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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566화 (566/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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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명실상부 국내 최고 학부로 등극한 한국대학교 반도체공학부도 새내기들을 맞이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3월 2일, 학부 개강총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대강당에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꽤 친해진 신입생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앉아 잡담을 떨고 있었다.

“그럼 그 언니, 아니 그분이 우리 학부에 있는 거야? 진짜?”

“그렇다니까. 너 설마 모르고 들어왔어?”

“전혀 몰랐어. 그냥 성적 맞춰서 들어온 건데.”

단발 머리의 여학생은 타대학 학생들이 들었다가는 입에 게거품을 물 소리를 태연히 했다.

“그럼 오늘 개강총회에 오실까? 아, 꼭 한 번 보고 싶다.”

“안 오실 걸. 워낙 바쁜 분이잖아. 듣자니 SJ그룹 안살림 쪽은 그 언니가 도맡아서 하신대.”

“와, 겨우 세 살 차이인데 완전히 다른 나라 이야기같다. 딴 세상 사람 같아.”

“딴 세상 맞지. 구름 위의 신계.”

한서진이 한국대 반도체공학부 출신이라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그의 아내까지 재학 중이라는 것은 의외로 모르는 신입생들이 제법 있었다.

뒤늦게 송하나의 존재를 듣게 된 이들은 혹시 오늘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었다.

그때 한쪽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아, 저기! 저기좀 봐봐!”

“뭔데? 무슨 일인데? 앗!”

“저 분이 그 분 맞지? 나 인터넷에서 봤어!”

검은 코트를 걸친, 늘씬하게 키가 큰 미인이 대강당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우유처럼 하얀 피부와 대조되는 긴 흑발, 차가운 듯 도도한 표정은 인형처럼 아름답다.

그녀는 존재만으로 대강당의 공기를 바꿔버렸다.

모두가 그녀의 사소한 동작 하나까지 주의하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재학생 측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긴 다리를 가볍게 꼬고 앉아 무릎 위에 두 손을 살포시 올려놓은 모습에서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녀를 처음 보는 신입생들, 특히 남학생들은 눈을 떼지 못하고 홀린 듯이 바라봤다.

“누구지?”

“과 선배 아닐까?”

“그러기에는 너무 성숙하신대. 혹시 교수님은 아닐까?”

“교수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잖아.”

송하나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고.

“꺅! 저 언니, 맞아! 맞아! 저 언니가 송하나 사모님이라고! 나 인스타에서 봤어!”

“저 분, 인스타도 하셔? 자기 사진도 막 올리고 그러셔?”

“아냐, 저분은 그런 거 안 하셔. 헐리우드 배우 어떤 사람이 저 언니와 함께 찍힌 사진 올린 적 있거든. 그거 봤었어!”

“근데 진짜 예쁘다. 사람이 아닌 것 같아.”

그녀를 알아보고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처럼 뛸 듯이 기뻐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강당의 집중이 한번에 쏠렸지만, 송하나는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그런 시선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듯이.

그런 무심한 듯한 태도가 오히려 더욱 그녀가 지닌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치장해주고 있었다.

학장을 비롯한 교수들이 등장하고, 총회가 시작되었다.

사회자는 학부의 연혁과 역사, 그리고 비전을 차례차례 읊었다. 교수진을 소개할 때가 되자 학장을 비롯하여 차례차례 교수들이 인사했다.

총회 정규 행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아, 그리고 올해 총회에서는 특별히 아주 귀중한 분이 한 말씀을 해주시기로 했습니다. 현재 우리 학부에서 가장 유명한 분이시죠. 바로 4학년 송하나 학우입니다!”

우렁찬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마치 대강당이 떠내려갈 듯한 기세로, 신입생들은 미친 듯이 박수를 쳤다.

강단에 오른 송하나는 살짝 인사를 한 뒤 말문을 열었다.

“4학년에 재학 중인 송하나입니다. 졸업이 멀지 않아서 신입생 여러분과 긴 시간을 하지는 못할 것 같아 유감이네요.”

그녀의 음색은 차분하면서도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었다.

“아는 후배님들은 아시겠지만, 이미 졸업하신 한서진 선배님은 우리 대학 이과 계열에만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매년 1,700억 원의 장학금을 기부하고 계세요. 그래서 이과생들은 등록금 전액 면제에다가 추가로 장학금을 받아가면서 학업을 수행 중이죠.”

그것은 신입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반도체공학부가 카이스트, 포항공대 등을 제치고 극단적으로 그 위상이 높아진 것은 바로 학생 전부가 무료로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등록금 면제에 장학금을 별도로 지급하니, 자연히 우수한 이과 학생들이 너도 나도 한국대로만 몰리게 된 것이다. 물론 한서진의 존재감도 컸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정도로는 우리 학교가 칼텍이나 MIT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하는데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졸업하기 전에 새로운 학구열 증진 정책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폭탄 선언에 교수들도 깜짝 놀라서 그녀를 바라봤다. 사전에 이미 합의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학장 역시 놀란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과 계열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내 연구후원상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올해부터 시행되며, 매년 연말에 3개 팀을 선정해서 수상식을 합니다. 연구 주제는 무제한이며 종류를 가리지 않습니다. 개인이 하든, 팀을 짜든 그 어떠한 제약도 두지 않겠습니다.”

재학생들의 눈에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신입생들은 어떻게 되는지 몰라 웅성거리며 자기들끼리 쳐다봤다.

“상금은 100억 원입니다. 당연히 수상자, 혹은 수상팀에게 주어지는 개별 상금이 100억 원이라는 뜻입니다.”

폭탄이 떨어졌다.

한국대학교는 크게 술렁거렸다.

개강 첫날 송하나가 작정하고 터트린 폭탄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러니까 교내 노벨상 같은 걸 만들겠다는 거 아니야? 상금이 100억 원이라고?”

“수상자 셋이서 100억 원을 나눠 갖는 게 아니라 각각 100억 원을 갖는다는 거지? 만약 수상자가 개인이 아니라 팀이면 그 팀 내에서 100억 원을 나누는 거고?”

“역시 한서진 박사님 사모님이시다. 스케일이 아주 그냥 다르네, 달라.”

“졸업 과제 아주 빡세게 해야겠는데. 100억이라니, 세상에. 그 돈이면 대체 못할 게 뭐야?”

무엇보다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매년 빠지지 않고 진행될 학교의 주요 행사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 최고의 인재들을 쓸어담고 있으며, 세계에서도 우수한 인재들이 유학을 오곤 한다. 여기에 교내 연구후원상이라는 부스터까지 달게 되었다.

인문학 계열에서 이과만 너무 편애한다는 작은 불만이 나오긴 했지만, 자기 돈 가지고 과학 발전을 지원하겠다는데는 뭐라고 비난할 거리가 없었다.

뒤늦게 이야기를 전해들은 한서진도 좋은 생각이라며 칭찬을 해주었다.

“100억 원이면 이십대 대학생들한테는 꽤 큰돈이지. 제대로 자극이 되겠구나. 잘했어.”

“오빠, 꽤 큰돈이 아니라 천문학적인 돈이거든요?”

“그거나 그거나. 그나저나 학구열 자극하는 것은 좋은데, 연구 성과를 제대로 내기에는 시설이 좀 빈약하지 않아?”

“좀 그런 경향이 있죠. 설비나 자재 같은 것도 많이 부족하고요.”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대학 연구소 설립 투자 비용으로 한 100조 원쯤 줘야겠다. 그동안은 경기도 신연구소 사옥도 이용할 수 있게 해주고.”

학생들이 연구와 학업에 몰입할 수 있는 동기는 제대로 주입해주었다. 이제는 그 동기를 제대로 배양할 수 있는 외부 환경 조성이 필요했다.

100조 원의 연구시설 설립 비용이면 충분한 배양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학기만 다니고 휴학하는 게 어때? 2학기에는 이제 출산 준비해야지.”

“잘하면 저 조기졸업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학점 관리 나름 열심히 했거든요.”

“그래? 그거 잘 됐네.”

한서진은 송하나를 무릎 위에 앉히고 뒤에서 껴안은 채, 아랫배를 가만히 어루만졌다.

“그럼 졸업하고 나면 평성으로 이사갈 수 있으려나.”

“지금 거의 다 지어지지 않았어요? 몇 가지 마감 작업하고 내부 인테리어만 하면 될 것 같던데요.”

송하나는 그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전 여기 계속 살아도 괜찮은데. 평성 새 집도 물론 마음에 들긴 하지만요.”

“사실 이사가는 건 아니지. 저택 둘 다 웜홀로 연결해놨으니까 그냥 집을 확장했다고 생각하면 돼.”

“근데 활주로는 괜히 만든 거 아니에요? 앞으로 웜홀 때문에 활주로는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혹시 모르잖아. 살다 보면 쓰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고.”

시내 공원을 저택으로 개조한 세연동 저택도 서울에서는 유일무이하게 화려한 대저택이지만, 평성 대저택의 규모에 비하면 초라한 편이다.

“그래도 나중을 생각하면 평성에서 쭉 살아야겠죠.”

북한 지역은 지금 아무것도 없는 제로에서부터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당장은 제대로 된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다. 평성 종합과학도시가 완공돼도 그뿐, 그 외 지역은 아직 개발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미래 가치를 생각하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평성 종합과학도시는 서울을 능가하는 한반도 최고의 대도시가 될 것이다. 벌써부터 이주를 문의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었고,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대량의 인구가 평성으로 빠져나갈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특히 경기도와 서울의 경계심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효진 씨한테서 연락 안 오나요?”

“안 왔는데. 너는 왔니?”

“저도 못 받았어요. 놀러다니기 바쁜가 봐요. 연락할 정신도 없을 만큼.”

송하나는 조금 서운한 듯이 투덜거렸다.

“인스타에 보면 죄다 자랑하는 사진들 뿐이던데.”

“효진 씨가 인스타도 해?”

“자기 사진은 안 올리는데 오늘 뭐 샀다, 뭐 먹었다, 어디 갔다, 이런 사진은 꼬박꼬박 올리더라고요. 팔로워가 벌써 10만 명이 넘었던데요.”

한서진은 그게 조금 이해가 안 갔다.

“자랑하는 사진 투성이라는데 팔로워가 그렇게 많이 붙어?”

“동경하면서 대리만족 느끼는 거죠, 뭐. 효진 씨가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엄청 많더라고요. 효진 씨도 은근히 즐기는 거 같고.”

“효진 씨 내면에도 그런 욕구가 있었구나. 몰랐네.”

“그런 거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저도 있는데.”

“근데 하나 너는 SNS 같은 거 안 하잖아?”

“자랑하며 살기에는 제가 너무 노출돼 있잖아요. 오히려 역효과만 나죠. 아, 나도 효진 씨처럼 마음 편하게 자랑질하면서 살고 싶다.”

장난스레 던지는 농담에 한서진도 피식 웃었다. 그러다가 돌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송하나는 의아해서 물었다.

“오빠, 왜 그러세요?”

“아니, 며칠 전에 마이애미에 에테르 스톰이 형성될 조짐이 보여서 강제로 해제시켰는데, 또 에테르 에너지가 뭉치고 있어서.”

“위험한 건 아니죠?”

“아직은 위험하지 않지. 근데 이상하네. 요즘 들어 벌써 세 번째야.”

한서진은 타르타로스 3에 명령을 내려, 형성 중인 에테르 스톰을 해제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이번 달에만 벌써 세 번째네. 한동안 잠잠했었는데…… 요즘 들어 에테르 스톰이 왜 이렇게 자꾸 생겨나지?”

============================ 작품 후기 ============================

대학생들이 쓰기에는 꽤 큰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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