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67 미싱 링크 =========================================================================
평성 종합과학도시, 통상 H타운이라 불리는 신도시가 드디어 입주를 앞두고 있었다.
아직 도시 전체가 완공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을 정도의 인프라는 갖추게 된 것이다.
H타운은 경기도에 버금가는 면적의 단일 도시로서, 오롯한 한서진의 소유였다.
도시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법적 성질로는 사실상의 단일 저택이었던 것이다.
“H타운에서는 기본 생활에 필수적인 몇 가지가 무료로 제공됩니다. 전기와 수도, 그리고 기본적인 생필품이죠. 또 관할센터에 신청을 하면 가족 수에 맞춰 삼시 세 끼 도시락도 배달됩니다.”
도시 입주를 앞둔 상황에서 H컨설턴트에서 대대적인 설명회를 열었다. 신도시 거주자를 모으기 위한 준비 절차였다.
누군가가 물었다.
“왜 가스는 무료가 아닙니까?”
진행 총책임자인 H컨설턴트 김범석 부사장이 대답했다.
“H타운은 가스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난방은 전기로 해결합니다.”
“기본적인 생필품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말하는 겁니까?”
“세면도구, 식기, 의류와 신발, 건강용품 등 생활에 필수적인 일체의 용품들을 말합니다. 정확히는 거주민에게는 매달 일정한 액수의 교환권이 주어지고, 그 교환권을 통해 센터에 신청해서 구매하는 방식입니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기자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말 그대로 H타운 거주자들의 기본 생활은 H컨설턴트에서 무조건 책임지는 방식 아닌가?
‘하긴, 종합과학도시니까…….’
‘H타운에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인재라면 이 정도 복지는 아무것도 아니지.’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도 사내에서 식사와 의료서비스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데, 한서진이 직접 건설한 H타운이 이 정도쯤 해주는 게 이상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국적 기업들이 쏟아내는 입주 문의로 H컨설턴트 관련부서는 정신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대기표까지 발급해서 입주 시기를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기업과 대학 외에, 일반인이 개인 자격으로 입주를 신청하는 것도 가능합니까?”
“당연히 가능합니다. 조만간 개인 입주 신청을 받는 코너도 따로 신설해서 운영할 계획입니다.”
“보통 어떤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개인 입주를 신청할 수 있습니까? 아니, 어느 정도 자격을 갖춰야지 입주가 승인될 수 있는 건가요?”
H타운 입주를 희망하는 존재는 대부분 기업, 대학, 연구소, NGO 단체들이다. 입주가 승인되면 상주 인원은 당연히 소속원으로서 H타운에 머무를 자격이 생긴다. 물론 상주 인원의 명단은 H컨설턴트와 협의를 해서 결정해야겠지만.
거주 시민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마트, 백화점, 매장 등 역시 마찬가지 과정을 거쳐서 들어온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및 초중고학교 등의 교육기관, 치안과 도시 안전 유지를 위한 인력은 H컨설턴트에서 직접 채용해서 거주하게 된다.
기자들은 저런 경우에서 벗어난, 순수하게 개인 자격으로 입주하려면 어떡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김범석 부사장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종학과학도시이니만큼 연구원이나 학자들 위주에 우선권이 주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가족들은 자동적으로 거주권을 얻게 될 겁니다.”
“과학자나 공학자 말고는 개인 자격으로 입주하는 게 불가능합니까?”
“아무래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도시의 설립 목적에 부합되지 않으니까요.”
적지않은 기자들이 비슷한 예감을 품었다.
H타운은 정말 선택받은 사람들만 사는 도시가 될 것이라고.
개인 자격, 채용, 기업 소속원 등, 그 어떤 형태로 들어오든 간에 H컨설턴트의 승인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누군가가 다시 질문했다.
“그렇다면 비입주자의 도시 방문은 어떻게 됩니까? 예를 들어 H타운에 입주해 있는 가족이나 지인을 만나러 오는 경우는요?”
“그런 경우에는 당연히 방문이 허용됩니다. 물론 사전에 신청을 해야겠지만, 결코 그 절차를 까다롭게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방문이 허용된다. 그러나 기자들은 그 뉘앙스에 담긴 다른 뜻을 읽어냈다.
“아무런 목적 없는 단순 방문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H타운은 사유지입니다.”
김범석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명쾌하게 분위기를 정리해버렸다. 짧은 한 마디였지만 기자들은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도시의 규모에 취한 나머지 잠시나마 잊어버리고 있던 것을 일깨워준 것이다.
“면적이 다소 넓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H컨설턴트에서 운영하는 ‘회사 사옥’입니다. 회사 빌딩에 들어오려면 당연히 사측의 허락을 얻어야겠죠.”
“다소 넓은 정도가 아닌데.”
누군가가 중얼거렸고, 김범석은 흘려넘겼다.
“아직은 시기상조지만 차후 도시 단체 관광 프로그램 같은 것을 운영할 계획도 있습니다. 어린 학생들을 위한 상시 견학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로 고려 중입니다. 기본적으로는 H타운에 지인 연고가 없는 비입주자들도 도시를 둘러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운영될 겁니다.”
김범석은 차분히 기자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H타운은 본질적으로 사유지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겁니다. 대도시의 규모를 갖춘 하나의 거대한 연구단지일 뿐이지, 행정도시가 아닙니다.”
H타운의 H는 한서진의 이니셜을 따서 붙은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헤븐타운. 사람들은 H타운을 가리켜 그런 식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H타운의 미래 청사진, 시설과 규모, 그리고 자체적으로 갖추고 있는 복지 정책 때문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선 비전을 품은 대도시, 여기에 거주 환경은 나무랄 데 없이 좋다. 입주 자격만 얻는다면 막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환경이니.
H컨설턴트에서 주최한 설명회 첫날이 끝나자마자 국내 여론은 뜨겁게 가열되었다.
―헤븐타운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 꼭 헤븐타운에서 살고 싶은데. 웜홀도 설치 안 되는 헬서울에서는 더 이상 못 살겠다.
―가장 간단한 방법, 노벨상을 타는 겁니다. 그럼 입주 신청하기만 하면 초스피드로 승인 날 겁니다.
―좀 더 현실적인 방법을 알려주세요.
―명문대 이공계에 들어가서 석박사 코스를 밟으면 됩니다. 과학과 공학 인재를 우선시하는 H타운 특성상, 석사만 따도 입주가 될 거예요.
―더 쉬운 방법이 있지. 세계 유명 대학들이 앞다투어 H타운에 캠퍼스를 세운다는데, 그 캠퍼스 학부생으로 진학하면 되는 거야.
―경쟁률이 대체 얼마일지 알고? 차라리 그냥 한국대 서울캠퍼스 이과 코스 밟고 석사 찍는 게 훨씬 쉬울 거다.
―다들 간과하시네요. 지금 재직 중인 회사가 입주 신청해서 상주 직원으로 파견나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파견 수당 따로 나오고, 생활비 아낄 수 있고, 상상하기만 해도 혀끝에 꿀이 흐르는 것 같네요.
―개인 미용실 운영하는 사람인데요, 자영업자 개인으로 신청하는 건 안 될까요? 헤븐타운도 사람 사는 곳이니 미용실 같은 서비스 직종이 당연히 필요할 텐데.
―대형 마트 직원으로 가는 방법도 있음. 듣자하니 H컨설턴트에서 마트 같은 필수업체는 자체적으로 직원 채용해서 운영할 계획이라고 함.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H타운에 입주할 수 있을지, 애타게 방법을 갈구했다.
H컨설턴트에서 내건 입주 관련 공고문은 수백 만 명이 넘는 네티즌 전문가들에 의해 글자 하나하나까지 철저히 분해된 채, 그 뜻이 파헤쳐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처럼, 그 안에 담긴 취지와 의도와 목적이 낱낱이 해체되었다.
“H타운에 입주하려면 결국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개인 자격으로, 하나는 단체 소속원 자격으로 들어가는 거다.”
“단체 소속원은 재직 회사가 입주하거나 아니면 H컨설턴트에서 운영하는 시설에 채용되는 방법이 있는데…… 개인 자격은 아무나 될 것 같진 않네.”
“석박사 따서 신청하거나, 아니면 H타운 대학 캠퍼스에 입학하거나.”
개인 자격으로 입주 승인을 받는 것은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허들이 높았다. 적어도 과학 부문에서 일정한 레벨 이상의 인재로 인정받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단체 소속원 자격으로 들어가는 것은 상대적으로 무척 쉬워 보였다.
살인적인 경쟁률을 듣기 전까지는.
“300 대 1이라고? 아니, 무슨 의류 브랜드 하나 입점하는데 경쟁률이 왜 그래?”
“웃돈이라도 줘야 하나?”
“큰일 날 소리! 그런 거 걸렸다가는 무조건 블랙리스트 행이라고. H컨설턴트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아니, 이건 너무 말도 안 되는 경쟁률이잖아. 그 큰 도시에 들어가는 매장이나 시설들 개수가 어마어마할 텐데, 매장 하나에 300 대 1이라는 게 말이 돼?”
“지원하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다는 걸 알아야지. 그리고 아직 도시 전체가 입주를 받는 건 아니잖아. 보니까 당장 입주 가능한 지역은 아직 전체의 5%도 안 되던데.”
5%.
좁아 보이지만 경기도 전체에 버금가는 면적이라는 것을 보면 절대로 좁은 게 아니었다.
최초의 입주 승인 기업은 SJ인더스트리로 결정이 났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공장부지를 이전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큰 공장의 가동을 멈추는 것도 손해일 뿐더러, 캘리포니아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생각해볼 때는 그대로 놔두는 게 나았다.
SJ인더스트리는 공장시설을 제외한 본사와 연구소를 H타운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본사는 미국을 담당하는 지사로 남기기로 했다.
SJ인더스트리의 뒤를 이어, 첨단 분야를 달리는 다국적 기업들이 차례차례 입주 승인이 났다. 금융업 기업들도 이에 질세라 입주를 신청했고, H컨설턴트는 받아들였다.
“H타운은 과학과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도시이지만, 과학의 발전에는 돈이 필요합니다. 풀을 뜯어먹으면서 실험에 열중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과학 탐구를 추구하는 과학도시지만, 꼭 관련 기업이나 연구소만 입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입주 신청을 받는 첫날 하루에만 200개가 넘는 기업이 모두 승인되었다. 백억 달러 클럽에 가입한 기업들은 예외 없이 신청했고, 전부 받아들여졌다.
그들이 입주할 시설은 이미 갖춰져 있었기에, 바로 이사를 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중에는 사실상 본사를 옮긴 회사도 있었고, 핵심부서를 따로 간추려서 지사 형식으로 보낸 곳도 있었다.
스탠포드는 대학 중에서 가장 먼저 연구소를 입주시켰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도 이에 질세라 H타운으로 연구소를 이전했다.
H타운은 우주의 근본적인 힘인 에테르를 연구하는 유일무이한 과학도시, 기업과 대학으로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게 중요했다.
“H타운에 들어가지 못하면, 미래에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캘리포니아―평성 웜홀, 캘리포니아―블라디보스톡 웜홀, 웜홀이 이미 활성화 되어 있었기에, 미국 서부에 위치한 기업과 대학들은 수월하게 입주할 수 있었다.
의외인 것은 보안에 민감한 군수산업체도 입주했다는 것이다. 무기 실험실을 옮긴 것은 아니지만, 무기를 연구하고 설계하는 핵심 연구소를 H타운으로 옮겼다.
기업들의 입주가 시작되고 사흘이 지나기 전, 한서진의 새 집 인테리어 작업도 드디어 모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