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83 상승 =========================================================================
큐베 총리를 비롯한 내각 고위 인사들은 전투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수십 기가 넘는 전투기가 일사불란하게 대형을 짜고, 고폭탄을 투하하고 지나가는 장면에서 그들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곧이어 핵이 터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폭발 섬광에는 다들 두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일본, 만세!”
그들은 확신했다. 저런 융단 폭격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고.
설령 그 괴물이 생명체가 아니라 해도 상관없다. 산이라도 거뜬히 날릴 수 있는 폭발에서, 그 형체를 유지할 수 있는 무기물 또한 없을 테니까.
그러나 다음 순간 그들의 표정이 변했다.
“으앗!”
“저게 뭐야!”
폭발이 채 멎기도 전에, 그 안에서 무수한 빛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빛은 이미 충분히 거리를 벌린 전투기들을 개별적으로 추적하며, 단숨에 꿰뚫어버렸다.
전투기 대부분은 빛에 관통당한 그 순간 바로 폭발을 일으키며 산산조각이 되었다. 탈출에 성공한 조종사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폭격 투하를 당하고 불과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일어난 반격에, 상황실의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
“…….”
큐베 총리를 비롯하여 누구도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그만큼 지금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자신들이 꿈을 꾸고 있는가 싶었다.
수십 기가 넘는 전투기가 산산조각 나서 바다에 떨어진 이후, 마침내 폭염이 걷히기 시작했다. 흩날리는 검은 연기가 푸르스름한 빛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뼈의 팔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총리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크으…….”
“말도 안 돼. 저럴 수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상황실은 비탄에 잠겼다. 폭염이 완전히 걷히고 드러난 모습은 조금도 부서진 데가 없이 건장한 해골 거인의 모습이었다.
해골 거인의 온몸은 푸르스름한 빛이 휩싸여 있었다. 분명히 공격을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빛이다. 아마도 저 빛이 해골 거인을 그 공격에서 보호한 것이리라.
“2차 공격을 하겠습니다.”
관방장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는 총리의 허락을 듣기도 전에 전화로 2차 공격 지시를 내렸다.
해골 거인의 진격로에서 대기 중이던 6척의 이지스함에서 일제히 불길이 치솟았다.
사일로를 박차고 솟구친 함대함 미사일들이 허공에 흰 궤적을 남기며, 표적을 향해 날아갔다. 그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한 차례 미사일을 뿜은 이지스함들은 재장전을 마치고 다시 사일로를 열었다. 준비가 될 때마다 쉬지 않고 미사일을 발사했다. 표적이 크고 느리기에, 함선에서 일제통제를 할 필요도 업었다. 그저 좌표와 표적의 정보를 입력하기만 하면 되었다.
기관총을 쏘듯, 6척의 이지스함이 쉬지 않고 미사일을 토해내는 광경은 다시 볼 수 없을 대단한 장면이었다.
미사일은 해골 거인에게 쉴 새 없이 박히며 뜨거운 폭염을 만들어냈다. 폭염이 사방을 가리며 뜨거운 열기를 뿜어댔다.
탄성이 나올 만큼 장엄한 모습이지만, 큐베 총리를 비롯하여 누구도 주먹을 불끈 쥐지 않았다. 만세를 부르기 위해 손을 번쩍 들어 올리지도 않았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굳은 표정으로 현장에서 전해지는 영상을 지켜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마침내 모든 이지스함이 보유한 미사일을 전부 소진했다.
서서히 폭염이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에 내각 일동은 이제 신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이미 이렇게 될 거라고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던 듯이.
“3차, 3차 공격을 준비하겠습니다.”
관방장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큐베 총리는 3차 공격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동시에 그것이 과연 통할 것인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나 멈추라고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전부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총리가 끄덕이기도 전에 관방장관은 이미 3차 공격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 순간 일본의 모든 육상기지에 보유 중인 지대지, 지대함 미사일이 불을 뿜으며 날아올랐다. 동시에 사거리가 닿는 모든 장거리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값비싼 미사일이 순식간에 재고가 바닥난 뒤에도, 포수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가진 모든 포탄이 바닥이 날 때까지 쉬지 않고 쏘아댔다.
일본은 해상 전력 위주로 구성된 국가였기에 재래식 장거리포는 국가 규모에 비해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모든 포가 먼 바다를 향해 동시에 불을 뿜는 장면은 실로 장관이었다.
―뭐야? 지금 전쟁 난 거야?
―자위대놈들이 미쳤나 봐. 갑자기 바다를 향해 자주포를 엄청 쏴대고 있어.
―지대지 미사일이 태평양 쪽으로 날아간 거 봤어? 아니, 무슨 훈련이기에 미사일을 저렇게 아낌없이 쏴대는 거야?
―절대 훈련 아니다. 이거 실제 상황이야. 무언가 엄청난 위협이 지금 태평양에서 일본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일본 국민들의 불안이 커졌다. 육지에서 그렇게 미사일과 포탄을 쏴대는데, 소문이 퍼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가만, 얼마 전에 미국이 자국민들 우리나라에서 일제히 소개시키지 않았나? 그거 혹시 지금 이거랑 관련 있는 거 아니야?
―대지진 정보 같은 거 미리 입수해서 미국이 그렇게 서두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단 말이야?
―혹시, 혹시 지금 일본과 미국이 전쟁하는 거 아니야? 천재지변인데 미사일과 포탄을 쏴댈 리가 없잖아.
―말도 안 돼! 미국과 일본이 싸운다면 이런 식으로 싸우지도 않아. 항모에서 F-22 몇 기 띄우면 일본은 곧바로 백기를 들어야 한다고!
그런 불안과 음모론이 순식간에 SNS를 뒤덮는 순간에도, 육상자위대 포수들은 자주포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집중 사격은 무려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큐베 총리와 내각 일동은 얼굴이 온통 식은땀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축축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마침내 사격이 멈추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폭염이 완전히 걷혔다.
해골 거인은 여전히 건재했다. 조금도 다친 곳이 없이, 푸르스름한 빛에 휩싸인 채 해수면을 헤치며 걷고 있었다.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 모습에 내각 일동은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큐베 총리가 관방장관을 돌아보며 물었다.
“4차 공격은?”
“……주, 준비해둔 게 없습니다.”
“함선으로 포위해서 함포 사격이라도 해!”
고폭탄 투하와 미사일 샤워, 1시간 가까이 이어진 무차별 자주포 사격에도 멀쩡한 존재다. 고작 6척의 이지스함대가 1문짜리 함포로 쏴봤자 얼마나 효력이 있겠는가.
“어떻게든 발목을 붙들어야 할 거 아닌가! 시간이라도 벌어야 할 거 아니야!”
“알겠습니다!”
관방장관이 명령을 내리는 동안 큐베 총리는 굳은 얼굴로 거듭 지시를 내렸다.
“동부 해안 지역에 피난 경보를 발령하고, 즉시 소개 작업에 들어가시오. 최대한 남서쪽으로 피신하도록 유도하고, 그리고 해외로 피신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시오. 탈출용 항공기나 선박은 어느 정도나 준비할 수 있소?”
“처음 저 괴물이 출현했을 때부터 준비하긴 했지만, 터무니없이 모자랍니다. 애초에 이런 상황 자체를 가정한 적이 없습니다.”
국민 전원이 일주일 안에 일본을 버리고 탈출해야 하는 상황. 일본 정부는 단 한 번도 그런 상황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그에 대한 준비가 갖춰졌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최대한 서두르시오. 일본의 운명은 이제 경각에 달렸소.”
“예, 총리각하.”
“그리고 미국은?”
“우리가 독단으로 공격을 한 것에 대해 유감 표시를 나타냈습니다. 말이 유감이지 사실상 항의이자 비난입니다.”
“허…… 이런 상황에서도 공격을 대기하고 기다려야 한다고?”
큐베 총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비아냥거렸다. 아마 이 자리에 미국 전권자가 있었어도 그의 태도는 같았을 것이다. 그만큼 지금 일본은 궁지에 몰렸다.
“미국에 핵사용을 요청하시오.”
“총리 각하, 미국이 허락할 리가 없습니다!”
“허락하지 않겠다면 우리가 지금부터 만들어서 쏠 거라고 강경하게 밝히시오!”
“…….”
총리의 일갈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만큼 지금 총리의 의지가 굳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어마어마한 공격을 아무렇지 않게 튕겨내는 괴물인데, 당연히 핵 말고는 유효한 공격 수단이 없지 않은가?
하늘의 눈동자 시스템도 중지된 상황이니, 얼마든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워싱턴과 핫라인으로 바로 연결되었다. 핵 이야기를 듣자마자 케인 대통령은 딱딱한 반응을 보였다.
「핵은 안 됩니다. 태평양을 방사능으로 오염시킬 순 없어요. 그리고 핵이 저 괴물에 유효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수단은 없습니다.”
「한서진 박사가 지금 녀석의 약점을 찾아내기 위해 연구 중입니다. 에테르 에너지라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전에 일본이 멸망한단 말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녀석이 일본에 상륙하면 도살 밖에 남지 않습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총리.」
큐베 총리는 분노를 감추지 않고 적극 항의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 화상 통신 속 미국 대통령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무언가 안 좋은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차후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대통령은 야속하게 통신을 꺼버렸다. 큐베 총리는 분노가 더 커지는 한편, 뭐 때문에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통신을 끊었는지 불안한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다.
케인 대통령은 다급한 얼굴로 비서실장을 돌아봤다.
“그게 사실인가?”
“이걸 보십시오. 바로 몇 분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곧이어 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다. 고화질 실내 CCTV에 기록된 영상이었다. 영상은 한때 Table A 소유였던 초대형 연구선박의 기밀보관소를 비추고 있었다.
예전에 미국이 태평양에서 건져 올린 오리할콘 두개골.
지름이 200미터가 훌쩍 넘어가는 크기는 생명체가 살아있었을 적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짐작케 했다. 전문가들은 머리 크기만 200미터가 넘는 거대한 파충류일 것으로 추정했다.
그 오리할콘 두개골에서 황금색 빛이 뿜어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두개골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특수합금으로 된 연구선박의 내벽을 뚫고, 계속해서 위로 상승한다. 영상은 어느덧 내부 CCTV에서 다른 시점으로 넘어갔다.
연구선박에서 수백 미터 이상 높이 솟구친 두개골은 계속해서 빛을 내뿜었다.
빛은 두개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빛으로 된 목뼈를 만들고, 척추뼈를 만들었다. 갈비뼈를 만들고, 골반이 생기고, 네 다리뼈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거대한 빛의 날개뼈가 뻗어나가며 가볍게 펄럭이기 시작했다.
두개골을 제외한 모든 뼈가 투명한 황금색 빛으로 이뤄진 거대한 해골 괴조의 모습에, 대통령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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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랏, 신드라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