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81 상승 =========================================================================
그 순간, 칵터스 1호는 태평양 원양에서 함대 본대를 향해 순항 중이었다.
그 순간, 항공모함 워렌트 호는 칵터스 1호로부터 동쪽으로 300km 떨어진 곳에서 기동 훈련 중이었다.
그 순간, 미합중국 케인 대통령은 순방 목적으로 방문한 일본에서 큐베 총리와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거대한 존재가 태평양 해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은 평소처럼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 마이 갓!”
항모 워렌트 호에서 발진한 정찰기는 저 멀리 기괴한 존재를 포착했다. 조종사는 비명에 가까운 경악성을 내지르며 조종간을 옆으로 틀었다.
“여기는 이글스 13, 여기는 이글스 13. 목표 지점에 도착, 괴생명체를 포착했다. 영상을 전송하겠다.”
조종사는 몸에 각인된 버릇대로 보고하면서, 저걸 과연 생명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사람……. 아니, 거인…….’
한눈에 보기에도 신장이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인다. 온몸이 뼈로 되어 있고, 살점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해부학실에 있는 인체 골격 모형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 기괴하다.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거대한 해골 거인.
그것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왕관?’
순간 조종사는 기이한 것을 발견했다. 바로 해골 거인의 머리 위에 씌워져 있는 물체였다. 더러운 이물질이 묻어 있지만, 그 아래 찬란히 빛나는 금색까지 감춰지지는 않았다.
그 순간 해골 거인이 천천히 움직였다. 두개골이 이쪽을 향해 돌아가며, 고개를 들어올린다.
조종사는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시선이 마주쳤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온몸에서 오싹 소름이 돋았다. 솜털이 일제히 곤두서며 한기가 엄습해왔다.
발가벗겨진 채 극지방에 내동댕이쳐진 듯한 느낌이다.
그저 한순간 시선이 마주친 것만으로, 의식의 뿌리까지 얼어버린 것만 같다.
“각하, 잠시…….”
큐베 총리와 회견 중, 비서실장이 급하게 달려와서 낮게 귓속말을 했다. 외교석상에서는 분명한 결례, 케인 대통령의 눈살도 조금 찌푸려졌다.
그러나 이어진 귓속말의 내용에 그런 언짢은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가지.”
케인 대통령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영문을 모르는 큐베 총리는 어리둥절해서 따라 일어섰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실례합니다. 급한 안보 문제가 발생해서, 서둘러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급한 안보 문제라고요?”
큐베 총리는 더욱 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얼마나 중대한 일이기에 양국 정상 회담 중에 갑자기 자리를 비운다는 것인가?
“그럼 이만.”
더 이상 예를 차릴 여유도 없다는 듯이, 케인 대통령은 서둘러 귀빈실을 벗어났다.
대통령 전용 방탄차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몸을 싣자마자 서둘러 출발한다. 움직이는 방탄차 안에서 대통령은 거듭 보고를 받았다.
“에어포스 원이 현재 대기 중입니다. 컨트롤 타워를 에어포스 원으로 삼아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괴생명체의 반응은 어떤가?”
“서쪽을 향해 천천히 이동 중입니다. 정찰기가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습니다.”
“공격은?”
“아직 대기 중입니다. 공격 결정에 고도의 신중성을 기해야 할 듯합니다. 함부로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대통령은 영상을 확인하고 신음을 흘렸다. 정찰기가 해골 거인의 주위를 비행하면서 끊임없이 보내는 실시간 영상이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전용 리무진 안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미군의 저력을 말해주고 있지만, 지금 그것에 감탄할 겨를이 없었다.
“해골 거인이라니……. 맙소사.”
케인 대통령은 저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다.
그만큼 지금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일이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해골 거인의 신장은 약 90미터 정도로 추정되며, 하반신이 물에 잠긴 채로 이동 중입니다.”
“헤엄을 친다는 뜻인가?”
“헤엄을 치는 것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하반신이 물에 잠긴 채 걷고 있습니다.”
“신장이 90미터 정도면 발을 디딜 데가 없을 텐데…….”
“네, 그렇습니다. 그 정도 신장으로 태평양 해저에 발을 디딜 수는 없죠. 수면에 반쯤 걸친 채 걷고 있다고 보시는 게 맞을 듯합니다.”
“이동 방향은?”
“지금 이 방향과 속도대로라면 약 보름 뒤에 일본에 상륙합니다.”
“일본, 보름이라.”
대통령은 턱을 쓰다듬으며 화면을 계속 살폈다.
“저 해골 거인도 온몸, 아니 전체 뼈가 오리할콘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그럴지도 모릅니다.”
대통령과 참모진은 수십 년 전 미국이 획득한 아카식 블레이드, 그리고 최근에 획득한 짐승의 오리할콘 두개골을 떠올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해골 거인은 그것들과 절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외계 문명?’
아카식 블레이드는 한때 외계 문물이 남긴 것이라는 추정을 받았다. 짐승의 것으로 보이는 오리할콘 두개골 역시 마찬가지.
혹시 저 해골 거인은…….
“일단 언제든지 타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아직은 적대 의사가 없어 보이지만 어떻게 될지 몰라.”
무엇보다 해골 거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가늠할 만한 데이터가 없다.
‘오리할콘이 지구상의 어떤 금속보다 단단하다고 했던가? 그리고 만약 저 해골 거인도 오리할콘으로 되어 있다면…….’
대통령은 영상 속에서, 물에 반쯤 잠긴 채 저벅저벅 파도를 헤치며 걷는 거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핫라인을 통해 한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신호만 갈 뿐,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차례 시도 끝에 대통령은 일단 통화를 포기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미국이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보름 뒤에 일본에 당도한다고?”
“예, 지금 이동하는 방향과 속도를 보면 그렇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해골 거인이 속도를 더 올리면 더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맞습니다.”
“저기서 더 속도를 낼 수 있는지 아닌지는 우리가 현재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죠.”
심해에 숨어 살던 괴생명체든, 아니면 오래 전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이 긴 동명 끝에 깨어난 것이든, 그런 것은 아무 상관없었다.
미국은 이런 상황까지 대비한 국가 대응 매뉴얼이 세세하게 준비되어 있는 나라였다.
“일본에 있는 모든 미국 시민권자들을 소개하게. 앞으로 5일을 주겠네.”
“사흘 안에 끝낼 수 있을 겁니다.”
신살검을 쥔 스칼린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조금씩 희미해져간다. 눈부신 광채를 온몸으로 맞으며, 한서진은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전신의 운동신경이 한순간 마비된 것만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의식을 통해 전해져 온다.
‘안녕, 리온, 잠시나마 행복했어요.’
‘안녕, 타르온. 리온을 잘 부탁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빛이 마침내 멎었다.
마비가 풀리자 한서진은 재빨리 그녀를 향해 뛰어갔다. 그녀는 의식을 잃은 채 몸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얼른 그녀를 안아서 머리가 부딪치는 것을 막았다.
“스칼린! 스칼린!”
그는 그녀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스칼린이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다는 것을.
조금 전 겪은, 의식의 끝없는 추락. 그 경험을 통해 모든 것을 봤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그녀를 움직이던 것은, 십 수 억 년 전 미처 소멸하지 못한 스칼린의 잔재. 그것은 윤회의 굴레를 허락받은 영혼이 아닌, 스칼린이 일생동안 형성한 자아의 그림자이자 흔적이었던 것이다.
이미 벌써 사라지고 없어져야 했을 인격의 찌꺼기.
그것이 혼의 발목을 붙잡고 윤회의 굴레까지 기어이 따라온 것 자체가, 이미 존재할 수 없는 기적이었다.
“……왜?”
한서진은 조금 넋이 나간 표정으로, 의식이 없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다시 스칼린이 깨어나서 장난이었다고 짓궂게 웃을 것만 같았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웅웅거리는 나지막한 공명임이 들렸다.
한서진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황금색 거대 메인보드에서 빠져나온 신살검이 허공에 떠서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연한 휘광에 감싸인 금속체가 푸르스름한 빛을 발한다. 그저 빠져버릴 듯이 신비한 광경이다.
한서진은 ‘신효진’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일어서서 손을 뻗어, 신살검을 쥐려고 했다.
쿠우웅!
공명음이 순간적으로 날카로워지며, 반투명한 빛이 검의 주변을 덮었다. 명백한 거절 의사였다.
검은 한서진의 손길을 원하지 않았다. 거칠게 경계하는 반응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느껴졌다.
그때 진동음이 느껴졌다. 스마트폰을 확인한 한서진은 부재중 전화가 수백 통이 넘게 쌓인 것을 확인했다.
미국 대통령, 러시아 대통령, 영국 수상, 독일 총리, 한국 대통령 등등 국가 정상들로부터 걸려온 부재중 핫라인 콜이 수없이 쌓여 있었다.
지금 전화를 걸고 있는 상대는 바로 정지원이었다.
“네, 정 사장님.”
「지금 미국 대통령을 포함해서 여러 정상들이 네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난리다. 나한테까지 연락이 와서 제발 어떻게 연결 좀 해달라고 야단법석이야.」
“무슨 일인가요?”
「설마 모르고 있었어? 너라면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구에서 네 눈을 피할 수 있는 건 없잖아?」
한서진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신살검을 살폈다. 그리고 시스템 상태를 확인했다.
예상대로 타르타로스 3는 기능을 완전히 정지한 상태였다. CPU 역할을 하던 신살검이 강제로 분리되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타르타로스 3가 고장 났습니다.”
「허…….」
“무슨 일인데요? 해저에서 튀어나온 외계인이 침략이라도 시도했답니까?”
「뭐야, 알고 있었어?」
“네? 뭐라고요?”
그냥 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 정지원이 대수롭지 않게 반응하자 오히려 한서진이 더 놀랐다.
「미 대통령한테 연락해 봐. 아마 신호음 한 번 울리면 바로 받을 거다.」
“알겠습니다.”
마음이 급해진 한서진은 의식이 없는 신효진을 얼른 안아다가 간이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지원의 말대로 그는 신호음이 한 번 울리자마자 바로 받았다.
「박사님,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됩니까.」
“미안합니다. 연구실에 문제가 생겨서요.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인가요?”
「설마 아직 모르시는 겁니까?」
“타르타로스 3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전 지금 눈과 귀가 막혔어요.”
「……바로 채널 연결하겠습니다. 직접 보시면서 듣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곧이어 그의 계정으로 접속 요청 콜이 들어왔다. 연결을 승인하자 곧 에어포스 원의 보고 채널과 동기화가 이뤄졌다. 미 대통령이 받아보는 실시간 보고 내용을 그도 동시에 열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찰기가 찍고 있는 원거리 영상을 확인한 한서진은 아찔한 충격을 받고, 그대로 중심을 잃을 뻔했다. 그는 가까스로 다리를 붙들었다.
해수면에 반쯤 잠긴 채 저벅저벅 걷고 있는 거대한 해골 거인. 그의 두개골에서 찬란히 빛나는 황금 왕관. 그 놀라운 광경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