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93 죽음의 군단 =========================================================================
“해골 기사의 모습이 변했습니다!”
상황실에 외마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상황실 책임자, 마이클 소장은 침착하게 화면을 응시했다.
해골 기사는 더 이상 앙상한 뼈다귀를 찾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한 상태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살아 있는 인간과 차이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온몸이 밝은 빛을 뿜는 육신으로 이뤄진 모습은 신이 강림한 것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고 있었다.
먼 거리에서 카메라를 통해 전송받은 영상을 보고서도 이럴진대, 만약 실제로 정면에서 마주친다면 그 존재감에 잡아먹혀 버릴지도 모른다.
“워싱턴에 보고한다.”
“넷, 소장님!”
명령을 받은 요원이 재빠르게 암호화된 보고 내용을 백악관으로 전송했다.
마이클 소장은 차분히 화면을 살폈다.
겉보기에는 살아 있는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 하지만 그 중에서도 지울 수 없는 특징이 도드라지고 있었다.
바로 눈동자가 있어야 할 부위에 안구 대신 빛나는 어둡고 푸르른 두 개의 구체가 그것이다.
그 기괴한 모습은 해골 기사가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닌, 죽음과 생명의 어디쯤에 걸친 존재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 움직입니다! 해골 기사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방향은?”
“남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요원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기에 그러는 것인지, 마이클은 보고를 서두르라고 재촉할 마음조차 사라졌다.
비통한 요원의 음성이 이어졌다.
“해골 기사를 중심으로 모든 식물들이 급격히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죽음의 반경.
그것이 아서 왕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고농도의 에테르가 퍼져 나가면서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한 식물들이 빠른 속도로 시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빠르게 재생한 듯한 그 모습을, 한서진은 입술을 깨문 채 주시했다.
‘이대로라면 일본 전체가 죽음의 땅이 되고 만다.’
아서 왕은 바다를 건너는 대신, 곤겐산에서 시작해서 남서쪽을 향해 걷고 있었다. 이대로 일본 땅 전체를 통과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지는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효진 씨가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아서 왕에게는 현대 문명이 쌓은 무력이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한서진이 지닌 에테르 과학 지식도 그다지 큰 기대를 걸 수는 없었다. 비록 이성을 잃은 망자의 육신이긴 하지만, 아서 왕은 한때 에테르를 자유자재로 다루던 대륙 최강자였으니까.
최후의 희망은 신효진이었다. 스칼린 왕비의 힘을 쓸 수 있는 그녀라면 이 불리한 형세를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러나 그녀의 의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꿈속에 잠긴 채, 수면으로 떠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한서진은 타르타로스를 이용해 자신의 꿈속에 들어가 본 귀중한 경험이 있었다.
성공 가능성은 낮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충분히 시도할 가치가 있었다.
“이걸로 효진 씨의 꿈속에 들어갈 수 있어요?”
“정확히는 관찰을 하는 거지. 잘만 하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몰라. 물론 효진 씨가 자기가 누군지 자각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진입 단계부터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한서진은 그 불운의 가능성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제가 꾸는 꿈은 도움이 되지 않나요?”
“그건 몰라. 일단 지금은 효진 씨의 꿈부터 들여다보는 게 먼저야.”
타르타로스와 연결된 모니터에는 준비를 앞둔 프로그램이 로딩 중이었다.
“시작한다.”
한서진이 입을 열자 송하나도 덩달아 긴장해서 모니터를 주시했다.
실행 명령을 내리자 모니터에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끼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서진의 눈에서 타르타로스 3에서 뻗어나가는 에테르의 흐름이 보였다.
에테르 파동은 잠들어 있는 신효진을 향해 다가갔다. 타르타로스 3와 신효진, 그 둘이 파동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모니터에 나오는 노이즈가 더욱 심해졌다. 송하나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빠, 이거 왜 이러는 거죠?”
“……효진 씨가 거부하고 있어.”
그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다른 모니터에 나온 수치 그래프는 타르타로스 3가 신효진의 꿈속에 접속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게 보였다.
‘출력을 더 높여야겠다.’
스칼린 왕비의 힘을 얻은 신효진은 이미 인간을 초월한 지 오래였다. 그래서인지 타르타로스 3의 접속에 저항하는 반발력도 엄청났다.
한서진은 단숨에 출력을 10배 이상으로 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효진의 저항력은 주춤거리지도 않았다.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방어력이었다.
그때였다.
마법진에 봉인돼 있던 신살검이 눈부신 광채에 휩싸였다. 송하나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오빠! 저 칼이!”
“뭐야?”
한서진이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신살검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새하얀 광휘 속에서 한서진은 끝없이 떨어지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의식이 무한한 어딘가로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다.
저만치 아래 새하얀 구름이 보인다. 구름을 뚫고 내려가자 광활한 대륙이 나타난다. 마치 편광 필름을 낀 것처럼 불투명한 이질감이 드리워져 있다.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 나타난다. 그 위로 한서진의 의식은 끝없이 낙하하고 있었다.
화려한 정원이 보이고, 익숙한 분수대 앞에 앉아 있는 한 여자가 보인다.
뛰어난 미모를 지닌 낯익은 얼굴, 그녀를 본 순간 한서진은 필사적으로 쥐어짜낸 외침을 터트렸다.
‘효진 씨!’
착각일까? 그녀가 움찔한 것처럼 보였다. 마치 자신의 외침에 반응한 것처럼.
서서히 얼굴을 든 그녀가 이쪽을 똑바로 바라본다. 너무 멀어서 자세한 표정을 읽을 수가 없지만, 그녀의 눈에 마치 자신이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모든 풍경이 사그라졌다.
한서진의 의식은 튕겨지듯이 쫓겨나왔고, 다음 순간 걱정에 가득 찬 송하나의 얼굴이 눈에 보였다.
“오빠, 괜찮아요?”
“내가…… 얼마나 이러고 있었니?”
“5분 정도……? 걱정했어요. 갑자기 아무 말도 안 하고 굳어만 있어서요.”
“……효진 씨 꿈에 잠깐 들어갔었어.”
“정말요? 어떻게 됐어요?”
“모르겠어. 오래 머물러 있지 않았으니까. 효진 씨를 불렀고 내 목소리를 들은 것 같긴 했는데…….”
한서진은 말을 흐리며 모니터를 살폈다. 화면에는 더 이상 아무런 노이즈도 떠올라 있지 않은, 깨끗한 상태였다.
1차 접속은 아무래도 실패로 돌아간 것 같다. 한서진은 일단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신살검이 왜 반응을…….”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 한서진은 안색이 살짝 굳었다.
신살검의 형체가 변해버렸다.
금속 재질로 이뤄진 검신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빛으로 이뤄진 듯한 한 자루의 검만이 대신 있었던 것이다.
빛의 검이 허공에 홀로 떠 있고, 그 아래에는 부서진 검의 파편이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 마치 필요가 사라져 벗어버린 허물처럼.
―효진 씨!
문득 귓가에 울린 희미한 외침에 스칼린 왕비는 멈칫했다. 잠시 후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목소리가 들린 그 방향을 향하여.
드넓은 창공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감각이 외치고 있었다.
저기에 뭔가가 있다고. 그것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왕비 전하, 왜 그러시옵니까?”
왕자를 안고 있던 시녀장이 의아해서 물었다. 스칼린 왕비는 그녀를 향해 물었다.
“혹시 무슨 소리를 듣지 못했느냐?”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괜한 말을 했구나.”
스칼린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이만 들어가자. 바람이 조금 차구나.”
“예, 왕비 전하.”
왕비가 일어서자 시녀들도 줄줄이 일어나며 소풍을 접을 준비를 했다.
정원을 떠나기 전 왕비는 잠시 멈춰서 하늘을 주시했다. 금방이라도 아까 그 목소리가 다시 들릴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왕비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효진…… 그게 누구지?’
한서진은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뒤늦게 신살검의 변화를 깨달은 송하나도 마찬가지였다.
금속으로 된 껍데기를 벗어버린 신살검은 황금색 광채로 된 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넋을 잃고 하염없이 빠져들게 된다.
혹시 저것이 신살검이 감추고 있던 진짜 모습일까.
한서진은 저도 모르게 빛의 검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손이 가까이 다가오자 검을 이룬 빛이 더욱 선명해진다. 마치 그의 손길에 반응을 하는 것처럼.
“오빠.”
송하나가 걱정스럽게 불렀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지금 귀에 들리지 않았다.
한서진은 홀린 것처럼 검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은 빛으로 된 검의 몸체를 통과하여, 아무것도 없는 허공만 쥐었을 뿐이다.
타는 듯한 감촉이 손안에 전해진다. 신기하게도 통각은 전해지지 않는다. 무언가 닿는 느낌만이 뜨겁게 와 닿을 뿐이었다.
그에 반응하듯 몸 전체에 열기가 오른다.
검은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도, 그렇다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마치 아직 자격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한서진은 손을 뗐다. 거짓말처럼 몸을 감싸던 뜨거운 감각이 사그라졌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아마…… 지금까지 봤던 신살검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었던 것 같아.”
“그럼 지금 저 모습이 진짜라고요?”
“그럴지도 모르지. 어쩌면 한 번 더 변신을 남겨놓은 걸 수도 있고.”
한서진은 합동 군사 채널에서 전해준 정보를 살폈다. 아서 왕은 일본의 남쪽을 향해 천천히 전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이동할수록 죽음의 반경은 더욱 넓어지고 있었다. 그 범위에 휩쓸린 식물들은 순식간에 생명력을 박탈당한 채 말라 비틀어졌고, 동물들은 필사적으로 그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달아나고 있었다.
더 이상 앙상한 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아서 왕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서진은 가라앉은 얼굴로, 원거리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그의 모습을 덤덤히 관찰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빛의 몸을 얻은 타르온도 커다란 날개를 넓게 펼친 채, 천천히 그를 뒤따르고 있었다.
걷는 방향을 보면 아서 왕은 아직 신살검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게 분명했다.
‘목적이 뭐지?’
곤겐산을 기준 위도로 해서, 일본은 고농도의 에테르에 노출된 상태였다. 아서 왕이 남하할 때마다 지나온 위도의 모든 땅이 죽음의 대지로 변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곤겐산의 북쪽 위도 지역도 조금씩이지만 천천히 에테르의 과부하에 잠식되고 있었다.
이대로 아서 왕이 남하를 완전히 마친다면 일본 전체는 죽음의 땅을 변할지도 모른다.
“대체 뭘 하려고…… 잠깐, 이게 뭐지?”
그때 한서진은 모니터에 나타난 수치가 급격히 변화한 것을 발견했다. 이미 아서 왕이 지나온, 그의 발자취에 오염된 어느 지역에서 일어난 반응이었다.
고농도로 응축된 수십 개의 에너지 반응이 꿈틀거리듯 움직이고 있었다. 한서진은 급히 BII를 통해 그쪽의 영상을 확인하려 했으나, 에테르 거부 반응으로 실패했다.
그는 군사 채널에 협조를 구했다.
“지금 보내드린 좌표 지역의 영상 자료가 필요합니다! 급한 일이니 서둘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미러 공동 상황실에서도 급한 상황임을 인지했는지, 곧바로 해당 지역을 정찰 중인 무인 드론을 연결했다. 곧이어 나타난 영상에 한서진은 신음했다.
“이게 뭐야.”
뼈로 이뤄진 거대한 군마. 그리고 그 군마를 탄, 해골의 모습을 한 기사.
짙게 넘실거리는 에너지가 뭉치면서, 죽음의 군대의 수가 천천히 불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엔딩까지 큰 그림은 그려져 있는데 세세한 연출이나 전개를 생각하는데 골머리를 좀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이 자꾸만 늦어지네요.ㅠ
그래도 빠르면 이번 달, 늦어도 다음달 중순 안에는 완결을 내보겠습니다.
늦어서 죄송하고, 지금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양치기 소년은 양을 치러 물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