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568화 (568/609)

00568  미싱 링크  =========================================================================

H타운에서 완전히 정비를 마치고 입주가 가능한 구역은 약 400제곱킬로미터 정도였다. 전체 면적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도 도시로서 최소한의 기능을 수행하기에는 충분했다.

다국적 기업들이 속속들이 입주를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와 웜홀로 연결되어 있어, 미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입주가 쉬웠다.

게다가 이주 정비를 마친 구역에는 100여 쌍의 상시 웜홀이 설치돼 있었다.

일명 ‘허브지대’라 불리는 구역에는 100여 쌍의 웜홀 한쪽 게이트가 전부 집결돼 있었다.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려면 먼저 가장 가까운 웜홀을 타고 허브지대로 이동한 후, 목적지와 연결된 웜홀로 다시 나오는 방식이다.

한 쌍의 웜홀이 서로 배타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였기에 취한 방식이었다. 물론 허브지대는 H타운에서 멀리 떨어진, 지리적으로 별로 쓸모 없는 외곽 지역에 있었다.

웜홀은 사람과 차량이 별개로 이용하도록 두어, 사고가 나거나 혼잡함을 빚는 일이 없도록 했다. 짐을 운반하기 위해서 차량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H타운은 최신 선진 기술과 서비스를 아낌없이 적용된 도시였다. 기업들의 입주가 시작된 첫날, 대대적으로 공개된 도시의 스펙에 세계는 혀를 내두르며 놀랐다.

거주구역 전체에 촘촘하게 짜여진 웜홀망.

무선 송전 시스템을 적용해, 송전망이 필요하지 않은 전력망.

미래 영화에서 나올 법한 각종 자동화 시설들, 그리고 도시와 공존하고 있는 녹림.

H타운은 단순히 고도로 발전한 척박한 콘크리트 정글이 아니었다. 도시의 모든 것은 자연과의 공존을 추구한다는 목적을 띠고 설계되었다.

고층 빌딩은 각 층 외곽마다 의무적으로 나무를 배치해야 했다. 동물이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보기에 흉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과의 조화를 갖춘 빌딩숲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안정감을 주었다.

회사를 따라 이주해온 이들은 H타운의 진정한 위용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그들이 꿈에서나 그리던 미래 도시가 바로 눈앞에서 현실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확신할 수 있었다.

H타운이 앞으로 세계를 이끌어나갈 과학과 정치, 경제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200개 기업이 입주를 거의 완료하자, H타운은 본격적인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H컨설턴트는 기업 빌딩, 주거 지역, 상가만 주먹구구식으로 짓지 않았다. 사람들이 고품스러운 삶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여가 시설도 갖췄다.

통상 1구역이라 불리는, 400제곱킬로미터의 첫 입주 지역은 적어도 그 자체로서는 수십 년 이상 된 도시처럼 완전한 기능을 갖추고 시작한 것이다.

기업을 따라 이주해온 이들은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가족들을 데리고 오기로 결정했다. 가족이 있는 거주자의 70%가 넘어가는 수치였다.

“지금 아예 눌러앉는 게 미래를 위해서 좋을 것 같아.”

현명하게 생각할 줄 아는 이들은 H타운에 지금 뿌리를 내리는 게 좋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1차로 들어온 200개의 다국적 기업을 따라 온 임직원 수만 무려 40만 명이 넘었다. 여기에 H컨설턴트에서 도시 유지 관리를 위해 고용한 인원들이 2만 명이 넘었다.

H컨설턴트에서 운영하는 대형 마트, 백화점, 문화시설, 환경 정화 등의 일에 종사하는 이들이었다.

또 치안과 안전을 위해 한국 정부에서 파견한 경찰 및 소방 인력, 여기에 거주자들의 가족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거의 200만에 육박했다.

입주를 시작하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200만에 달하는 인구를 채운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2차 입주 승인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기업들이 낸 신청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서울을 연고로 한 기업들의 신청서가 많군요.”

H컨설턴트 임원회의는 신중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김범석 부사장은 전자패드에 담긴, 수백 만 부가 넘어가는 신청서 리스트를 대충 확인했다. 전 세계에서 온갖 어중이떠중이 기업들까지 죄다 신청을 한 결과였다.

“서울은 앞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흐름입니다.”

“그래도 행정수도로서의 기능은 남게 될 테니, 다른 도시보다는 훨씬 낫죠.”

서울이 지니는 도시로서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다른 어떤 도시도 서울에 견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H타운이 향후 지니게 될 존재감에 비하면, 그 전에 서울이 타도시에 비해 누렸던 상대적인 우위성도 보잘것 없는 수준이었다.

“늦어도 10년 안에 서울은 다른 도시와 고만고만한 수준이 될 겁니다. 물론 H타운을 제외하면 가장 앞선 도시라는 점은 변하지 않겠지만요.”

“그 시기에 맞춰 서울에도 웜홀을 개방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조짐은 이미 웜홀망에서 서울을 제외했을 때부터 또렷이 나타나고 있었다. 서울의 고가 부동산 지역에서 부동산 거래량이 뚝 떨어진 것이다.

눈치 빠른 이들은 서울이 웜홀망에서 제외된 게 고도의 견제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즉시 실행에 옮겼다.

서울의 부동산 시세는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보였고, 그 흐름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기업들 입장에서도 서울보다는 H타운으로 회사를 옮기는 게 낫습니다. 당장 이전 비용이 들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서울에 잔류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이익이니까요.”

일반 기업이 H타운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기업 빌딩을 임대해야 한다. 전체를 임대할 수도 있고, 부분적인 층을 나눠서 임대를 할 수도 있다.

임대료는 무척이나 합리적인 수준이었다. 서울은커녕 지방 광역시 수준보다 낮게 책정되었으니까.

또한 H컨설턴트는 갱신을 할 때에도 최대 3% 이상 올리는 일은 없을 것이며, 계약 갱신시 기존에 입주한 기업이 우선권을 가진다고 공고했다.

“부동산을 가지고 임대료 장사를 하려는 게 아니라, 물리적 공간이라는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건물주가 아니라 도시 정부라는 자각과 정체성을 띠고 생각해야 해요.”

현재 책정된 임대료는 도시를 짓기 위해 투자한 막대한 비용에 비하면 어림도 없다.

그러나 H타운이 세워진 것은 땅장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과 사람들을 끌어모아 합리적인 인간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큰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H타운은 앞으로도 절대로 타인에게 토지나 빌딩, 주택 등을 양도하지 않는다. 그저 안정적인 조건으로 빌려줄 뿐이다.

“꼭 심시티를 하는 기분이군요. 치트키 쓰고 말이죠.”

어느 임원이 농담처럼 말하자 잔잔한 웃음이 퍼져 나갔다. 김범석도 피식거리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도시운영위원회, H컨설턴트 내에서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부서의 이름이었다.

H타운 전체를 관리하는 통합관리사무실 같은 개념이지만, 그 영향력은 도시 정부나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에서 파견한 경찰 등 행정안전 인력 역시 그들과 협조하여 업무를 수행하니까.

위원회의 목적은 단 하나다.

누구나 선망하고, 동경하고, 살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은 한서진의 권위에 또 한 겹의 굳건함을 더해줄 것이다.

레노지안에서 스칼린은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이번의 꿈은 처음의 꿈과 조금 다르면서도 대체로 비슷하게 흘러갔다.

스칼린은 마수를 퇴치하고, 기사들과 소녀들로부터는 선망의 눈길을 받았으며, 백성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반려자인 아서 왕과는 언제나 금슬이 좋았다.

하지만 가끔 꿈에서 깨어날 때, 묘한 중압감이 가슴을 지그시 누르기도 했다.

‘박사님께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그러나 말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

레노지안은 오래 전에 끝났고, 상부 맨틀 격벽 아래에 그 무덤만이 남아 있다.

그녀는 아서 왕이 꾸는 리미트리스 드림과 이제 자신이 꾸는 꿈은 별개라고 생각했다.

‘만약 말씀드리면 이 모든 게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까?’

신효진은 그 점이 두려웠다.

과거 자신은 꿈속에서 레노지안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했다. 그게 한서진을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정 이상 비밀에 접근했을 때, 갑작스럽게 꿈이 닫혀 버렸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것은 꿈을 즐기지 않고 탐구하려 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레노지안은 오래 전에 끝났어. 박사님도 더 이상 아무 일도 없을 거라 하셨고……. 그러니 나는 이제 보상을 받아도 돼.’

그저 꿈을 즐길 뿐이다. 다른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녀는 T1을 통해 BII 가상현실 환경에 접속함으로 인해, 자신의 무의식에 잠재돼 있던 꿈에 다시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꿈을 꾸었을 때 T1의 시스템 점유율이 급격히 증가한 게 아마 그 이유이리라.

SJ엔터테인먼트에 조금 손해를 끼치는 것이지만, 그 정도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한서진에게 전해준 레노지안의 고위 지식만 해도 가치를 측정할 수 없으니까.

T1의 가상현실을 통해 우연히 접촉하게 된 자신의 무의식, 그것이 신효진이 생각하는 이번 꿈의 정체였다.

낮에는 한 달에 생활비로 1,666억 원을 펑펑 쓰는 호화로운 최상류층의 삶을 누리고, 밤에는 드넓은 레노지안 대륙의 현명한 왕비로서의 아름다운 행복을 즐긴다.

이번 생에 한서진과 맺어지지 못했다는 쓰라림을, 그녀는 그런 식으로 해소하고 있었다.

그날도 스칼린은 근위기사단을 이끌고 먼 서부 지역에 나타난 마수 떼를 물리친 뒤, 기세등등하게 돌아왔다.

그런데 왕궁의 분위기가 뭔가 어수선했다. 용에서 내린 그녀는 갸웃거리며 지나가는 시종을 불러세웠다.

“분위기가 어수선하군요. 무슨 일이 있나요?”

“아, 왕비 전하.”

시종은 그제야 그녀를 알아보고 급히 한쪽 무릎을 꿇어 예를 취했다.

“기뻐하소서, 왕비 전하. 폐하께서 마침내 초룡을 얻으셨습니다.”

아, 약속된 이벤트.

스칼린 왕비는 납득했다는 듯이 끄덕였다.

“왕국에 큰 경사가 났군요. 폐하께 안내해줘요.”

“예, 왕비 전하.”

중앙 광장에는 이미 수많은 신하들이 몰려 있었다. 스칼린은 그 중심에 위풍당당하게 앉아 있는 초룡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간혹 초룡이 기지개를 켜듯이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엄청난 바람이 태풍처럼 일어났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무서워하기는커녕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스칼린은 밝은 미소를 띠고 왕에게 다가갔다.

“축하해요, 리온. 드디어 성공했군요.”

“이제 겨우 한 걸음을 떼어놓은 거요. 신좌를 탈환하기 전까지 카드리안 가문은 절대 멈추지 않을 거요.”

스칼린은 태양마저 가리는 초룡의 덩치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미소지었다.

“제가 이름을 지어도 되겠지요?”

“당연하오. 그것은 왕비의 권한이지 정통이니. 혹 생각해둔 이름이 있소?”

가슴이 조금 떨린다. 스칼린은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었다.

“타르온이라고 하겠어요.”

“타르온?”

왕이 흠칫 놀랐고, 스칼린은 속으로 쿡쿡 웃었다.

아마 지금 운명이라고 생각하겠지. 오래 전에 잊혀진, 자신이 알 리 없는 이름을 주었으니까.

“……과연 이런 게 운명인가. 알겠소. 나의 영원한 전우여, 그대의 이름은 타르온이라 하겠노라.”

그에 응답하듯이 초룡이 고개를 들어 왕과 왕비를 빤히 내려다봤다. 그 순간 초룡의 온몸이 눈부신 빛에 휩싸였다.

눈뜨기 힘든 섬광 속에서, 스칼린은 초룡의 실루엣이 순식간에 작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빛이 완전히 사그라지고 난 후, 그곳에는 누군가의 그림자가 서 있었다. 표정 없는 눈빛으로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늘씬한 자태에 스칼린은 창백하게 굳어버렸다.

‘하, 하나 씨?’

============================ 작품 후기 ============================

“디바라고 해주면 안 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