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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82화 (582/609)

00582  상승  =========================================================================

해골 거인을 본 순간 한서진은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근육이 굳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이와 착각한 것이 아니었다.

저 빛바랜 황금 왕관, 그리고 등 뒤에 휘날리는 낡은 망토. 레노지안에 잠들어 있던 아서가 틀림없었다.

아서의 유해, 그것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십 수억 년 전에 죽은 유해가, 대체 어떻게?

「박사님? 박사님?」

미 대통령이 거듭 부르는 목소리에 한서진은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많이 놀라신 모양이군요. 이해합니다. 저 역시 처음에 엄청 놀랐으니까요.」

“……언제 보고 받으신 겁니까?”

「불과 몇 분 전입니다. 보고받자마자 박사님께 바로 연락을 취한 겁니다.」

대통령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초조함이 묻어났다.

「현재 괴생명체는 태평양에서 서쪽을 향해 이동 중입니다. 지금 속도와 방향을 보면, 보름 후에는 일본에 상륙합니다.」

“일본이 목표가 아닐 겁니다.”

「……그럼요?」

한서진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허공에 둥둥 뜬 채 신비한 빛을 은은히 퍼트리고 있는 신살검. 아서가 노리는 것은 바로 저것이리라.

「우리 미합중국은 사흘 안에 일본에 거주하는 미국 시민권자들을 소개하는 작전에 이미 들어갔습니다. 원하신다면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한국 동포들 소개 작전을 거들어드릴 수 있습니다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한국 정부와 협의해서 바로 해결하겠습니다.」

잠시 대화가 끊겼다. 케인 대통령은 한국인 소개 작전을 추가로 지시하고, 다시 채널로 돌아왔다.

「현재 두 개의 항모전대가 거리를 유지하며 목표물을 감시 중입니다. 공격 준비는 이미 끝났습니다. 우리는 핵을 제외한 모든 화력을 쏟아 부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핵은 이제 사용할 수 없는 무기이니…….」

한서진은 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핵 봉인은 풀렸습니다.”

처음 대통령은 이해하지 못했다.

「예?」

“하늘의 눈동자 시스템은 지금 정지된 상태입니다. 언제 다시 재개가 가능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전 세계의 핵무기는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범죄 억제 시스템도 지금은 무력화된 상태입니다.”

대통령은 순간 빠르게 생각했다.

범죄 억제 시스템이 무력화되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공표해야 하나, 아니면 최대한 숨겨야 하나?

공표된다면 억눌려 있던 범죄자들이 자기들 세상이 되었다며 미쳐 날뛸 수 있다.

반대로 공표하지 않는다면, 우발적으로 일어난 범죄에 아무것도 모르는 피해자들이 휘말릴 위험이 있다. 다들 범죄 억제 시스템이 무력화된 것을 모르니, 당연히 방심하고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은 공표하는 게 좋겠습니다. 범죄 억제 시스템을 믿고 방심하는 사람들이 더 큰 피해에 휘말릴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서진이 결정한 이상, 미국의 행동 방침도 당연히 정해졌다.

「공격은…….」

“하지 마십시오.”

「예?」

“그리고 함대도 모두 물리십시오. 가능한 태평양에서 아예 철수하는 게 좋습니다. 일본에 주둔 중인 미군 병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시라도 좋으니 모두 철수하십시오.”

케인은 본래 부통령이었다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러나 부통령 역시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법, 그는 한서진의 말에 담긴 무게를 알아차렸다.

「그 정도로 위험합니까?」

“핵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박사님은 그걸 어떻게…….」

미국이 알려주기 전까지만 해도 해골 거인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이가 잘 알고 있는 듯이 대답하니, 조금 의아한 것이리라.

한서진은 그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대신, 빠르게 주의사항만 전달했다.

“함대는 위험합니다. 해일이라도 일으키면 전멸이지 않습니까.”

「해일이라고요?」

그건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는지, 대통령의 목소리 톤이 높이 올라갔다.

“걸어 다니는 전략병기, 아니 자연재해라고 생각하시는 게 편할 겁니다. 항모 전대로 허리케인을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

“무의미한 피해만 낳을 뿐입니다. 함대는 모두 물리세요.”

「박사님 예상으로, 저것이 어느 정도나 위험합니까? 저것을 물리치려면 어느 정도의 힘이 있어야 될까요?」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한서진은 영상 속에서 저벅저벅 수면을 헤치는 해골 거인을 주시하며, 쥐어짜내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현대 군사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러시아와 즉각 공조 관계를 구축했다. 러시아는 미국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서로 협동하여 해골 거인을 상대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역시 해골 거인의 등장을 민감한 안보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현대 군사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예, 한서진 박사가 한 말입니다. 저희 측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한서진 박사는 저것의 정체를 알고 있는 건가?”

키틴 대통령은 영상 속의 해골 거인을 노려보듯이 주시했다.

“그건 모릅니다만, 저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대강 짐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외계 생명체인가?”

미국은 고대 외계 문명이 해저에 오랜 세월 동안 잠들어 있다가 어떤 원인에 의해서 다시 깨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심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생명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러시아가 생각하기에도 전자가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핵은 어떨까?”

“한서진 박사는 핵 공격에도 부정적인 뜻을 비쳤습니다.”

“부수적인 피해 때문인가? 아니면 핵 공격 자체가 효과가 떨어질 거라는 예측인가?”

“후자입니다.”

“흠…….”

키틴 대통령은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지은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에테르 생명체.’

그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마 미국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에테르를 근원으로 하는 생명, 혹은 문명의 잔재. 한서진은 그것을 알아본 것이고, 그래서 그토록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리라.

“대책은?”

“일단 한서진 박사가 최대한 저것을 분석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 뒤에 행동방침을 결정해야 할 듯 싶습니다.”

“이주 뒤에 일본에 도착한다고? 일본에 지금 우리 러시아인들이 있나?”

“현재 소개 작전 중입니다. 이틀 안으로 철수시키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그리고…….”

그때 전술화면에 나타난 표식이 갑작스럽게 변했다. 모니터링 중이던 요원이 깜짝 놀라 외쳤다.

“각하! 괴생명체가 이동 속도를 높였습니다! 이동 방향은 여전히 동일합니다!”

“이동 속도를? 그럼 어떻게 되나?”

“이 속도대로라면 일주일 뒤에 일본에 당도합니다!”

키틴 대통령은 마른침을 삼켰다. 순식간에 일주일이라는 대비 시간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니, 이것은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만약 저것이 속도를 더 높인다면…….

‘큰일이군.’

문제는 대비 시간이 일주일로 줄었다는 게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 여기에 당황한 국가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살펴.”

“예, 각하.”

러시아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도 이미 비슷한 예측을 하고, 대비하고 있었다. 공황 상태에 빠진 일본이 미쳐 날뛸 가능성을 고려한 것이다.

해골 거인의 존재는 이미 웬만한 강대국 수뇌부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직 정보 통제를 하고 있어 언론이나 민간은 알지 못하지만, 이대로라면 일반인들까지 알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했다.

“이대로는 일주일 안에 저 괴물이 일본을 덮칩니다! 아니, 일주일도 길게 잡은 겁니다! 여기서 저 괴물이 진격 속도를 더 높이면 사나흘 안에도 도착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해골 거인이 갑작스럽게 진격 속도를 올리자 일본 정부는 패닉에 빠져 버렸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순 없습니다! 일억이 넘는 일본 국민들의 목숨이 지척에 달렸습니다! 우리는 섬나라라서 국민들의 해외 대피도 어렵단 말입니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일본 역시 정보 통제를 하고 있었다. 아직 일본 국민들은 자국에 위험이 닥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미국과 러시아가 자국 시민을 빠르게 철수시킨 것 때문에 사회 전반적으로 흉흉한 기운이 돌기는 했지만, 기껏해야 큰 지진이 온다는 정도로만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 국민감정은 지진에 익숙하다.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알리고 대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 괴물을 섬멸할 군사작전을 실행해야 합니다!”

“아직 괴물에 대한 분석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합니다.”

“일주일도 채 안 남았는데, 뭘 얼마나 더 기다린단 말입니까! 우리 일본의 목숨이 지금 경각에 달렸습니다!”

미국 앞에서 일본은 한없이 굽실거리는 입장이지만, 자기 목숨이 달린 상황에서까지 허리를 굽힐 수는 없는 법이다. 아니, 물러날 곳이 없기에 오히려 더 뻗댈 수 있었다.

미국은 그런 일본의 태도에 심기가 불편했지만, 궁지에 몰린 쥐가 악을 쓰는 거라 여기고 다독거렸다. 이 불쾌한 심사는 모든 게 끝난 뒤에 해소해도 그만이니까.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괴물입니다. 섣불리 공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단,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우리 미국은 최선을 다해 일본 국민들의 피신을 도울 것입니다.”

“퍽이나요. 일억이 넘는 국민들 중 얼마나 구할 수 있겠습니까.”

일본인답지 않은 비아냥거림에, 미국 대사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았다. 그러나 웃는 얼굴 아래 억지로 참고 눌렀다.

“이틀입니다.”

“이틀?”

“이틀만 지나도 대비 시간이 5일로 줄어듭니다. 그게 우리 일본 정부가 정한 최후의 저지선입니다. 그 이상의 인내심은 가질 수 없습니다.”

“일단 본국에 전달하겠습니다.”

일본의 인내심이 바닥까지 떨어지기 전에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았다. 교섭을 마치고 나오는 미국 대사의 발걸음은 다급함이 가득했다.

그러나 일본이 이틀 더 인내하는 일은 없었다.

「괴생명체가 진격 속도를 더 높였습니다! 이대로라면 사흘 안에 일본에 상륙합니다!」

해골 거인은 발걸음을 더 빨리했고,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일본 정부의 인내심은 결국 끊어져 버렸다.

일본은 미국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위대 행동을 결심했다. 투입 가능한 모든 전투기를 긁어모아 태평양을 향해 출격시켰다.

공대함 미사일 대신 고폭탄을 주렁주렁 매단 전투기들이 진형을 짜 맞춰 돌진했다. 자로 잰 듯 정확한 진형으로 돌진한 전투기들은 일제히 동시 폭격을 가하고 지나갔다.

수많은 폭탄이 해골 거인 위로 떨어지며 어마어마한 폭발을 만들어냈다. 흡사 전술핵이 터진 듯 엄청난 폭발이었고, 전투기 조종사들은 만족했다.

그 순간 채 그치지 않은 폭염을 뚫고, 수십 개의 빛 줄기가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빛은 이미 저만치 거리를 벌린 수십 기의 전투기를 정확히 꿰뚫었다.

「적에게 반격 당했다! 편대원 전원이 당했다! 탈출할 수 없다!」

최후에 당한 조종사의 비명이 마지막 보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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