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64 보스가 되다 =========================================================================
에테르 핵융합은 에테르를 도구로 써서 수소 핵융합을 일으키는 원리다.
한서진은 장고 끝에 니트론이 개발한 에테르 핵융합을 적극 지지하기로 했다. 아니, 오히려 에테르 핵융합을 에너지계의 주류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적극 개입하기로 했다.
‘어차피 한 번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태양에서 인류의 눈을 돌리기 위해서는 차라리 이게 낫다.’
핵융합 발전은 인류가 지구를 생활권으로 하는 동안에는 풍족하다 못해 넘치는 에너지를 제공할 것이다. 적어도 에너지 부족으로 인류가 불만족을 느끼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에테르 에너지원 그 자체에 대한 갈망이 들지 않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내가 조금만 더 거들면 되겠어.’
한서진은 니트론의 핵융합을 띄워주기 위한 비장의 카드를 꺼내기로 했다.
“무선 송전 시스템이라고요?”
한서진이 꺼낸 말에 니트론은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그건 이미 기술적으로 가능한 영역이 아닙니까?”
무선 송전, 기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영역이기에 니트론은 의아했다. 왜 한서진이 그런 고전적인 분야에 열중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구현 자체야 다른 기관도 가능하죠. 그게 실생활에 쓸모 있는 형태가 아니라서 그럴 뿐.”
“흠…….”
강력한 자기장, 혹은 전자파를 발사하는 형태로 전기 에너지를 전송하는 방법은 이미 구현돼 있다. 다만 거리에 따른 에너지 손실, 그리고 주변의 전자기기와 인체에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 게 숙제로 남아 있을 뿐.
“칼라칩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원리는 같습니다.”
“칼라칩?”
동기화 기능을 통해 이론적으로는 우주 반대편에서도 실시간 통화가 가능한 칼라칩, 그것을 들먹이자 니트론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칼라칩은 동기화 기능을 통해 정보를 전송하죠. 정보 손실률도 없고 전파가 아니기에 제3자가 중간에 가로챌 수도 없습니다.”
“……아. 설마?”
“제가 만든 무선 송전 시스템 또한 그렇습니다. 동기화는 아니지만 원하는 목표물에 손실률 0%로 전기 에너지를 전송할 수 있습니다. 즉 외부에 거의 해를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고압 송전망을 이용한 유선 전송보다 훨씬 안전합니다.”
니트론은 더 이상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흥분한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며 몸을 떨었다. 한서진이 제시한 무선 송전 시스템과 에테르 핵융합 발전이 결합하면 어떤 놀라운 세상이 만들어질지, 한눈에 보였던 것이다.
“송전망과 에너지 손실 없이 지구 반대편으로 전기를 보낼 수 있다면……! 이건 혁신입니다!”
니트론은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하루빨리 이 놀라운 전력 시스템을 세상에 내놓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막대한 돈을 들여 전력망을 깔 필요가 없어요! 일반 가정에 수신칩 같은 걸 달기만 하면, 발전소에서 바로 전기를 전송할 수 있으니! 잠깐, 이러면 전기자동차에도 적용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전기자동차는 무거운 배터리와 충전 시간 문제, 일회 완충으로 달릴 수 있는 주행거리 등의 문제에서 내연자동차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무선으로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다면 그런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다. 사람들은 환경오염이 심한 내연자동차를 선택할 이유가 없어진다.
니트론이 갑자기 멈칫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럼 석유업계도 타격이 엄청날 텐데…… 한 박사, 괜찮겠습니까?”
“제가 석유업계를 어느 정도 배려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핵융합 발전 자체를 막을 생각까지는 없습니다.”
“만약 이게 정말 현실이 된다면…… 연료로서의 석유는 항공기 정도에만 쓰이게 되겠군요.”
니트론은 석유가 지구상에서 퇴출되는 날이 정말 초읽기에 들어갔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니, 이미 오래 전부터 예고된 것이긴 했지.’
한서진이 만능의 힘 에테르를 활용할 때부터, 이미 많은 전문가들은 다가올 미래의 변화를 경고했다. 언젠가 에테르가 석유를 몰아내고 새로운 에너지원으로서 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지난 과거를 생각하면 지금도 오히려 많이 늦은 감이 있다. 석유업계는 미래의 변화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이다.
무선 송전 시스템이 발표되자 세계 에너지 시장은 또 한 번 요동을 쳤다.
값싸고 안전한 무공해 발전인 핵융합과 결합했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너무나 극명했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는 인공 핵융합과 무선 송전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나섰다.
“전력 수신 장치를 달기만 하면 각 가정은 발전소에서 다이랙트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송전망을 구축할 필요도, 도심 지하에 전선을 매립할 필요도 없어지죠. 무엇보다 손실률도 적고 안전합니다.”
니트론은 시제품으로 만들어진, 누전차단기가 내장된 가정용 중앙전력공급장치를 기자들 앞에 선보였다.
“이 전력공급장치가 수신칩을 통해 발전소에서 직접 전기를 공급받아 각 가정에 공급합니다. 스마트 시스템이 내장돼 있어 전력 소비량 등 전력 사용 환경을 실시간으로 확인하여 전력회사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기자들은 정신없이 기사를 타이핑하면서, 또 하나의 미래가 현실로 다가왔음을 느꼈다.
“이 모든 기술은 이미 완성된 상태입니다. 이제는 각국 정부의 도입 의지가 얼마나 굳건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세상은 핵융합과 무선 송전 시스템에 온통 열광했다. 어딜 둘러봐도 니트론을 찬양하는 의견뿐이었다.
―니트론이 해냈다!
―니트론 교수가 인류를 에너지 고갈로부터 완전히 해방시켰다!
한서진은 세계 여론의 흐름에 만족했다.
‘에테르를 직접 에너지화하자는 움직임은 이제 안 나오겠지.’
핵융합만 해도 무한이나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으니, 더 이상 그런 논조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오빠, 오빠.”
“응? 왜?”
“오빠 이름으로 검색하니까 연관검색어에 제우스라고 쫘르륵 떠요.”
“…….”
“제우스 한서진으로 검색하니까 5,000만 건이 넘는 결과가 나오네요.”
한서진은 이마를 짚었다.
졸지에 자신은 인간이 불을 쓰지 못하게 금지한 제우스 신이 되었고, 니트론은 그런 자신으로부터 용감히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전달한 수호신이 되었다.
무선 송전 시스템을 발표하면서 어느 정도 묻히긴 했지만, 그런 별명은 한동안 오래 갈 것 같다.
“차라리 한신이 낫지, 제우스가 뭐야.”
“왜요, 올림푸스 최고 신이잖아요. 나쁠 건 없죠. 전 좋기만 한데요.”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아내지만, 오늘만큼은 왠지 조금 얄밉게 느껴진다.
“근데 오빠, 왜 에테르를 에너지로 안 쓰는 거예요?”
한서진은 적당히 둘러댈까 했지만, 그냥 솔직하게 말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송하나가 다른 데 가서 말할 것도 아니니까.
“위험하거든.”
“위험이요?”
“나도 오랫동안 생각하고 연구해봤는데, 에테르를 에너지원으로 직접 활용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해. 한순간에 통제를 잃어버리면 모든 게 무너지고 말아. 그래서 손 안 대는 거야.”
“……아, 그 정도예요?”
“그럼. 당연하지.”
한서진은 내친 김에 좀 더 겁을 주기로 했다. 약간의 과장을 섞어서.
“에테르를 직접 에너지로 전환하다가 까딱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에테르 스톰으로 변해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날 수 있어. 그게 또 지금까지 지구상에 나타났던 에테르 스톰처럼 천천히 진행되는 게 아니에요. 모든 게 한순간에 쾅! 왜냐면 연쇄 반응으로 퍼질 수 있다는 성질 때문이지.”
송하나의 안색이 창백해지는 걸 보는 게 왠지 재밌어서, 한서진은 설명을 계속했다.
“에테르는 태양계 전체에 가득 퍼져 있거든. 근데 연쇄 반응이 일어나면 그 에테르 전부가 한순간에 터질 수도 있단 말이야. 그건 바로 인류, 아니 태양계 붕괴지. 인류가 뭘 어떻게 알아차리기도 전에 모든 게 사라져 버리고 말아.”
“……그럼 꼭 에너지원이 아니더라도 에테르를 이용하는 것 자체가 엄청 위험한 거 아니에요?”
“괜찮아. 그렇게까지 에테르를 자극할 수 있는 건 거의, 아니 아예 불가능해. 에너지원으로만 안 쓰면 100%야. 물론 지금 인류 수준으로는 에너지원으로 쓰더라도 그런 비극을 일으킬 가능성이 1조 분의 1도 안 돼.”
“…….”
“하지만 난 그 1조 분의 1의 가능성도 완전히 닫아두고 싶은 거야. 그래서 에테르를 에너지로 직접 활용하려 하지 않는 거고. 물론 난 잘 통제할 자신이 있지만, 먼 미래에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잖아?”
“만약 한 1, 2천 년 뒤쯤에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죠?”
“1, 2천 년 뒤까지 미리 생각하면서 대비하라는 건 내가 너무 가엾지 않니? 그건 그때 가서 후손들이 알아서 하겠지.”
조금 과장을 섞긴 했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태양을 잘못 건드려서 폭주시키면 태양계 그 자체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제독이 그걸 가만히 보고 있진 않겠지?’
물론 한서진은 제독을 믿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가 남긴 우주선을 믿고 있었다. 바로 상부 맨틀의 형태로 변화해서 십 수억 년 넘게 꿋꿋이 존재하는 우주선을 말이다.
‘상부 맨틀, 아니 격벽에는 태양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명령 코드가 활성화 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타르타로스 3와 통찰안으로도 꿰뚫어볼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지식이었다.
태양계 자체를 만든 제독이 인류를 위해 최후에 남긴 보루이니 당연한 것이다. 인류가 수천 년이 지나도 과연 상부 맨틀의 정체나 알아차릴 수 있을까?
‘어떤 의미에서 제독은 창조주나 마찬가지지.’
과연 인류가 그의 권위를 넘어설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할까? 아마 그만큼의 발전을 이루기 전에, 스스로 지닌 불안정함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하는 것은 아닐까?
끝없는 발전을 거듭하던 레노지안이 한순간의 실수로 멸망의 위기를 맞이했던 것처럼.
문득 한서진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레노지안이 태양에 도전할 것을 알면서도, 제독이 그걸 방관했던 것은…….’
혹시 제독은 뭔가를 소원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이 씨를 뿌려 태어난 인류가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기를. 그걸 보고 싶어 그들의 도전과 실패를 통제하지 않고 지켜봤던 것은 아닐까?
그러자 오싹 소름이 돋는다.
‘만약, 지금 이 순간에도 지켜보고 있는 거라면…….’
신이 인간을 빚고, 그리고 그 인간은 발전을 거듭하여 인간을 넘어서서 그 신을 초월한 또 다른 신이 된다.
그리고 신은 그것을 기꺼이 반기며, 자신의 아이들의 진화를 위한 양분이 된다.
신화 속에서 흔히 있음직한 이야기, 한서진은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런데 우주선도 없이 어디로 간 거지?’
지구나 태양계에 존재하기는 할까? 혹시 태양계를 방치하고 또 다른 우주로 나간 것은 아닐까?
한서진은 한숨을 뱉었다.
‘어쨌거나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태양으로부터 인류를 지키는 것,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소명을 다할 생각이었다.
삑! 삑!
그때 경고음이 울렸다. 경고 내용을 확인한 한서진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마이애미에 에테르 스톰이 형성 중이네.”
그는 어렵지 않게 타르타로스 3에 명령을 입력해, 즉각적으로 해당 지역에 개입했다. 위험 수준까지 형성되던 에테르 에너지가 곧바로 흩어지며 평소처럼 잔잔한 흐름으로 돌아왔다.
“효진 씨가 여행 중인 곳인데, 특별히 더 신경 써줘야지.”
============================ 작품 후기 ============================
“아, 그렇게 좋게 포장해주면 나야 고맙지.”