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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74화 (57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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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에 일어났던 에테르 반응은 완전히 소멸했다. 한서진은 거듭 그것을 확인한 뒤에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과 두 번째 에테르 스톰은 신효진이 무사히 제압한 덕에 피해가 없었지만, 세 번째 에테르 스톰을 소멸시키는 것은 다소 늦었던 것이다.

소멸 자체는 무리 없이 이뤄졌지만, 충격파가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 탓에 일부 재산 피해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다행스럽게도 사망자나 중상자는 없었지만.

그러나 피해 정도는 조금도 이슈화되지 못했다.

―엄청난 거인이었어요! 여자 같았어요! 그 거인 여자가 빛 덩어리를 움켜쥐니까 거짓말처럼 폭풍이 사그라졌어요!

―꼭 빛과 구름을 반씩 섞은 것처럼 생겼는데…… 사람은 아니겠죠? 뭔가 허상이겠죠?

―구름이나 안개가 이상하게 뭉쳐서 우리가 그런 착각을 하는 게 아닐까요?

투명한 여자 거인을 목격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정교하게 촬영된 동영상도 인터넷에 다수 흘렀다.

투명한 빛의 거인 괴담은 마이애미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명한 거인이 에테르 스톰을 제압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한서진도 그 음모론에서 피해갈 수 없었다.

―한서진 박사가 새로 만든 비밀병기 같은 게 아닐까? 에테르 스톰을 제압하려고 한서진 박사가 짠, 하고 보낸 거지.

―거인이 아니라 이족보행 거대 로봇일 수도 있어. 아직 투명 스텔스 기능이 완벽하지 않아서 투명한 빛의 거인처럼 보인 거지.

―오, 그거 그럴 듯한데. 나도 이 의견에 한 표.

―스텔스 기능이 불완전해서라기보다는 에테르 스톰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파워 출력이 불안정해져서 일시적으로 스텔스 기능이 흔들린 것은 아닐까 싶어.

―캬, 이족보행 거대 로봇까지. 진짜 한서진 박사는 못하는 게 없구나.

―한서진 박사님의 100번째 첩이라도 되고 싶은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진짜 진지하게 물어봅니다. 저 예뻐요…….

에테르 스톰을 제압한, 투명한 거인의 형체를 한 빛무리.

많은 사람들이 그것의 정체를 궁금하게 여겼고, 끊임없이 논란과 이슈가 재생성되었다.

SJ인더스트리와 H컨설턴트에도 온갖 문의가 빗발쳤다. 정말 한서진이 투명 스텔스 기능을 갖춘 이족보행 거대 로봇을 만들었느냐는 질문이 거의 주를 이뤘다.

‘SJ그룹’에서는 그런 질문에 알지 못하는 사항이라며 일관된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한서진이 혼자 구축한 로봇 기술이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 자기들끼리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백악관 역시 불이 난 듯한 분위기였다.

“정말 한서진 박사가 투명 스텔스 기능이 장착된 이종보행 로봇을 만들었단 말이오?”

“아마도 그렇다고 추정됩니다. 이 영상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안개나 구름 따위가 뭉친 게 아닙니다. 스텔스 기능을 켠 거대 로봇이라고 봐야 합니다. 결정적으로 에테르 스톰을 제압한 것도 바로 이 로봇입니다.”

“여러 각도에서 촬영된 동영상이 수백 개가 넘습니다. 심지어 수상 경찰과 미군에서 촬영한 영상까지 있습니다. 영상 자체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한서진 박사한테 이족보행 로봇 개발은 오히려 쉬운 작업일 겁니다. 그분이 지금까지 이룩한 것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케인 대통령은 극비라 찍힌 보고서 내용을 읽으며, 흐르는 신음을 참지 못했다.

“과연 그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마누라 소환.

한서진은 결국 그 카드를 빼들기로 했다. 도저히 이 상황을 돌파할 만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효진이 너무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니까.

자초지종을 듣고 온 송하나는 담요를 덮고 기절하듯이 자고 있는 신효진을 보고 이마를 짚었다. 한서진이 옆에서 조금 무안한 듯이 말했다.

“금방 일어날 줄 알았는데 벌써 한 시간째 저러고 있네.”

사실 한 시간보다 조금 더 길지만, 부부 사이에 선의의 거짓말은 필요한 법이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아까 말한 대로야. 마이애미에서 에테르 스톰에 휘말릴 것 같아서 내가 급히 구해왔어. 그 후유증으로 저래.”

“어디 크게 다친 건 아니죠?”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좀 많이 놀란 것 같아. 과로도 좀 쌓인 것 같고.”

“과로가 쌓일 정도로 쇼핑을 즐겼나 보네요.”

송하나는 여자 가정부 직원들을 불러서 신효진의 옷을 벗기고, 몸을 닦아주고, 가운으로 갈아입혔다. 그리고 얼마 전 입주한 평성 대저택으로 데려왔다. 그 모든 과정은 송하나의 감독 하에 이뤄졌기에, 직원들은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한서진이 지시했다면 사용인들 사이에서 묘한 소문이 돌았을 것이다. 그가 신효진과 불륜 관계라는 의심이 생겨날 수도 있었다.

“휴, 이제 됐네요.”

신효진을 손님방에 눕히고서야 송하나는 한숨을 돌렸다.

“오빠는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효진 씨 깨어나는 거 기다리려고. 물어볼 게 있거든.”

“뭔데요?”

“……에테르 스톰 때문에. 요즘 이상하게 에테르 스톰이 자주 일어나. 효진 씨는 비교적 가까이에서 그걸 겪은 목격자니까 증언을 들으면 도움이 될 거야.”

한서진은 일단 그렇게 둘러댔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적합한 핑계였다.

송하나는 잠시 말없이 바라보다가 알겠다는 듯이 끄덕였다.

“알았어요. 효진 씨 깨어나면 연락 줄게요.”

“으, 응?”

“그럼 의식 없는 외간 여자 옆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을 생각이었어요? 나가 보세요. 제가 보고 있을 테니까.”

“……그런 생각 없었거든? 알았어, 나가 있을게.”

한서진은 괜히 찔려서 연구실로 돌아왔다. 이상한 생각 따위 품은 적 없건만, 왜 이렇게 무안해지는 건지.

그는 신효진이 깨어날 때까지 하던 작업, 타르타로스 3가 수집한 데이터 분석을 마저 하기로 했다.

‘에테르 반응은 거의 정상인데.’

지구 전체를 감싼 에테르 수치는 양호하다. 특별히 걱정할 필요 없이 안정되어 있다.

그러나 수치가 정상인데 이상 현상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데이터와 한참 동안 씨름하고 있을 때, 송하나로부터 톡 메시지가 왔다.

「효진 씨 깨어났어요.」

한서진은 분석 작업을 오토로 돌리고 얼른 일어섰다.

손님방에 들어서자 상체를 일으켜 세운 신효진이 힘없이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넋이 나간 듯 보이는 눈동자가 칙칙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효진 씨?”

송하나가 걱정스럽게 몇 번 부르자, 그녀의 눈동자에 비로소 조금씩 선명함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신효진은 송하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타르……온?”

“네?”

송하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갸우뚱거렸고, 한서진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듯했다.

“하나야, 잠시만 나가 있을래? 내가 효진 씨랑 중요한 이야기할 게 있어.”

“무슨 이야기인데요? 저 있는 데서 하면 안 돼요?”

“잠깐이면 돼.”

한서진이 진지하게 부탁하자 송하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리온? 옷이 왜…… 아, 박사님…….”

멍하니 중얼거리던 신효진이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드디어 초점이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어떻게 된 거죠?”

“…….”

“방금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이에요? 혹시…….”

“……꿈을 꾸었어요.”

그녀가 힘없이 내뱉은 고백에 한서진은 가슴 한구석이 아득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언제부터입니까?”

“……조금 됐어요.”

머뭇거리는 음성에는 미안한 감정이 묻어났다. 한서진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주시했다.

‘효진 씨가 다시 꿈을 꾸다니…….’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그리고 그녀가 숨길 줄은 몰랐다.

물론 그녀를 탓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탓할 일도 아니었고, 자신에게 그럴 자격도 없었다.

그저 그녀가 조금 전 보인 기이한 반응이 염려되었을 뿐이다.

“제가 처음 꿈을 꾸었던 그때와 똑같이 시작했어요. 리온…… 아니, 아서 왕을 만나기 전부터였어요.”

“……그랬군요.”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았어요. 예전과 똑같았어요. 그런데 스칼린 왕비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꿈속의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어요.”

“길어지기 시작했다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전 지금 꿈에서 4개월을 보내고 깼어요. 이곳에서는 겨우 하루도 안 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

한서진은 입을 다물었다.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한 중압감이 느껴지고 있었다.

신효진은 힘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전 그곳에서 제가 신효진이라는 사실을 아예 떠올리지 못했어요.”

“……!”

“처음부터 제가 오로지 스칼린이었던 것처럼, 신효진으로서의 모든 기억을 잊고 살았어요.”

불길한 기시감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무엇인지 마치 알겠다는 듯, 신효진이 억지로 웃음을 만들었다.

“그래요, 리미트리스 드림에 걸린 아서 왕처럼.”

“……효진 씨.”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과 똑같이, 비슷하게 흘러갔죠.”

그녀의 목소리가 처연한 빛을 띠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틀어지기 시작했어요. 그곳에서 이틀을 보냈는데, 이곳에서는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죠. 그게 사흘, 나흘, 닷새……그렇게 계속 길어졌어요. 지금은 몇 개월이 됐네요.”

“…….”

“언제부터인가 제가 신효진이라는 것을 잊어버렸어요. 지구에서의 모든 게 생각나지 않았죠. 잠이 들면 저는 제가 신효진이라는 자각 자체를 잃어버려요. 레노지안의 왕비, 스칼린이 되고 말죠.”

한서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넋두리는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저 혼자 꾸는 꿈인 줄 알았어요. 사실 BII에 접속한 이후부터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거든요. 가상현실을 체험한 감각이 제 꿈을 다시 일깨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네요.”

“효진 씨.”

“근데요, 박사님. 제 솔직한 마음이 어떤지 아세요?”

그녀는 한서진을 똑바로 마주쳤다. 그의 시선을 조금도 피하지 않는다.

“차라리 영원히 그곳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효진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지워버리고.”

“…….”

“그곳에서 저는 너무 행복하거든요. 물론 지금의 삶도 충분히 풍족하지만, 스칼린 왕비로서의 삶과는 비교가 안 돼요. 잠이 들 때마다 제가 누군지 잊어버린다는 게 무섭지만, 한편으로는 잠에서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어요.”

“효진 씨.”

“저 미친 게 맞겠죠? 바보같이 달콤한 꿈에 눈이 멀어버린 거죠?”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에서 구체화된다.

한서진은 문득 생각했다. 최근 들어 유난히 잦았던 에테르 스톰, 그것들은 모두 신효진이 머무르는 근처에서 형성되었다는 공통점을 띠고 있었다.

그전에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지만, 지금 그녀의 말을 들으니 무시할 수 없는 촉이 발동한다.

‘리미트리스 드림의 효과가…… 효진 씨에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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