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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87화 (587/609)

00587  군주의 칼  =========================================================================

“이게 뭐야?”

한서진은 놀라서 급히 에테르 수치 반응을 살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곤겐산을 중심으로 비정상적일 만큼 높은 에테르 농도가 확인되고 있었다. 심지어 그 범위는 지속적으로 넓어지고 있었다.

대기 중에 산소가 너무 많으면 사람이 살 수 없듯이, 에테르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기준치에서 일정 이상 올라가면 그 안에서 생명체가 견딜 수 없게 된다. 거기서 더 심해지면 에테르 스톰 같은 비정상적인 자연재해로 번지게 된다.

“자기 주변을 오염시키고 있는 거야? 설마 신살검을 찾으려고?”

순간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건 너무 비효율적인 방법 아닌가.

“아서 왕이 품은 에테르 에너지가 너무 거대해, 그게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축적되는 건지도…….”

오히려 이 가설이 더 그럴듯했다.

현재 한서진은 타르타로스 3에 신살검 대신 오리할콘으로 만든 코어를 장착해 사용하고 있었다. 신살검의 파워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성능은 타르타로스 2를 훨씬 압도한다.

그는 마이너 버전 타르타로스 3를 통해 아서 왕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여러 가지로 놀라웠다.

“하늘의 눈동자와 비슷해. 에테르를 이용해 지구 전체의 물리 현상을 통제하고 있어.”

아서 왕이 펼친 에테르 역장은 급격한 에너지 발생을 차단하고 있었다. 이를 테면 핵분열 같은 것 말이다.

미국이 큰 결심 끝에 감행한 핵 공격이 무위로 돌아간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현재 미국과 러시아는 보유한 핵전력의 대부분을 아서 왕에게 조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에테르 역장이 효력을 발휘하는 한 아무 소용이 없다.

처음 미국과 러시아에 알려줄까 생각했지만, 곧 포기했다. 아직은 그들의 희망을 무참히 꺾어버릴 때가 아니었다. 거짓 희망일지라도 사회 통제를 위해 남겨두는 게 나았다.

“이대로 가면 일본은 사람, 아니 생물이 살 수 없는 땅이 되고 만다.”

에테르 과포화 상태에서는 지구상의 생물이 살 수 없다. 강인한 동물이라면 잠시 견디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오래 머무르지는 못한다.

“일본에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지.”

만약 전 세계가 과포화 된 에테르 에너지로 물들어버린다면? 인류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하게 되는 것이다.

니트론을 포함한 구 Table A 위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일본에 머무르는 해골 기사 대비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한서진도 의장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일본 국민들은 거의 다 피신했다고 해요. 러시아와 미국은 핵 포위망 구축을 완료했고. 언제든지 버튼만 누르면 모든 것을 날려버릴 수 있다고 하네요.”

“이제는 세상이 다 알고 있습니다. 더 이상 회피하거나 숨기지 못해요. 대책을 공개해야 합니다.”

“전 세계가 한 박사님이 대책을 세워주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한서진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일어섰다.

“일단 두 가지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오오, 역시.”

“자료를 보며 설명 드리죠. 하나는 에테르 폭탄입니다.”

그의 설명과 함께 대형 벽면 스크린에 타원형의 계란처럼 생긴 금속 물체가 떠올랐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표면은, 어찌 보면 거위가 낳은 황금알처럼도 보였다.

회의 멤버들은 스크린 속의 이미지보다는 방금 한서진이 입에 올린 발언에 주목했다.

“에테르 폭탄?”

“직접적인 파괴력은 없습니다. 아마 가정용 폭죽만도 못한 물리력을 낼 겁니다.”

“그럼 폭탄이 아니지 않나요?”

“폭탄을 가동시키면, 명령 코드가 내장된 칩이 주변에 밀집된 에테르 에너지에 연쇄 반응을 가해서 흩어버립니다. 파괴력을 발휘하지는 않지만, 일정 범위 내의 에테르가 정상적으로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게 막지요. 에테르가 전기라면, EMP와 비슷한 효력을 낸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하, 그렇군요.”

“해골 기사는 에테르를 직접 다루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에테르 폭탄은 해골 기사를 제압하는데 유효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역시 이미 차근차근 대비책을 세워놓고 있었군요.”

“그런데 에테르를 다루는 능력을 가졌다니…… 저 해골 기사의 정체가 대체 뭘까요?”

에테르 폭탄이 공개되자 회의 멤버들은 어느 정도 희망을 찾았다. 몇몇 선진국에서 정부를 대리하여 옵저버 자격으로 참석한 이들의 안색도 환해졌다. 그들 중에는 벌써부터 본국에 회의 내용을 타전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말 외계에서 온 생명체일까요?”

“아무리 봐도 지구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생명체라고 보기에는 어렵지 않습니까?”

현재 미국은 해골 기사와 오리할콘 괴조가 까마득한 옛날 외계에서 지구에 불시착한 생명체라 보고 있었다. 아니면 외계 문명이 오래 전 지구를 거치면서 남겼던 흔적이던가.

러시아 등 다른 나라도 미국의 그런 추정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다.

전 Table A 위원이자 현 TA전략연구소 상임 이사인 카를린이 문득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한 박사님, 조금 전 두 가지 대책을 세우셨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다른 하나는 어떤 건지 여쭤도 될까요?”

한서진은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볍게 흐르는 고요함에서, 회의 멤버들은 에테르 폭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중대한 대답이 떨어질 것을 예감했다.

“해골 기사와 대화를 해보려고 합니다.”

“말도 안 됩니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어요!”

여기저기서 경악이 터져 나왔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진 채, 지금 제정신이냐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리 한서진이라 해도 이건 지나치게 터무니없는 이야기이지 않은가.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일본까지 직접 찾아갈 건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방법이 없는 겁니까?”

직접 찾아가는 것은 아니란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그건 아직 말씀드릴 단계가 아닙니다. 진행 결과를 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좌를 건 싸움에서 패배한 기억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하늘이 뚫리고 성전이 열린 그날, 레노지안은 왕과 신하, 백성들이 모두 힘을 합쳐 맞서 싸웠다.

자신들이 지금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오래 전 박탈당했던 것을 다시 되찾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모두가 한 몸 한 뜻이 되어 싸웠다.

그러나 결국 무참히 패배하여, 신의 뜻에 따라 쫓겨났다.

영토를 잃고, 검을 잃었다. 오랜 세월 동안 번영을 누렸던 땅을 잃고 모두가 밀려났다.

그러나 군주 된 몸으로서,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왕은 백성들을 이끌었다. 다시금 자신들의 왕국을 되찾고자 했다.

검의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을 향해, 푸른 대해를 끝없이 걸었다.

물을 걷던 중 작은 이들의 공격을 받았다. 신의 사랑을 받아 레노지안을 차지한 이들이다.

그들에 대한 증오는 없지만, 그래도 섬멸해야만 했다.

자신의 뒤에는 무수히 많은 백성들이 있기에. 못난 군주를 믿는 그들을 책임져야 하기에.

왕은 주저하지 않고 싸웠다. 자신을 막아서는, 신의 대리인들을 향해 힘을 발휘했다.

‘약하다……!’

왕은 불현듯 그들에게 가엾다는 감정을 느꼈다.

이렇게 약한 주제에, 자신에게 대항하다니. 그들이 믿는 신은 그들을 버린 것인가?

막아서는 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계속 전진하던 중, 문득 저 멀리에서 그리운 기운이 느껴진다.

그것은 군주의 검보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아주 옅은 숨결이 붙어 있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자신과 함께 한 전우가 아닌가.

‘타르온.’

그래서 불렀다. 간절한 그리움을 담고, 저 먼 곳에서 잠들어 있는 전우를 불렀다.

‘타르온, 이리 오너라.’

하지만 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도 깊은 잠에 든 모양이다.

그래서 왕은 힘을 끌어올렸다. 몸 속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힘을 마음껏 개방했다. 그 막대한 근원력을, 시공을 뚫고 전우에게 전달했다.

마침내 느껴진다. 전우가 숨을 고르는 것이.

보인다. 전우가 일어서는 모습이.

온다! 이곳으로!

―끼에에에엑!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당도한 초룡은 거대한 날개를 펄럭이며 포효를 내질렀다. 그가 알고 있던 것과 한 치도 다름이 없는 그 위풍당당한 모습에, 왕은 감격해서 손을 내밀었다.

‘타르온, 같이 가자.’

―크르르르…….

‘또 한 번 싸워보자.’

왕은 초룡의 등에 올라탔다. 보이지 않는 고삐가 생겨나며 그의 손에 쥐어졌다.

천천히 상승하자, 신의 대리인들이 밑에서 공격을 해온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간지러운 공격이다.

타르온이 한 차례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아래를 향해 가벼운 충격파를 내뿜었다. 숨결이 만들어낸 파동은 해수면을 헤집으며 그들을 모두 전복시켜 버렸다.

타르온은 저 멀리, 검의 힘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천천히 날갯짓을 했다. 오랜 전우를 다시 만나서일까. 급한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순간, 놀랍게도 검의 기척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왕은 당황하지 않고, 고삐를 조종해 천천히 타르온을 하강하도록 했다. 어느 조그마한 동산에 가볍게 착지한 뒤, 왕은 타르온의 옆에 앉았다. 몸을 웅크린 타르온의 목을 가볍게 쓰다듬으며, 왕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신살검, 어디 있느냐.’

왕은 정신을 끌어올리며, 검을 찾았다. 검이 내는 목소리를 듣고자 했다.

기척을 널리 퍼트리며, 끊임없이 주변을 탐색해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왕은 깨달았다. 이곳의 지형이 참 낯설다는 것을.

레노지안이 아무리 드넓다 하나 왕으로서 구석구석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그는 어느 지역이든 대강의 특색은 선명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 잡히는 환경은 자신이 아는 것과 무척 거리가 멀었다.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것인가.’

기억이 흐릿하다.

성전에서 패배한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뇌리의 기록이 분명하지가 않았다.

많은 백성들이 죽고, 남은 이들을 이끌고 왕국에서 쫓겨난 것은 분명한 것 같은데, 그 사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명확하지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문득 환청이 뇌리를 스친다.

―기어이 가시렵니까, 폐하?

―지상은 우리가 아닌 다른 생명에게 허락된 터전입니다. 그곳을 범하는 것은 또다시 신의 노여움을 살 수 있습니다, 폐하.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에, 왕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 순간 또 다른 환청이 귓가를 스쳤다.

‘그래도 갈 수밖에 없다는 걸, 경도 이미 알고 있잖소.’

자신의 것이 분명한 목소리, 그 환청 위로 어두운 환각이 배경처럼 내려앉는다.

암흑 속을 끊임없이 헤쳐 나가는 두 손. 앞을 향해 교대로 뻗으며 어둠을 뒤로 밀어낸다. 멈추지 않고 위를 향해 상승한다.

그 환각이 채 끝을 보기 전에, 익숙한 음성이 현실로 되돌려 놓는다.

‘폐하, 이곳은 우리에게 허락된 땅이 아닙니다.’

왕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로브를 입은 노신하가 생전과 똑같은 모습 그대로 애처롭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 생전과 똑같은 모습이라고? 그게 무슨…….

‘그게 무슨 말이오? 신은 우리에게서 레노지안마저 빼앗고, 그것을 자신들의 대리인에게…….’

‘이곳은 레노지안이 아닙니다, 폐하.’

왕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낯선 지형과 환경이 온몸의 감각에 잡히고 있다. 분명 자신이 알아보지 못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이곳이 레노지안이 아니라고?

불현듯 왕은 타르온과 눈이 마주쳤다.

녀석의 빛나는 눈동자 속에, 노신하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낡고 헤진 로브를 뒤집어쓴, 살점 하나 없이 뼈밖에 남지 않은 죽은 모습이.

고체가 부딪치는 딱딱한 마찰음이 음성처럼 새어나왔다.

“이……게…… 어찌…… 된…… 거요……?”

============================ 작품 후기 ============================

네 안의 흑염룡이 날뛰고 있는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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