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71 미싱 링크 =========================================================================
신효진이 침실에서 나왔다.
드레스룸에서 대기 중이던 미쉘과 메이드 둘이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말이 드레스룸이지, 그 넓이가 웬만한 호텔 로비에 버금간다.
미쉘이 이미 선별해놓은 옷들이 하나하나 지나간다. 물끄러미 바라보던 신효진은 아무거나 선택했고, 그녀가 고른 것 외의 다른 것들은 옷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옷을 입은 뒤에는 메이크업을 시작한다.
거울 앞에 앉자 전속 스타일리스트가 메이크업 도구를 들고 다가와서 치장을 시작했다. 치장은 30분을 조금 넘기고 끝났다. 신효진이 메이크업에 오래 시간을 뺏기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준비가 끝나자 신효진은 외출했다. 현관문 밖에는 검은 세단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쥬얼리나 보러 가죠.”
신효진은 ‘4개월’ 전에 메모해둔 대로 말했다. 미쉘이 알겠다는 듯이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특별히 원하시는 카테고리가 있나요?”
“그냥 보석이면 아무거나 다 돼요. 금괴도 상관없어요.”
금괴는 쥬얼리가 아니지만, 미쉘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그녀는 알고 있다. 신효진은 그저 무료한 일상을 때우기 위해 쇼핑을 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자신이 무엇을 샀는지, 무엇을 갖고 싶어하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그녀가 구입한 명품들은 잊혀진 전리품처럼 별장 드레스룸에 쌓일 뿐이다.
차는 어느 명품샵에 도착했다.
신효진이 들어서자 직원들의 눈빛이 바짝 긴장한다. 화려한 외모와 고급스러운 맵시, 그리고 뒤에 거느린 수행원들. 한눈에 그녀가 최상류층임을 알아본 것이다.
“이 제품은 사파이어를 가공하여 순금으로 문양을 새겨 넣은 것으로…….”
매니저가 열심히 설명을 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신효진은 무심한 눈으로 목걸이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화려하고 고급스럽기 그지없는 자태지만, 그녀에게는 죽은 광물로만 느껴졌다.
‘마력을 품게 만들면 더 좋을 텐데.’
신효진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레노지안의 귀부인들이 착용하는 귀금속은 하나같이 마력을 품게 하여 만들어졌다.
보석에 깃든 마력은 은은한 빛을 내뿜어 그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하고, 때로는 착용자의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기능을 품기도 한다.
그런 것들에 비하면, 이 샵에 있는 것들은 귀금속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웠다.
“마음에 드시는 게 없나 봐요?”
미쉘이 조곤조곤하게 물었다.
신효진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현실의 인물이 아닌, 꿈속에서 처음 만난 인물처럼 낯선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내가 진짜 이상해졌나 봐…….’
현실에서 하루를 보내면, 꿈속에서는 몇 개월을 보낸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이곳 현실이 스치는 꿈처럼 느껴진다.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현실은 현실이었고, 꿈은 현실처럼 생생한 꿈이었다. 꿈에 좀 더 애정이 쏠리긴 했지만, 그래도 완벽하게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힘들다.
‘이틀 전’에 갓 낳은 왕자가 너무 보고 싶었다. 눈도 뜨지 못한 채 젖을 빨던 그 사랑스러운 모습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었다.
‘어서 빨리 꿈에서 깨야 할 텐데…….’
신효진은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다가, 스스로에게 조금 놀랐다. 하지만 잠시 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조소를 머금었다.
‘깨긴 뭘 깨. 여기가 현실이고, 거기가 꿈이잖아. 신효진, 정신 차려.’
깨어 있는 동안, 그녀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다그치곤 했다. 하지만 그것은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어놓기 위한 채찍질이었다.
그녀가 진정으로 레노지안을 꿈으로만 여겼다면, 오히려 그런 채찍질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
문득 고요한 분위기를 느낀 그녀는 주변을 둘러봤다.
매장은 어느새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해진 채,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었다.
매니저는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눈빛에는 다소의 불안감이 흘렀다. 좀처럼 보기 힘든 최상류층 고객이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않고 있으니 분위기가 경직된 것이다.
“이거 줘요.”
“네, 감사합니다.”
그제야 안도한 매니저가 정중히 목례하며, 목걸이를 소중한 듯이 받쳐 들어서 포장을 준비했다.
신효진은 다른 장신구로 눈길을 돌렸다. 푸른 다이아몬드가 세공된 반지였다. 그녀가 시선을 주자 다른 직원이 얼른 반지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그녀는 반지를 손가락에 껴보았다. 딱 알맞은 사이즈가 기분 좋은 착용감을 준다.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발산하는 푸르스름한 빛이 그녀의 시선을 빨아들였다. 홀린 듯이 바라보던 그녀는 투명한 빛의 안개가 자신을 감싸 안는 것을 느꼈다.
그 황홀한 감촉이 기분 좋아, 그녀는 잠에 취하듯이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때 꺅 하는 나지막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기분 좋은 희열을 방해당한 그녀는 안색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순간 그녀는 볼 수 있었다.
반지의 다이아몬드에서 흘러나오는 빛의 안개가 주변에 넘실거리는 것을. 조금 전에 느낀 것은 그녀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머, 저 반지에 저런 게 있었어?”
“말도 안 돼. 너무 예뻐.”
“어떻게 반지에서 저런 빛이…….”
신효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도 모르게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그래서 다이아몬드가 일시적으로 마력석의 성질을 띠었고, 그것이 이와 같은 효과로 나타난 것이다.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그녀는 얼른 말했다.
“참 신기한 다이아몬드네요. 이것도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여직원은 저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저 반지에 저런 신비한 현상이 있는 줄은 그도 몰랐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상하다고 판단을 해야 옳겠지만, 그런 의심을 품기에 매장 안의 모든 이들은 반지가 뿜는 신비로운 기운에 취해 있었다.
신효진이 반지를 여직원에게 내미는 순간이었다.
“……!”
먼 곳에서, 기이한 울림이 그녀의 감각을 뒤흔들었다.
흠칫 놀란 그녀는 재빨리 등을 돌리고, 방금 울림이 느껴진 저 먼 곳을 노려보았다.
갑작스럽게 그녀의 기세가 변하자 미쉘은 물론이고 매장의 다른 직원들도 놀라서 긴장했다.
“왜 그러시나요?”
미쉘이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신효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 것처럼 먼 하늘을 노려볼 뿐이었다.
‘달라…….’
미쉘은 저도 모르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명확히 말할 순 없지만, 지금 신효진의 모습은 뭔가 달랐다. 평소 자신이 알던 그녀가 아니었다.
눈빛과 기세, 태도, 심지어 호흡까지.
마치 신효진과 겉모습만 똑같은, 전혀 다른 사람이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다.
삑! 삑! 삑! 삑!
그때 곳곳에서 요란한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하나같이 똑같은, 특별재난경보음이었다.
직원들은 재난경보를 확인하고 새파랗게 질렸다.
“에테르 스톰이에요!”
“하필 이 근처예요! 다들 피하셔야 해요!”
에테르 스톰, 이제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쓰나미 이상으로 널리 알려진 자연재해였다. 대기 중의 에테르가 과도하게 응집하여 태풍, 해일, 나아가 산불이나 폭발까지 일으키는 재해.
“어서 이쪽으로!”
매니저가 급히 피난을 위한 통제에 나섰고, 미쉘도 신효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니, 잡아끌려고 했다. 그러나 마치 단단한 돌처럼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스 신! 어서 피하셔야 해요!”
신효진은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 모습은 자신의 팔에 매달리다시피 한 미쉘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질질 끌려가던 미쉘은 결국 신효진을 놓치고 말았다. 여자, 아니 사람이라기에 믿어지지 않는 무시무시한 힘이었다.
“미스 신!”
미쉘은 애타게 그녀를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매장 밖을 나섰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경호원들이 서둘러 그녀를 따라 나섰다.
그러나 경호원들이 그녀를 미처 붙들기도 전에, 그녀는 잠시 몸을 숙였다가 튕겨지듯이 뛰쳐나갔다.
그 광경은 마치 캐터펄트에서 사출되는 초음속 전투기를 보는 듯했다. 굉장한 충격파가 주변을 뒤흔들었고, 경호원들은 휘청거리다가 넘어질 뻔했다.
미쉘은 어이가 없는 눈으로 멍하니 바라봤다.
“이게, 어떻게 된…….”
신효진은 질주했다.
시속 수백km가 넘어가는 속도는 너무 빨라서, 사람들은 그녀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무언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주했다는 것만 알아차렸을 뿐이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저 먼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풍경, 허공에 피어나고 있는 한 톨 파괴의 씨앗.
그 힘의 근원만을 눈으로 쫓으며, 있는 힘껏 달렸다.
마침내 거리가 완전히 좁혀졌을 때, 그녀는 지금까지 달려온 가속도를 박차고 있는 힘껏 뛰어올랐다.
무려 수백 미터 넘게 솟구친 그녀는 파괴의 씨앗이 막 싹트려고 하는 허공을 그대로 움켜쥔 채, 그대로 마이애미의 푸른 해변으로 포물선을 그리듯 떨어졌다.
그녀가 물에 떨어지는 순간 굉장한 물보라가 높이 솟구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물에 한 차례 가라앉았다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그녀는 오른손에 움켜쥔 파괴의 씨앗을 내려다봤다.
그것은 물질이 아니었다. 바로 에테르가 빛의 형상을 띨 정도로 과도하게 뭉친 것이었다.
본래라면 물질의 형상을 띤 것은 그것과 접촉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온몸에 흐르는 마력을 이용하여, 원래 잡을 수 없는 그것을 잡아낸 것이다.
“이건…… 에테르 스톰?”
과도하게 뭉친 에테르 에너지. 틀림없다.
아직은 씨앗 단계지만, 만약 조금만 더 이대로 놔뒀으면 무차별로 에테르 에너지를 흡수하여 크기를 불렸을 것이고, 종래에는 돌이킬 수 없는 자연재해를 야기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곳 전체가 북한처럼 에테르 스톰에 의해 통째로 증발했을지도 모른다.
그 무시무시한 파괴의 가능성이, 그녀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마력을 다룰 줄 알기에 누구보다 그 강력한 가능성을 똑바로 인식할 수 있었다.
그녀는 에테르 스톰의 씨앗을 오른손에 쥔 채, 지그시 힘을 주었다. 온몸의 마력을 끌어올려 씨앗으로 주입했다. 이 자리에서 바로 소멸시켜 버릴 생각이었다.
그녀는 정교하게 통제한 마력을 에테르 스톰의 안에 강제로 밀어 넣었다. 씨앗을 형성한 에테르 에너지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며 붕괴를 일으켰다.
이대로 조금만 더 마력을 주입하면 에테르 스톰은 흔적도 없이 소멸할 것이다.
정신을 집중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살려 줘!
―도와 줘! 제발! 죽고 싶지 않아!
―왕이시여! 제발, 저희를!
머릿속을 울리는 고통스러운 단말마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멈췄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뜨거운 열이 머리를 뒤덮었다.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이익!”
그녀는 이를 악물고, 더욱 거칠게 마력을 불어넣었다. 무차별로 쏟아져 들어오는 마력을 이기지 못한 에테르 스톰은 결국 최초의 형체를 유지하지 못한 채, 그대로 소멸하고 말았다.
그녀는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억지로 맥박을 다스렸다.
조금 전 들었던 환청이 무엇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설마…….’
받아들이기 힘든 상상이 머릿속을 스칠 무렵, 그녀는 또다시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이곳에서 수십km 떨어진 먼 곳, 그리고 반응은 두 개였다.
그녀는 기운이 느껴진 곳을 번갈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또 에테르 스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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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하나를 자르면 두 개가 자라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