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569화 (569/609)

00569  미싱 링크  =========================================================================

스칼린은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초룡이 별안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것도 놀라운데, 그게 자신이 알던 사람의 모습이라니.

그녀, 아니 타르온의 모습은 송하나와 영락없이 똑같았다. 누가 봐도 다른 사람이라고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눈빛, 얼굴, 머리카락색, 그리고 무뚝뚝한 표정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까지. 스칼린은 저도 모르게 뺨을 꼬집을 뻔했다.

“초룡의 후예가 그대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대가 진상한 이름이 제법 마음에 드는구나.”

타르온은 스칼린이 익히 알고 있는 목소리, 그리고 당당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어딜 뜯어봐도 송하나였다. 다른 것은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뿐이었다.

스칼린은 충격에 빠져,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말도 안 돼!’

크리스 사장의 주도 하에, SJ게이트는 차곡차곡 국가 간 웜홀 설치를 해나갔다.

러시아와 미국, 미국과 영국 간 웜홀 설치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여기에 미국과 한국이 웜홀로 연결되어 있어, 4국은 웜홀을 통해 시간을 절약한 왕래를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호주 또한 여기에 가세했다. 미국과 연결되는 웜홀을 설치하여, 드디어 비행기나 선박 외의 수단으로도 타국과 왕래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동유럽과 중동 지역, 아프리카와 인도도 미국의 웜홀 허브지대에 각각 웜홀을 두게 되었다.

SJ게이트는 타국끼리 서로 직접 연결되는 웜홀은 절대 설치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영국이 러시아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미국의 허브지대로 이동한 후, 다시 러시아와 연결된 웜홀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웜홀이 다방향성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웜홀 관리를 타국에 맡길 수 없기 때문에 취한 정책이었다.

동유럽, 서유럽, 호주, 러시아, 중동지역, 아프리카, 남미, 캐나다, 미국, 그리고 한국.

지리적으로 큰 의미를 띤 지역들이 마침내 웜홀을 통해 하나로 묶이게 된 것이다.

“인류는 자동차, 기차, 비행기를 발명하면서 물리적 거리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와 비교도 되지 않는 변혁을 맞이했습니다. 앞으로 웜홀은 인류의 이동 그 자치를 상징하는 바이블이 될 것입니다.”

크리스는 야심찬 선언을 발표했고, 미국 내에서 그가 지닌 입지는 한층 더 껑충 뛰었다. 특히 네바다에서 그가 지닌 인기는 끝을 모르고 폭주했다.

네바다 웜홀 허브지대는 미국이 세계에서 지니는 중심 상징성을 한층 공고히 만들었고, 그것은 오롯이 크리스의 공적이었다.

허브지대는 공항 출입소보다 더욱 철저한 보안 감시를 받고 있었다. 네바다의 사막지대로 입지를 정한 이유도 바로 안전 문제 때문이다.

만약 테러리스트가 웜홀을 통해서 핵 테러나 생화학 테러를 가한다면, 그 결과가 참혹하기 때문이다.

시리아 사건으로 전 세계 테러리스트들은 사실상 소멸했으나, 앞으로 더 생겨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미래를 대비한다면 보안 관리는 언제나 철저히 해야 한다.

그랬는데…… 문제가 생겼다.

“핵 테러 조짐이 발견되었단 말입니까?”

페이 차일드가 한 말에 한서진은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반문했다. 그는 면목이 없다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테러리스트는 이제 존재하지 않을 텐데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낙후지역의 많은 아이들이 테러리스트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지구 지역 간 갈등은 이전에 비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일시적으로 테러범들을 소멸시켰다 하나, 빈 웅덩이에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물이 고이는 법입니다.”

시리아 사건은 현존하는 테러범들의 인격을 개조해서, 더 이상 테러를 수행할 수 없는 사람으로 바꿔놓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성장하고, 그 중에는 테러범의 길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한서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하늘의 눈동자가 전 세계 핵물질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이 아닌, 파괴 목적으로 이뤄지는 급격한 핵분열 반응은 일어날 수 없어요. 핵배낭이 반입되었어도 그리 큰 피해는 없을 겁니다.”

하늘의 눈동자는 전 세계의 모든 핵물질을 감시하여, 무기로서 활용될 수 있는 급격한 핵분열 반응을 통제한다.

핵배낭을 터트려봤자 연료봉이 발산하는 수준의 열과 국소적인 방사능 누출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미국 내에서도 극소수의 인물들뿐이다. 당장 러시아 등의 핵보유국도 자신들의 핵무기가 이미 무용지물이 된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인구가 밀집된 도심 지역에서는 그 정도만으로도 상당한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핵탄두가 반입되었다면 생화학 병기 역시 추가로 반입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희는 박사님께서 핵 반입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실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물론 마음을 먹는다면 감시를 할 순 있습니다만, 스캐너를 항상 켜두는 게 아니라서요. 미국 내에서 오가는 첩보 보고를 제가 모두 수집하기를 바라시나요?”

페이 차일드는 대답하기 난감했다. 그래서 그는 말을 돌렸다.

“아무튼 지금 본국은 그거 때문에 초비상이 걸렸습니다. 한 번 확인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죠.”

한서진은 곧장 타르타로스 3에 접속하여 에테르 스캐닝 검색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본국은 분석 결과 허브지대 보안망이 뚫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허브지대?”

한서진은 잠시 멈칫해서 돌아봤다. 아직 타르타로스 3에 명령을 입력하기 전이었다.

“그 말씀은, 테러 용의자가 웜홀을 통해 핵배낭을 운반했다는 의미입니까?”

“네, 현재 의심하고 있는 용의자는 저희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날에서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중동에 있었습니다. 웜홀이 아니고서는 그 시간 안에 그 거리를 돌파할 수가 없죠. 하지만 그는 웜홀 출입 관리 명단에 없었습니다.”

“웜홀을 이용한 운반은 아닙니다.”

한서진은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잘라 말했다. 페이 차일드는 그가 왜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지 궁금했다.

“웜홀을 통과할 때 핵물질과 치명적인 생화학 물질, 세균과 바이러스는 모두 사멸합니다. 사람이 핵물질을 직접 삼켜서 운반하는 게 아니고서는 웜홀을 통과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제가 웜홀에 걸어놓은 안전장치입니다. 미리 말씀을 안 드렸었군요.”

페이 차일드의 표정이 변했다.

한서진의 말대로라면, 웜홀을 이용한 핵 운반은 처음부터 틀린 가정이라는 뜻이 된다.

“일단 제가 찾아보죠.”

한서진은 타르타로스 3를 조정하면서 생각했다.

용의자는 아마 그게 핵인지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주저 없이 핵을 터트릴 정도의 심성이라면, 이미 시리아 사건 때 강제로 인격을 개조 당했을 테니까.

‘아니면 그 이후 테러범이 된 인물이던가.’

그렇다면 용의자의 나이는 어려야 하는데, 페이 차일드가 보여준 사진은 적어도 20대 후반의 인물이었다.

타르타로스 3는 미국 전역에 에테르 파동을 퍼트리며, 모든 핵물질의 위치를 더듬어 나갔다.

핵보유국이 무기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 핵물질, 원자력 발전소의 핵 연료봉, 핵 폐기장에 매립된 폐기물…….

미국에 존재하는 모든 핵물질이 남김없이 타르타로스 3의 스캔 범위에 잡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타르타로스 3는 각각의 핵물질들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까지 체계적으로 감시했다.

몇 초도 되지 않아 모든 작업이 끝났고, 한서진은 페이 차일드를 돌아봤다.

“정말 미국 본토에 핵배낭이 반입된 게 맞습니까?”

“CIA가 확인했습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미국 본토 내에서 미 정부의 관리와 감시를 벗어난, 즉 비인가 핵물질은 전혀 감지되지 않아서요.”

“…….”

페이 차일드의 안색이 굳어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한서진이 한 말이다.

“확실한 사실입니까?”

“100%입니다. 자, 여기.”

한서진은 USB에 스캔한 핵물질의 위치를 정리해서 담은 뒤 페이 차일드에게 건넸다.

“제가 조사한 핵물질 위치입니다. 미국 본토와 미국 영해, 그리고 미국령까지 모두 포함시킨 결과입니다. 본국에 제출해서 비교해 보시죠.”

“실례하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페이 차일드는 USB를 받아들고 급히 돌아갔다.

뭔가 어긋난 조각이 있었다. 그것도 하필 핵에 관련된 조각, 서둘러 그 불협화음을 바로 잡아야 했다.

며칠 후 페이 차일드가 다시 접견을 청했다.

그의 안색은 저번과 달라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희의 무능함으로 박사님을 번거롭게 해드렸습니다.”

“핵 반입 따위는 없었지요?”

“……알고 계셨군요. 따로 조사를 하셨습니까?”

“혹시 몰라서 국가가 아닌 테러범의 통제 하에 놓인 위험 핵물질이 더 있는지 지구 전체를 훑어보긴 했습니다만, 그런 건 전혀 없더군요. 그 뒤로는 더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미국 정보기관이 보유한 첩보를 수집하면 자세한 상황을 알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핵물질이 없다는 걸 확인한 이상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페이 차일드는 쓴웃음을 짓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허위였습니다.”

“……허위라고요?”

의외의 설명에 한서진도 멈칫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허위 정보에 CIA도 감쪽같이 속아 넘어갔던 겁니다. 핵 반입도, 테러 용의자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추적하던 용의자는 그저 출입국 감시의 눈길을 피해서 웜홀을 몰래 통과한 밀항자일 뿐이었습니다.”

웜홀 통과는 기본적으로 출입국사무소가 총관리한다. 그들의 눈을 피할 수만 있다면 ‘밀항’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물론 보통 밀항자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배후가 있군요.”

“예, 석유업체가 그 뒤에 있었습니다.”

“역시 중동인가요?”

석유업체는 웜홀 때문에 대출혈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다. 그런 공작을 저지를 동기가 충분했다.

그러나 페이 차일드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닙니다. 미국 석유업계였습니다.”

“…….”

“그 정도 배후가 뒤에 있지 않고서야 웜홀 밀항을 감히 성공할 수 없을 테니까요.”

밀항자는 신분을 숨기고 몰래 웜홀을 통과했을 뿐, 어떤 해로운 무기나 장비를 운반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미국 석유업계가 있으며, CIA는 핵배낭이 국내에 밀반입되었다는 역정보 공작에 잠시 휘둘렸다.

한서진은 퍼즐 조각을 간단히 끼워 맞췄다.

“웜홀망 상용화를 어떻게든 늦추려고 했군요.”

“맞습니다. 그들은 웜홀을 통해서 핵 테러, 생화학테러, 나아가 신종 전염병이 창궐할 경우 손을 쓸 수 없이 빠르게 피해가 확산될 거라는 분위기 조성을 원했습니다.”

진짜 테러를 하려는 게 아닌, 웜홀이 그런 위험 요소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분위기 형성. 석유업계가 원한 것은 딱 그 정도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석유업계 단독으로 그런 역정보 공작을 시도했지만, 다른 업계에서도 이에 가세했습니다. 웜홀망의 급격한 상용화를 반기지 않는 기업들은 이런 안보 위기를 반기고, 적극 부추기고 있습니다.”

웜홀 구축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 속도를 최대한 저지함으로써 사양 산업을 정리하고 변신할 시간을 벌려는 것이다.

웜홀이 거리를 초월한 테러, 그리고 전염병의 빠른 확산 수단으로 번질 수 있다는 공포가 널리 퍼진다면, 어떤 식으로든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으니.

“할 수 없군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웜홀 필터링 기능이 어떤 건지 발표해야겠어요.”

“하는 김에 하늘의 눈동자 때문에 전 세게 핵탄두가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것도 묶어서 공개하는 건 어떻습니까?”

“안 됩니다. 핵무장 포기할 생각 없는 나라들은 헛돈을 좀 써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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