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591화 (591/609)

00591  군주의 칼  =========================================================================

한국 정부는 울릉도와 독도에 거주하는 주민, 경찰 등을 모조리 본토로 철수시켰다. 철수 대상자들도 두 말 않고 그런 정부의 결정에 따랐다.

동해 건너 일본 땅에 그런 무시무시한 괴물이 도사리고 있고, 그 괴물을 막기 위해서 일본에 언제 핵을 터트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시국에서 동해 한복판에 버티고 있겠다는 간 큰 사람은 없었다.

울릉도와 독도는 몇 몇 무인 시설을 제외하고 텅 비었다. 사람은커녕 가축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울릉군뿐만이 아니다.

고성부터 시작해서 부산에 이르기까지, 동해안을 직접 끼고 있는 지역 주민들은 매일 불안에 몸을 떨었다.

―진짜 일본에 핵이라도 터트리면 여기까지 쓰나미 들이닥치는 거 아니야?

―설마, 그래도 일본 동쪽 해안에 터트릴 거라서 동해에 직접 해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던데. 지금 그 괴물이 반대편에 있잖아.

그런 불안은 최초 시도한 핵 공격이 무효로 돌아갔을 때 급증했다. 그리고 곤겐산을 둘러싼 무인 차량들에 탑재된 핵탄두가 실제 터졌을 때 함께 폭발해버렸다.

―들었어? 지금 일본에 핵 터트렸다더라!

―봤어. 인터넷은 지금 난리도 아니래.

―폭발 규모가 수십 메가톤급 이상이라는데? 이러면 우리나라까지 피해 입는 거 아니야?

―동해도 이미 방사능에 오염됐을 거다. 가능한 멀어져야 해.

동해안을 직접 낀 지역 주민들은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가능한 동해에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 대도시로 몰렸다.

다행히 일부 지역에 포탈이 완공돼 있었던 덕분에, 그 많은 인원이 이동한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혼란은 덜했다.

동해안 지역은 한순간에 막대한 인구가 빠져나가며 텅 비어 버렸다. 흡사 유령 도시라도 된 것 같았다.

혼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일본과 한국이 지리적으로 얼마나 가까운데. 일본에 핵 터지면 한국이라고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뭐래. 핵은 이미 터졌다니까.

―그러니까 한시라도 빨리 멀어져야 해! 지금 이 순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 낙진이 해양 기류 타고 날아오고 있을 거라고!

―헬반도가 지옥불반도가 되기 전에 탈출해야 한다.

일본에 터진 핵폭발의 구체적인 결과가 알려지기 전만 해도, 한국 국민들은 핵폭발의 여파가 한반도를 덮치는 것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한시라도 한국을 탈출해서 멀리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해골 괴조의 모습이 변화하는 영상이 공개되기 전까지만 해도, 핵폭발의 여파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불사조? 아니, 새는 아니고 꼭 용처럼 생겼으니까…… 화룡?

―잠시만, 이게 말이 돼? 생물이 핵폭발을 견뎌냈다고? 그리고 그 에너지를 흡수했다고?

―저게 어딜 봐서 생물이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목숨을 걸고 일본까지 들어간 취재진이 공개한 영상에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특히 일본 국민들의 공포와 두려움, 좌절이 가장 컸다. 고향 땅으로 돌아가는 일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절감한 것이다.

아니, 쉽지 않기만 하면 다행이다.

어쩌면 돌아갈 고향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여러 나라에 분산돼서 피신해 있는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그런 불안함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해골 기사에 대응하기 위해 유례없는 군사 공조 체제를 구축한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동시에 양국이 보유한 핵전력의 대부분이 일본을 중심으로 재배치되었다는 것도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었다. 두 강대국은 그런 소문까지 적극 통제할 만큼 여유가 넘치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일본에 배치된 미러 핵무기가 지구 전체 핵전력의 95% 이상이라더라.

―그거 다 터지면 일본은 어떻게 되는 거야? 앞으로 사람이 살 수나 있는 거야?

―별 걱정을 다 한다. 어차피 흔적도 없이 침몰해서 사람이 살 수 있는지 없는지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걸.

―근데 있잖아, 만약 그렇게까지 했는데 해골 기사를 섬멸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미 수십 메가톤 핵공격을 했는데도 멀쩡하잖아?

―핵은 안 통해. 이제 다 끝났어. 지구가 멸망할 날이 멀지 않았어. 그 전에 마음껏 즐겨!

종말이 다가왔다.

그 사실에 절망한 나머지 세계 곳곳에서 체념한 이들이 온갖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절도, 방화, 강도, 강간, 살인 등의 범죄가 기승을 부렸다. 제3세계 지역일수록 혼란은 더욱 컸다.

미국에서는 제3국가 출신 이민자가 절망한 나머지 총기를 들고 난사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 바람에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고 그 이상으로 많은 이들이 중상을 입었다.

하늘의 눈동자 시스템이 정지한 이상, 총기를 이용한 범죄를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미국이 이런 상황인데, 아프리카 등 빈민국 지역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마치 혼돈의 신이 강림한 듯한 양상이 밤낮으로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꽤 오래 됐어요. 아마 십 년은 훨씬 넘은 것 같아요.”

송하나는 오랜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처음은 항상 어느 산속에서 시작해요. 어린 여자애 하나가 혼자 살고 있어요.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아무도 찾지 않죠.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산인데 전혀 무서워하지도 않아요. 어쩌다가 다른 짐승과 마주쳐도 짐승들이 먼저 도망가요. 괴물들도 마찬가지고요.”

한서진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귀담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애는 한 남자를 만나요.”

“…….”

그 남자가 누구인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지만, 한서진은 그녀의 말을 끊지 않았다.

“그래서 산을 떠나 그 남자를 따라가죠. 아마 그 남자는 왕이나 그 비슷한 신분인 거 같아요. 굉장히 큰 성의 주인이고, 여자애를 잘 보살펴 줘요.”

그녀는 꿈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다른 꿈에 비해서는 선명하지만, 실제 현실로 착각할 만큼 정교한 감각은 아닌 모양이다.

실제로 그녀는 꿈에서 깨고 나면 그것이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했다. 그저 신기한 꿈을 꾸었구나, 하고 잊어버리기가 일쑤였다.

그러다가 꿈이 연결되고, 이어지고, 끝난 뒤 다시 반복되면, 참 신기하다고 넘겨버리면 끝이었다.

“꿈을 매일 꾸진 않았어요. 하지만 며칠 간격으로 한 번씩 꾸며 계속 이어졌어요. 꿈의 내용은 꽤 길었는데, 그게 끝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반복되곤 했어요. 하지만 지루하진 않았어요. 그전에 놓쳤던 장면들이 새로 나오거나, 그전에 나왔던 장면이 생략되거나 했으니까요. 꼭 신기한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었거든요.”

“그 꿈에 나온 남자가 혹시…….”

“오빠와 똑같이 닮았어요. 머리카락 색만 빼면.”

“언제부터 안 거야?”

“당연히 처음 만났을 때부터죠.”

한서진은 그녀를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렸다. 백철중 회장의 단골 술집에서 고기와 술을 먹던 중 그녀가 찾으러 왔었다.

늘씬하고 이지적인 이미지 덕분에 처음에는 비서인 줄 알았다. 나중에 미성년자라는 걸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때부터? 우리 회장님 단골 가게에서 만났을 때부터?”

“네. 처음에는 참 신기하다, 우연이다 생각했었죠.”

“전혀 몰랐어. 그때 네가 날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을 줄은…….”

“제가 나중에 학교까지 찾아갔었잖아요. 제가 아빠가 눈여겨보는 남자 직원이 누군지 궁금하다고 아무 이유 없이 학교까지 찾아갈 리가 없지 않아요?”

“그, 그렇지, 참.”

“확인하려고 그랬던 거죠. 정말 똑같은가, 내가 잘못 본 건 아닌가.”

“…….”

이 설명하기 힘든 허탈함, 그리고 배신감은 뭘까. 나쁜 의미는 아니지만 왠지 서운함이 가슴에 사무치는 거 같다.

‘그래, 이상하다 했어.’

사실 당시 송하나 입장에서 자신은 별로 대단할 것 없는 사람이다. 그녀는 내로라하는 재벌 회장이 애지중지 하는 딸이었으며, 심지어 고교생이다. 공부도 잘하고 외모도 몹시 뛰어나며, 키도 크고 몸매도 빼어나다.

그런 모자랄 게 없는, 아니 오히려 모든 면에서 넘치는 그녀가 그룹 장학금을 받으며 한국대에 다니는 직원 한 명을 직접 찾아올 까닭이 없지 않은가.

“오히려 잘 된 거죠. 덕분에 오빠의 매력을 알게 됐구, 서로 알아갔구, 이렇게 결혼까지 하게 됐잖아요. 지금도 그 꿈을 꾼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한서진은 문득 송하나의 설명에서 한 가지 위화감을 느꼈다.

“하나야, 혹시 너 꿈에서…….”

“아, 맞다. 소리는 안 들리더라고요.”

“…….”

“하지만 괜찮아요.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거든요. 꿈속의 오빠를 그 여자애가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지.”

그녀는 말을 안 했지만, 한서진은 송하나가 ‘그 여자애’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애는 그 남자를 좋아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그 남자는 결혼했고, 부인이 따로 있었죠.”

“…….”

“처음에는 재미있게 봤었는데, 오빠를 만나고 나서부터는 별로 재미가 없어졌어요. 그리고 한동안 안 꾸다가 최근 다시 꾸기 시작했어요.”

“최근이라면, 언제부터?”

“얼마 안 된 거 같아요. 그리고 내용이 변했어요.”

“어떻게?”

송하나는 잠시 목청을 가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여자애…… 아마 저주 같은 것에 걸린 거 같아요.”

“저주?”

“네, 가끔씩 아주 큰 괴물로 변하곤 했거든요. 꼭 용처럼 생긴…….”

“…….”

한서진은 순간 가슴이 아려왔다. 지금 그녀의 표정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왜 저주라고 생각했어?”

“그게, 그 여자애는 용으로 변하는 걸 원치 않는 듯이 보였어요.”

“…….”

“용으로 변하는 자기 자신을 싫어했던 거 같아요. 용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때마다 슬퍼했거든요. 아마 그것 때문에 그 남자한테 선택받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 용이…… 지금 일본에 있는 그 용하고 똑같다 이거지?”

송하나는 말없이 끄덕였다. 한서진은 그녀의 눈빛에 가득한 불안함을 확인했다.

“제 꿈하고…… 아무 상관없겠죠? 그냥 우연이겠죠?”

“…….”

“처음에는 오빠와 제가 운명이라고 암시하는 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무서워요.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만약에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라면…….”

“하나야, 네가 꾼 꿈은 그저 꿈이 아니야.”

한서진은 쓰게 웃으며 쐐기를 박듯 분명히 말했다.

“네 전생을 꿈을 통해 본 거야.”

“네? 그런 게 어딨어요. 전생 같은 건…….”

“난 믿어. 왜냐하면…….”

한서진은 ‘스칼린’ 왕비를 떠올렸다. 그녀가 암시처럼 장난스럽게 짓던 미소가 생각났다.

―왜긴요, 추억 쌓으려고 그러죠.

―예전에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 못했거든요. 서로 으르렁거리며 많이도 싸웠죠. 물론 그만큼 미운 정도 많이 들었지만.

―아, 폐하는 아직 모르시지, 참.

그녀의 눈빛을 깊이 들여다보며, 그는 똑바로 말했다.

“나도 봤거든. 우리 전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