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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600화 (600/609)

00600  매듭을 묶은 자  =========================================================================

「이 행성의 생명 정착은 실패로 확인되었습니다.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아주 먼 옛날, 제독이 타고 온 우주선 프리덤.

그것은 현재 ‘구체 격벽’의 형태로 레노지안과 지상계를 구분하고 있었다. 먼 옛날, 태양의 폭주로부터 레노지안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구체 격벽의 형태로 변한 것이다.

구체 격벽으로 변한 프리덤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태양을 통제하여 지구상의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

다른 하나는 새로운 제독의 탄생을 위해 대기하는 것.

한서진은 엄청난 정보의 홍수가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본래라면 뇌신경이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버려야 정상이리라.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의 의식은 그 무한대의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프리덤의 인공인격과 동기화를 마친 의식은 그 막대한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취급할 수 있었다.

한서진은 우주선에 기록된 이 세계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레노지안의 탄생, 성장, 비극과 멸망은 우주선의 기록에 비하면 먼지 한 톨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초라한 것이었다.

태양이 만들어진 이래 이 태양계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총망라된, 기록의 보고였다.

‘아……!’

지구라는 거대한 생태계. 그것을 온전한 하나의 생명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장엄한 시야의 확장을 트여주었다.

그 개방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황홀감을 주었다. 그저 바라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전율했다.

하늘의 눈동자로 지구 전체를 관조했던 경험은,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각에 비하면 조악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한서진의 시야가 아서 왕을 향했다.

문득 그가 가여워 보였다.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섬멸하려고만 했던 자신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는 아서이되, 아서가 아니었다.

아서가 죽기 직전까지 품은 책무가 남긴 망념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존재 의의는 영원히 그 순간에 고정된 채, 오로지 혼이 된 백성들을 위해 레노지안을 재건하는 것에만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상이 부서지고 자신까지 소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탄생한 망념이기에, 스스로의 운명을 번복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다.

정작 그 아서의 혼은 윤회의 굴레에 들어가, 모든 것을 잊고 평범하게 환생하지 않았던가.

‘스칼린…… 아서…….’

그 둘이 남긴 망념. 그것을 비난할 권리는 자신에게 없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왕과 왕비, 그들을 사후에도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였기에.

아서의 망념은 자신을 구성하는 마지막 원기까지 깎아가면서 태양의 힘을 끌어내고 있었다.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이 끝나면, 그의 존재는 영원한 소멸을 맞이할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그런 책무만을 띠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존재이기에, 행동을 수정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에테르 에너지원에 3차 침투가 시도 중입니다. 최종 프로토콜이 파괴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 행성의 생명이 지닌 호전성은 위험한 수준으로 판단, 따라서 제대로 된 생명 정착이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건조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린다.

「제독, 이 항성계를 소거하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항해를 시작하시겠습니까?」

한서진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결정의 권한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 알았다. 그것은 신으로서 태양계의 존재 그 자체를 취급할 수 있는 권능이었다.

그 권한을 얻은 존재야말로 신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 태양계를 만든 제독, 그가 왜 이런 준비를 남겨놓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인류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을 경우, 자신이 없더라도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프리덤, 태양계를 만든 제독은 어디 갔지?’

「새 제독은 현재 임시 제독입니다. 지금의 권한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정보입니다. 새 항해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새로운 항해.

그것이 임시를 넘어 진정한 제독으로 인정받는 절차라는 것을, 한서진은 완전히 이해했다.

짧은 순간, 거대한 충동과 유혹이 그의 의식을 건드렸다.

프리덤이 보유한 막대한 지식, 그 전부를 알게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먼 우주에는 무슨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제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의 뒤를 쫓는다면, 진정한 신이 될 수 있을까?

잠시였지만 한서진은 그런 거대한 충동과 유혹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모든 욕망이 시들며 마음속에 고요함이 찾아왔다.

‘새 항해는 필요 없다.’

「제독.」

‘태양을 잠근다. 아서가 더 이상 태양의 힘을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것으로 족해.’

한서진은 태양으로 눈을 돌렸다.

자신에게는 꽤나 길었던 시간, 그러나 외부에서는 불과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다.

과집약된 에테르로 인해 지구의 에너지 흐름은 완전히 뒤엉킨 뒤였다. 이대로 무사히 수습한다 해도, 지구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사막이 숲이 되고, 삼림이 불모지가 되며, 강이 마르고, 들판이 바다가 되리라.

한서진은 아서와 태양 사이에 연결된, 보이지 않는 힘의 흐름을 주시했다. 그 힘맥을 통해 태양이 지닌 에테르가 아서를 향해 끝없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지금의 아서라면 손짓 하나만으로 지구 그 자체를 없애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바라는 것은 지구의 소멸이 아닌, 레노지안의 부활이다.

하늘과 땅이 쉼 없이 떨린다.

지구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비명과 아우성이 느껴진다. 생명의 울부짖음이 들린다.

아무리 작은 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고, 한서진은 모든 것을 잡아냈다.

―오빠!

무수한 생명의 비명 속에서 유독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바로 그가 현생에서 맞이한 반려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신과 인간의 중간에 머물러 있던 그의 의식을 조금 더 인간 쪽으로 당겨놓았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는 손을 뻗었다. 거리를 뛰어넘어, 망념에게 흘러드는 에테르의 흐름을 그대로 움켜쥐었다.

힘의 흐름이 뚝 부러지며 끊어졌다. 동시에 그 힘은 망념이 아닌 한서진을 향해 끝없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짐을 방해하지 마라!

노여움에 처한 망념이 이쪽을 노려보았다. 에테르로 충만해진 그는 반신에 가까운 힘을 얻은 상태, 하지만 한서진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망념을 바라보는 눈에 깃든 것은 그저 가엾다는 동정뿐.

백성도, 나라도, 시대도, 자아도, 혼도, 그 모든 것을 잃은 채 사념의 찌꺼기로만 움직이는 존재.

태양과 연결된 힘이 내면에서 충만해진다.

한서진은 오른팔을 높이 들어올려, 보이지 않는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안에서 폭발하듯 빛이 쏟아져 나오며, 날카로운 빛의 검이 만들어졌다.

위험을 느낀 망념이 그대로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평성과 일본, 수백km가 넘는 거리가 둘 사이에 놓여 있지만, 신의 힘을 채취한 둘에게는 종잇장 두께와 별 차이 없는 간극에 지나지 않았다.

망념은 모든 힘을 두 손에 주입한 채, 바다 너머 한서진을 향해 힘껏 방출했다.

그 순간 한서진은 손에 쥔 빛의 검을 있는 힘껏 던졌다.

빛의 검은, 바다를 건너며 무수한 증기를 뿜어내는 힘의 파도를 그대로 관통했다.

그 속도와 위력이 전혀 줄어들지 않은 채, 오히려 힘의 파도마저 흡수하여 증가한 채로, 망념의 가슴을 완전히 꿰뚫었다.

거짓말처럼 지구의 흔들림이 뚝 멈췄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망념의 겉모습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피부처럼 육신을 뒤덮고 있던 빛의 입자가 흩어지며, 거대한 백골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백골은 천천히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 가슴에는 아직도 한서진이 던진 빛의 검이 박혀 있었다.

백골이 가만히 물었다.

―짐은 그저 한 번 더 왕국의 번영을 이루고 싶었을 뿐…… 그게 정녕 잘못된 일인가?

한서진은 조용히 대답했다.

―아서, 영원한 번영은 없다. 생명은 언젠가 죽고,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난다. 레노지안은 오래 전에 그 운명이 끝났어.

희미한 빛의 형체가 백골의 앞에 나타나며 한 남자의 모습으로 변했다. 붉은 망토를 두르고 금으로 된 왕관을 썼으며, 한 자루의 검을 허리에 차고 있는 군주.

군주는 백골의 두 어깨를 가만히 짚었다.

―다 끝났으니, 편히 쉬어라.

눈을 감듯이, 백골의 두 안광이 서서히 꺼져갔다. 백골은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마침내 머리를 푹 숙였다.

한서진의 의식은 완전히 인간으로 돌아왔다.

정신을 차린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은 처음 그대로 연구실 안에 있었다.

송하나는 자신에게 기댄 채 의식을 잃고 있었다. 잠시나마 몸에 받아들인 거대한 힘, 그것이 뿜어내는 잔재를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것이다.

한서진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부축하다가, 문득 손바닥 끝에 맺힌 기운을 느꼈다.

지금 자신은 동물이 호흡을 하듯 자연스럽게 에테르를 다루고 있었다. 그녀가 아프다고 생각을 하자마자,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위한 적절한 에테르 운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피식거리며 손에 맺힌 치유의 기운을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불어넣었다. 곧 활력이 돌며,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하나야, 정신이 들어?”

“오빠…….”

“이제 다 끝났어. 안심해도 돼.”

“정말……이에요? 이제 다 끝났어요?”

“응, 니 신랑이 방금 막 세상을 구했어.”

그래놓고 한서진은 머쓱한지 덧붙였다.

“생각해보니 애초에 이 사태를 만든 원흉도 나네. 전생하면서 다 까먹었지만.”

“꿈을…… 꿨어요.”

“꿈? 무슨 꿈?”

“스칼린 왕비가 나타났어요. 저한테 멀리 가야 한다며 인사를 하더라고요.”

송하나는 꿈을 되새김질하듯, 조용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오빠의 선택이 슬프다고 했어요.”

“내 선택이 슬프다…….”

마지막에는 고맙다고 웃으며 헤어지는 것은,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결말인 것인가. 한서진은 씁쓸히 중얼거리며 그녀를 가만히 토닥였다.

아서와 스칼린.

그들은 진정한 왕과 왕비가 아닌, 고집에 가까운 책임감만이 뭉쳐져 이뤄진 존재였다. 자신의 결정을 슬퍼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아서의 망념은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조금도 편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루지 못한 염원에 자신의 패배를 후회하며 그렇게 어두운 안식으로 들어갔으리라.

“박사님, 그럼 레노지안 백성들의 혼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신효진이 조용히 물었다. 그녀는 그 점이 못내 걱정이 되었다.

“아마 다시 윤회의 굴레로 들어가지 않을까 싶네요. 어쩌면 영원히 소멸할 수도 있겠지요.”

“그건…….”

“안 됐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방법이 없으니까요. 게다가 저는 더 이상 레노지안의 군주가 아닙니다.”

한서진은 잠시 핫라인 채널을 살폈다. 미국,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하여 세계에서 온갖 다급한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서의 망념이 맞이한 최후는 그들도 봤을 테니, 자신에게 최종 확인을 받고 싶은 것이리라.

“다 끝났으니 이제 사람들을 안심시켜줘야겠네.”

“오빠, 왠지 짓궂은 장난을 치기 직전 얼굴인데…….”

“그렇게 티나?”

한서진은 피식거리며, 하늘의 눈동자 시스템을 지구 전체에 가동시켰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직접 울리게끔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구는 이제 안전하니,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세요.

하나의 목소리가 수십 억 인류의 머릿속에서 동시에 울렸다.

============================ 작품 후기 ============================

진짜 긴 여정이었습니다. 이제 정말 다 끝났네요.

이야기를 구상할 때 참 이것저것 욕심을 많이 부렸습니다.

가진 것 없이 버려진 한 개인의 극적인 운명의 변화와 성공, 출세를 다루고 싶었고, 초월적인 무력을 지닌 개인의 위상을 리얼하게 표현도 해보고 싶었고, 꿈과 현실의 구분에서 오는 몽환적인 느낌도 해보고 싶었고, 태양계의 탄생 비화도 넣고 싶었고, 우주 진출의 발판도 다뤄보고 싶었고, 엄청난 부자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도 써보고 싶었고, 그 와중에 완벽한 이성과의 훈훈한 연애 이야기도 써보고 싶었고...

뭐 욕심을 한도 끝도 없이 부린 결과로 후반부에 들어와서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엉엉 울면서 글을 쓴 적도 많았네요. 한 자 한 자 두드리는 게 정말 힘들었습니다.

신작 튜토리얼 라이프는 욕심을 부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일단 욕심을 넘나 크게 부린 탓에 제가 넘나 지쳤거든요.

소소하고 편안하게 써보려고 합니다.

튜토리얼 라이프도 많이 봐주세요ㅠ

에필로그 파트가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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