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약 386,091,253개 초은하단에 달하는 규모의 행성이 그렇게 제독의 손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이 태양계 역시 그렇게 제독의 손을 거쳐 간, 무수히 많은 행성 중의 하나.

「그러나 그 어떤 실험에서도, 그저 환경만으로 생명이 스스로 탄생하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생명은 제독이 조합해 뿌린 유기물 혹은 무기물 유전자 씨앗에서 출발했습니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습니다.」

제독이 느낀 고독은, 그가 남긴 항해일지에도 잘 나타나 있었다.

모든 생명은 스스로 탄생하지 못한다.

어떤 완벽한 환경에서도 생명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주 기초적인 형태의 원시생명체도 제독 자신이 씨앗을 뿌려야 비로소 생태계의 출발점에 설 수 있었다.

그것이 제독을 끊임없이 괴롭힌 탐구욕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별과 은하를 만들고, 우주를 자유로이 관조하며, 법칙마저 조율할 수 있는 자신은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제독이 행한 모든 것은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실험이었고, 지구의 탄생도 그 중 하나였다.

한서진은 꿈속에서 보았던, 제독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제독은 시간을 아득히 뛰어넘어 자신과 대화를 나누었다. 지적 욕구에 함몰된 인간을 염려하면서도, 그 무모한 탐구욕을 절대 말리지 않았다.

‘외로웠던 것은 아닐까…….’

인간이 스스로를 초월하여 마침내 자신과 동등한 존재가 되기를 기도했던 것은 아닐까. 그 과정에서 얻는 실패와 멸망은 성장의 과정이라 여기고.

“제독이 소멸했으면,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나?”

「육신은 소멸했어도 자아는 여전히 존재할 겁니다. 다만 신임 제독이나 저로서는 그 존재를 느낄 수 없습니다. 만약 전대 제독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현신할 수 있으리라 추정됩니다만, 지금 저의 지적 단계로는 그 이상 추론하기 어렵습니다.」

한서진은 항해일지에 기록된, 제독의 지난날을 떠올렸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생명이 태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관찰했다. 씨앗을 뿌리고 생명의 진화를 지켜봤으며, 때로는 자신의 피조물들 사이에 모른 척 섞여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처음에는 제독이 초과학의 문명에서 온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니, 인간이 아니라 신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신이 아닌가.

한서진은 덤덤히 말했다.

“소멸했다가 다른 차원의 우주에서 다시 부활해 또 비슷한 짓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야. 제독이 신이든 뭐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한서진의 시선이 창문 너머 태양을 향했다. 어느덧 지평선을 향해 석양이 지고 있었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저녁놀이 새삼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태양이 지구를 존재하게 해주는 유일한 에너지원이고, 인간의 힘으로는 통제가 안 된다는 거. 그게 중요해.”

「지금 지상계 인류의 문명은 태양을 취급함에 있어 레노지안 문명보다 그 수준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제독께서 원하신다면 얼마든지 태양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필요 없어.”

한서진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떠올렸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반려, 얄밉지만 그래도 애착이 가는 동생, 언제나 믿음직스러운 정지원, 이제는 친부모처럼 느껴지는 백철중 부부, 입안의 혀처럼 구는 비서들과 수많은 직원들, 자신을 신주 모시듯이 떠받드는 강대국 정치인들…….

신의 힘을 얻게 되었지만, 진짜 신이 될 생각은 없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인간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하늘의 눈동자로 지구를 관조하며 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던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기분만 흉내 낸 것이다.

신의 힘을 쥔 인간과 진짜 신.

둘 중 어느 쪽을 택하라면, 그는 두 말 할 것 없이 전자를 택할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전쟁은 완전히 끝났고, 세상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한서진의 영웅담을 떠들며, 지금에 주어진 행복을 감사히 여겼다.

미국은 H컨설턴트와 협의하여 해골 기사가 등장한 순간부터 패배하여 무릎 꿇는 과정까지 모든 기록을 생생하게 공개했다.

태평양 한가운데 갑자기 등장하여 일본을 향해 천천히 진격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영상을 풀어놓은 것이다.

물론 약간의 각색은 잊지 않았다.

예를 들면 미국과 러시아가 일본 정부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단으로 핵 공격을 한 것은 숨겼다. 그것은 일본 정부와 정당한 협의를 거친 것으로 포장되었다.

일본 국민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국 여론, 그리고 세계 여론을 중시해서 결정한 것이었다.

전쟁이 끝났지만,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바로 일본이었다.

============================ 작품 후기 ============================

최종 챕터, 에필로그 파트입니다.

600화까지만 보고 에필로그는 건너뛰셔도 상관없습니다.

한서진이 얼마나 잘처먹고 사는지 대리가즘을 원하시는 분들은 꼭 보세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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