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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85화 (585/609)

00585  군주의 칼  =========================================================================

6기의 핵미사일은 모두 무력화되었다. 핵분열을 일으키지 않고 미사일이 그대로 목표 지점을 지나친 것이다.

미사일은 사전에 설정된 대로 궤적을 틀어 다시 목표 지점으로 돌아왔지만, 핵탄두는 이번에도 폭발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것도 6기 모두.

이것은 단순한 불량이나 우연이 아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전략상황실에 모인 모든 이들이 깨달았다.

“조금 전 오리할콘 괴조가 가한 알 수 없는 공격……. 그것이 핵탄두를 무력화한 게 분명합니다.”

“무력화했다면, 어떤 식으로?”

“혹시 하늘의 눈동자와 비슷한 원리가 아닐까요? 핵분열 그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 말입니다.”

“한서진 박사 외에 그런 게 가능한 존재가 있단 말이오?”

“에테르를 직접 다루는 괴물이라면 가능할지도…….”

싸늘한 분위기만 흘렀다.

설마하니 최후의 보루인 핵마저 무력화할 줄은 몰랐다. 누구도 이런 상황을 상상하지 못했다.

핵은 인류가 믿을 수 있는 최후의 카드였다.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절대적인 파괴력이었다.

핵의 파괴력이 부족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만 했지, 핵카드가 아예 찢겨 나가는 건 어느 누구도 가정하지 않은 변수였다.

“추가로 핵을 발사해야 합니다! 아직 7함대에는 충분한 핵탄두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들을 일제히 발사하면……!”

“동아시아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버릴 셈이 아니라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생각입니다!”

“애초에 몽땅 쏟아 붓는다고 통할 리가 없어요! 방금 전 저 괴물이 보인 위용을 생각해 보세요!”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대통령은 암담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 참모들이 핏대를 세우며 대립하는 걸 지켜봤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오리할콘 괴조를 탄 해골 거인은 일본 영공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종말이 다가온다!

오리할콘 괴조, 그리고 해골 거인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유출된 동영상이 SNS상에 퍼져나가며 순식간에 전 세계 인간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이거 영화 아니지?

―영화 아닙니다. 지금 일본 동쪽 해역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

―일본 자위대 전투기 수십 기와 이지스함 6척이 모두 저 괴물에게 당했습니다. 육지 기지에서는 미사일과 포탄 세례를 엄청나게 퍼부었고요.

―처음에는 미국과 전쟁이라도 벌이는 줄 알았더니, 말도 안 되는 외계 괴물이 쳐들어오고 있었네…….

―뭐야, 무서워. 저 괴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본 드래곤을 타고 다니는 해골 기사라니…… 리치킹인가?

―그런데 검이 없잖아. 아무 무기도 없어.

해상도가 낮은 영상이었지만 해골 거인의 위용을 알아보는 데는 충분했다.

―그거 알아? 제주도 미해군 7함대에서 괴물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했대.

―뭐, 진짜?

―미국이 미친 거 아니야? 그랬다가는 일본도 멸망한다고!

―그런데 더 큰 일이 뭔지 알아? 핵탄두가 모두 무력화됐다는 거야.

―말도 안 돼! 핵 공격까지 버텨냈다고?

―핵 공격을 버텨낸 게 아니라 핵폭발 자체가 일어나지 못하게 막아버린 듯.

공포는 멈추지 않는 전염병처럼 무서운 기세로 전 세계를 향해 번져 나갔다.

각국 정부는 해골 거인의 존재에 관해서 어떤 공식적인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정부가 침묵한다 해서 알려지지 않는 게 아니다.

이미 인터넷에 널리 퍼진 동영상, 미국과 러시아가 이미 자국민들을 일본 땅에서 소개 작업을 완료했다는 점, 그리고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국민 총대피 작업을 실시했다는 점에서, 해골 거인의 존재는 이미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총리는 감은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조금 전, 미국이 독단으로 가한 핵 공격 사실을 보고 받은 뒤부터 줄곧 그랬다.

일본은 핵을 쓰려면 빨리 써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지만, 미국은 아직 기다려야 한다며 거부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일본 국토가 핵 피해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시점에서, 독단으로 핵공격을 가한 것이다.

이것은 동맹으로서 일본에 대한 배신이자, 자주권을 철저히 짓밟은 행위였다.

일본 국토도 핵 피해에 노출되는 거리에서, 아무런 협의도 없이 핵을 발사하다니. 그것도 일본 내 미군 기지도 아닌, 한국 기지에서.

그러나 총리의 머릿속에 떠오른, 미국을 향한 모든 원망과 비난 성명은 의미가 없었다. 그것이 과연 국제 사회에 공식적인 목소리를 전달할 날이 올 수나 있을까?

그전에 일본이 송두리째 없어질지도 모르는데.

“총리 각하,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결단? 무슨 결단을 내리란 말이오?”

마침내 총리가 눈을 떴다. 그의 눈빛에는 모든 것을 체념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허탈함뿐이었다.

“고폭탄과 미사일, 포탄, 그리고 핵 공격까지 통하지 않는 괴물을 상대로 무슨 결단이 있을 수 있겠소?

“…….”

“일본을 버리고 피하는 수밖에 없소. 그리고 그건 이미 실행 중이잖소? 과연 몇 명이나 되는 국민이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지…….”

“미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일본 국민들의 피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합니다.”

미국은 해골 거인에 대항함에 있어 일본의 입장은 철저하게 무시해왔다. 심지어 핵 공격까지 자신들 편의를 따랐다.

이제 와서 국민들 피난에 도움을 주겠단다. 일본 정부로서는 비참하고 자존심 상할 일이었다.

그러나 굴욕을 참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이 정치가가 감내해야 할 일이었다.

“받아들이시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국민들을 무사히 탈출시킬 수 있도록, 외교 채널을 통해 낼 수 있는 모든 목소리를 내시오.”

“알겠습니다.”

“괴물의 위치는?”

“일본 영공에 진입한 뒤 반응이 사라졌습니다. 아마 지상에 내린 듯싶습니다.”

“그렇게 몸집이 큰데 어디 숨지야 못하겠지.”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일본 방공 시스템은 어렵지 않게 해골 거인과 오리할콘 괴조의 위치를 찾아냈다. 비행을 멈추고, 이와테 현의 곤겐 산악지대에 내렸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괴물은 거기서 뭘 하고 있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여기 영상을 보면, 산기슭에 내려앉아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고 합니다.”

“더 이상의 공격은 의미가 없겠지…….”

“대지 미사일은 모두 소진되었지만 폭격용 고폭탄과 포탄 재고라면 아직 남아 있습니다만.”

물론 아무도 그게 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력감, 오로지 그것만이 상황실을 가득 덮고 있었다.

온몸이 꽁꽁 묶인 채 도축의 순간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가축이 이런 심정일까.

꼬박 하루가 지났다.

그 시간 동안 해골 거인은 처음 산에 내려앉은 자세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마치 얼어붙은 듯이 조금의 미동조차 없는 그 모습에, 일본 정부는 얄팍한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혹시 완전히 정지한 것은 아닌가, 하는.

물론 그 희망을 절실히 받아들이는 이는 없었다. 다만 몇 시간, 하루의 시간만이라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것은 며칠 넘게 헤매던 사막 한가운데에서 얻은 몇 모금의 물처럼 소중하고 달콤했다.

일본은 그 여유를 헛되이 쓰지 않았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국민들이 탈출할 수 있게 필사적으로 도왔다.

자국민 위주로 피난 작업을 시행하다 보니, 미처 탈출의 기회를 놓친 외국인들은 홀대받을 수밖에 없었다.

국제 사회에서 중대한 갈등이 될 문제였지만, 일본 정부는 그 씨앗을 나중으로 미뤘다. 지금은 미래에 벌어질 외교 갈등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성공이다.”

한서진은 지친 한숨을 내뱉었다. 피곤 가득한 눈동자가 허공에 떠오른 신살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살검은 지금 푸른 빛의 구체에 갇혀 있었다. 바로 주문의 서를 이용해 형성한 봉인진이다.

레노지안의 고위 마법 중 하나인 이 봉인진은 특정 구역을 완벽하게 격리한다. 본래는 특정 지역을 일시적으로 격리하거나, 혹은 외부의 큰 재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로 시행한다.

일종의 도시 방어진 같은 마법이다. 따라서 그만큼 발현과 통제가 어렵다.

한서진도 타르타로스 2를 이용해 주문의 명령어를 간신히 해독하여 재현할 수 있었다. 그것도 직경 3미터 정도 되는, 신살검을 겨우 감싸는 형태에 그쳤다.

내부에 갇힌 신살검의 모습을 밖에서 볼 수 있지만, 그것은 가시광선을 통과시키기 때문이 아니었다. 봉인진 자체에 내부의 풍경을 외부에 보여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한서진은 한숨을 내뱉으며 아서의 위치를 확인했다.

‘역시 멈췄군.’

신살검의 기척이 사라지자 아서는 즉시 이동을 멈췄다. 무턱대고 찾아나서는 것보다, 신살검이 어디에 있는지 탐색하고 있을 것이다.

금관을 쓰고 망토를 두른 거대한 해골의 모습은 볼 때마다 전율이 끼친다. 저것이 한때 자신의 전생이었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손끝이 떨린다.

이미 오래 전에 죽어, 혼이 사라진 몸.

그저 생전의 인격이 남긴 간절한 사념만으로 움직이는 유해.

저 안에는 얼마나 대단한 힘이 깃들어 있을까. 얼마나 많은 레노지안 백성들의 혼이 꿈을 꾸고 있을까.

“지금 아서를 없애면…… 레노지안 백성들의 모든 혼도 소멸하고 만다.”

윤회의 굴레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영원한 소멸.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다.

기억나지 않는 전생, 지식의 전이로만 알고, 보고, 겪은 전생. 하지만 그 전생에서 자신을 믿고 따랐던 백성들이라 생각하면, 자꾸만 주저하는 감정이 생긴다.

‘없앨 수나 있을까?’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궁지에 몰린 일본이 구체적으로 어떤 공격을 퍼부었고, 미국이 6기의 핵 공격까지 시도했다는 것은 이미 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효로 돌아갔다.

재래식 군사력은 화력 그 자체가 통하지 않으며, 핵의 파괴력은 시험해보지도 못했다.

‘핵분열을 억제하는 역장을 무시하고, 핵을 성공적으로 폭발시키면? 통할까?’

핵을 터트리는데 성공하면 그 파괴력은 아서에게 과연 어느 정도까지 통할까. 그것을 확인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모험이고, 성공한다 하더라도 인류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

‘타르타로스 3만 멀쩡히 사용할 수 있었어도…….’

에테르를 만능에 가깝게 다루는 그 힘만 온전했어도, 이렇게까지 고뇌하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타르타로스 3의 코어 역할을 하던 신살검은 더 이상 자신의 손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치 진짜 주인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듯이 보였다.

스칼린이 원망스러워야 하는 상황이지만, 기이하게도 그녀가 밉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지구의 인류는 그녀가 지켜야 할 백성이 아니므로.

그때였다.

‘……이여.’

지끈거리는 두통이 밀려왔다. 동시에 누군가가 머릿속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가 느껴졌다.

환청이 아니었다. 한서진은 이를 악물며, 소리가 느껴지는 방향을 바라봤다.

‘또 다른 짐이여.’

그저 먼 지평선만 보일 뿐이지만, 그 너머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대답해다오.’

============================ 작품 후기 ============================

신살검이 굶주렸다...

나와 계약해서 태양계의 리치킹이 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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