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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94화 (594/609)

00594  죽음의 군단  =========================================================================

한서진이 발견한 것은 당연히 미러 공동 군사본부에도 흘러들어갔다. 그들은 군마를 탄 해골 병사들의 등장에 경악을 금치 못한 채, 그저 신음했다.

누군가가 얼빠진 듯이 중얼거렸다.

“죽음의 군단…….”

“…….”

아무도 그에 대해 반응하지 못했다. 무심결에 튀어나온 그 중얼거림은, 그 어떤 서술보다 정확하게 현재 상황을 찌르고 있었으니까.

“해골 병사들의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300이 넘습니다!”

“벌써 300이나!”

상황실 분위기가 새하얗게 질렸다.

해골 기사만 해도 인류의 힘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데, 그 부하들까지 늘어나고 있다니.

“신이시여.”

여기저기에서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만큼 분위기는 참담했다.

“일본은 포기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확고히 꺼낸 말에, 많은 이들이 수긍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은 틀렸다. 적어도 영토로서의 일본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미 영토의 많은 면적이 오염되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해골 기사는 오염을 널리 퍼트리고 있다.

식물들이 시들어버린 붉은 대지가 공개되자, 해외로 피신한 일본인들은 크나큰 절망에 빠졌다. 돌아갈 곳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좌절을 주었다.

한서진은 빛으로 변한 신살검을 한참 동안 주시하고 있었다.

아서 왕은 이미 침공을 시작했고, 현대 문명은 그 절대적인 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자신이라고 해서 다를 바는 없다. 레노지안이 쌓아 올린 에테르 문명에 비하면, 자신이 지금까지 이룩한 것은 걸음마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증기기관과 핵융합 엔진, 대충 그 정도 간극이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남은 희망은 신살검, 그리고 신효진이었다.

하지만 신효진은 꿈에 빠진 채 의식을 차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꿈에 진입하기 위해 수차례 시도했다.

그러나 처음 노이즈를 뚫고 간신히 들어간 것을 제외하면, 그 뒤로는 전혀 효력이 없었다. 마치 굳건한 방어벽이 새로 쳐진 것처럼, 짙은 노이즈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신살검뿐이었다.

“오빠.”

송하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불렀다. 그는 사색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봤다.

“아, 불렀어?”

“설마 오빠가 그 칼 들고 싸울 건 아니죠?”

“…….”

“오빠는 싸움 못하잖아요.”

한서진은 어색한 웃음만 흘렸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

“아닌데? 그 다음은요?”

“자신이 없어. 네 말대로 난 싸움 못하잖아.”

“다행이다. 오빠가 허튼 생각 안 하셔서. 차라리 제가 칼 들고 싸우는 게 낫죠.”

“넌 임신한 몸으로 뭘 싸운다는 거야? 그리고 너도 싸움 같은 거 못하잖아.”

“그래도 전생에 초룡이었다면서요.”

“그렇게 따지면 나도 전생에 마법사이자 기사였거든?”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긴장이 풀리며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송하나는 미러 군사 채널에서 보내오는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영상에는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걷고 있는 해골 기사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덧 상당한 수의 해골 군마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죽음의 군단은 착실하게 전력을 증강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오빠, 만약 신살검이 아서 왕한테 넘어가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모든 게 끝나겠지. 지금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인데, 신살검까지 손에 넣는다면…….”

“아서 왕을 움직이는 건 생전의 기억이 남긴 망념이라고 했었던가요?”

“……그랬지.”

“그 한이 참 크고 깊었나 봐요. 벌써 13억 년이 넘게 지났는데, 아직도 저렇게 움직일 정도면…….”

바로 그때였다.

쿠우웅!

낮지만 무거운 진동이 분명하게 울렸다. 한서진은 놀라서 얼른 송하나를 끌어안았다. 건물이 다소 흔들리긴 했지만 내진 설계가 잘 되어 있는 덕에 큰 문제는 없었다.

“오빠.”

송하나가 겁먹은 목소리로 불렀고, 한서진은 그녀를 끌어안은 채로 재해예고시스템을 확인했다.

시스템 록에는 아무런 예고 조짐이 없었다. 그저 방금 일어난 지진의 규모와 원인, 진원지를 표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어떤 조짐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났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그 진원지는 바로 일본, 그의 눈에 익숙한 좌표였다.

다름 아닌, 지금 아서 왕이 위치하고 있는 지점이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이런 진동이 전달될 정도면…….’

한서진은 흙빛이 된 채 영상 화면을 살폈다. 그러나 무인 드론이 보내오던 영상은 흰색 노이즈만 가득했다.

―해골 기사를 중심으로 일본 전역에 거대한 충격파가 감지되었습니다!

―일본 내에 있던 모든 무인 정찰기와 항공 드론의 교신이 일제히 끊어졌습니다. 아마도 충격파에 휩쓸려 모두 파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추정이라고 말했지만, 확정 사실이나 다름없었다.

―보조 정찰기를 급히 발진시켰습니다.

제주도 미 해군 기지에서 급히 무인 정찰기 다수를 재차 발진시켰다. 그 동안 한서진은 위성으로 전해지는 화면을 확인하고, 저도 모르게 신음했다.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4대 섬 중 가장 남쪽인 규슈와 히로시마 일부 지역, 그리고 훗카이도를 제외한 지역이 초토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방금 느낀 지진의 여파는 그 충격파가 남긴 것이었다.

그때였다.

―신살검…… 나에게 오라…….

아서 왕의 것이 분명한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울리기 시작했다. 한서진은 이를 악물었다.

“젠장! 놈이 신살검을 찾고 있어!”

“네?”

송하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당연하지만 그녀에게는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하늘의 눈동자만 쓸 수 있었어도!’

신살검을 코어로 쓸 수 없는 타르타로스 3로는 하늘의 눈동자 구동이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아서 왕의 주변에서는 에테르를 뜻대로 다루기가 어려웠다. 그가 뿜어내는 무형의 파장이 그런 간섭을 차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군사 위성이 아서 왕의 움직임을 잡아냈다. 천천히 두 팔을 벌리는 그의 주변으로 붉은 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한서진은 직감했다. 또 한 번 충격파가 온다.

―쿠우웅!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충격파가 퍼져 나가며, 강한 진동이 평성까지 도달했다. 아마 러시아와 동유럽에서도 이 진동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오빠! 칼이!”

한서진은 외마디 비명에 급히 고개를 돌렸다. 빛의 검, 신살검이 불안정하게 요동을 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보였다.

그는 급히 정신력을 집중했다. 통찰안으로 빛의 검을 확인한 그는 경악했다.

검의 기척을 아서 왕으로부터 감추기 위해 설치한 마법진, 그것을 구성하는 에테르 에너지가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언제 붕괴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쿠우웅!

그때, 다시 한 번 무거운 진동이 울려 퍼졌다.

바다 건너 멀리서부터 전해진 진동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힘으로 저택을 요란하게 뒤흔들었다.

그 흔들림 속에서 한서진은 송하나를 꽉 껴안은 채 버텼다. 그 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신살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통찰안이 비추는 진실이 똑똑히 보인다. 신살검을 감싸고 있는 마법진이 무너지고 있었다. 신살검은 격렬한 몸부림을 통해 자신을 가둔 마법진을 부수고, 뛰쳐나오려 하고 있었다.

쩌적거리며 깨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마법진, 그것을 이룬 코드가 산산이 부서져 나가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안 돼!”

한서진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의 외침을 무시하듯이 마법진은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 신살검은 허공으로 높이 상승했다. 가벼워진 몸을 둘러보듯 천천히 회전하는가 싶더니, 어느 방향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방향이 바로 아서 왕이 있는 방향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한서진은 벌떡 일어나서 달려들었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신살검이 아서 왕에게 넘어가면 모든 게 끝난다.

“오빠! 안 돼요!”

송하나가 비명처럼 외쳤지만, 그의 귀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신살검을 꽉 움켜쥐었다.

“크윽!”

그 순간 타는 듯한 통증이 손안을 덮쳤다. 마치 용암에 달군 쇠를 쥔 것처럼, 손바닥이 뜨겁다. 손끝에서부터 팔 전체가 타들어가는 것만 같은 고통이 느껴진다.

눈이 멀 듯한 백색 빛이 검에서 뿜어지며 그의 몸을 감쌌다. 주변에서 전해지는 감각이 순식간에 차단되며, 의식이 깊은 나락을 향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폐하, 명령을 내려주세요.”

귀에 익은 목소리에 한서진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연구실에 있었는데,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의식이 돌아오며 주변의 풍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갑옷을 입은 익숙한 미녀가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바로 신효진이었다. 아니, 스칼린 왕비라고 해야 할까?

그녀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그녀가 다시 한 번 부드럽게 말했다.

“어서요. 당신의 용맹한 군대가 명령을 기다리고 있어요.”

“……명령?”

한서진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뒤에 끝없이 도열해 있는 기사와 마법사, 그리고 용들의 모습을. 레노지안이 지닌 모든 힘을 모아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장엄한 풍경이다.

콰르릉, 하며 요란한 천둥이 울려 퍼진다. 고개를 든 그의 눈에 갈라지는 하늘이 보였다. 이미 지평선 끝까지 어둑한 기운이 스산하게 깔리고 있었다.

‘하늘이 갈라지고 있다……!’

이미 여러 번이나 보았던 광경이다. 바로 레노지안이 멸망한 그날의 풍경 아닌가.

“폐하, 어서요.”

그녀가 다시 재촉했다. 한서진은 가만히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여기는 어디일까. 자신의 꿈속일까, 아니면 아서 왕의 꿈속일까. 그것도 아니면, 신효진의 꿈속일까.

그것을 확인해야 했다.

“효진 씨.”

그녀의 눈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갸웃거리며 되묻는다.

“그게 누구죠?”

“효진 씨. 접니다, 한서진.”

“폐하? 갑자기 왜 이러세요?”

“여기는 효진 씨의 꿈일 뿐이에요. 이만…… 돌아갑시다.”

“폐하?”

그녀는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정말 왕이 이상해졌는가 싶어 의구심을 품고 바라보고 있었다.

한서진은 굳게 믿었다. 이곳은 신효진의 꿈일 것이라고.

“효진 씨, 당신은 스칼린 왕비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신효진이에요. 당신의 안에 깃들어 있던 스칼린 왕비의 잔존 사념과 바뀌어서 이곳에 갇힌 겁니다.”

“폐하…… 최후의 성전을 앞두고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예요? 우리 레노지안의 운명이 오늘 이 전투에…….”

“레노지안은 이미 끝났어요! 이건 모두 가짜입니다! 무너지는 저 하늘도, 그리고 저 군사와 마법사, 용들도! 전부 다 꿈이 빚은 가짜라고요! 환영입니다!”

“폐하!”

“저걸 봐요! 당신의 아버지! 아서 왕의 장인! 대륙 최고의 대마도사! 지금 그의 모습을 보란 말입니다!”

한서진은 저쪽에 서 있는 노신하를 가리켰다. 그녀는 그가 가리키는 대로 돌아보다가 새하얗게 질렸다.

로브 밖으로 드러난 대마도사의 신체는 살점 하나 없는 뼈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새파랗게 경직돼서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아, 아버지…… 이게, 이게 어떻게 된…….”

뒤를 돌아본 그녀의 입술이 더욱 파리해졌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의 결전을 준비한 군대. 기사고 마법사고 용이고 가릴 것 없이, 그들의 살점이 바스러지며 흰 뼈마디가 드러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올해 안에 완결짓는 게 제 꿈입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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